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

안녕하세요.

한국은 오늘까지 특별휴일 - 추석 - 개천절 - 한글날로 이어지는 10일간의 연휴로 알고있는데, 캐나다도 오늘까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이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연휴 기간을 보통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정말 특정한 날이 중요한 경우, 예를들어서 캐나다의 개천절 쯤 되는 7월 1일 Canada Day나 12월 25일 Christmas, 1월 1일 New Year Day 같은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휴일이 "xx월 n번째 월요일"와 같이 지정이 되어있어 항상 연휴가 되기에, 일반적인 주말보다 더 길어서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긴 것인가를 보자면, 그냥 주말보다 조금 깁니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과 같이 3일씩 되는 휴일이 없이 모두 단 하루만 휴일이기에 토일월 3일 휴일이 되는 것이지요.

Christmas가 주말을 끼고 있다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도 Boxing Day 휴일이기에 운이 정말 좋다면 4일간의 연휴가 이론상 가능하기도 하고, 바로 올해가 그렇게 4일 연휴가 만들어지는 해 입니다.

한국의 추석이 올 한 해동안 농작물의 수확에 감사드리고 조상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명절인데, 사실 추수감사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Long weekend기간동안 Family re-union이 이뤄집니다. 부모님의 집 등 가족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편한 제 3의 휴양지나 다른 곳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다른 휴일들의 경우 각자 자신의 가족 (부모 + 자녀)이 함께 이곳 저곳 놀러가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만큼은 이들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 추석의 대표 음식이 송편이라면 여기는 모두들 아시듯 커다란 칠면조를 오븐에 구운 요리를 먹습니다. 10여년 전 벤쿠버에서 유학중일때, 저도 친구들과 함께 명절 기분을 내보고자 마트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칠면조를 사서 오븐에 구워본 적이 있는데, 다시는 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칠면조는 몸통이 워낙 커서 굽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겉 표면이 타지 않도록 칠면조를 구우면서 발생하는 기름을 계속 칠면조에 부워가며 구워주어야 해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리며, 또 손이 많이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그다지 맛있지 않은데 그 양이 어마어마 합니다. 결국 칠면조 한 번 구운 덕에 이후 거의 1달동안 4명의 유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칠면조 샌드위치였다는 슬픈 전설이...

그 음식이 무엇이 되었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 뜻 깊은 시간일텐데,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힘든 이민자들은 Thanksgiving에 무엇을 할까요?

저의 기억력은 좋지 않지만 IT 기술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구글포토도, 페이스북도 몇 년전 오늘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제 기억을 되살려 주네요.

캐나다로 건너온 후 첫 추수감사절에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했었네요.


첫 추수감사절 여행을 간 호텔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서 머물며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을 즐기러 갔었죠. 위 사진만으로는 참 조용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을 것 같지만, 당시의 일기를 보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에 흔들리며 어려웠던 그 때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이 납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본인도 어렵고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를 위해서라도, 또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힐링을 하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 했었습니다. 아직 차가 없던 시기라 차량 렌트도 해놓고, 비싸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을 갔다는 기분은 적어도 낼 만한 지역과 숙소를 찾아 예약하면서도, 지난 10개월간 단 돈 1센트도 벌어본 적이 없는 가장이 무책임하게 이런 소비를 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했던 흔적도 보이고, 여행 중에도 스스로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이 작은 실수 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당겨 쓸데없이 아이들을 혼내놓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고...

사진첩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차있긴 하지만, 셀카봉으로 찍은 가족 사진 중 한 장에는 아빠의 감정조절 실패로 쓸데없이 잔뜩 혼나 주눅이 들은 아이들과 함께 억지 웃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 다음 해 추수감사절을 사진을 통해 돌아보니 별다른 여행은 하지않았고, 새로 이사 온 동네 탐방에 나섰었네요. 동네 주변 farm에서 열리는 Thanksgiving 페스티벌과, 동네 올드타운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을 했었네요.
Oakville 추수감사절 행사

뭐 이벤트라고 해봐야 대단한건 아니고 올드타운 시내를 한바퀴 도는 마차를 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전년과 달리 사진 속 저와 아내의 표정에 근심이 보이지 않고, 소소한 페스티벌과 행사이지만 그 자리를 즐기고 있군요.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생활과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때라, 휴일 이후 학교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고, 잔뜩 혼난 후 억지웃음 지으며 찍은 사진도 없네요. 첫 추수감사절 long weekend와는 달리 신분과 일자리와 또 살 곳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 여러모로 근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마지막 날 월요일, 밤에 아이들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면서 "양가 부모님들이 이런 명절 때라도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남겼군요.

이후 Thanks giving은 계속 비슷한 것 같습니다. Long weekend 성수기인지라 구지 비싼 숙소를 예약하기 보다는, 인근 Provincial Park나 Conservation Area를 찾아가 트래킹도 하고, 월말의 할로윈을 대비해 pumpkin carving을 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찾아가는 정도로요.

현지 사람들처럼 Thanksgiving이 되었다고 비행기나 기차나 차를 타고 먼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가족을 향해 떠나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한 것이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가 아닐까 합니다.

올 해 Thanks giving은 그래도 좀 특별합니다. 한국에서 장모님이 와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민을 오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특히 장모님, 장인어른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을 떠날 때에는 정말 약속 된 것도 없고, 뚜렷한 미래도 없는 상태에서 외손주들과 딸을 데리고 떠나는 사위였고, 이후로 저희 가족끼리는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 정도로 정착을 했지만,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고, 또 먼 곳에서 피붙이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을 갖고 살게 했기 때문이지요.

이맘때가 되면 가족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것은 비단 한국인과 캐네디언 뿐만은 아닙니다.

연어 또한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지금이 바로 연어의 회귀 시즌입니다. 그래서 이번 Thanksgiving을 연휴 기간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지금 한창인 연어 회귀를 보러 나갔습니다.


어쩌다보니 한 곳도 아니고 세 곳을 보고왔네요.

토론토 인근에 가장 유명한 Salmon Run watching spot은 Port Hope와 Bowmanville 입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집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있어 가까운 미시사가의 Erindale 공원으로 갔었습니다.

어떤 블로거께서 Port Hope나 Bowmanville은 약간 인공적인 냄새가 가는 관광지의 성격이라면 Erindale Park는 대자연 속의 연어를 볼 수 있다고 한 말 때문이기도 했죠.

사바나의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 사파리 여행을 가면 에버랜드 사파리와는 달리 사자라고는 하루에 한 마리 보면 잘 보는 것입니다. Salmon run 역시도 대자연 속에서 보다보니 한시간에 한마리를 볼까말까 하더군요. 약 45분 가량을 크레딧 강 줄기따라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그 동안 본 연어라고는 낚시꾼이 잡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어가 만약 많다 하여도, 연어가 Jump를 할 만한 낙차구간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강물을 역류하여 오르는 연어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랜 기간동안 고향을 찾아가느라 먹지도 못하고 지친 연어들이 폭포와 같은 낙차구간을 만나게 되었을때 실패해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종족 보존의 본능과 도전정신 등을 일깨워주는 멋진 장면이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공원에서 아침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폭풍 검색을 하여 지난번에 이미 방문한 바 있는 Port Hope말고 새로운 장소인 Bowmanville로 갔습니다.


Bowmanville creek에 들어섰을 때 산책로의 모습과, 작지만 이쁜 계곡물은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또 이른 새벽부터 낚시를 즐기고, 어른 몸통 길이만한 연어를 각자 한 마리씩 들고 나오는 낚시꾼들이 제 아이들에게 서로 질세라 자신이 낚은 연어를 자랑질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가득 차 댐이 있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댐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일단 댐의 규모가 Port Hope보다 작다보니, 댐 밑에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도 작았고 그래서 연어들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Erindale의 Credit river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연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Port Hope에 비하자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고, 연어들의 수가 적다보니 점프를 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없었습니다.

Bowmanville에서는 비교적 연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30분 가량을 Bowmanville에서 보내다가 이미 Durham Region까지 나온 마당에 조금 더 가서 Port Hope까지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Port Hope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Port Hope에 도착하여 Fish Ladder가 있는 곳으로 가니 수 많은 연어, 아니 사람 떼를 만났습니다.

오늘만 생긴 특수한 일인지,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더 유명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Fish Ladder 앞 주차장은 물론, 인근 길가에도 차로 가득 찼더군요. 그래서 먼저 가족들을 내려준 후 몇 번 주변을 빙빙돌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역시 Port Hope는 그 규모면에서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동영상의 첫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댐에서 200-300m 떨어진 하류에 물길이 약간 잔잔한 곳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의 장면이 연출됩니다. 댐 바로 아래 웅덩이에는 물 약간 대부분 고기인 장면이 연출되고요.
물 반 고기 반

이렇게 연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적어도 1 분에 한마리 꼴로는 댐을 거슬러오르기 위해 시도하는 연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어류학자도 아니지만 오늘 하룻동안 세 개의 강을 방문하여 연어가 회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ort Hope에서 댐보다 조금 위 상류부터 강물을 따라 하류까지 아이와 같이 걸어가다가 도중에 지쳐 죽어있는 연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빠, 나 아빠랑 같이 낚시 꼭 해보고 싶은데, 연어 낚시는 안할래요."

"왜? 너 연어 스시 좋아해서 연어 낚시를 해볼까 했는데?"

"강에서 점프하다 돌에 머리 부딛쳐 죽고, 점프 잘못해서 숨 못숴서 죽고, 지쳐서 죽고... 댐에선 올라가려고 계속계속 점프해서 겨우겨오 올라가서 이제 막 알 낳으려는 연어인데, 어떻게 그걸 잡아요?"

한국을 떠나기 전 자주 봤던 뽀로로 덕분에 항상 낚시에 대한 로망이 있던 아이인데, 계속해서 부딛치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연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 하더군요.

확실히 몇 해 전 처음 이 곳을 왔을때 보다는 생각이 더 여물은 것 같습니다. 그 때엔 분명,

"아빠도 낚시 할 줄 알아서 나랑 같이 연어 낚시하면 좋겠어요"

라고 했었거든요.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커나가는 것 같습니다.



2017년 10월 6일 금요일

이민병 환자들을 위한 싸구려 조언

마음의 병 역시 병인지라 육신에 이상이 생긴 것 만큼이나 힘들고 불편하고 아프죠.

대표적인 병으로는 황진이를 사랑하는 바람에 마음에 병이들어 같은 동네 총각을 죽게 했다던 '상사병'이 있을 것이고, 미국 정신의학회에 등록되기까지 한 '화병'도 있을 것이고,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다는 '우을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있고, 또 '이민병'이 있을 것입니다.

이민병이나 상사병이나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망과 목표가 있으나 본인의 의지와 뜻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생기는 병이라는 점과 그 병의 완벽한 치료는 결국 그 목표/욕망을 이룰 때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음의 변화, 혹은 포기로 인해서도 치유가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요.

이전에도 밝힌 바 있듯, 저 역시도 마음의 병인 '이민병'을 한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을 당시, 이 병의 root cause는 work-life balance를 가진 삶을 꿈구는 것이였고, , 나중에는 career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던 시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 첫 포스팅에도 소개가 되어있습니다. 그 때에는 직군 전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은 견딜만한 수준의 work-life balance를 이루며 마음의 상처가 어느정도 보듬어졌고, 또 아이들의 탄생으로 인해 이민을 노릴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게 되자 포기로 이어져 치료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직군을 변경하고 견딜만한 work-life balance를 갖었을 때 입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말이나 휴일 근무가 눈에띄게 줄었으며, 밤늦게 퇴근하는 일은 많았지만 새벽에 퇴근하는 일은 적어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일과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의 관계가 좋았기에 일은 싫어도 사무실이 싫지는 않았으며, 잦은 해외출장이 때로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리프레쉬 역할을 해주기도 했으며, 제 R&R 중 하나가 해외 지법인 상대 교육 및 고객 상대 PT인데, 이 역할은 제 적성에 맞는 영역이다보니 제 병의 수준이 중증은 아니였습니다. 또, 처음 병을 치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갓난아이 둘이 있다보니 한국에서 다진 기반을 모두 포기하고 이국땅으로 향하는 것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죠. 그렇다보니 이민에 지속적인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액션을 취할 만한 단계는 아니였습니다.

반면 나중에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벼랑 끝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에대한 만족도가 낮고, 저의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져 또 다른 직군으로 도전을 했지만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가 되어버렸고, 일에대한 만족도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도, 또 Work-Life Balance도 이전보다 더 안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며, 또 다른 커리어로의 도전과 같은 운신의 폭 역시 더욱 줄어들은 상황이였죠. 결국 이러한 상황은 '이민병'을 재발시켰으며, 더 이상의 선택이 없다고 느꼈기에 이민을 통한 치유를 그 대처 방안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여러분께서 지금 이민병을 앓고 계시고 이런저런 이민 방안을 찾아봐도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왜 발병하게 되었는지 그 root cause를 먼저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인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불안하고 무엇이 만족스럽지 못한지, 또 현재 상황에서 이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불만족과 불안을 해소 할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하시다 보면, 이민보다 더 안정적이고 나은 다른 치유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이민병을 앓고 계시다면, 그 분에게 이런 식의 조언은 하지 않으시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들었을 때에는 그 마음을 보듬아주는 것이 이성적/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성적/논리적 접근은 어느정도 상처가 아물어야 가능하거든요.

이민병의 root cause를 찾아보고 그에 걸맞는 치유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민 외에는 답이 없다면, 이민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어느 나라로 내가 이민을 갈 수 있을지, 그 나라에는 어떤 이민 프로세스가 있으며 나에게 가능한 이민 프로그램은 무었일지, 그 프로그램에 도전 시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성공 가능성을 계산할 때 변수가 될 것들은 무엇인지와 그 변수는 나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 가능한 변수인지 외부 변수인지 등등이 되겠죠.

가장 안좋은 공부 방법은 계속해서 이주공사/유학원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처음 이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가 막막하니, 이주공사, 유학원이나, 이민 유학 박람회에 가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해가 된 이후부터는 가장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는 정보를 공부하시는 것이 좋은데, 바로 목표하는 국가의 이민성 홈페이지입니다.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이민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요구조건, 선발 과정, 선발 기준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밥벌어먹고 살 생각을 하신 마당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생활의 일부가 될 영어 읽기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꼭 이민 정보의 오리지널 소스인 이민성 홈페이지를 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만약 스스로 정확한 정보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잘못된 업체를 만나게 되는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민 자체에 대한 정보와 기준이 확립이 되었다면, 실제 이민자의 생활, 취업 가능성 등등,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잘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익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이민 카페나 블로그, 관련기사, 혹은 모임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겠죠. 만약 해외 생활에 경험이 전혀 없다면 시간을 내어 한번 쯤 목표하는 나라에 직접 탐방을 나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영주권 획득 방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구직자로서 그 나라에서 나의 경쟁력이 무엇일지도 연구를 충분히 해야 하겠고요.


저도 1차 발병 시 당시 목표하던 이민 대상국이였던 호주에 직접 방문을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민이 아닌 다른 치유법을 선택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저의 직군전환과 아이들의 탄생이였지만, 그 이전에 직군전환을 했던 이유는 호주 방문 시 체감한 물가와 함께 다양한 간접경험들을 통해 느낀 리스크의 정도가 직군전환에 따른 리스크보다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선택은 제 커리어를 꼬이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고, 1/2차 치료 모두 악수에 악수를 거듭하는 꼴이 되었지만, 반대로 이민병의 치유 방법으로 이민 실행을 실천하시는 분들 중에 '이민' 자체가 악수 중에 악수인 경우가 되는 케이스도 분명 있습니다. 제 예전 포스팅에도 있지만 이민을 염두하고 캐나다에 오는 한국인은 한 해에 수만명 이지만 실제로 영주권을 받는 한국인은 한 해 평균 많아야 4000명 수준입니다. 4000명 중에는 당연히 캐나다에 오지 않고 아웃랜드로 영주권을 받는 사람들도 포함이 된 수치이고요.

만약 본인이 지금 이민병으로 인해 이민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단계가 되셨다면, 제 블로그 포함 각종 이민관련 카페와 모임, 블로그, 웹사이트 등에 접근을 자제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미 여러분은 이민 프로세스에 대한 숙지가 되어있으며, 본인이 도전하고자 하는 이민 프로그램에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 알고계신 상태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목표하는 이민 프로그램(들)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하여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 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아직 이민을 위한 본격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민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수준이 되면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접근을 자제하게 되지만, 간접 경험 채널인 모임, 카페, 블로그 등은 발걸음을 끊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개가 넘는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또 필력이 좋은 분들이 올리시는 글이라도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게 되죠. 또,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그 목마름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기도 하고, 간접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려해도 각 필자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보여주다보니 항상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매일 올라오는 수십, 수백개의 글 중에서 완전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똑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다른 분들이 새로 공유를 해주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 단계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정보를 긁어모을 단계가 아닙니다. 이미 결심을 했고 액션을 취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본인의 액션에 더욱 주목을 하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기 보다는, 그 몇 시간을 내가 채워나가야 할 것을 채우는데에 조금 더 집중하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이민 신청을 위해서건, 학교 입학을 위해서건, 혹은 이주 후 현지 정착을 위해서건 가장 공통적인 준비요소가 어학실력일텐데, 하루에 수십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는 것 보다는 그 시간에 어학 점수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시는 것이 더욱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 다른 생각과 의견이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 보다 공부에 집중을 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 안정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장기간 이민병 중증 증상에 시달리면서 아직까지 이민 외에 뚜렷한 대안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이민 실천을 위한 명확한 action item도 없거나 있어도 실천을 제대로 못하고 계시면서 줄기차게 웹 검색과 이/유 박람회, 이주공사 세미나 참석을 하고 계시다면 힘드시더라도 당분간 이민과 관련된 정보채널의 접근을 차단하시고 현재 생활에 집중을 해보시면서 이민병이 발생한 root cause가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하시면 새로운 대안이 나오거나, 이민을 위한 진짜 action item을 수립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대안을 찾으시건 이민으로 결정이 나셨건 치유 방법이 보이신다면, action item을 수립하여 바로 행동에 옮기시는 것이 마음의 병을 다스리시는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군대에서 배운 몇 안되는 지혜 중 하나인데, 몸이 바쁘면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이상 이민병 병력을 가져본 바 있는 전 환자의 값 싼 1¢ 조언이였습니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선배/후배와의 대화 - 일체유심조2

어젯 밤에 우연치 않게 페이스 북에 보인 글이 있어 댓글을 남기다가 삼성에서 일할 때 알게된 유관부서 선배와 페이스북 챗을 통해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근황도 확인하고 덕담도 주고받던 중에, 오래 전에 그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제가 꺼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갤럭시 노트 2 or 3, 혹은 갤럭시 S3 or 4 프로젝트를 하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제품이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순조롭게 초도 판매가 시작된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모여 같이 회식을 하던 날이였죠.

프로젝트 기간 중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계획된 모든 것을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상당부분 진척이 있었고, 또 출시 후 반응도 좋았으며, 약간의 지연은 있었지만 hard deadline 이내에 완료되었기에 모두들 기분 좋은 상태였고, 특히나 HW/SW 개발 담당 수석님들은 다음 임원 인사 때 상무 승진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죠.

어느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자 몇몇 개발팀 사람들은 수석님들께

"이제 곧 상무님 되시는거 아닌가요? '상무보' 라고 불러야 되는거 아닐까 모르겠는데요"

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했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술자리가 진행되고 저도, 또 그 선배도 상당한 량의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갑자기 선배가 저에게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부서 사람들 다 좋아. 너 그것도 복이다. 다들 스마트한 것 같고. 업무 분야때문인지 몰라도 젊은 것 같다. 실제 나이도 다른 팀들보다 젊기도 하지만, 생각도 젊고, 무엇보다 부서에 공공의 적이 되는 꼰대가 없자나."

원래 젠틀한 성격에 후배에게 말 놓는 사람이 아닌데, 그 날 따라 술이 취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유관부서라도 직급이 낮으면 말부터 놓고보는 개발팀 수석님이 옆자리에 앉아 반말 바이러스를 옮긴 것인지 호칭도 '대리님'에서 '너'로 바뀌었고, 말도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습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팀이자나요. 업무 R&R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팀이라 일단 존재 자체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다같이 뛰다보니 그럴지도 모르죠."

"뭔소리야. 요즘 시기엔 너희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HW만 가지고 경쟁이 되나? 그리고, 할 일이 명확하지도 않은 팀을 회사에서 몇 년째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삼성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필요하니까 조직이 계속 유지되는거지."

"뭐, 저도 그렇게 믿고싶은데, 매년 임원인사/조직개편 시즌되면 팀이 남느냐 없어지느냐 이야기 돌고, 또 매 년 팀 인원 반토막 나서 다른팀으로 이동되고 그러자나요."

"야 봐봐. 그게 너희 팀 없애려고 이동시킨게 아니자나. 너네가 빌드업 한 프로젝트가 구찌 커지니까 새로 전담 팀 꾸리던지, 더 큰 팀으로 옮기느라 그런거지. 너희가 잘 하니까 그렇게 분할되고 자꾸 그러는거자나."

"그래도 뭐랄까...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좀 저희 역할이 오버헤드 같기도 하고 그렇죠. 진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

"진짜 쓸데없는 일이거나 오버헤드면 사람 반토막 나고나서 다시 1년 지나면 채워지고 그럴 수 있겠냐? 인사팀이 호구도 아니고."

"솔직히 각 부서의 업무들을 모아놓고 저희 부서의 업무들과 다른 부서의 업무들 중 교집합을 빼고나면 저희 부서에는 남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고유 영역이 없죠."

"고유영역? 야 그런게 어디있어. 개발/생산 같은 직접부서 빼면 원래 그런거 없어. 나라고 있을 것 같아? 상품기획? 따지고보면 우리가 뭐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어 내는게 어디있어? 다 디자인, 개발, 연구소, 해협에서 들고온 것들 하나로 엮는거지. 그렇게 따지면  우리라고 고유영역이 있냐? 넌 그게 문제야. 너 책임감도 있고, 그래서 같이 일하면 편한하긴 한데, 넌 주인의식이 없어. 가끔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진취적이지 않아."

선배가 이 말을 했던 순간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책임감이 있는데 주인의식은 없다? 명확하게 우리가 주인인 업무가 없는데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그래도 부서 이동 후 업무 성격도 잘 맞지않아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던 상황인데다, 언젠가부터 갖고 있었던 회사 생활의 원칙, 'x 팔리지 않게 일하자' 를 나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영 거북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이라는 말은 정확히 정곡을 찔렀습니다. 비록 이 말을 했던 선배는 지금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저도 선배와의 대화 내용은 제 기억에 의거해 재구성을 한 것이지만 그 말만은 취중에 들었어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창피한 일이 터지지 않는 수준에서만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가능한 현재있는 자원들 중에 하나라도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만 관리를 했었고, 새로운 일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만 접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부서 내에서도 업무 영역은 크게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신규 서비스 기획/추진/개발, 다른 하나는 서비스의 유지/보수/관리/배포 였습니다. 원래는 모든 팀원들이 이 두 가지 업무 모두를 중첩해서 일하던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팀 내에서 업무영역을 기획담당, 매니징 담당으로 확실히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그 때 매니징 업무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팀내에 새로운 프로젝트나 업무가 진행 될 때면 몇 번이고 업무 분할을 다시 했지만 저는 요지부동으로 기존 업무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고요.
매니징 그룹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저만의 전문영역에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주인이 되는 업무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신을 업무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매일매일 루틴한 업무를 해가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관리/모니터링하고, 만약에 사고가 터지만 관련 직접부서에 추궁을 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보다는 지금 있는 것들이나 제대로 내보내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당시 제가 얼마나 수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주로 플래그쉽 단말쪽에서 일했고, 다른 제품군의 경우 후배들이 담당을 했었습니다. 하루는 특화폰을 담당한 후배가 기존 서비스를 조금 변경하여 그 모델의 특성에 맞게 바꾸고자 유관부서 요청 공문을 보내기 위해 저를 찾았습니다.

제품 컨셉에 맞는 적절한 제안이였죠. 하지만 당시에 플래그쉽 모델을 타깃으로 메이져 버젼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였기에 저는 본 변경건으로 인해 제 모델의 일정에 영향이 갈 것을 먼저 우려했었고, 후배의 아이디어에 테클부터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짜로 우려하는 제 '모델 일정에 영향'을 제외한 다른 risk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고 후배와 제 우려들과 후배의 제안이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하나씩 따지다가 후배가 저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대리님이 그걸 걱정해요? 그건 그 쪽 담당부서에서 고민하고 답변을 줘야하는 것이지 대리님이 왜 그걸 먼저 대신 걱정해주고, 그 걱정 때문에 먼저 우리의 요구사항을 스스로 제한하나요?"

갑자기 대낮에 벌거벗은 채로 강남대로에 서 있는 것 마냥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추진 가능한지 가능성을 미리 알아야 우리도 우리 컨택 포인트들에 이야기 할 때 톤을 정할 수 있으니까 그런거지..."

"거기서 힘들겠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할 것도 아니자나요. 어짜피 우리는 어떻게든 요청하고 안되면 이슈 레이즈하고, 보고하고 해서 일이 되도록 할꺼자나요.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이번에는 원투 펀치를 맞은 것 처럼 어지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과 이 후배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후배의 말이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이후로 저는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로기 상태에서 더 이상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이상한 말들을 내밷었습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발생한 자기방어기제였는지, 무었이였는지는 몰라도 제가 이렇게 핑계를 대는 와중에도 스스로 이 말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부끄러웠습니다.

"그건 그런데... 이게 이 모델에 나가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가 이 모델보다 오히려 비교 열세가 되고, 주절주절주절... 그러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 기획도 갑자기 변경될꺼고, 주절주절주절... 또 그러면 이 모델 타깃 특화가 더 이상 아닌게 되고, 주절주절주절....."

결국 후배는 마지막으로 저에게 KO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러면, 대리님이 안하신다면 저 혼자라도 공문 보내고 회의 소집할께요."

저는 넉다운이 되어 버린 숨긴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같이 추진해 보자는 말을 남기고 휴게실로 갔습니다. 휴게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잔을 뽑아 놓고 후배와 주고받은 말들을 되새기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후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괘씸한 것 같았고, '어디 해 봐라. 그게 되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음료수 한 캔을 다 마실 때 즈음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한 없이 부끄럽기 시작 했습니다. 저도 몰랐던 저의 속 마음을 후배의 말을 통해 제가 알게된 것 같았습니다.

'난 기획 담당자가 아니야. 그냥 기획되서 개발중인 것 들 잘 가져다 쓰면 되.'
'더 좋아지건 말건 난 모르겠고, 그냥 딱 계획된 것만 문제없이 탑재될 수 있게 하자.'
'지금도 바쁜데 일 더 벌려봐야 좋을 것 없어.'

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는데, 저는 제 마음도 모른채 후배의 제안에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였습니다.

그 때 시간이 밤 10-11시 즈음이였는데, 이미 시간도 많이 늦었고, 더 이상 일을 할 만한 상태도 아니였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라도 하나 사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퇴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후배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어 후배의 퇴근버스 막차 시간에 맞춰 30여분 가량을 휴게실에 더 머물러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 갔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제가 그 때에 조금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일을 했다면, 적어도 선배나 후배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라도 제 마음을 다잡고 일했다면 어땠을까요?

워낙 SW 개발 일을 좋아하고 즐기기에 여전히 마음 속에 무언가 2% 부족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지금 제가 저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듯이 그 때에도 제 업무와 새로운 도전들을 즐기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일이 너무 좋고,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감에 빠져 아직도 한국에서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제가 적극적으로 저의 업무를 대했다면 그 시절의 기억들은 지금보다는 더 좋은 추억들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부끄러움을 안겼었던 선배와 후배, 두 분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선후배나 동기들과 연락할 때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 듣습니다. 두 분은 저에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를 말 해주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듯, 이미 조기 승진도 하셨고 지금도 회사생활을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이 두 분은 적어도 다른 인연들 보다는 저에게 더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준 스승들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약 5년간의 시간은 한 때라고 말하기에는 커리어 빌드업의 기반을 다지는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마음의 벽을 닫아 그 시기를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로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동시에 그 때의 고통과 시련이 지금 저를 캐나다로 인도했고, 캐나다에서 삶과 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고마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삶에 있어서 모든 경험은 그 영향이 크건 작건 삶의 자산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연하게 선배와 챗을한 덕분에 제 기억 깊은 곳에 있던 부끄러움 두 가지를 다시 꺼내오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 부끄러움을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러한 부끄러움이 없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동물의 왕국

요즘 점점 제가사는 동네가 동물의 왕국이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네요.

처음 이 동네로 이사를 온 이후에 다양한 동물들을 집앞에서 만날 수 있던 것이 좋았습니다. 다람쥐나 너구리 정도야 토론토 아파트에서도 자주 보던 동물이긴 했지만, 집 앞뒷마당에서 토끼, 매와 같은 동물을 볼 수 있어서 뭐랄까... 좀 더 건강한 곳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작년 봄에 아기토기 5마리가 저희 집 뒷마당에 찾아왔을 때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귀염둥이 손님이 찾아왔다며 너무나 반가웠죠.

집 뒷마당에 찾아온 아기토끼 가족

하지만 그 해 여름이 되자 귀염둥이 손님들은 불청객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던 9월 즈음부터 아침마다 뒷마당에 나가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토끼똥이 뒷마당 잔디밭을 뒤덮고 있었으며, 500원 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크기로 군데군데 잔디가 뿌리채 뽑혀 죽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잔디가 뒤집혔는지 알 수 없었는데, 뒷마당 불을 켜둔 어느 저녁날 토끼들의 범행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집에 오는 토끼들이 봄에 찾아왔던 아기토끼들 같아 왠지 정이 가기도 했고, 한두군데 잔디가 죽은 것은 다시 잔디 씨를 뿌리고 흙을 맺구면 된다고 생각 했으니까요.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렸던 어느 날 아침, 뒷마당에 나가보니 수십 군데에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로 잔디들이 뿌리채 뽑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잔디밭에 물기가 마르지 않았던 다음날 아침, 뒷마당은 더욱 더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죠. 더욱 더 안좋은 것은 9월은 이미 잔디를 심기에 시기상 늦어, 잔디가 뽑힌 곳은 맨땅이 드러난 상태로 방치가 되었는데,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 되니 그 자리들에는 수많은 잡초들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죠.

올해 봄이 찾아왔을 때, 잔디가 죽은 곳을 모두 파내고 새 잔디씨를 정성껏 심고 새 흙으로 덥어주어 정성껏 키웠습니다. 여름이 찾아올 때 즈음이 되자 잔디 씨를 심은 곳에서 다시 어린 잔디 싹이 자라나면서 앞뒷마당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깔끔한 마당을 꾸렸다는 뿌듯함도 잠시... 어느날 부터 다시 뒷마당에 다시 토끼 똥들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뒷마당 펜스 및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막아 보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토끼들로 인해 결국 뒷마당은 참혹한 모습으로 다시 변했으며, 저는 결국 잔디를 포기하고 토끼들에게 항복을 했죠.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동네에 너구리가 보이지 않아 쓰레기를 버리는 날 쓰레기 통이 뒤집 힐 걱정을 안해도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잔디 씨앗과 흙, 비료 등에 수백불을 쏟아부어 몇달동안 정성껏 가꾸었던 잔디들이 토끼에게 이렇게 무참히 희생되고나니, 너구리 같은 잡식/육식 동물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며 가끔 산책을 하다 나무위에 앉아있는 매를 만나면 

"야! 넌 배도 안고프냐? 토끼 안잡아가고 뭐하냐?"


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뒷마당이 완전히 잡초 반 잔디 반이 되어버린 올해 8월 부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 했습니다. 이미 잔디를 포기한지 한달이 넘은 상태인지라 그간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니 뒷마당에 토끼 똥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죠.
어떤 이유에서 토끼들이 오지 않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텃밭에 딸기와 상추, 그리고 깻잎들의 신변이 확보되었다는 안도감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인지 눈치를 챘습니다. 바로 여우나 스컹크 같은 육식 동물들의 등장이였죠.


고양이를 노리고있는 여우

귀엽게 생겼고 사람을 직접 공격하진 않지만 스컹크 방귀는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이상한 것이 땅에 떨어져 있어 살펴보니 토끼 뒷다리 하나만 덩그라니 있었습니다. 여우일지 스컹크일지는 몰라도 어떤 동물이 다 잡아먹고 뒷다리 하나만 남겨둔 것 같더라고요.

가끔 이렇게 끔찍한 모습을 보기는 해도, 그래도 육식동물들의 등장이 조금은 반가웠습니다. 스컹크는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늑대나 곰처럼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지는 않고, 또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대는 토끼들을 쫒아 줬으니까요.

하지만 어제부로 생각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육식이건 초식이건 모두 사람에게 원래 살던 터전을 빼앗긴 불쌍한 녀석들인건 같지만, 육식동물들이 많아진 것이 나쁜 측면도 있더라고요.

어젯 밤 늦은시간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흡사 사람의 비명소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여우가 짖는 소리더군요.
신기해서 아래 영상을 촬영을 하다보니 사람이 지나 갈 때 마다 여우의 위치는 바뀌어도 항상 한 곳을 보고 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자세히 보니 이웃집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늦은 밤이라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큰 덩치에 검은색 털과 간간히 보이는 흰색 털로 보아 이웃집 고양이 벨라인 것 같았고, 그리고 이 녀석이 덜덜떨며 웅크리고 있는 나무가 바로 벨라네 집 앞 나무이니 어느정도 확신이 생겼죠.

이미 시간은 자정인데다 제가 고양이 곁을 떠나면 언제라도 바로 달려들 것 같았고, 벨라 이 녀석은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마냥 그대로 얼어붙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태라 도망도 못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이웃집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죠. 그렇게 수분이 지나자 연락을 받은 이웃이 집 문을 열고 나왔고, 벨라는 집 문이 열리자 마자 순식간에 집으로 도망 갔습니다.

여우 같은 작은 육식동물들이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혜는 주지 못하겠지만, 이처럼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 동물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서 이래저래 반갑지만은 않네요.

특히나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 고양이들의 경우 벨라처럼 자유롭게 집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해서 자유롭게 외출을 하는데, 이제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려동물들의 자유가 조금은 박탈당하게 될 것 같네요. 적어도 여우들이 안보일 때 까지는요.

2017년 9월 5일 화요일

캐나다에서 야근 & 잔업 - 일체유심조라...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집을 재미있게 즐겨보고 있네요.

화려함의 최고점을 달리던 톱 가수가 한적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쎈언니의 모습으로 빛나는 예능감을 선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더군요.

방송 내용 중 삼남매의 맏언니와 이야기 중 이런 말을 했더군요.


"제주도에서도 마음이 지옥같이 사는 사람도 많다. 서울에서도 얼마나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 그 자리에서 만족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원효대사님의 일체유심조가 생각나는 대목이긴 한데, 사실 요즘 회사일을 하면서도 그런 점을 조금 느끼기는 합니다.


부서를 옮기기 전 저의 생활을 잠시 돌아보자면... 

  05시 기상
  05시 30분 헬스장
  07시 30분 출근
  08시 근무시작
  15-17시 퇴근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였습니다.

근무 강도의 압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생활이였고, 사실 당시의 저의 고민 중 하나는 오늘은 어떤 일을 벌여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분야는 백엔드쪽에 비해 진척속도가 항상 빠른 편이기에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으니, 스프린트 스토리 외에 technical debt 없애기 위한 별도의 타스크를 스스로 만들어 해결하거나, 백엔드 쪽 스토리와 타스크들 중 저의 역량으로 할 만한 일들을 집어와 해야했죠.

부서를 옮긴 후 지난 반년 가량 저의 생활은...

  05시 50분 기상
  06시 20-30분 출근
   07시 근무시작
  16-22시 퇴근

이렇습니다. 요즘 아침잠이 많아져 아침에 운동을 거르고 있다보니 출근시간이 1시간 당겨지는 효과가 생겼는데, 퇴근 시간은 이전보다 평군 2~3시간 이상 늘어나, 실질적으로 3~4시간씩은 더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죠.

아니, 한국에서 야근/특근/잔업이 싫고 힘들어 캐나다까지 건너온 녀석이 이렇게 야근질이라니...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의 잔업과 캐나다의 잔업이 저에게 가져오는 느낌은 상당히 상이합니다. 

돈 때문일까요?
그것은 일단 아닙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잔업비는 없었지만, '교통비'라는 명목으로 잔업수당을 받았습니다. 8시간 근무 후 매 2시간 추가 시 마다 3만원이던가? 교통비를 지급 받았죠. 지금 회사에서는 24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어떤 명목으로든 잔업비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매니져 재량에 따라 다음날 하루 쉬게 해 주거나, 다음에 아무 때에나 대체휴일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몇시간 잔업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기 보다는 긴급 사안으로 인해 회사의 요청으로 밤샘을 하거나, 주말에 근무를 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럴까를 생각 해 보았는데, 우습게도 마음에 달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제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득도한 사람도 아니다보니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원효대사님 처럼 해골물도 시원하게 퍼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역시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첫째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강제성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제가 모셨던 상사들과 부서장들 중, 몇몇은 잔업에 강제성을 부여했었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들의 진척상황과는 무관하게 매 월 몇시간 이상의 잔업을 해야만 했고, 또 특별한 사유 없이는 매 일 몇 시 이전까지는 퇴근을 하면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부서들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강제적으로 잔업을 할 때, 바쁜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강제적으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제가하는 잔업에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남아달라는 요청이나 부탁이나 명령을 한 적이 없으며, 제가 일을하다보니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경우이거나, 제 스스로 오늘 내에 어디까지 일을 마치겠다고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로는 정규 근무시간 내 일을 마치지 못한 사유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을 하시겠지만, 본인의 직급과 직무에 해당하는 R&R과, 그리고 계획된 나의 업무와는 무관한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윗 사람의 개인적인 일을 대신 봐주는 것인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입니다. 반쯤 이해가 가는 부분은 부서 막내이거나 신입이기에 담당해야 하는 부서 총무 역할로 인해 단합대회, 회식 등 이벤트를 주관하고 꾸미는 업무가 되겠고, 그래도 거의 이해가 가는 영역으로 보자면 공식적으로 업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임원 및 상사의 업무관련 떠오른 아이디어와 생각을 구체화 시켜주고 관련 백업 데이터를 조사해 주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발적으로 생긴 업무들이 공식화되고 저의 루틴한 업무와 함쳐저 우선순위가 조정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업무들은 그에따라 due date이 조정이 된다면 그다지 불만이 없겠지만, 보통은 루틴한 업무 위에 이런 업무들은 얹혀지게 되다보니 모든 업무들을 주어진 기간내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잔업을 해야만 하게 되었었죠.
하지만 지금의 잔업은 이런 외부요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거의'라고 한 것은 간혹 저희 부서에서 운영중인 서비스나 서버가 돌발적으로 펑펑 터지는 사고들로 인해 돌발 업무가 발생하기 때문이지, 간혹 위에서 지시나 요청이 내려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번째는 절대적인 잔업 시간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고과 등급의 결과 등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충성심과 애사심이 급상승 하고, 의욕의 충만하게 된 경우들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잔업과 주말 특근을 거뜬하게 버텨내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최대정지 마찰계수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잔업과 특근이 반복되다보면 저의 체력과 의욕, 목표의식이 모두 burn out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다시 투덜이 스머프로 바뀌기 마련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burn out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일단 제 스스로 정하고 행하는 잔업이기에 제가 버틸만한 적정선에서 stop을 합니다. 늦더라도 밤 10시쯤에는 집에 가고, 어쩌다 정말 밤을 새는 일이 있으면 다음날 푹 쉬거나 일찍 집에 갑니다.
매니져 역시도 팀원들의 burn out을 많이 챙겨줍니다. 실제로 1:1 미팅을 할 때 매니져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스템에 휴가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피곤하거나 집중이 어렵거나 개인적인 일이 있다면 그냥 하루 이틀 회사에 나오지 않거나, 아침에 sync 미팅만 끝나고 바로 집에가도 좋아. 그러다가 다시 회복된 것 같으며 원격근무를 해도 좋고. Burn-out 되지 않는것이 당장의 task를 빨리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해. 휴가는 이럴 때 쓰지말고 아껴뒀다가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써."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주체성과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것은 부서를 옮긴 이후에 더욱 더 강해졌습니다. 제품팀에 있을 때에도 자칭타칭 '내 새끼' 라고 불리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구현한 모듈이나, PM 요청으로 진행 한 것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개발했던 기능이나 모듈, 혹은 프레임웍 등이 그러합니다. DevOps로 옮긴 이후에는 이러한 '내 새끼'들이 더 많아졌으며, 또 그 애착관계의 정도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제품은 태어난지 20년이 넘은 제품이다보니 지속적으로 리펙토링 중이지만 아직도 monolithic 서비스의 구조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새끼 인 모듈이나 기능들이 각각 독립적인 life cycle과 운영이 되는 구조는 아니죠.
그런데 지금 DevOps에서 개발중인, 또 개발했던 툴/서비스들은 micro service 형태로 개발 중입니다. 그렇다보니 현재 운영중인 각각 독립적인 서비스들 중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다 담당했던 그냥 내새끼가 아닌 '애지중지 내새끼'가 참 많습니다. 그 만큼 애착도 더 많이가고요. 주어진 스프린트 스토리 requirements와 acceptance criteria를 모두 구현했다 하여도, 정의되지 않은 gray area들을 보다 확실히 하고, 추후 확장성도 고려하는 등 내 새끼를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더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또,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와 툴의 직접 고객이 회사 내 개발자와 QA들이다 보니 다양한 VoC들이 저에게 직접 접수됩니다. 사실 이러한 VoC들을 따로 뽑아 별도의 티켓을 만들어 다음 스프린트 플래닝에 추가하여 해결을 해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됩니다.
하지만 간혹 critical한 VoC이거나, 이전 경험을 되돌아 보았을 때, 개선 시 상당한 편리함을 가져올 만한 VoC인 경우 '애지중지 내 새끼'를 보다 빛내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로 개선에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소중한 내 새끼이더라도 팀에서 약속한 스프린트는 지켜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주어진 업무는 업무대로 완수하고, 그 외에 내 새끼를 갈고 다듬고 보듬는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작은 차이 하나를 덧붙이자면 칭찬과 격려, 그리고 감사표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 하나하나에 대해 매니져와 VP는 잊지않고 감사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VoC를 접수했던 요청자들 역시 개선될 때 마다 감사 인사를 합니다. 사실 말로 때우는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작은 반응들이 큰 힘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늘상 있는 잔업이고, 여기서는 특별한 것이기에 감사 인사를 챙기는 것이 아니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속한 DevOps에서 잔업은 상당히 일상적입니다. '내 새끼'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사실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팀원들이 가지고 있다보니 퇴근은 일찍 하더라도 늦게까지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일을 하는 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당장 저희 서비스 중 하나가 1시간 동안 작동을 멈추면 개발팀 전체가 1시간 동안 아무런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각 개인의 내새끼를 위해서 뿐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많은 팀원들이 새벽에도 일어나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듭니다. 때로는 각 micro services 간에 영향이 큰 변경시, 이미 staging 서비스에서 많은 테스트를 했다 하여도 publishing 서비스로 넘어갈 때에는 가능한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에 작업을 하기에 밤늦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요.

작년대비 개인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렇다보니 줄어든 운동시간으로 살도 많이 찌고, 집 앞뒷마당 잔디밭이 점점 잡초밭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참 일이 재미있고 보람되어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에도, 당시 회장의 경영철학이 그룹 전반에 제대로 자리가 잡혔다면 잔업에 강제성도 없거나 덜했을 것이고, 업무의 주체성도 이전보다 더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사원 연수 때 들었던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뒷다리 론'인데,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뛸 사람은 뛰어라. 걸을 사람은 걸어라. 뛰거나 걸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냥 쉬어도 좋다. 다만, 뛰거나 걷는 사람 뒷다리만 잡아 당기지 말아라. 그래야 그들 덕에 발전해서 노는 사람도 먹고산다. 걷건 뛰건 놀건 모두 한 방향으로 가자."

이 말 대로라면 열심히 할 사람은 열심히 뛰고 날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그러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되며, 결국은 결과와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기업 문화가 될 터인데, 실상은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부서장이나 그룹 임원이 걷거나 그냥 놀고 싶은사람이라면 부서원 전체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보통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뛰고 날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 위의 임원이나 사장단이 뛰거나 날기를 바라고, 또 그 위에 서도 그들에게 똑같은 기대를 하기에...), 자신이 뛰고 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부서원 모두가 자신 이상으로 뛰고 날기를 원했죠. 만약 그럴 의지가 없는 부서장이나 임원이라 해도 1~2년 사이에 그 조직은 사라지기 마련이였고요.

또, 근원적으로 보자면 한국 기업에서 채용은 그룹 채용이나 각 회사별 채용이지 각 부서별 채용이 아니다보니 뛰어야 하는 부서에 뛸 사람이 배치받고, 걸어야 하는 부서에 걷고싶은 사람이 배치받는 것이 아닙니다. 뛰고싶은 사람, 날고싶은 사람, 걷고싶은 사람, 놀고싶은 사람이 모두 섞여 선발이 되며, 또 각 부서 배치 시 섞여서 배치를 받습니다.
그러니 걷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뛰고싶은 사람은 부서에 만족을 못하고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 부서장을 찍어내리고 싶어하며, 뛰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걷고싶은 직원은 그 페이스에 숨을 헐떡이다 지쳐 낙오하게 됩니다. 또, 뛰고 나는 사람이 그에 맞는 성과를 인정받아 조기 승진이나 높은 고과와 그에 따른 연봉 및 인센티브를 받더라도 걷고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포상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놀거나 걷는 동안 뛰어다닌 사람들이 포상을 받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과야 어떨지 몰라도 지난 과정에서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뛰어 다녔음에도 포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죠.

구직자 입장에서도 한 번에 대단위 인력을 선발하는 그룹 채용이 더 편리한 제도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 소모가 적으며, 일관된 채용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동일한 선발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채용 방식이지만, 채용 이후 회사 운영의 측면에서는 각 부서별 채용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


컨퍼런스 출장, 그리고 짧은 업무 복귀 후 다시 약 10여 일간 휴가를 보내는 사이에 제 주변에서 Good News와 Bad News가 함께 들려왔습니다.

Bad News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좀 많이 안좋은 뉴스고 다른 하나는 조금 안좋은 뉴스입니다.

약 3달쯤 전에 제가 일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된 한인 개발자가 계십니다. 사실 직장 자체만 놓고보면 이전에 일하시던 직장은 대기업 중 하나로 좋은 복지제도와 괜찮은 연봉을 주는 곳이며, 오피스 위치도 토론토였기에 미시사가에 위치한 중소기업으로 올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이민 때문이였는데, 이전 직장에서는 주정부 이민 지원이 없는 반면, 저희 회사에서는 주정부 이민을 서포트 하기에 이직을 한 것이죠. 하지만 컨퍼런스 출장 후 복귀를 하고나서 보니 안타깝게도 3개월 Probationary 기간을 통과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간 몇 번의 신호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 분과 식사나 산책을 같이 하면서 그 분의 매니져와 1:1 면담 내용에 대해 전해들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약 1~2달 전쯤에는 매니져가 그 분께 바라는 롤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현재 진척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기 약 2주 전, 마지막 면담 때에는 일을 익히고 따라오고, 또 팀에 새로운 value를 불어넣는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었고요.
그 분에게 면담 스토리를 들을 때, 그 분께서는 당시 면담 내용이 우려되어 힘들게 말을 꺼낸 것이였지만, 저는 그 때만 해도 이 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회사에 왔을 때, 저의 매니져 역시 probation기간이 끝날 때 까지 1:1 면담시에 칭찬을 했던 기억은 별로 없었고, 항상 내가 어떠한 것을 더 해주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었인지를 계속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캐나다 회사에서의 기대치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저는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했었죠. 하지만 막상 probation이 끝나고 나니 이런저런 칭찬도 해 주었고, 또 저의 연봉 또한 조정을 해 주었기에 probation기간 중 다소 딱딱한 이야기들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제가 아는 그 분은 이렇게 허무하게 가실만한 분이 아니셨는데, 아무래도 경력과 연봉수준 등에 따른 회사의 기대치도 다를 것이고, 당시에 개인적으로 영주권 관련하여 몇번의 폭풍이 몰아쳤던 상황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다른 안좋은 소식은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 안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도 사람을 구인 중이였고, 반드시 DevOps 경력이 아닐지라도 좋은 개발자이고, DevOps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추천을 해 달라는 말에, 그렇지 않아도 커리어에 고민이 있던 친구 한 명을 추천을 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면접결과 안타깝게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네요. 그래도 이미 재직중인 회사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기회를 찾아보기 위해 면접을 봤던 것이기에 크게 나쁜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면접 과정에서 저희 매니져가 마음에 들었던지, 따로 장문의 메일을 써서 어떠한 점들이 부족했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자세히 피드백도 주었고, DevOps와 관련된 책을 한 권 사서 우편으로 보내주어 혹시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고 더 공부한 후에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네요.

다른 한가지 안좋은 소식은 제가 리퍼럴로 추천을 해 준 친구가 회사 면접에 붙지 못한 일입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다른 회사에 지금 재직중인 상태에서 다른 기회를 찾아 본 것이기에 크게 나쁜 일이라고 까지는 하기 어렵겠죠. 그리고 면접 과정에서 매니져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 친구에게 따로 어떤어떤 점들이 부족했는지 메일도 보냈고, 이쪽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며 책도 따로 구매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소식도 두가지이며 둘 다 취업 소식입니다.

먼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한국인 동생 중 한 명의 취업 소식입니다. 한국에서의 별도의 학력이나 경력은 없는 친구였지만, 항상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멋진 친구였는데, 얼마 전 Web 개발자로 취업을 했다고 하네요. 이 친구도 졸업 후 2년 가까이 다른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고있었고,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드디어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않은 PGWP 비자 기간때문에, 주중에는 개발자 job을, 주말에는 현재 영주권 진행중인 현재 job을 뛰면서 당분간 투쟙을 유지해야 한다는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부디 영주권을 받아 정착하고 개발자로 완전 전업을 하는 그 날까지 젊음과 체력이 버텨 주길...

다른 취업 소식은 저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인도 친구 소식입니다.
빈약한 실력 때문에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능하면 프로젝트는 같이하지 않으려고 했던 친구이긴 하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큰 은행에서 코업도 했었고, 언변에 능해 취업이 비교적 쉽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취업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네요. 이 친구도 역시 생계를 위해 그동안 보석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사이에 방금 전 페이스북 챗을 통해 안좋은 소식이 하나 더 들어왔네요.

학교에 있을 때 저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40대 일본인 아저씨 한 명이 있었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토론토를 떠나 다른 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이 아저씨도 아직 개발자 쟙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이제는 1년이 채 안되게 남은 비자기간 때문에, 당장 내일 개발자로 취업을 해서 경력을 쌓는다 해도 1년 미만의 경력인지라 CEC이민을 할  수 없으며, 어찌어찌하여 1년, 혹은 2년의 경력을 쌓는다 해도 Express Entry 점수 충족이 어려워 토론토에서 이민은 포기하고, 마지막 방법으로 반년의 경력으로도 주정부 이민이 가능한 주를 찾아 떠나간다고 합니다.
참 착했고,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 중 저와 문화적으로 가장 잘 맞았던 친구인지라 안타깝네요. 단순한 저의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도 언어실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 때문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이 친구의 개발실력은 뛰어난 편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생들에 비해 뒤쳐지는 수준도 아니였죠. 그럼에도 코업 학기 때 부터 코업 쟙을 구하지 못했었고, 결국 졸업을 할 때 까지 코업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하여도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코업을 구하던 시절인지라 그 친구가 코업을 구하지 못해 1학기 강제 휴학을 할 때만 해도 정말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했었죠.

언어에 대해서는 제가 누구에게 무어라 할 만한 처지는 아닙니다. 저도 매우 영어를 못하고 또, 모르니까요. 이 친구도 저 못지않게 참 영어를 잘 못하는 편이지만, 영어 자체에 대한 능력보다 대화의 스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고급진 영어, 화려한 언변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더듬더듬 서바이벌 잉글리시를 말하는 이민자 영어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적극성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은 스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화를 하다 어휘가 생각나지 않거나, 적당하게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쉽고 기본적인 단어들로 저의 느낌/생각/경험을 여러번 반복해서 표현을 합니다. 가능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요. 이 친구가 저와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면 원래 화법 자체가 느린 편인데다,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보니,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단 최소 수초간 입을 닫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후에 만들어진 문장을 말을 하죠. 그렇다보니 다자간 대화 뿐 아니라 1:1 대화인 경우 종종 이미 지나간 주제를 뒤늦게 다시 꺼내오기도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제가 마치 가족오락관 게임을 하듯 비슷한 말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몇 번 설명하다보면 대부분 native들은 결국에는 그 뜻을 이해하고 저의 말을 rephrase해서 '이 말인거지?' 라고 되묻습니다. 어찌되었건 저는 이렇게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서로 집중을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여 올바른 말과 표현을 하는 것의 장점도 있겠지만,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때로는 심지어 다음 날 만났을 때에야 서로의 뜻을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화가 면접장에서도 지속이 된다면,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언어를 몰라 말을 못하는 것인지 내용을 몰라 설명을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겠죠.

참 재미있는게, 서로간의 코딩스타일은 각자의 화법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외부 서비스나 플랫폼과 연동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 때, TDD와 비슷하게 합니다.
먼저 간단한 파일럿 클라스와 그의 유닛 테스트를 먼저 만들고 하나씩 돌려보며 외부 서비스의 behaviour를 파일럿 클라스에서 확인을 해 보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정도 확인이 된 후에 제대로 다시 설계해서 만들어 나간다면 참... 좋은 일이지만 개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이미 만든 코드를 삭제하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귀차니즘과 파일럿 클라스에 대한 근자감으로 대부분은 그 파일럿 클라스를 수정/확장 해 나아가며 프로젝트 코드가 되버립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외부 서비스나 API, 플랫폼의 문서부터 파고, 문서를 다 파고나면 그 때서야 설계를 시작하고, 설계가 다 되어야 코딩을 시작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친구는 다소 답답했었고, 이 친구는 저를 다소 무모하다고 생각 했을 것 같네요.

아마 각자의 성격에 따라 화법도 다르고 목소리의 톤도 다르고, 또 개발 스타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전에 그 친구에게 설명이 안되면 다른 표현으로 설명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해 본 적은 있지만, 사람 성격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보니...

제 멘탈이 약해서인지 몰라도, 주변에서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면 저 역시도 좀 더 기운이 나고 기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같이 힘들어지는 편인데, 올 해 남은 기간동안이라도 제 주변에서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면 좋겠네요.

2017년 8월 7일 월요일

휴가는 회사가 바쁠 때 내야 제맛!

안녕하세요.

어느덧 8월이 되었고, 또 제 여름 휴가가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는 아쉬운 월요일입니다.

올해 초에 뉴질랜드로 휴가를 가느라 연초부터 휴가를 많이 소진 해 버려 이번 여름 휴가는 1주일 정도밖에 시간을 내지 못해서인지, 이번 여름 휴가는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휴가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휴가에 앞서 제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달 말은 회사의 플레그쉽 제품의 메이져 버전 릴리즈를 하는 날이였고, 또 이는 저희 DevOps팀에서 구축한 새로운 빌드 환경을 통해 메이져 버젼 릴리즈가 처음 되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지난달과 이번달은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더군다나 휴가를 떠나기 직전에도 연초에 잡아둔 컨퍼런스에 참석을 하느라 1주일간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가족들이 캐나다에 방문하는 시기가 확정이 되지 않아 휴가 일정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이야기는 해 두었지만, 확정은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스프린트 도중에 한 것이라 스프린트 플래닝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분에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휴가 전 마지막 날 1:1 미팅 때 매니져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니 부담갖지 말고 떠나고, 최대한 회사 RDP나 메일과 떨어져 지내. 그래야 충분히 리프레쉬가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중에 언제라도 많이 피곤하다거나 잠시 휴식이 필요하면 휴가 안올려도 좋으니까 오전에라도 집에 가서 그 날 하루는 쉬어도 괜찮아."

헐... 해외로 휴가를 간다고 해도 해외 데이터 로밍은 반드시 해서 메일 자주 확인하고, 중요한 것이나 급한 메일 온 것 있으면 바로바로 답장하고, 답장을 하기 힘든 상황이나 외부에서 처리하기 힘든 일이면 바로바로 팀에 연락해서 누군가에게 전달 해 놓으라는 당부에는 익숙했지만, 가능한 일은 완전히 단절시키고 쉬고 오라는 당부라니..

사실 그 전날이 지난 회계년도 퍼포먼스 리뷰를 결정하는 날이였습니다. 제가 이민을 결정하고 캐나다로 오면서 마음 속으로 정했던 이민 5개년 계획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다지 거창한 계획은 아니였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중장기적으로 제가 이 사회에 확실히 뿌리를 박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들이였고, 또, 기존에 저희 가족이 누렸던 삶의 질과 최소한 같은 수준의 삶이 질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로 필요한 조건들이였습니다. 아직 이민 후 5년 까지는 약 1년 반 정도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저는 속으로 올 해 퍼포먼스 리뷰 결과에 따라 이 계획이 조기수립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죠. 하지만 결국 목표치에서 약 4.5% 정도 미달되어 살짝 기분이 좋지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당부를 듣고난 후에는, 심란했던 기분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휴가 첫 날만 해도 이전의 버릇과 같이 틈나면 메일함에 들어가 메일 타이틀 중 중요하거나 긴급해 보이는 내용들을 골라 읽었고, 적어도 하루에 두 세 번은 메일함에 들어온 모든 메일들을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첫 날 저녁 갑자기 매니져의 당부? 가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회사 업무 관련 모든 앱들을 하나의 폴더에 몰아넣었고, 의식적으로 그 앱들에 접근을 하지 않기위해 폴더 잠금을 해 두었고, notification 설정에 들어가서도 그 앱들의 알림을 차단 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업무 관련 어플들을 막아놓고 처음 하루는 무언가 불안한 마음도 들었고, 이유없는 죄책감도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불안한 마음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후부터 지금 이 포스팅을 올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거의 1주일간 제가 아무것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2009년 갤럭시 1 출시 이후로는 처음으로 업무 관련된 네트워크들을 완전히 offline시킨 채 휴가를 보낸 것 같습니다.

오늘 월요일은 휴가는 아니지만 Civic Holiday 휴일인지라 아직까지 휴가 후 출근도 하지 않았고, 또 아직 아무것도 확인을 안해보았기에 이후 후폭풍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이런 시점에 1주일간 휴가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 남들이 바쁘건 말건 확실히 신경끄고 지낼 수만 있다면요.

마지막으로 휴가 중 찍었던 사진 몇 장 투척합니다.


Lowville Park에서 잡은 가재

Tobermory에서 배를 타고 찾아간 Flowerpot 섬

공원에서 만난 Hawk.
주택가가 아닌 공원이라 그런지 확실히 동네 hawk 보다 덩치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