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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Work smart v.s. work hard

오늘 회사 오피스와 회사 서버들이 있는 Data Centre간 네트워크가 다운되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네트워크 자체 문제라는데, Bell 엔지니어들이 와서 고치고 있지만 아침에 터진 문제는 퇴근 시간까지수정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놀고있는 상태네요.

아직 모두가 출근하기 전인 오전 9시 즈음에 문제가 생기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탁구대나 푸즈볼 테이블, 키친에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 가까이 되어도 복구가 되지 않자 수다를 떨고, 푸즈볼을 하는 것도 지쳤는지 키친에는 빈자리가 하나 둘 씩 늘어났고, 대부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웹 서핑을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또 시간이 더 지나자 하나 둘 씩 조기 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오후 1시에도 아직 정확한 문제나 복구 예정시간이 나오지 않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보다는 퇴근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지요.

저 역시도 원래 출근일에는 점심을 거르는 편이지만 할 일이 없어 팀원들과 점심 외식도 하고, 웹서핑도 하고, 수다도 떨며 너무나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조기 퇴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에하나 곧 네트워크 복구가 된다면, 곧바로 대응해야 할 일들도 있고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적어도 제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 혼자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데, 다른 팀 매니져가 지나가다가 저에게 말을 건냅니다.

    "Why are you still here?"

    "Cause I'm so busy to find to do something during this idle time."

    "Oh, man. You are so hard worker always."

워낙 그 친구도 저도 지금 할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농담으로 시작된 대화는 회사 구석 구석을 옮겨 다니며 계속 되었습니다.

잠시 시계를 돌려 한국에 살 때로 돌아가보죠. 당시 한국 회사 인사팀에서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Work hard하지 말고, work smart를 해라."

정작 웃긴 것은 이 말을 하는 인사팀 역시 개발실 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항상 야근을 하고 있었고, 주말이면 임원회의 준비 때문에 출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work hard를 하기는 싫었지만, 회사 프로세스나 주어지는 일의 양이나 위에서 지시를 따르다 보면 work hard를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정말 언행불일치라고 생각 했었죠. 회사에서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smart 한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근무 환경과 시스템이 그렇다보니 그들 역시 work hard를 했고, 어떻게 하는 것이 work smart인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평균 근무시간은 더 짧으면서, GDP는 한국보다 더 높은, 이른바 선진국 중 하나인 캐나다에서는 과연 어떻게 일을 하기에 work smart가 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기본적인 비교를 해 보자면 캐나다 직장생활의 근무시간은 짧았고, 한국과 달리 출퇴근 시간에 대한 별도의 확인도 없었으며, 근무시간 중에도 내가 무엇을 하건 아무런 간섭도 안하고, 공식적/암묵적인 잔업 요청/강요도 없습니다.

초기에는 이런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일단 3개월 probation 통과가 목표였으니 work hard를 했지만,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자 work smart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work smart를 어떻게 하는지 제가 잘 모르기에 자타공인 일 잘하고 똘똘하다는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면서 제 롤 모델로 삼으려 했죠. 

하지만 관찰하면 할 수록 work smart가 무엇인지 더 알기 힘들었습니다.

예를들어 평소에 10시 즈음 출근하고 왠만해서는 늦어도 4시 30분에는 퇴근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정받는 실력자였고요. 한번은 신규 프로젝트 셋업을 그 친구와 함께하게되면서 pair programming을 하기로 했고 출근하면 같은 PC 앞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코드를 작성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에 저희가 논의했던 구조를 적용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한동안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 오후 4시가 되어 그 친구는 먼저 퇴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pair programming을 하려는데 그 친구가 어제 발견한 문제의 해답을 이야기 합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면 몇몇 우려되는 점들이 있어 이에대해 이야기 하자, 자신이 테스트 한 것을 보여줍니다. 테스트 데이터들을 보아하니 어젯 밤에 퇴근 후 혼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ilot 코드를 짜고 직접 검증까지 해 본 것 같더군요.

네, 그랬습니다. 겉보기에는 하루 6시간 정도만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 같았지만, 퇴근 후에도 항상 혼자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외에도 동료들 중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을 뜯어보니 퇴근 후에 지속적으로 일이나 연구를 하는 동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죠. 물론 동료들 중 과반수 이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치고 퇴근 이후에는 메일이나 메신져 확인조차 안하지만, 이른바 '잘나가는' 친구들은 퇴근 이후에도 무언가 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행여 무언가 긴박한 일이 있어 메신져나 메일을 보내면 거의 즉답이 왔죠. 결국 근무시간이 짧다 해도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만 짧은 것이지, 실제로 일을 하고있거나, 업무와 관련된 연구/고민을 그 외의 시간에 스스로 하고있는 것이였죠.

흠... 그렇다면 과연 work smart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work smart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에 정답은 work hard인 것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팀을 옮기며 다른 팀으로 가게될 때, 이전팀 매니져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은 것 같습니다.

"I was happy to work with you. You are very hard worker, and you are smart. Not really genius level smart, but at least you are smarter than average developer, and you are fast learner." - 아... 쓸데없는 too much information. 그냥 you are smart에서 끝났으면 좋았을걸.

"Just keep going, keep improving. And I believe you will be good at your new team as well. Any manager will like you as you are working so hard and doing things well."

흠... 그래... work hard를 좋아한단 말이야?
팀을 옮기고 몇달이 지난 후, 회사 보드게임 night에서 1:1로 카탄 게임을 하다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As a manager, which developer do you prefer? Hard worker? or Smart developer?"

과연 대답은 무었이였을까요?

대답은 work hard를 하건, genius건 상관 없이 더 많고 정확한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랍니다. 아하... 이런 우문현답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혼자 머리를 탁 치는데,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합니다.

"But. But. If both are making same amount and quality of output, I do prefer....."

저는 이 때 즈음에, 'Smart Worker'라고 예상을 했습니다만, 대답은 'Hard Worker'였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hard worker를 옆에서 보면 다른 동료들도 보통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기도 하며, 때로는 천재성으로 돌파할 수 없는 난제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끊임없이 두드리는 근면함으로 무장한 hard worker가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이후 회사에서 매니져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간혹 hard worker v.s. smart worker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결론은 다들 대동소이 했는데, 결국 퍼포먼스가 잘 나오는 사람이 좋다는 말이였습니다.
그리고 심화 질문인 같은 아웃풋인 hard worker와 smart worker에 대한 질문에는 아웃풋만 동일하다면 아무상관 없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지만, 구지 둘 중 하나를 꼭 고른 답변들 중에는 의외로 hard worker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았죠.

이유는 여러가지였는데, smart worker지만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면 잘못을 지적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잘하지만 직접 뛰어들지는 않기에 기꺼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영어로는 손일 적신다고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사람이 필요하다, 고과 평가시 좀 더 smart하게 일을 잘 한 사람보다는 정말 hard working 한 사람이 더 편하다는 답변도 있었고, 조금 재미있는 답변으로는 스마트한 개발자들은 나랑 일하면 답답한지 일찍 회사를 떠난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또 제가 듣기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과평과 관련된 이유였습니다. 좀 더 스마트해서 일을 잘하는 팀원이 있는 경우 고과면담을 해보면 다른 팀원들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그보다 더 잘하거나 적어도 그 개발자 만큼은 한다고 생각하지만, hard working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 '내가 그래도 그 친구 만큼 일을 많이 해내지는 못하지...' 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오늘도 그 친구와 같이 커피도 마시고 푸즈볼도 하며 돌아다니다 work hard vs smart 주제가 생각나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친구의 답 역시 성과만 잘 나오면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인사팀에서는 "No work hard, work smart"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상관들은 work hard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Work Smart라는 건 없는거 아니야? 원래 smart한 사람은 더 빨리 일을 해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고, work hard한 사람은 조금은 느리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지. Work well은 몰라도 모두가 smart하게 할 수는 없자나. 각자 역량이지. 만약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의미의 smart라면 그건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smart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은 smart하지 않은데 일을 smart하게 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 같네."

그 친구와 다른 대화를 계속 하면서도 이 말이 계속 제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사무실과 그 주변을 모두 돌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그 친구가 묻습니다.

"이제 집에 갈껀가?"

"아니, 만약에 네트워크는 복구 되었는데 우리 서비스가 뭔가 고장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지. 그 동안 다른 밀린 메일도 보면서 기다리려고."

"난 너의 이런 work ethics가 참 좋아. 이게 바로 work well이지."

흠... 결국 제가 퇴근을 할 때 까지 네트워크는 복구되지 않았고, 오늘 하루 제가 만들어 낸 output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work well에 들어간다면, 결국 매니져들이 생각하는 work well이라는 범주에는 work hard가 포함되는 것이고 구지 한국 회사에서 정신교육 했던 내용과 매칭시켜 보자면 자기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입니다.
종합해보면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좋아하는 직원은 다 매한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자기 일과 회사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일에대한 욕구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나 부족한 사람에게나 모두 평등하게 잔업과 특근을 요구했었고, 진취적인 도전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다소 무리가 되는 양의 업무를 던져 주었습니다. 만민에게 평등하게요. 캐나다에서는 욕구와 열정이 넘치면 얼마든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두지만, 없다면 그냥 기본만 하도록 놔둡니다. 대신 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 낸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고 기본만 한 사람의 연봉은 동결이 되지요. 한국에서 연봉은 개인별 성과에 따른 차등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차에 따라 직급이 정해지고 직급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기에 열정이 있는 직원들은 더 뛰어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열정이 없는 직원들도 '잘 나가는' 직원들이 받는 보상을 보고 자극받아 더 좀 더 분발하도록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모두에게 평등하게 전원 달려가도록 회사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해외 취업이 되어 일을 하는데, 야근을 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서 우리 회사의 철학과 근로문화에 반한다며 경고를 주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Probation기간 중 짤리지 않기위해 work hard harder hardest를 할 때에 만에하나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요즘 생각에는 이런 것은 걱정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면 모두 좋아하며, 그 와중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 나아가면 더욱 더 좋아합니다. 적어도 제가 일하는 지금 이 회사에서는요.

저 처럼 언어가 딸려도, 저 처럼 경력이 부족해도, 또 저 처럼 지식과 지혜가 모자라도 열심히 한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네요.

결국 저는 아직까지는 Work Smart의 왕도를 모르고, 충분히 스스로 smart한 상태도 아니기에 일단은 work hard가 경쟁력일 수 밖에 없는 감사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 네트워크 고장으로 8시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잡생각들을 하다 나온 결론입니다. ㅎㅎ

2018년 3월 8일 목요일

Work Life Balance - 무너진 워라밸 균형


2달 조금 넘는 기간동안 아무런 포스팅이 없었네요. 그 이유는 제목에서도 보여지듯 그간 저의 Work - Life Balance가 무너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이 문제로 아버지와도 오랫동안 통화를 하며 제 마음을 추스리기도 해보고 스스로 정리를 다시 해 보았는데, 어찌 될 것인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1월 중순 즈음에도 약 2주 가량 맥시코 칸쿤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기간 내내 스스로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과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과 계획을 세워보았지만, 사람 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다보니 휴가복귀 후 채 1달도 되지않아 가득 충전했던 저의 삶의 에너지는 다시 고갈되었고, 저의 의지도 다시 무너져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어제 아버지와 오랜 시간동안 통화를 하고, 또 혼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전까지는 "빨리 탈출하고싶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구체화 시킬 수 있었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금 정리한 저의 워라밸이 무너진 이유를 찾자면 제가 캐나다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던 시기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워라밸을 무너트린 채 시작을 했었습니다.
토론토에서 미시사가까지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싫었고, 그 무엇보다 너무나 오래간만에 시작하게 된 개발 업무인지라 스스로에대한 자신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일반적인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을 했고, 일반적인 퇴근시간보다 늦게 퇴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훗 날 뒤돌아보니 매일매일 남들보다 2-3시간 일찍 출근해서 1-2시간 늦게 퇴근했기에 한나절 정도는 더 일을 했던 셈입니다.

그렇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 덕분에 부족했던 실력과 지식과 경험의 간극을 많이 채울 수 있었고, 3개월 probation기간을 지남과 동시에 근무조건까지도 수정하면서 "짤릴 수도 있다" 라는 불안감은 해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를 가기 전 까지는 러시아워 교통체증이 싫어 계속해서 이러한 패턴을 유지 했었습니다.

이 때 이미 아침 6시 경에 출근을 해서 오후 7시 경에 퇴근을 해왔기에 정상적인 밸런싱은 아니였지만, 다시금 찾은 저의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느끼지 못했었죠.

그리고 회사에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간 후에는 보다 정상적인 근무시간 체제를 유지 했습니다. 워낙 일찍일어나는 편이기에 보통 6시 출근, 늦어도 7시 즈음에 출근을 하였고 대신 퇴근은 보통 3시즈음 했습니다. 나중에 car pool buddy가 생긴 이후에는 8시 출근, 4시 30분 퇴근이 일상적이였죠.

하지만 제버릇 남 못준다고 매일은 일 평균으로 보자면 약 1 - 1.5시간 가량은 공부나 개인 프로젝트, 혹은 업무 업무관련된 신규 기술을 이것저것 테스트 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그래도 중간에 5년여의 커리어 공백이 있는데다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기에 롱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살았죠.

그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제 스스로 혼자만의 일을 하는 것이고, 언제든 조정이 가능하기도 하며,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인 일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에 팀을 옮기면서 이러한 저의 패턴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항상 고정적인 업무 영역만을 하다가 DevOps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모든 것이 신세계였습니다. 항상 새로운 기술들을 접하고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개발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투자하는 제 개인 시간을 돌려서 새로운 기술을 쓰는 회사 업무를 하는데 쓰자는 것이였죠.

덕분에 좋은 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회사 프로젝트가 마치 제 개인 pet project처럼 느껴졌기에 애착이 가기도 했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제 업무 성과까지도 덩달아 늘어나니 1석 2조였지요.

하지만 이렇게 변화된 저의 생활 패턴은 단기간에 그쳤어야 했었습니다.
저의 라이프 영역의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에 업무라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일과 삶의 분리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스프린트 플래닝 시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스코프를 계산할 때, 퇴근 후 일 할 작업량까지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간호 개인 프로젝트들을 하려고 계획을 세운 주간이라고 해도 늘 그렇듯 사고는 예기치않게 터져서 서버 다운 등의 이슈가 생겨 긴급 대응 문제로 제 시간을 투자하거나, 스프린트 진척이 눈에띄게 더딘 것을 참지 못하고 회사 일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늘어나는 일 욕심은 결국 개인 시간의 투자 뿐 아니라 회사 내 근무시간의 증가까지 초래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장소인 제 집에서, 똑같은 시간인 하루에 2시간 정도, 똑같은 일인 무언가를 개발하고 디버깅하고 공부하는 것인데, 하는 일의 목적이 단순 개인의 취미와 흥미인지, 회사 업무인지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다른 것 같네요.

물론 자기계발 시간에 회사업무가 들어오면서부터 일종의 obligation이 생겼기에, 그에따라 투자 시간에대한 자율성은 줄어들고, 완수 후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기에 기본적인 스트레스 레벨이 다를 수 밖에 없긴 하지만요.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12월 말에 떠난 이전 매니져가 더 그리워지네요.

그 친구가 회사를 떠나기 전 2-3달동안 저에게 계속 했던 말이 있습니다.

"쉬고 싶으면 아무때나 쉬어라. 휴가 안올려도 좋다."
"일을 너무 많이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에 공부를 좀 해봐라. 그게 장기적으로는 너에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
"하고싶은 공부나, 참가하고 싶은 컨퍼런스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최종 결정이야 재무팀에서 하지만 학비 보조나, 컨퍼런스 참가비 등 문제는 내가 최대한 재무팀과 싸워서 얻어낼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떠나기 직전에도 곧 제가 휴가를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말도 해줬었죠.

"칸쿤 가면 거긴 진짜 천국같을꺼야.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을하지 말고, 휴가 복귀 후 1달정도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으려고 노력해봐. 마치 칸쿤에 있을 때 처럼 말이야. 그렇게 한다고해서 네 job security가 위협받을 일은 절대 없을꺼야."

이래저래 저와 공통분모가 많다고 느꼈던 매니져인데, 그래서인지 저의 미래를 미리 내다본 듯한 이야기들이였죠.

다음 주 부터는 이제 회사와 집 간에 아주아주 강력한 firewall을 설치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이전 팀에서는 개발환경 자체가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하고싶어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팀은 필요시 재택근무도 적극 장려하는 조직이고,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를 해도 무방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다보니 물리적인 firewall이 없어진 상황인데,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해도 제 마음의 벽을 하나 세워보고자 합니다.

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서요.

그런데... 솔직히 완벽 차단을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 없긴 하네요. 제 버릇 남 못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