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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가장 무난했던, 격동의? 2020년을 보내며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현재 2020년 12월 31일.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역동적이였던 2020년을 한 번 결산 해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1분기 -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1분기의 시작은 상큼했습니다. 2019년 이직 후에 세웠던 계획들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거나, 이제 각 피쳐 개발팀으로 ownership 이전을 위한 knowledge transfer가 진행중이였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 목표들을 세워 시작하는 타이밍이였죠. 특히나 작년 한 해 동안 빌드/테스트 파이프라인 라이프사이클 시간 감축과 빌드 비용 절감이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였고, 올 해에는 테스트 고도화 및 안정성을 기하려 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코로나 소식이 들렸고 우한 상황을 보니 심상치가 않아 동료들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가 가능하면 온라인 쇼핑이 가능한 알리바바 같은 회사 주식을 왕창 사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주식에 손절한지 10년이되어 주식 살 생각도 안했죠. 일단 사면 마이너스의 손이고, 오르는 상품도 파는 타이밍을 잘 못잡고, 사고난 뒤 너무 타이트하게 관리하느라 제 일을 잘 못하거나, 잠시 잊고 살고자 하면 완전 잊어서 황금주에서 똥주로 바뀌는데 방치해 두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서요.

그러다 어느덧 covid19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때 까지만해도 한국에 사는 가족들이 걱정이였지 제 걱정은 안했는데... 3월이 되어 미국에서, 또 March Break를 맞이하여 유럽에 놀러갔던 수 많은 캐네디언들이 Covid을 가지고 오며 캐나다도 전국 락다운이 시작됩니다.

락다운 이전부터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갈 것 같으니 회사에서는 전원 재택근무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저희 팀에서 관리하던 서비스, 서버들의 보안관련 조치를 취하느라 바빴습니다. 원래 보안상 회사 내부망에서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재택근무 시에는 VPN을 이용해야 하는데, 회사의 VPN이 동시 접속자 200여명 정도만 사용 가능한데 직원 수는 이미 600명 가까이 늘어났으니 감당할 수 없었죠. 그래서 Google IAP를 통한 인증절차를 거치도록 급히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연말 셧다운 직전 개인 Innovation 기간동안 IAP를 좀 가지고 놀아보아 어렵지않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죠.

이 때 마지막 출근날 팀원들과 어떻게 원격에서 일을 할 것인지 짧은 미팅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경제 불황이 올 수도 있고 불황 뒤에는 이에대한 보상으로 큰 주가 반등이 있을테니 주식을 잘 보라고... 그리고 당장 투자한다면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관련 주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주식, 혹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엔터주에 투자를 하라고 말 했죠. 역시나 저는 주식 1주도 안샀습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출퇴근 통근시간이 사라져 하루에 2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습니다. 날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시기라 틈만나면 BBQ에 소주/맥주를 마셔가며 잘 놀며 지냈죠.




2분기 - 동트기 전 새벽? 최악의 암흑기

재택근무 체제로 저희 팀 시스템들을 죄다 변경한 이후 주변 팀들에도 비슷한 변경사항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나니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회사 벌크업을 위해 투자를 받아 적자운영을 하고있었는데, 글로벌 팬더믹으로 향후 2년은 추가 투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2-3년 이상 회사가 지속 생존을 하며 버티려면 어느정도는 레이오프가 필요하다는 CEO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합니다. 캐나다에와서 살아온 지난 7년간 살림살이가 점점 커지며 돈 나갈 구멍들도 점점 더 커졌는데, 갑자기 돈줄이 막히면 하루하루가 막막해질 것 같았죠. 실제 레이오프 발표를 하니 예상보다는 소규모였지만, 2-3주 정도 되었던 그 기간동안은 너무나도 심리적 압박이 심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저는 당시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양한 과민반응을 보였으며 최대한 운동과 술, 음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적지않은 수의 동료들은 그 기간동안 미리 살길을 마련하기위해 이곳저곳 인터뷰를 많이 봤던 모양입니다. 5-6월이 되자 적지않은 동료들이 다른 회사들로 이직을 해서 떠나갔죠.

오랜 락다운과 제한적인 생활에 지쳤고 재택근무 환경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여, 레이오프 예고 이후 떨어진 집중력은 다시 올라오지 못하여 평소대비 절반 정도? 혹은 그 미만의 효율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대한 야외 활동으로 해소 했습니다. 주 2-3회씩 자전거를 타고 토론토나 나이아가라에 다녀오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살았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면 혼자 다니기 심심해서 이렇게까지 엶심히 라이딩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동네에 맘 맞는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3분기 - 희망의 싹

이 일은 정확히는 2분기 말에 일어난 일이지만 공식화 된 것은 7월달이기에 3분기에 포함시킵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제가 진급을 했습니다.

제가 진급 요청을 한 적도 없었고 올 해 들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특히나 6-7월은 퍼포먼스 리뷰 및 진급을 하는 시기도 아니여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매니져가 저를 진급 시켜주었습니다.

진급과 연봉 상승시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역으로 제가 압박을 당하여 이에대해 마음을 비우고 살자고 생각하고 있어서 진급을 하니 그만큼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직장생활 중에 보너스와 진급만큼 기쁜 일이 또 없다보니 생각없이 그저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사알짝 희망의 씨앗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특히나 날씨는 점점 캐나다 최고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이라 아직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빼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세상은 원하는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죠? 제가 믿고 의지하던, 저와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와 함께 팀을 셋업했던 매니져가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 친구도 역시 회사 레이오프가 발표났을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가 잊고 살았는데, 그 때 넣었던 이력서 중 하나가 지금서 연락이 와서 채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봐도 워낙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 더 나은 포지션이기에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죠.

이 친구가 회사를 떠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집니다. 당장 매니져도 공석이다보니 제가 팀을 리드해야 하는데, 리드를 할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고... 이럴 때 일 수록 더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 했는데, 더 수렁에 빠지게 되며 희망의 싹이 보이다가 다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팀원의 이직이라는 큰 행사??? 덕분에 거의 반년만에 팀원들과 face to face로 만나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4분기 - 나는 태릉인?

3분기까지 술과 고기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제 체중이 인생 최고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체중이 불어난 것 자체는 좋은데 그로인한 무기력증과 나태함이 극에달아 다이어트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체중이 부는 와중에도 웨이트는 꾸준히 하여 운동은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운동량을 늘리고 제한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 목표는 40살 생일 (21년 2월) 전에 30살 생일에 측정했던 저의 체중으로 복귀를 하되, 당시의 저 보다 더 건강한 몸 (낮은 체지방, 높은 근육량)이며, 이를 측정하기위한 방법으로는 복근이 보이는 몸으로 정했죠.

이 때 부터 저의 주식은 닭 가슴살 (삶은것 까진 못하겠고 구이) + 고구마 or 떡 + 야채볶음 이였습니다. 주 5일은 이렇게 먹고 주말에는 치팅을 하는 식이였죠.



운동은 오전에 웨이트 2-2.5시간, 오후에 부트캠프 식의 유산소 및 코어운동 1시간을 했습니다. 간간히 아이들 운동을 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같이 줄넘기 1000개 및 동네 달리기도 했죠.

늘어난 운동량 덕분인지 보다 깔끔해진 식사 덕분인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자 하루에 600-800g씩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말에 탄수화물 폭탄 흡입 및 음주를 하여 주말 이틀동안 3Kg 정도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몇달간 프로그램을 지속해 보니 각 주차별로 최소 500g이상 체중이 감소하면서 두달 동안 10Kg 감량에 성공하게 되었죠.

이 때에도 저와 자전거를 탔던 친구가 다시 등장하는데, 제가 먼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 그 친구도 합류하여 일부 운동프로그램은 그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헬스는 '고립'이다 라고 하지만, 근육만 고립시키고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지 않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연말 - D.L. Disabled List & 동료애

점점 태릉인화 되가던 저는 11월 말이 되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11월 20일 금요일.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닭가슴 살을 꺼내 구우려 하는데 무언가 뱃속에 잔변이 남은 느낌이 들고 불편하여 식사를 거릅니다. 저녁이 되자 약간의 위통까지 생겨 체한 것이라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고 소량의 죽으로 식사를 했죠. 밤이되자 위통은 더 심해져 손을 따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위통은 점점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21일 새벽 2시 경에 잠든 아내를 깨워 응급실을 향합니다.

수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나자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MRI 검사를 했고 맹장염 확진을 받습니다.

결국 21일 밤 11시에 맹장염 수술을 받게 되었죠.

수술 후 깨어나 22일 오전, 집도의를 만났더니 맹장염이 심해져 맹장이 터지면서 복막염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맹장염의 경우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는데, 복막염의 경우 염증이 우려되어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에 이를 알리니 HR에서 연락이 와서 회사 보험사에 연락하여 Short-term disability를 신청하고 개인휴가가 아닌 단기장애로 인한 유급 휴직으로 하라고 말해주더군요.

결국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첨부하여 보험사에 단기장애를 신청하고 12월 중순까지 회복을 위한 유급 휴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만 해도 강력만 모르핀의 진통효과로 인해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해 12월 중순까지 휴직이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입원실에만 하루종일 머무르니 심심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퇴원해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 진통제가 몰핀에서 타이레놀과 에드빌로 변경되자 왜 의사가 12월 중순 이후에 복직을 하라고 정한지 알겠더군요. 덕분에 12월 중순까지 푹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병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제 다이어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닷세간의 기간 동안 제가 먹는 음식이라고는 커피 + 물 + 쥬스 두 잔 + 젤리가 전부였습니다. 식단명이 유동식 (fluid)인데 한국처럼 죽 같은 음식이 없어서인지 이것도 음식이라고.... 이걸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입원기간 중에는 단백질 부족 및 운동부족으로 인한 감량 (근손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다이어트 목표가 체중 감량 뿐이라면 문제가 아닐텐데... 복근이 보여야 할텐데 체중은 줄면서 체지방은 늘어난다면 점점 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니까요. 또 복부에 수술을 해서인지 우측 복횡근과 복직근 쪽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제 배는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걱정이 더했죠.

하지만 퇴원 후에 체중을 재보니... 왠걸? 입원 전 (11월 20일) 아침에 계체량보다 4-5Kg가량 늘어나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계속해서 맞은 수액으로 인해 체내 수분량이 늘어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때 부터는 제 계획이 점점 현실성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12월 초 퇴원 후 부터 12월 말 까지는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이후 빠른 회복을 위해 홈짐 꾸미기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더구나 12월 말 부터 다시 4주간 락다운을 하여 gym이 문을 닫는다하니 더욱 다급하게 했죠.

스텝박스를 사고, 가변중량 덤벨과 로잉머신도 사고, 스미스머신 까지는 살 용기가 없어서 엘라스틱 밴드를 샀습니다.

다행히 12월 말 부터는 어느정도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계획했던 수준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gym에서처럼 고중량을 다룰 수는 없다보니 근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긴 합니다. 락다운 직전에 gym에 두세차례 갈 수 있었는데, 하체의 경우에는 입원 전에 들던 무게의 2/3도 들기 버겁더군요.

이렇게 부상 회복을 하는 와중에 제 본업은 어땠을까요?

단기장애 휴직 이후에 복직을하니 하루는 회사 전체 연말 이벤트, 다른 하루는 개발팀 이벤트, 그리고 또 팀 내 연말 이벤트로 삼일 정도를 그냥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주일 정도가 남게 되었고 연초에 미리 계획해 둔 개인 Innovation Day를 보내며 회사 일을 하지 않고 개인 연구를 했습니다. 말이 개인연구지, 올 해에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푹 쉬었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내년 new year day까지는 회사 연말 셧다운이라 근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12월에는 3일정도 실제 근무를 했으나, 그나마 그 근무일들도 다양한 회사 이벤트들 덕분에 거의 놀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죠.

아, 12월 중순에 수술 후 복직을 하면서 우리 팀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직 후 첫 날 첫 아침 stand up 미팅을 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집이 아닌 길거리에서 화상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뭐지??? 하면서 미팅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 배경에 잡히는 모습이 왠지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경에 저희 집 드라이브웨이의 인터라킹과 같은 패턴이 잡힙니다.

"딩동"

뭐... 뭐야?

팀원들이 저희 집에 누가 온 것 같다며 빨리 현관으로 나가 보라고 합니다. 복직은 했지만 아직 복부 통증때문에 뛸 수는 없던 저는 천천히 걸어서 1층으로 올라가 현관 문을 열어봅니다. 이런... 이 녀석 저희 집 앞에 있었던거에요.

"힘든 시기에 수술까지 하면서 더 힘들었을텐데,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맙고 입원 중에도 이것저것 슬랙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알려줘서 고마워. 연말이기도 하고, 큰 일을 겪어낸 것을 축하하려고 팀에서 돈을 모아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라면서 이 녀석을 건내는군요.


양주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비싼 술을 잘 안마시다보니 잘 몰랐는데, 나름 $100불 정도 하는 술이더군요. 이제 팀원이라봐야 3명 뿐인데... ㅠㅠ 짜식들 돈 많이 썼네요.

수술 후 복귀하는 사람에게 줄 만한 선물은 아니긴 하지만 누가뭐래도 정말 고맙웠습니다.

덕분에 올 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는 값비싼 위스키도 마셔 보았습니다. :)


이렇게 2020년 올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진급했다는 것 외에 아무 일이 없었던 해이며, 전 세계적으로, 제 개인의 심리적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한 해 였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심리상태와 집중력을 되찾아 다시 열심히 일하는 둥이아빠가 되길 바래봅니다.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직장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이벤트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Covid19 덕분에 저는 평소보다 조금은 텐션이 내려간 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루틴에서 오는 안정감을 즐기면서도 그 루틴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지금의 생활이 이와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죠.

Covid19이 터지고 처음 2주 정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스 때 처럼 길어야 한 두 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재택근무라는 형태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또, 그 때만 해도 gym이 문을 열었기에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 시간으로 옮겨서 하루에 1-2시간 정도 하던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각 2시간 씩 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확정까지는 아니지만 3월 말이면 진급이 될 예정이였기에, 집에서 어떻게 파티를 할 까 즐거운 상상을 했었죠.
작은 문제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보니 non-verbal communication에 의존도가 남모르게 높았던 편인데, 각종 커뮤니케이션들이 화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보다 더 앞에 나서기 힘들었고 주변에 진행상황들을 이전보다 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gym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레이오프 계획 발표가 나면서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는 마당에 진급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만족을 누리던 운동이 모두 중단되었는데, 내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생겼으니까요.

다행히 레이오프의 규모가 처음 예상보다 작았고, 그 비수가 저와 저희 팀을 비껴나가기는 했지만 한 번 떨어진 텐션은 좀처럼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Covid19은 이전 전염병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장기간 진행될 것이 확실해지며, 어쩔 수 없이 6월에 계획한 여행도 취소를 하고나니 정신적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초반에는 작은 문제였던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죠. 초반 몇 주 정도는 이미 제가 잘 알고있는 context를 기반으로 회의가 진행되어 그 이후의 업데이트들에 대해 조금씩 놓치는 정도였는데, 몇 달이 지나고나니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면서 팀을 기술적으로 리드해야하는 입장임에도 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누가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까지 하는 깜깜이가 되어버린 것이죠.
결과적으로 제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의 생산력은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 중에 집중력 자체도 많이 떨어졌고, 저희 팀의 진행상황과 주변 팀의 근황에 대해 깜깜이가 되면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제대로 된 일을 하는데 그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짓을 하곤 했죠.

5월이 되어 캐나다 내에서 확진자 증가추세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는 다시 출퇴근 모드로 전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고,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면 출퇴근을 하고싶고 재택근무는 주 1-2회 정도 제한적으로 하고 싶다고 답변을 했죠. 하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계획은 최소 연말까지는 전원 재택근무를 하고, 내년 즈음부터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순환 출근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더군요. 예를들어서 A 팀은 매 주 월요일날 오전에 출근을 하여 다 같이 모여 회의와 업무를 보고, B 팀은 매 주 월요일 오후, C 팀은 화요일 오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 생활을 하다가는 심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아침마다 아이들과 러닝을 시작했고, 낮에는 같이 줄넘기, 오후에는 자전거 타기나 산책을 하면서 돌파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저의 몸을 이끌고 유산소를 하기에는 버겁고 힘들어서 잘 맞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 몸 보다 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내리는 것이 저와는 잘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거나 뛰거나 걸으며 동네를 돌다보면 요즘 실내외 공사는 초극 성수기인 것 같습니다. 다들 어디 여행이나 캠핑을 갈 수 없어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집 공사를 정말 많이 벌이고 있더군요. 손재주가 있으신 분들은 나무나 돌로 뒷마당 데크 공사를 직접 하시기도 하고, 저처럼 손재주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업체를 불러 가드닝, 인테리어, 데크, 팬스 공사를 정말 많이 합니다. 공사중인 업체 사람에게 물어보니 요즘 주문이 밀려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올 해에는 예약이 빈 틈 없이 꽉 차있다고 하네요. 저도 기분전환을 위해 무언가 하나 하고싶은 맘이 있지만 아무래도 자금의 압박이 있다보니 작은 것 부터 하나씩 직접 해 보려고 하고 있죠.

근황 내용이 좀 길었는데, 저는 이렇게 슬기롭지 못한 social distancing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제 업무시간이 다 끝나가는 오후 4시 30분경, 매니져가 quick call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늦게 저희 팀이 관리하는 infrastructure 중 하나가 말썽의 소지가 있어서 제가 손을 봤는데, 행여나 그 쪽에 문제가 터진 것이 아닐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화상전화를 시작 했습니다.


"3월달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얘기했던 진급도 회사 차원에서 전부 취소되서 참 미안하다. 그런데! 그런데,"


매니져가 먼저 3월달에 covid19이 터진 것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행여 레이오프 규모가 충분치 못해 2차 레이오프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바짝 긴장을 했죠.


"내가 회사에서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하면 그 때 너를 진급시키겠다고 했자나. But I am liar."


왓!!! 하반기에도 진급 프로세스가 없는 것일까? 아님 정말 최악의 메시지인 레이오프인 것인가?


"아무래도 네 진급을 다음 진급 프로세스 기간까지 미루는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를 에스컬레이션 했고, 위에서도 다 okay해서 넌 오늘부로 진급이야."


"진짜? 나 진급을 위한 문서 작성한거 없는데?"


"지난번에 네가 쓴 draft 기반으로 내가 따로 준비하고 있었어. 어차피 그 동안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기에 리뷰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정식 프로세스가 아니라 될지 안될지 확실하지 않아서 너에게 따로 뭘 요구하지 않은거야. 지난번처럼 또 취소되면 괜히 안좋을 것 같아서 나 혼자 했지. 축하해. 정말 축하해."


"와... 고맙다. 요즘 들은 소식중 제일 기쁜 소식이네."


"HR에서 따로 갱신 계약서 보낼꺼야. 네가 거기에 사인을 거부하지 않는한 넌 오늘부터 진급이다. 그리고 사인을 해서 보낸다면 다음 달 부터 갱신된 연봉을 받을텐데, 진급 시점을 6월 1일부터 진급으로 소급 적용하는거라 다음 월급에 돈이 좀 더 많이 들어올꺼야. 계속 그 금액이라고 착각하면 안되."


"오케이"


"아, 그런데 회사 진급 프로세스가 취소된 상태라 네 진급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을꺼야.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되고 진급자들이 나오면 그들하고 다 같이 발표될꺼야. 괜찮지?"


"괜찮지. 그러면 진급 사실을 숨겨야 하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구지 숨길 필요는 없어. 축하하고, 너만 괜찮다면 팀 내에는 내가 알릴께."


"당연히 완전히 당근 괜찮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잘하게 발생하는 즐거운 일들은 목표한 계획을 완수하고 끝냈을 때가 될 것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발생하는 즐거움은 아무래도 임금인상과 진급이 되겠죠.

진급을 하면 할 수록 늘어가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지만, 이미 제가 하고있는 일과 그 스트레스 레벨이 다음 직급 수준이라면 구지 타이틀을 바꾸고 임금을 올리는데 주저 할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직책이나 직급상 리드 타이틀은 분명 아닌데, 제가 이직을 하면서 팀을 셋업했고 팀원들 중 가장 seniority가 높다보니 알게모르게 리드롤을 맡고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최대한 외면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 시스템에서 저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고, 좀 더 넓고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생겼을테니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도 다음 주 휴가기간 까지는 지금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잠시 relax 할 것입니다.



2018년 7월 28일 토요일

벋어나기 힘든 꼰대기질


안녕하세요.

요즘들어 부쩍 드는 생각이 한국에서 12년 공교육과 4년 대학생활, 2년 2개월의 군생활과 8년여의 직장생활을 겪으면서 저도 모르게 오지랖과 꼰대근성을 갖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입니다.

보통 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간혹 캐나다 회사에서 다른 팀 동료들과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느끼곤 합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차이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3가지 정도가 가장 많이 차이난다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다.

1. 짧은 근무시간
2. 연차없는 사회
3. 단순한 상하관계

근무시간의 경우에는 요즘 예전 한국 직장의 동기들이나 후배들을 통해 소식을 들으면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고 한국 떠난지 고작 5년밖에 안되었지만, 간혹 동기들을 통해 전해듣는 이야기를 보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더군요.

제가 한국에서 개발자라는 커리어를 버리게 된 이유가 한 달에 100시간 잔업에 토요일 일요일 중 바쁘지 않은 시기에도 토요일에 4시간 정도는 근무를 했어야만 했고, 릴리즈 기간 전후로 2-3달 동안은 주말에도 8시간 이상 씩 풀 근무를 하며 가정생활에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고, 개발직을 떠난 이후에도 주당 68시간 근무라고 해도, 항상 주말에 잡히는 임원회의 때문에 회의 전 저희 팀 임원 회의준비로, 회의 후에는 회의 시 나온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토요일에 보통 출근을 해야했고, 주중 68시간 근무 역시 계산해보면 매일 5-6시간은 더 근무를 하는 것이였으니, 개발실에 있을 때 보다는 줄어들었어도 일몰 이후,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퇴근한다는 것에서는 거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제가 이민을 위해 퇴직을 하던 시기에도 자율 출근제나 자율 출퇴근제가 회사에 도입이되어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말이 있긴 했어도 대부분 저의 동기들은 항상 입에 한약을 물고 살았고, 영양제 한두통은 항상 책상머리에 두고 상시섭취를 했는데,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당 52시간 근무 이야기가 나올 무렵부터 회사에서 미리부터 이에 대비하여 각종 정책과 방안들이 공지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52시간 근무제가 자리잡혀서 저녁 7시만 되면 사무실에서 사람 얼굴을 보기 힘들정도이고, 자율출퇴근제도 잘 자리잡혀 각 개인의 생활패턴에 따라 6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이나, 주초에 일을 몰아서 하고 금요일에는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한국에서 한 번 개발자 커리어를 버렸던 이유도, 개발자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 망설였던 이유도 모두 근무시간의 문제였기에 얼마 전 동기들과 단톡방에서 워라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농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나 그냥 돌아갈까? 너희 수석님께 사람 필요 없냐고 물어볼래?"

하지만 아무리 근무시간이 개선 되었어도 나머지 두가지 차이점 때문에라도 아직은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할 마음은 아직 없습니다. 근무시간의 차이점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다른 두 가지 차이점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죠.

먼저 연차에 대한 문제는 제가 개발자 커리어 복귀를 위해 캐나다에 올 수 밖에 없었던 문제입니다. 개발자 복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근무시간에 대한 어려움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해 과감히 포기했는데, 사실 이건 제 마음속에만 있던 문제였고,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개발자 복귀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연차 때문이였죠.

전체 커리어의 연차로는 8년 경력이지만, 개발자로의 연차는 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커리어 초반 4년 경력이기에 4년 넘는 단절 기간이 있었죠. 캐나다라면 그냥 신입의 조건으로라도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죠.
8년 연차라는 것 때문에 연봉과 직급 등의 조건도 걸리고, 만에하나 신입의 조건으로 들어간다 하여도 이미 30대인 신입사원을 받고싶어하는 20대 대리는 없으니, 고용주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인력이였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그래도 대기업인지라 40-50대의 실무자도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IT기업에서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점점 실무에서 관리직이나 영업직으로 전환을 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개발 실무로의 꿈을 갖고있는 제가 갈 수 있는 자리도 매우 한정적이였고요.

다시 커리어 복귀를 한 지금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연차와 관련된 문제는 이래저래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연차가 쌓임에 따른 관리직이나 영업직 전환의 문제도 있고, 커리어 복귀는 했지만 이전의 개발과는 다른 분야 개발을 하기에 현 분야에서 연차는 그다지 높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 연차와 어쩌면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 문제가 복잡한 상하관계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전혀 문제점이라고 느낀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한국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캐나다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다는 느낌입니다. 나의 인사권과 지휘권을 가진 직속상관과의 관계 뿐 아니라 같은 부서 내에서 상위 직급과 하위 직급간에도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같은 직급 내에서도 윗 기수와 아랫 기수간에 상하관계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기수와 직급 사이에도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가 간혹 나타나기도 합니다.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러한 상하관계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의 직장문화도 모르고, 직장에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몰랐을 때에, 한국에서 사수나, 회사 선배가 없는 캐나다 직장에서 나침반 잃은 항해사처럼 표류하면서 선배하나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한국 회사는 신입사원이나 연차가 썩 높지않은 경력 사원이 들어오면 보통 2-4년정도 차이나는 선배들을 사수로 붙여 사수의 업무를 쉐도잉 하거나, 사수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면서 일을 하나씩 배우고, 그 회사와 부서의 특성이나 업무 프로세스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하나씩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회사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그저 메뉴얼 문서만 전달 될 뿐이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시스템 내에서 스스로 찾아서 해야했고, 현재 회사 제품의 코드 구조와 설계에 대해서도 혼자 프로젝트를 열어보고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간혹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물론 친절하게 설명은 해 주었지만 그들의 시간을 빼았는 것이기에 사수들에게 그랬듯 세세한 것 하나하나 물어보고 지도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죠.

그렇게 캐나다에서 '신입'? 기간을 거치고 어느덧 이러한 직장문화에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한국의 복잡한 다단계의 상하관계가 상당히 피곤한 구조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선배나, 상위직급의 팀원들에게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업무에 대한 간섭을 받기도하고, 때로는 업무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제 직속상관의 지시와 선배다 다른 상급자의 말이 다른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또한 업무관련 회의를 할 때에 선배나 상급자가 제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논리를 펼친 상황이라면 제가 그에대한 반론을 함부로 펼치기 힘듭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잘 포장해서 그들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도록 이야기 하거나, 공식회의 외에 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생각하는 방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를 하거나, 반론이 아닌 조금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책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반대 방향으로 끌고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저의 인사권자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직급체계 자체도 한국보다 매우 단순하지만, 직급의 상하관계는 단순 그 사람의 직급일 뿐이지 저에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으며 일을 함에있어 저와 같은 1:1의 동등한 팀원 관계였습니다. 직급에 따른 차이가 없으니 당연히 기수나 나이에 따른 서열관계도 없을 수 밖에 없고요.

그렇다보니 일을 할 때 참 편합니다. 저만의 논리가 분명하다면 상대가 그 누구라고 해도 마음껏 저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고, 저의 업무에대한 판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수평적 관계는 팀원들간 뿐 아니라 인사권자와 팀원 사이에도 보입니다.

한 팀을 이끄는 사람은 그 팀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팀원들의 연봉이나 복지수준을 조정 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새로운 팀원을 고용하거나 기존 팀원 중 누군가를 해고 할 권한도 가지고 있죠. 어찌보면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인사권자와 일반 팀원들 간의 관계도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이른바 '갑질' 이라고 불리는 것 만큼이나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제가 봐 온 인사권자들의 영향력은 캐나다에서의 그것보다 더 넓고 크고 깊었죠. 
일을 하다보면 누가 보더라도 방향이 한 가지로 귀결되는 당연한 일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각 개인마다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갖게하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엔 보통 이련 경우에 그 인사권을 지닌 부서장이 혼자 생각하여 결정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본 이후에 본인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서장이 팀원들에게 토론의 장을 열어줬을 때에는 팀원들간 열띈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일단 부서장이 방향을 정한 이후에는 그 결정에 토를 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팀원들 간 몇 번 캐쥬얼하게 토론을 했고, A, B 두가지 중에 B쪽이 맞는 것 같다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매니져는 A를 선택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팀원들이 매니져를 찾아가 성토대회를 연 것이였습니다.

또 한번은 A, B 두가지 중에 서로 장단점이 맞물리는 것이 많아 팀원들간 의견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매니져가 A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B를 주장하던 팀원 뿐 아니라 A를 주장했던 팀원까지 매니져를 찾아 가서는 아직 우리가 기술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무슨 정무적 판단에 의해 A로 결정된 것인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해보니 별다른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 아니고, 매니져의 관점에서 A가 더 나은 것 같아 A로 추진을 하려던 것이였고, A와 B를 지지하던 팀원들이 모두 그에 반대를 했습니다. 실무 기술자의 검토와 의견을 들을 것이 아니라면 왜 내가 여기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는 친구도 있었고, 양쪽의 장단점을 계속 토론해서 어느 쪽이건 단점을 보완하는 대비를 해야하는데 그에대한 대비도 없이 결정하는건 문제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매니져가 technical decision에 정무적 판단 없이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반대하는 친구도 있었죠.

물론 캐나다에도 한국의 인사권자같은 스타일의 사람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이 어떻건 자신이 방향을 정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기도 하고, 그러다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가차없이 쳐내기도 하고요. 저희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죠.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이라면 한국에서 제가 그런 분들을 봤을 때엔 그다지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분이라면 오히려 능력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여기에서는 모두들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그 누구도 같이 일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 이전 직장동료도 팀이 이동하며 그 VP밑으로 들어가자 수 개월 내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저의 경험이 모든 한국의 직장과 모든 캐나다의 직장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8년간 일 한 회사는 단 하나의 회사였을 뿐이고, 캐나다에서도 지난 5년 간 일 한 회사도 단 하나의 회사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제 경험에 의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미 단순한 인간관계에 적응이 되어버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복잡한 다단계의 상하관계 하에서 근무를 하고싶은 마음이 없네요.

그런데, 제가 오지랖과 꼰대정신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우습게도 바로 이 복잡한 상하관계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회사에 졸업 후 이제 갓 회사생활을 시작한 동료가 있습니다. 이제 회사에 들어온지 1년정도 되었는데, 갓 졸업한 junior치고는 상당히 일을 잘 하는 편이며, 팀에 적지않은 기여를 하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저희 팀 평균으로 보자면 상당히 자주 재택근무를 합니다. 보통 주당 2-3일 정도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하겠다며 팀에 공지할 때 그 사유를 보면...

 "아마존에서 주문한게 있는데, 오늘 꼭 받아야 한다. 택배받아야하니 재택근무 할께"

 "어제 택배 온다고 했는데, 안왔다. 오늘 하루 더 재택근무 할께."

 "여자친구가 너무 외롭다고해서 오늘은 집에서 근무할께."

이런 사유들입니다.

사실 개발자라는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런 사유없이 재택근무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저희 회사의 다른 팀의경우 총 10명이 조금 넘는 팀이지만, 그 중 3-4명은 거의 상시 재택근무중이며, 또 다른 2-3명 정도는 매우 자주 재택근무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할 때에 별도의 팀 공지도 하지않는 팀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공지를 하는 경우에는 팀원들이 모두 참석해야하는 회의가 있는 날 재택근무를 할때, '오늘 재택근무를 하니 회의는 skype voice call로 참석 예정이다.' 정도이죠.

하지만, 저희 팀 동료의 이런 재택근무 공지를 볼 때 마다 저의 오지랖과 꼰대정신에 의해 제 입이 근질근질 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단순하고 하찮은 일들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선배 대 후배의 관계에서 해 주고 싶어지죠. 특히나 이 친구가 전반적으로 하는 업무량은 junior로서 충분하기는 하지만, 매일매일의 업무성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출근일과 재택근무일의 업무량과 퀄리티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차제가 저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고, 그 친구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고, 또 그 친구가 결국 해내는 일의 총량에는 문제가 없기에 문제없는 일에 트집잡고 이야기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아무말도 안하고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종종 그 친구를 보면...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말이야...."

 "마치 나의 신입 때를 보는 것 같아서인데..."

 "지금 잘 하고는 있지만, 더 잘 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고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려 참기 힘들 때가 있네요.

이러한 단순한 상하관계에서 오는 장점을 누리고 살고있지만, 반대로 저에게 익숙해져버린 오지랖때문에 이런 단순한 상하관계가 불편하기도 하네요. 언어에 대한 문제와 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업무 때문에, 매니져라는 직책은 절대로 맡고싶은 생각이 없기는 하지만, 저의 이러한 오지랖과 꼰대기질 때문에라도 매니져 롤은 절대로 맡아서는 안될 것 같네요. 만약 제가 매니져가 된다면 캐나다 역사상 손에 꼽힐만큼 악랄한 매니져가 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