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7일 목요일

퇴직, 휴식, 그리고 이직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저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 중입니다.

Family day long weekend 직전 사직서를 제출하고, 첫 사흘 동안은 이리저리 바쁘게 끌려다녔던 것 같아요. 일단 제 매니져와 하루에 2번 정도는 면담을 했습니다. 왜 옮기려는지, 그 회사에서 오퍼는 어느정도인지, 우리가 어떤 리버스 오퍼를 주면 네가 남을지 등등에 대해 사실상 답이 안나오는 이야기만 계속 했습니다.

원래 연봉인상이 목적이 아니였기에, 연봉이나 benefit 조정 제안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심지어 새 직장에서 저에게 제안 한 연봉과 benefit보다 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올 여름 evaluation 기간에 팀 budget이 더 늘어나면 어디까지 더 올려주겠다고 약속 한 금액은 그 보다 더 높긴 했지만, 이미 '고과평가 기간에 뭐뭐 해줄께'라는 말에 데인 적이 몇 번 있어서 이미 믿음이 가지 않았고요. 직급 조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제 롤이 제가 컨트롤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데다 저에게 모든 일이 몰리는 팀 구조가 된 것이 부담이였기에 오히려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죠.

유일하게 조금은 솔깃한 이야기라면,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며 쌓은 안정적인 나의 지위를 버리고 새 직장에 가서 다시 크레딧과 리스펙을 쌓으려면 어려울텐데, 왠만하면 남으라는 이야기였는데,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도전을 해야겠다고 말했죠.

매니져와 면담 이외에도, 저의 이전부서 매니져들과, 원래 친분이 있었던 다른 동료들이나 매니져들도 찾아와 이직 만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간 제가 해 왔던 업무들을 누구에게 할당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매니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몇몇 업무에 대해 매니져와 제 생각이 달라 밤 늦게까지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그 업무를 정말 하고싶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직한지 반년 정도 된 친구입니다. 채용은 팀 리드라는 타이틀로 왔으나 (사실 이것도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나 일단 넘기고...), 실제 하는 일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의 막내같이 하고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 친구가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의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일에 대한 주인의식은 다른 팀원들 보다 확실하지만, 그 회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들에 대한 경험이 입사 이전까지 전혀 없었고, 지난 반년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속도가 빠르지도 않기에 새 기술을 익히기 보다는 그 친구의 지난 경력과 최대한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했죠. 그래서 주인의식은 다소 미약하지만 두뇌회전이 빠르고 학습 능력과 응용 능력이 좋은 친구를 추천했는데, 매니져는 아무래도 주인의식이 없는 그 친구가 썩 미덥지 않은 것 같더군요. 뭐, 제가 나간 후에 일어날 일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마지막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knowledge transfer 미팅을 수차례 가졌는데, 이미 이해도와 활용능력 면에서 차이기 많이 나기 시작했기에 아마 일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매니져도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길 것 같네요.

그리고 마지막 주차에는 저의 퇴직으로 공석이 된 포지션의 job posting 작성 및 해당 포지션을 위한 budget관련 매니져와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작년부터 이런저런 이직 포지션들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현재 DevOps의 시장 가격을 알려주고 회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저 처럼 지식이 얕고 경험이 미천한 사람 보다는, 이 분야에 훨씬 많은 경험과 나은 실력을 가진 진짜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니, 이 정도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저를 잡을 때 제안한 연봉이 현재 팀 예산의 상한선인지 그 이상으로는 올리지 못하더군요. 아마 앞으로 계속 구인을 하다보면 예산을 올리지 않고는 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회사가 DevOps의 입장에서는 썩 매력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다 시장가 대비 높은 연봉도 아니기에 경험과 실력이 풍부하지만 직업 만족도를 포기하고라도 올 만한 포지션이 아니니까요.

결국 안그래도 업무 인수인계와 제가 해 오던 프로젝트들 마무리 때문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런저런 면담들 덕분에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바쁜 회사 일정을 보냈고, 심지어 마지막 주차 월요일에는 퇴직 전에 제가 셋업했던 일을 마무리짓고 인수인계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로 올리기 위해 밤샘까지 한 번 하고, 마지막 출근일인 목요일 아침까지 코드 커밋을 올리고 퇴직했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쉬엄쉬엄 안식을 취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출근을 하려던 계획은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2월 말일 퇴직 후, 3월 1일 금요일 하루만 쉬고 이번 주 부터 새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새 회사는 바로 업무에 투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직무/직급과 무관하게 첫 한달 간은 회사 서포트팀 (콜센터)에 배치받아 제품 교육 및 회사의 역사/핵심가치/문화/고객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서포트팀 업무를 한 이후에 자기 부서로 가는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업무 시작을 하기 전까지 약 한 달간 출퇴근 기차에서 이것저것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좌들을 폭풍 구매 해 놓고, 미리 다운로드를 받아놨죠.

기차에서 듣는 강좌인지라, 직접 실행을 해 보며 공부를 할 수는 없고, 단순히 동영상 강의만 듣고있어요. 원래는 퇴근 후에는 기차에서 들은 내용들을 직접 실핼 해 볼 생각이였는데, 평소와는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인지, 자차 출근하다 기차를 타서인지, 아니면 하루종일 교육을 받느라 지쳐서인지 집에오면 그대로 쓰러져 뻗어버리네요.

교육받는 기간 시간을 잘 활용해서 업무 시작 전에 최대한 제가 준비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듣는 것이 야속합니다.

아직 새 회사에서 교육만 받고있고 다니기 시작한지 나흘밖에 안되지만, 이 회사에서 확실히 좋게 느끼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이전 직장에서 우려된다고 할까? 아님, 조금 신경이 쓰였던 것이 바로 사라져버린 회사 문화였습니다. 삼성에서 서비스 담당을 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을 봤습니다. 페이스북처럼 처음 만났을 때엔 작은 회사였지만 어느순간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한 회사도 있었고, 성장의 끝이 어디일 지 모를 정도로 잘 나가다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기업도 봤습니다. 제가 밖에서 보기에 무너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창업주의 리더쉽 문제였는데, 창업주가 흔히 말하는 겉멋이 들기 시작했다거나 회사의 규모가 커지며 창업주의 통솔능력 밖으로 벗어나는 경우죠.
이 경우 제 경험상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점점 회사와 제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는데, 제 이전 직장에서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 시작 했습니다.
회사의 사업구조도 그렇고 그에 따른 수익구조 자체가 아주 탄탄한데다 일부 능력과 주인의식이 매우 빼어난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여 쉽사리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회사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회사, 업무,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고민이였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300명 정도 규모에서 지금 800여명 정도로 성장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있는 인력 100여명을 제외하면 모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직원들 사이에 업무에 대한 오너쉽이나 제품과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 등등 수준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사옥 건설이 계속 지연되며 여러개의 사무실로 뿔뿔이 흩어져 창업주와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데다, 사장이 경영 일선 보다는 계속 외부행사 참가 빈도가 높아지다보니 경영진과 직원간 스킨쉽이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나 2-3년 즈음 전에 창업주와 함께 오랜기간 회사를 이끌던 COO가 퇴임한 후 새로 임명된 COO의 리더쉽 스타일이 스킨쉽 보다는 불도져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성과는 잘 나오지만 직원과 임원진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으며, 임원진에 대한 신뢰나 respect는 점점 사라져 최근 1-2년 내에 들어온 직원들은 정말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하나도 없었죠.

반대로 이직 후 느끼는 것이, 이 회사에는 확실한 기업문화가 있고 모두들 회사의 문화를 존중하고 최대한 따르며 제품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경영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 일명 푸른피 세뇌교육이라 하는 삼성 신입사원 연수도 받아봤기에 교육기간 중 이야기 하는 것 들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 중에는 당연히 좋은 이야기만 하니까요.

회사 문화가 직원들끼리 서로 알고 인사하며, 낮선 얼굴을 보면 새로온 직원이라 생각하고 인사하고 말을 거는 문화가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 며칠간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식사를 했는데, 놀란 점은 다들 회사와 제품, 일에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는 것이죠. 아마 지금 재직중인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는데, 다른 환경에 있다가 와서인지 확연히 다른 자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새로 온 직원임을 알기에 구지 나쁜 이야기는 피해서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전 회사에서는 적어도 최근 몇년간 잘 느껴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직원들 뿐 아니라 회사 공동 창업주들도 마찬가지여서 지나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스스럼없이 스몰 토크를 이어갔죠.
인터뷰 프로세스에서도 느꼈는데 5단계 프로세스 중 4단계가 기술이 아닌 회사와 cultural fit을 보는 것이였습니다. 안좋게 보자면 성격 좋으면 일단 채용 해 보고 일 못하면 자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회사 인력들의 절반 이상은 referral로 채용되는 상황이라 실력에 대해서는 추천인의 추천을 믿고, 우리와 함께 잘 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 회사를 더 오래 다녀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들이긴 하겠지만, 회사의 각종 정책들 역시 회사에서 내세우는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점은 회사에 employee handbook이 없고, 출장 숙박비나 식비 등에 제한규정이 없다는 것이에요. 창업자의 마인드가 각 직원을 믿고, 각자 알아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되지, 뭐뭐는 안되고 뭐뭐는 어디까지 된다는 쓸데없는 규정집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워낙 제 역량보다는 더 큰 기대를 받으며 온 자리이기에 부담이 큰 것과 출퇴근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빼면 여러모로 참 만족스럽습니다. 짧은 나흘간 느낀 감정으로는 이 곳에서 잘 버티고 자리잡으면 정말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교육기간 동안 실제 업무에서 할 일들에 대해 따로 잘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계속 성장을 해 나아가면서 지금의 회사 문화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막 DevOps로서 첫 발을 내딛은 신생아인데, 경력이 제 커리어를 크게 좌우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테니 이전보다 좀 더 집중해서 달려야 할 것 같네요. 이 회사 제품의 주요 언어도 저에게는 생소한 Python인데다, CI/CD 측면에서도 제 기존 경험보더 더 진보된 곳인데, 제가 특정 부서에 배치되어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재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안을 만들어서 이후 팀을 꾸려서 일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려서요. (사실 이건 첨엔 몰랐고, 첫 출근을 하고 제 디렉터와 같이 점심식사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에요. 그 전까지는 내 기대보다 롤이 더 크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냥 어느 부서에 들어가 일을 할 줄 알았지 이런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ㅠㅠ)

앞으로 한달여 간 교육을 받고 이후 3개월간 이어질 probation을 잘 마친다면 매 6개월마다 있는 고과평가 기간에 첫 반년간 제가 얼마나 잘 자리잡았는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죠. 부디 이전 회사에서 처럼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어쩌다보니 이직.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변화라는 것은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하거나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5년 전, 이 일은 제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8년간 다녀왔던 직장도 버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던 것도 저에게는 큰 변화였지만, 그 때에는 두려움 보다는 즐거움과 기대가 더 컸습니다. 어쩌면 이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즐거워 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이민 만큼의 큰 폭의 변화는 아니지만 이민 다음으로 가장 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올 만한 일이 이제 곧 벌어질텐데, 그것은 바로 제 생에 첫 이직입니다.
한국에서는 퇴직 후 이민을 해서 캐나다에서 다시 취업을 한 것이니 재직 중에 다른 job offer를 받아 이직하는 것은 난생 처음입니다. 성년이 된 후에 깨어있는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당연 직장이였는데, 이 직장이 바뀌는 변화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큰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캐나다에서 첫 커리어 시작의 구직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회사와 포지션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 운칠기삼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허허... 저라는 놈은 실력은 없는데 운빨은 억세게 좋은것인지 이직역시 운칠기삼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이직에 대해 마음이 없었어도 이렇게 저렇게 Time Place Occasion 삼박자가 딱딱딱 맞아 떨어지니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이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제 이직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겠습니다.

딱 2년 전에 저는 회사에서 제안을 받고 사내에서 DevOps팀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딱 2년 전인데, 2년 전 수요일 즈음에 제안을 받았으나 DevOps에 대해 원래 관심이 없었고 정확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여 이번 Family Day 롱 위켄드 기간동은 이 일에대해 내가 좀 더 이해를 해보고 다음 주 화요일에 결정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바로 화요일에 팀을 옮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팀을 옮기면서 과연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 못해먹겠으면 다시 Android 팀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 걱정보다는 기대가 많았었죠.

DevOps로 이동 후 저는 기존과는 다른 완전한 신세계를 영접하게 되었고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익히고 배우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주력 제품 분야에서는 나름 최고의 기술로 선도하는 선도기업이였지만, DevOps를 놓고보면 제가 팀을 옮기는 시점 즈음에 갓 시작했고, 지금도 다른 시장선도 기업에 비하면 구석기 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청동기 시대 정도의 수준으로 많이 뒤쳐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리딩 업체들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아기들 걸음마와 옹알이 수준의 일들을 제가 하고있는 셈인데, 그래도 회사에서는 DevOps에 대해 확실한 방향성이 있었기에 기운을 받으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DevOps에 대해 역설을 하고 이끌던 VP가 회사를 떠났고, 그 VP 포함하여 제가 '이 3명은 정말 믿고 따를 수 있으니 DevOps가면 좋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인 저희 팀 매니져도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들을 대체하는 사람들이 모두 믿을만 하면 괜찮았겠지만, 새로이 개발을 책임지는 그 인물은 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신뢰와 존경이 사라지는 사람이였고 회사 내에서 DevOps에 대한 투자나 의지, 방향성이 모두 이전과는 다르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매니져와 VP 둘이서 방향성을 잡아주며 이끌었고, 저는 기술적인 방향성을 잡고 구현하면 되었는데, 그들 둘이 떠난 후 어쩌다보니 제가 그 방향성을 잡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회사에 정말로 DevOps분야에 정통했고 경험많은 노련한 DevOps 엔지니어를 데려와 내 위에 놓아달라는 요청을 수차례 하였으나 회사에서는 단순한 뗑깡 정도로 보았는지 오히려 '네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라는 말을 하면서 그에 걸맞는 연봉과 job 타이틀을 주겠노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처음 몇 달 정도는 이에대해 완강히 거부하며 지속 요구를 해 보았으나, 회사에서는 추가로 채용 할 생각이 전혀 없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회사에서 나를 이끌 사람을 데려 올 생각이 없다면 내가 나를 이끌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이제 갓 석기시대를 마치고 겨우겨우 청동기 시대를 연 회사에서 일해 온 DevOps Engineer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몇 달 간 많은 이들과 많은 회사들을 만났지만 내가 가서 배울만큼의 수준이 되며, 현재 엔지니어나 매니져가 나를 이끌만큼 매력적인 회사들은 하나같이 저의 기술력/경험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피드백과 함께 퇴짜를 놨었고, 저를 환영하는 회사들은 하나같이 청동기 시대나 신석기/구석기 시대인 회사들 뿐이였습니다.
결국 제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만 깨닿고 다시 회사일에 정진을 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노련한 DevOps를 고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다시 한 번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연봉이나 승진 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이 때 즈음에 지금 옮길 예정인 새로운 회사에서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linkedin 등에서 제 상태를 구직중에서 구직생각으로 없음으로 변경을 한 상태였는데도 말이죠.

지금에 와서 생각인데 이 회사의 리크루터들이 노련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저에게 온 연락은 구인/구직이 아니였습니다. 그 회사의 DevOps들과 함께 서로서로 기술적인 교류를 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식으로 제안을 해 왔습니다. 사실 기술적으로 진보 된 회사들에 인터뷰를 가서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해 승낙을 했습니다. 취업 인터뷰라면 이제 포기를 한 상태였고 계속된 거절에 지치기도 한 상황이라 시도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간혹 '너 혹시 이직 마음이 있거나, 네 주변에 일자리를 구하는 DevOps specialist가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 해. 우리는 포지션이 항상 열러있으니까'라는 식의 말을 던지기는 해지만 채용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대화가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 회사와 캐쥬얼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저는 기왕 지금의 회사에서 저의 깜냥 이상의 일을 죽을둥 살둥 열심히 발버둥 치면서 해내고 있는거, 그에 맞는 타이틀과 연봉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에서 저에게 말했던 승진과 연봉인상이 어떻게 진행중인지 물었습니다.

'Evaluation 기간인 8월달에 해줄께.'

'그래? 그러면 나도 그 타이틀에 맞는 일들은 8월부터 할께. 난 지금은 그냥 Software Developer니까. Senior도 아니고, 그냥 Software Developer'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작은 불만만 토로하고 마무리 했습니다

'내가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고 네가 먼저 나에게 제안을 한 것인데, 내년 evaluation 때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냥 없던 일과 마찬가지로 들린다. 그리고 정말로, 이 포지션에 나 말고 외부에서 진정한 전문가를 데려올 것을 생각해봐 난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라고 말했죠.

그 사이 이직을 할 회사와는 간략하게 전화상으로 서로 이런저런 교류를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회사에서 자기네 오피스로 한 번 방문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지간하면 Okay를 했을텐데, 그 회사의 위치가 저희 집에서 찾아가기에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기에 저는 그에 대한 답변은 차일피일 미루며 다른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HR 직원 한 명이 저희 부서로 뛰어와 말합니다.

"너희 팀 새 직원이 앉을 자리가 어디지?"

"뭔 소리야? 우리 새 직원 없어."

매니져 포함 모두에게 확인을 해 보았으나 새 직원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가 최근에 인터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새 직원이 올 리가 없죠.

"잘 확인해봐. 우리는 인터뷰 본 적도 없고, 우리 팀에 TO도 없어. 아마 다른 팀일꺼야."

"아니야 DevOps팀이라고 정확히 나와있어. 어찌되었건 자리 마련해놔. 얘 인도에서부터 날아와 어제 토론토 도착한 애야. 열 몇시간 비행해서 회사에 첫 출근했는데 자리도 없는 당황스런 환경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준비는 할텐데, 우린 인터뷰 본 적이 없어. 이 사람 interview 이력을 찾아봐. Interviewee가 누군지 보면 우리팀 말고 원래 어떤 팀이 hiring team인지 찾을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HR에서 돌아온 답변은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딱 한 번 봤고, 지금의 Dev팀 전체 리드와 봤다는 것입니다.

1차로 놀라운 것은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와 무관하게 단 한번의 인터뷰, 그것도 실무자가 아닌 개발 전체의 장과의 인터뷰 만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이고, 2차로 놀라운 것은 지금의 Dev팀장은 개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엔지니어 채용을 했다는 것이고, 3차로 놀라운 것은 그냥 캐나다 내에서 고용도 아니고, 인도에 있는 사람에게 회사에서 비자와 집과 차량과 이주비까지 지원을 하면서 Senior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주고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워낙 노련한 사람을 채용해 달라고 노래를 부렀던 상황이니, 아무래도 그런 사람을 인도에서부터 초빙 해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기대를 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의 지난 경력은 DevOps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고, 그의 지난 근무환경 또한 DevOps와는 완전히 무관한 회사였고, 그의 경력은 심지어 우리 회사의 그 어떤 팀과도 맞지않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tech stack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안그래도 지난번 고과평가시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느꼈던 새로운 개발팀장에 대해 최소한의 resptect와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과 더 이상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너무 불쾌하여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저희 팀 매니져에게만 강력하게 컴플레인 하였습니다.

결국 말도안되는 슈퍼 낙하산으로 저희 팀에 왔던 그는, 1주일만에 다른 팀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팀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뒷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요.

'승진시키고 돈도 더줄께'라는 말로 달래며 일을 시켜두고, 승진과 돈은 프로세스에 맞게 나중에라고 말을하고, 인력 계획상 저희 팀에 추가 TO는 못내준다고 하면서 자신의 낙하산을 위해 저희 팀 TO를 늘렸고, 더 근본적으로 회사의 프로세스는 완전히 무시하고 말도안되는 방법으로 실력도 없는 사람을 채용하는 그와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았고, 이렇게 말도않되는 사람을 개발의 장으로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신뢰하던 사람을 쫒아낸 CEO에 대한 믿음도 싸그리 사라졌습니다.

결국 '기왕 교류하는 것 우리회사에 한 번 방문할래?' 라는 제안은 채용 인터뷰로 확대가 되었고, 지난 몇개월 동안 서로 오간 연락과 교류는 정식 채용 프로세스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번 주에 이 회사에 방문하여 3차 인터뷰를 모두 마쳤고, 인터뷰 다음날 바로 연봉등 조건 협상이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또 그 다음날 모든 조건이 명시된 고용 계약서를 받았고, 계약서를 받자마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어 앞으로 2주 후에는 다른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됩니다.

사실 2주 notice주고 바로 이직보다는 현 회사에는 2주 notice를 주고 바로 퇴직하고, 새 회사에는 1주일 정도 시간을 갖고 이직을 하려고 했는데, 최종 고용계약서를 보내기 전 HR에서 세부 조건을 구두로 설명을 할 때 제에게 준다는 연봉에 너무 충격을 받아 이 말을 미처 꺼내지 못했습니다.
원래 임금인상이 이직의 목적이 아닌 저는 현재 회사에서 받는 연봉 + 이직 후 발생하게 될 교통비를 계산하여 회사에 기대 연봉을 정확히 제안 했습니다. 그런데 고용 계약서에 적혀있는 저의 연봉은 그보다 훠얼씬 높은 금액이였습니다. 이게 뭐 reverse auction도 아니고...
그러면서 우리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직원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니 너에게 이런저런 롤과 타이틀이 주어지면 잘 맞을 것 같고 그 롤에 맞는 연봉은 이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기에 이 금액을 제안한다고 설명을 해 줍니다. 

정말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독심술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현재의 회사에서 제가 겪은 마음고생을 정확히 읽어내어, 그와는 반대의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낸 것만 같았습니다.

인터뷰 거절에 지긋지긋해져 인터뷰 소리만 들어도 토할것 같았던 때에 인터뷰가 아닌 그냥 서로 교류를 해보자는 말로 접근을 했고, 
엔지니어를 박대하는 현재의 개발 임원에 질렸던 상황에 'We are thinking all about the people'이라며 자신의 회사문화를 이야기 했으며, 
회사의 프로세스를 싸그리 무시하고 벌어진 낙하산 질에 짜증나는 순간 3차례 인터뷰 포함 총 6단계의 명확한 채용 프로세스를 알려주고 진행했으며, 
승진과 연봉이라는 당근을 보여만 주고 일을 시키려했던 지금의 개발 임원에 짜증난 순간,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나에게 기대하는 role을 명확하게 이야기 해 주었던 이 회사...

아직 첫 출근까지는 2주가 남았지만 출근 전부터 저에게 너무 감성적으로 따뜻하게 다가와버렸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게 짝사랑에 빠질 때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들듯, 그냥 제 상황에 맞춰서 스스로 감성적으로 따뜻한 회사라고 느끼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기만 하네요.

하지만 저의 이직은 최소한 청동기 시대에서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화 정도되는 기술환경에 큰 변화인지라 감성적으로는 너무 따뜻하고 고맙고 감사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앞으로 3달 probation을 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정말 이직도 구직처럼 모든 것이 TPO가 맞아야 되는 것 같습니다. 이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던 순간에는 좀처럼 구하지 못했는데, 이직에 대한 의지가 1도 없던 순간 조용히 일이 벌어졌고,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저의 마음은 지금의 회사에서 새 회사로 완전히 옮겨저 있네요.

이상 제 생에 첫 이직에 대한 스토리였습니다.



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일하는 보람 ≠ 노동의 보상

안녕하세요. 갈 수록 블로그 포스팅이 뜨문뜨문 이뤄지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점점 이 곳에서 삶에 적응이 되어가다보니, day to day life에서 겪는 일들의 신선도가 이전만 못하여 그에 따른 감흥이 적어지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제 자신의 뒷치다꺼리도 잘 하지 못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요.

오래간만에 제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작년 이맘 때 부터 시작 된 저의 고민을 아직까지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처음 만큼 고민의 심각성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그 고민은 제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네요. 그렇다보니 저의 작년 이맘 때 적은 글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무언가 더 발전하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요즘 저의 근황을 남겨봅니다.

먼저 작년과 큰 변화가 없는 근황들을 풀어봅니다.

올 해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회사 MVP에 노미니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에도 작년과 같이 노미니까지가 한계였고 MVP 수상을 하지는 못했네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작년에는 노미니 되는 순간부터 MVP에 대한 욕심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입사 직후 저의 개인 목표가 MVP는 한 번 받아 보는 것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올 해에는 MVP 선정과정에 대한 내막을 조금 알게되어 그다지 욕심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MVP 선정 프로세스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되었고, 현재의 회사 권력구조 변경 이후 현실적으로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미리 포기를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그래도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내년 이맘 때 쯤에도 지금 이 회사에 남아있다면, 내년에는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작년 말 부터 시작된 제 고민 중 하나는, "내 능력에 맞는 몸값을 받고, 내 몸값에 맞게 일하기"인데, 세부적인 고민은 조금 바뀌었지만, 고민의 전체적인 틀은 아직까지 그대로입니다.

오롯이 저의 생각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 스스로 내린 진단은 상당한 거품이 있는 과대평가입니다. 제 능력에 맞는 성과를 냈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약간의 워커홀릭적인 개인 성향 + 업무 변경 후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들을 공부하면서 오버 페이스로 일을 하다보니 제 능력치를 상회하는 성과를 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연봉을 올리거나 더 많은 성과를 얻기 보다는 이제 서서히 제 능력에 맞춰 일하면서 연착륙을 하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램이죠.

그래서 작년 이맘 때 즈음 정한 저의 올 해 목표는 이것 저것 다 내려놓고, 해고되지 않을 만큼만 일하자는 것이였지만... 결국에는 제 욕심 + 주변의 기대치 + 쓸데없이 과도한 책임감 등등에 짓눌려 지난 1년간 뭐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지난 1년간 제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고, 예전에는 한 달에 1-2 주 정도 열심히 달리고 나머지 2-3주는 조금 빠르게 걸어가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1 달 내내 전력질주를 해야만 합니다.

언제쯤 내려놓고 비우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그나마 다행인 것인, 이제는 저희 부서에 매니져도 왔고, 매니져 역시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음을 알고 어떻게든 분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머릿 속 계획이고, 실제로는 업무 분할과 이전을 위한 실질적인 action은 아직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어진 기간 내에 계속해서 부서 성과를 내야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그리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연말/연시에도 중남미로 잠시 휴양을 떠납니다. 제가 방전되어 번아웃이 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어릴적 저의 여행 스타일은 돈이 있으면 자연과 함께 Extreme sports 즐기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면 역사적/문화적 유적지를 찾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고 발품팔고 사람들 만나는 여행이였는데, 지금은 그냥 상대적으로 물가 저렴한 중남미 휴양지를 찾아가서 아무 생각없이 먹고 쉬고 놀다오는 것이 최고가 되버렸네요. 제 아내가 원래부터 휴양지를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저와 달랐기에, 신혼 때 생각 한 것이 제 아내를 조금씩 변화시켜 제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였지만, 오히려 제가 제 아내에게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작년과 다른 점들을 찾자면 우선 올 해에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집에서 머무르지 않고, 잠시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패키지 일정이지만, 타임 스퀘어, 자연사 박물관 등등 다양한 곳에 들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요즘 읽는 책들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직접 보게되어 매우 기뻐하는 모습에 나름 보람을 느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뉴욕에 있는 회사에서 인터뷰 제안이 오기도 합니다. 페이는 확실히 캐나다 대비 2배 이상 되긴 하지만, 가족의 삶의 환경으로는 아무래도 캐나다가 나은 것 같아 이에 응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총기사고 등 치안 문제도 걱정이 되었고요. 하지만 막상 가보니 맨하탄의 치안은 생각보다 좋더군요. 어릴적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마피아나 갱단의 전투, 지하철에 있는 무법자 등 뉴욕의 치안 문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또, 아무래도 GTA보다 시장이 크다보니 맨허턴의 한인 거리에는 캐나다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카페베네, BBQ 치킨 등, 익숙한 한국 브랜드들이 있어 부러웠죠. 어쩌면 이런 한국 기업들의 진출에 뿌리가 된 것은, 수 많은 한인 이민 선배님들이 노력하셔서 그 비싼 맨허턴 노른자위 땅에 한인 거리를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것일텐데,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뉴욕에서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페이가 2-3 배가 되더라도 생활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가족을 꾸리고 살기에는 삶이 질이 캐나다보다 높기 힘들것 같아서요. 뉴져지 통근은 어떨까 싶어 뉴져지 집값도 찾아봤는데, 기차 통근이 가능한 지역 집값은... OTL.
뭐... 연봉을 million 정도 준다면 모를까, 뉴욕으로 이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작년 이맘때와 다른 것은 더 바빠졌고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년처럼 방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 스스로 오버 페이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기에 방전 직전이 되면 재택근무를 하면서 어떻게든 초절전 모드로 단 하루라도 휴식을 취하곤 했고, 올해 초 부터는 절대로 (까지는 아니고, 가능한) 휴일과 휴가 기간에는 업무를 본다거나 업무 관련 공부를 하지 않았고, 휴가기간에는 회사 메일/메신져 앱도 폰에서 잠시 꺼 둔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변화 한 가지가 있다면 이제는 저도 매니져가 있습니다. 이전 매니져와는 다르게 실무 개발 백그라운드가 없어 기술적인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일반 매니징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정말 맘에 듭니다. 단, 기술적 이해도가 낮다보니 저를 너무 자주 찾아 제 업무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긴 한데, 앞으로 몇 달 정도 지나면 나아지려니 하고 믿고 있습니다.

또 매니져가 있다보니 저에게 걸린 오버로드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도 차이점이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오버로드를 고르게 분산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고, 또 그간 저에게 오버로드가 걸려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제 compensation을 알아서 조정 해 주겠다고 하네요.

아직 구체적인 제안은 받지 않아 어느정도 조정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기분 좋은 일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도 현재 저의 개인적인 고민과 목표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을 더 받게된다면 제 스스로 목줄을 한 칸 더 줄이는 꼴이 될 수도 있기에, 가능하다면 연봉 인상보다는 휴가일수 증가 혹은 다른 베네핏 조정을 해달라고 말은 해 두었습니다. 만에하나 금전적인 부분만 가능하다면 연봉보다는 보너스가 더 좋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어찌될지는 더 기다려 봐야겠죠. 뭐, 매니져는 의지를 가지고 조정을 해보려 했으나, 인사나 개발 VP가 반대해서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오랜기간 동안, 일하는 보람에 너무나 목말라 있었기에 초반 몇 년간 열심히 달렸는데, 그 때 오버 페이스를 했고 그 오버 페이스가 너무 습관적으로 되어버려, 이제는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그 직장에서 저를 인정 해 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올 해에는 매니저의 의지도 있으니 제 업무 페이스는 조금씩 늦추면서 제 능력은 조금씩 더 끌어올려 여유롭게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내자는 저의 목표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해 봅니다.

늦었지만 모두들 Merry Christmas 하셨길 바라며, 2019년 새 해에 바라시는 일들을 모두 이루시길 빕니다.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Work smart v.s. work hard

오늘 회사 오피스와 회사 서버들이 있는 Data Centre간 네트워크가 다운되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네트워크 자체 문제라는데, Bell 엔지니어들이 와서 고치고 있지만 아침에 터진 문제는 퇴근 시간까지수정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놀고있는 상태네요.

아직 모두가 출근하기 전인 오전 9시 즈음에 문제가 생기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탁구대나 푸즈볼 테이블, 키친에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 가까이 되어도 복구가 되지 않자 수다를 떨고, 푸즈볼을 하는 것도 지쳤는지 키친에는 빈자리가 하나 둘 씩 늘어났고, 대부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웹 서핑을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또 시간이 더 지나자 하나 둘 씩 조기 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오후 1시에도 아직 정확한 문제나 복구 예정시간이 나오지 않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보다는 퇴근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지요.

저 역시도 원래 출근일에는 점심을 거르는 편이지만 할 일이 없어 팀원들과 점심 외식도 하고, 웹서핑도 하고, 수다도 떨며 너무나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조기 퇴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에하나 곧 네트워크 복구가 된다면, 곧바로 대응해야 할 일들도 있고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적어도 제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 혼자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데, 다른 팀 매니져가 지나가다가 저에게 말을 건냅니다.

    "Why are you still here?"

    "Cause I'm so busy to find to do something during this idle time."

    "Oh, man. You are so hard worker always."

워낙 그 친구도 저도 지금 할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농담으로 시작된 대화는 회사 구석 구석을 옮겨 다니며 계속 되었습니다.

잠시 시계를 돌려 한국에 살 때로 돌아가보죠. 당시 한국 회사 인사팀에서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Work hard하지 말고, work smart를 해라."

정작 웃긴 것은 이 말을 하는 인사팀 역시 개발실 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항상 야근을 하고 있었고, 주말이면 임원회의 준비 때문에 출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work hard를 하기는 싫었지만, 회사 프로세스나 주어지는 일의 양이나 위에서 지시를 따르다 보면 work hard를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정말 언행불일치라고 생각 했었죠. 회사에서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smart 한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근무 환경과 시스템이 그렇다보니 그들 역시 work hard를 했고, 어떻게 하는 것이 work smart인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평균 근무시간은 더 짧으면서, GDP는 한국보다 더 높은, 이른바 선진국 중 하나인 캐나다에서는 과연 어떻게 일을 하기에 work smart가 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기본적인 비교를 해 보자면 캐나다 직장생활의 근무시간은 짧았고, 한국과 달리 출퇴근 시간에 대한 별도의 확인도 없었으며, 근무시간 중에도 내가 무엇을 하건 아무런 간섭도 안하고, 공식적/암묵적인 잔업 요청/강요도 없습니다.

초기에는 이런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일단 3개월 probation 통과가 목표였으니 work hard를 했지만,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자 work smart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work smart를 어떻게 하는지 제가 잘 모르기에 자타공인 일 잘하고 똘똘하다는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면서 제 롤 모델로 삼으려 했죠. 

하지만 관찰하면 할 수록 work smart가 무엇인지 더 알기 힘들었습니다.

예를들어 평소에 10시 즈음 출근하고 왠만해서는 늦어도 4시 30분에는 퇴근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정받는 실력자였고요. 한번은 신규 프로젝트 셋업을 그 친구와 함께하게되면서 pair programming을 하기로 했고 출근하면 같은 PC 앞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코드를 작성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에 저희가 논의했던 구조를 적용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한동안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 오후 4시가 되어 그 친구는 먼저 퇴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pair programming을 하려는데 그 친구가 어제 발견한 문제의 해답을 이야기 합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면 몇몇 우려되는 점들이 있어 이에대해 이야기 하자, 자신이 테스트 한 것을 보여줍니다. 테스트 데이터들을 보아하니 어젯 밤에 퇴근 후 혼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ilot 코드를 짜고 직접 검증까지 해 본 것 같더군요.

네, 그랬습니다. 겉보기에는 하루 6시간 정도만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 같았지만, 퇴근 후에도 항상 혼자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외에도 동료들 중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을 뜯어보니 퇴근 후에 지속적으로 일이나 연구를 하는 동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죠. 물론 동료들 중 과반수 이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치고 퇴근 이후에는 메일이나 메신져 확인조차 안하지만, 이른바 '잘나가는' 친구들은 퇴근 이후에도 무언가 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행여 무언가 긴박한 일이 있어 메신져나 메일을 보내면 거의 즉답이 왔죠. 결국 근무시간이 짧다 해도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만 짧은 것이지, 실제로 일을 하고있거나, 업무와 관련된 연구/고민을 그 외의 시간에 스스로 하고있는 것이였죠.

흠... 그렇다면 과연 work smart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work smart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에 정답은 work hard인 것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팀을 옮기며 다른 팀으로 가게될 때, 이전팀 매니져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은 것 같습니다.

"I was happy to work with you. You are very hard worker, and you are smart. Not really genius level smart, but at least you are smarter than average developer, and you are fast learner." - 아... 쓸데없는 too much information. 그냥 you are smart에서 끝났으면 좋았을걸.

"Just keep going, keep improving. And I believe you will be good at your new team as well. Any manager will like you as you are working so hard and doing things well."

흠... 그래... work hard를 좋아한단 말이야?
팀을 옮기고 몇달이 지난 후, 회사 보드게임 night에서 1:1로 카탄 게임을 하다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As a manager, which developer do you prefer? Hard worker? or Smart developer?"

과연 대답은 무었이였을까요?

대답은 work hard를 하건, genius건 상관 없이 더 많고 정확한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랍니다. 아하... 이런 우문현답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혼자 머리를 탁 치는데,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합니다.

"But. But. If both are making same amount and quality of output, I do prefer....."

저는 이 때 즈음에, 'Smart Worker'라고 예상을 했습니다만, 대답은 'Hard Worker'였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hard worker를 옆에서 보면 다른 동료들도 보통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기도 하며, 때로는 천재성으로 돌파할 수 없는 난제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끊임없이 두드리는 근면함으로 무장한 hard worker가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이후 회사에서 매니져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간혹 hard worker v.s. smart worker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결론은 다들 대동소이 했는데, 결국 퍼포먼스가 잘 나오는 사람이 좋다는 말이였습니다.
그리고 심화 질문인 같은 아웃풋인 hard worker와 smart worker에 대한 질문에는 아웃풋만 동일하다면 아무상관 없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지만, 구지 둘 중 하나를 꼭 고른 답변들 중에는 의외로 hard worker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았죠.

이유는 여러가지였는데, smart worker지만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면 잘못을 지적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잘하지만 직접 뛰어들지는 않기에 기꺼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영어로는 손일 적신다고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사람이 필요하다, 고과 평가시 좀 더 smart하게 일을 잘 한 사람보다는 정말 hard working 한 사람이 더 편하다는 답변도 있었고, 조금 재미있는 답변으로는 스마트한 개발자들은 나랑 일하면 답답한지 일찍 회사를 떠난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또 제가 듣기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과평과 관련된 이유였습니다. 좀 더 스마트해서 일을 잘하는 팀원이 있는 경우 고과면담을 해보면 다른 팀원들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그보다 더 잘하거나 적어도 그 개발자 만큼은 한다고 생각하지만, hard working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 '내가 그래도 그 친구 만큼 일을 많이 해내지는 못하지...' 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오늘도 그 친구와 같이 커피도 마시고 푸즈볼도 하며 돌아다니다 work hard vs smart 주제가 생각나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친구의 답 역시 성과만 잘 나오면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인사팀에서는 "No work hard, work smart"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상관들은 work hard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Work Smart라는 건 없는거 아니야? 원래 smart한 사람은 더 빨리 일을 해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고, work hard한 사람은 조금은 느리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지. Work well은 몰라도 모두가 smart하게 할 수는 없자나. 각자 역량이지. 만약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의미의 smart라면 그건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smart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은 smart하지 않은데 일을 smart하게 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 같네."

그 친구와 다른 대화를 계속 하면서도 이 말이 계속 제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사무실과 그 주변을 모두 돌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그 친구가 묻습니다.

"이제 집에 갈껀가?"

"아니, 만약에 네트워크는 복구 되었는데 우리 서비스가 뭔가 고장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지. 그 동안 다른 밀린 메일도 보면서 기다리려고."

"난 너의 이런 work ethics가 참 좋아. 이게 바로 work well이지."

흠... 결국 제가 퇴근을 할 때 까지 네트워크는 복구되지 않았고, 오늘 하루 제가 만들어 낸 output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work well에 들어간다면, 결국 매니져들이 생각하는 work well이라는 범주에는 work hard가 포함되는 것이고 구지 한국 회사에서 정신교육 했던 내용과 매칭시켜 보자면 자기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입니다.
종합해보면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좋아하는 직원은 다 매한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자기 일과 회사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일에대한 욕구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나 부족한 사람에게나 모두 평등하게 잔업과 특근을 요구했었고, 진취적인 도전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다소 무리가 되는 양의 업무를 던져 주었습니다. 만민에게 평등하게요. 캐나다에서는 욕구와 열정이 넘치면 얼마든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두지만, 없다면 그냥 기본만 하도록 놔둡니다. 대신 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 낸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고 기본만 한 사람의 연봉은 동결이 되지요. 한국에서 연봉은 개인별 성과에 따른 차등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차에 따라 직급이 정해지고 직급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기에 열정이 있는 직원들은 더 뛰어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열정이 없는 직원들도 '잘 나가는' 직원들이 받는 보상을 보고 자극받아 더 좀 더 분발하도록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모두에게 평등하게 전원 달려가도록 회사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해외 취업이 되어 일을 하는데, 야근을 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서 우리 회사의 철학과 근로문화에 반한다며 경고를 주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Probation기간 중 짤리지 않기위해 work hard harder hardest를 할 때에 만에하나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요즘 생각에는 이런 것은 걱정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면 모두 좋아하며, 그 와중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 나아가면 더욱 더 좋아합니다. 적어도 제가 일하는 지금 이 회사에서는요.

저 처럼 언어가 딸려도, 저 처럼 경력이 부족해도, 또 저 처럼 지식과 지혜가 모자라도 열심히 한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네요.

결국 저는 아직까지는 Work Smart의 왕도를 모르고, 충분히 스스로 smart한 상태도 아니기에 일단은 work hard가 경쟁력일 수 밖에 없는 감사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 네트워크 고장으로 8시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잡생각들을 하다 나온 결론입니다. ㅎㅎ

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벌써 5년... 그 다음 5년을 향해.

요즘 제 삶에 새로운 중장기 목표를 수립하지 못해 다소 목적의식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내던 중, 목표수립 이전까지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수립한 저의 단기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외발 자전거 타기!

그래서 며칠 전 인터넷 쇼핑을 통해 외발 자전거 한 대를 주문 했습니다.



외발 자전거 타는 법 관련해 구글링을 하다보니 대략 15시간 정도 연습을 하면 어느정도 탈 수 있다고 해서, 눈/비 오는 날이나 어쩌다 연습을 거르는 날 등을 고려해 매일 30분씩 연습하여 올 해 말일까지는 외발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목표를 정해서 연습 중이죠. 물론 이 목표보다는 덜 재미있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연말까지 다음 5개년 계획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겠지요.

보통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일몰 이후에 집 앞 drive way에서 연습을 했는데, 지난 주말에는 한낮에 연습을 했습니다. 여느 때 처럼 열심히 구르고 넘어지고 까지며 연습을 하다 잠시 쉬고있는데, 차량 한 대가 저희 집앞에 멈췄습니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아이들이 외발자전거 타는거 보고싶다고 해서 잠시 보려고 멈췄답니다.

저는 이거 며칠 전에 사서 아직 못탄다는 말과 함께 미처 패달이 2바퀴도 돌기 전에 뒤로 나자빠짐을 시연해 보임으로서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과감히 증명해 보였죠.

"굳럭!"

이 말을 남기고 그 차는 떠나갔습니다.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그만둘지, 더 연습할지를 고민하던 찰나,

"띠링"

핸드폰에 알림이 떴습니다. 

구글 포토에서 5년전 오늘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알려주는데, 평소에 보이는 아아들 사진이 아닌, 건물 사진 한 장만 달랑 보이네요.


사진을 딱히 좋아하지 않기에 아이들 사진 외에는 잘 찍지도 않는 제가 건물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캘린더와 당시 저의 SNS를 찾아보니 5년 전 오늘이 한국에서 저의 사표 결재프로세스가 모두 완료되어 퇴직일이 확정이 되었던 날이며, 그간 같이 지냈던 다른 분들께 곧 퇴직한다는 인사를 뿌린 날이더군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8년을 보낸 곳이기에 괜시리 센치해져 사업장 밖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건물 사진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이 날로부터 8년 전, 신입사원 때만 해도 저는 이 회사에서 평생 일을 할 줄 알았습니다. 아니 신입사원 시절까지 시계를 돌리지 않더라도, 그 해 3월에도 제가 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안되는 것이지만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어 이직조차 마다했었고 강인한 성품을 지니지 못해 이것 저것 재고 또 비교하면서 타이밍을 놓치기에 도가 튼 제가 부서 이동도 아니고, 한국 내 이직도 아닌 이민을 결정에서 실행까지 단 반년만에 끝내버렸습니다. 4월달부터 시작된 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5월이 되자 이민으로 변했고, 6월에는 캐나다라는 대상 국가가 확정되었으며, 7-8월에는 이민을 위해 영어 공부했고 9월 IELTS를 3차례 연속으로 치뤘고, 필요한 성적이 나오자 11월에 퇴직을 한 후, 12월에 캐나다로 왔습니다.

이 때엔 

'한창 왕성한 경제활동이 필요한 지금 나이에...'

'혼자도 아닌 처자식을 데리고...'

'집도 절도 없는데...'

'말도 잘 안통하는데...'

'한국에서도 해내지 못했으면서 하물며 캐나다에 가서 5년간 손 놓았던 일을 다시 하는게 맞는 선택이기는 한 것인지...' 

등등 정말 수 많은 고민과 걱정과 근심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제 삶과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과 숙제들을 가지고 살지만, 이 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고민들 뿐 이군요.

하지만, 이민 고민부터 실행까지 타임라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때에 저는 충분히 조사하고 준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소 무모한 돈키호테식 결정 덕분에 "무식하면 용감"해졌고, 그래서 캐나다까지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성향상, 제가 지금 알고있는 것들을 5년 전에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냥 한국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을 것입니다. 
저의 지난 5년은 좋은 기회들과 행운들이 말 그대로 우연히 연속되면서. 자칫 한걸음만 삐끗 해도 떨어질 수 있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이민에서 실력/언어/재력/지식/경험 무엇하나 빼어난 것이 없는 제가 이만큼 전진할 수 있었는데, 이런 우연들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5년 전 계획들이 정말 많은 행운과 우연들로 인해 이뤄졌다면, 다음 5개년 계획들은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을 통해 저의 땀으로 이뤄내고 싶습니다. 지금 시도중인 외발자전거 타기는 어쩌면 그 과정 중에는 구르고 넘어지고 깨진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하는 노력은 결국에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제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은 증명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2018년 10월 8일 월요일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제가 종종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에 어떤 회원께서 이 속담관련 글을 남기셨는데, 이를 읽고 갑자기 옛 학창시절 추억이 떠올라 제 추억 한자락을 풀어봅니다.

별 것 아닌 일들이긴 하지만 제 인생에 이런저런 영향을 준 사건들이지요.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저의 중고등 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 때의 저에게

"넌 나중에 캐나다에서 살게 될꺼야"

라고 말해 준다면 아마 저는 미래에서 온 저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고 하나도 믿지 않았을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영어는 완전히 손을 놓고 공부를 하지 않았거든요.
아마 저의 영어실력은 공부를 통해서 보다는 중학생 때 빼먹지 않고 매주 시청한 NBA농구 중계와 (저는 챨스 바클리 팬이였어요), 고등학생 때 매일같이 인터넷에 들어가 읽은 NBA기사들과 (갓 ADSL이 시작한 시기인지라 어마어마하게 느린 속도였기에, 이 때 인내심도 키운듯), 요즘은 거의 한국 방송만 보지만 대학생 때 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수십번 씩 돌려본 미드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영어에 손을 놓은 계기는 학교 수업인데, 알파벳 대문자는 알지만 소문자는 전혀 모르고 입학한 중학교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통해 배우는 영어임에도 글자는 가르치지않고 갑자기 문법을 이야기하고, 그나마도 '이런 기본적인건 너희 다 알자나' 하면서 넘기는 모습에 먼저 질렸던 탓이 가장 큽니다. 그래도 그 때엔, 갓 중학생이 된 마당이라 의욕이 넘쳤기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보려 했지만 이에 결정타를 날려 더 이상 영어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사건입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수업시간 끝날 무렵마다, 숙어나 속담 한 문장씩 알려주며, 다음 수업 시작시간마다 단어 쪽지시험과 함께 이전 시간에 배운 숙어나 속담 시험을 봤는데, 어느 날 이 속담을 알려 준 것입니다.

당시에 선생님은 이 속담위 뜻은 부단히 노력하면 나태해지지 않고, 조약돌처럼 항상 반짝반짝 윤이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설명 하셨습니다.
저는 이 속담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 계속 정처없이 떠돌면, 아무런 노하우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뜻이 아니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단칼에 아니라고 잘라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고, 저는 교탁으로 쪼로로 달려가 선생님에게 찾아가 그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니다' 라고 한마디 하며 교무실로 향했고, 저는 계속해서 선생님을 쫒아가면서 왜 내가 생각 한 뜻이 될 수는 없는 것인지 물었고 결국 저는 교무실까지 끌려가 그 선생님 책상 앞에 서서 꾸중을 들었죠.

"야, 이끼가 좋아? 이끼가 좋은거냐고! 그게 뭐에 좋은데!" 

다음 수업시작 종이 울릴 때서야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 제가 교무실에서 혼나는 것을 보고 저를 빼내서 교실로 보내줬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저는 영어공부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정말 멘탈도 약하면서 아이러니하게 고집은 또 엄청 셌어요) 당시엔 완전한 작별이라 생각 했는데, 나중에 캐나다에 오기위해 다시 공부를 했으니, 완전한은 아니였네요. ㅎㅎ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고등학생 때도 있었는데, 그 때엔 국어였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단편소설 지문의 마지막에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다" 라는 문장으로 끝이 났었죠.
그 때 이 문장에 대해 제가 부정적으로 해석을 했었는지, 선생님이 부정적으로 해석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명은 "한 개인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변화를 시키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대세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해석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이렇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여전히 푸른 하늘처럼 희망이 있다"는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긍정적 메시지로 해석을 했었죠.
선생님과 몇 번 왈가왈부를 하다가 저는 사진작가를 하시는 작은아버지께서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해도 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예술은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요?"

라고 말했고, 선생님께서는

"그래, 그 나름에 따라 네 대입도 결정된다." 

라는 말과 함께 결국 지휘봉으로 머리 한 대를 쥐어박히고 끝이 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말 혁신적인 '체벌 없는 학교' 였기에 정식 체벌도 아니였고, 반 장난식으로 쥐어박힌 거라 맞은것 자체는 크게 기분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원래도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 이과를 어느정도 염두 해 두긴 했는데, 이 사건 이후 각 문장이나 단어의 뜻 하나하나도 모두 암기를 해야하는 인문계가 너무 싫어 이공계로 진로를 확정을 하게 되었죠. 적어도 고등학생 때 까지 배우는 수학이나 물리에서는 간단한 증명으로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정확한 답이 나오기에 내가 틀려도 얼마든 수긍 가능했고, 내가 맞다면 얼마든 증명이 가능했으며, 작은것 하나하나 외울 필요없이 기본적인 몇가지 툴 만으로도 풀이가 가능했으니까요.

한국의 교육이 나쁘다거나, 당시 선생님들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학창시절 좋은 은사님들과 인연이 많이 있었고(신기하게도 다 수학/물리 쌤들...), 이민 온 이후에도 한국에 갈 때 마다 찾아뵙는 분들도 계세요. 

당시엔 그 선생님들이 이해도 안가고 솔직히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되었건 제가 더 높은 점수를 얻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고, 또 제가 문학적 클리셰나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복선들을 놓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지요.

교사라는 직업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당시의 사건들에 대해 그 분들은 아무런 기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저 처럼 학생 개인에게는 적지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부모라는 역할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작은 말 한 마디와 생각없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저는 나름 아이를 걱정해 던진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하나의 큰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었던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이들과 지난 4일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글을 읽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저를 반성해 보는 뜻깊은 롱 위켄드네요.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 시작인데, 크리스마스 연휴 때 까지 다시 매일매일이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도록 만들어 나가야겠네요.

그런데...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이 속담의 올바른 해석은 과연 무엇인가요???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한국인이라 행복했던 하루

안녕하세요. 약 2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분명히 7월 말에 연봉협상을 할 때만 해도 제 마음 속에 다음 한 해의 목표는 일을 조금만 하면서 남들만큼 여유롭게 살고, 기존의 성과는 어느정도 유지를 하는 것이였는데, 작심삼일이라고 벤쿠버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온갖 일들이 터지기도 했고 이것저것 제가 달려들 일들이 생겨버려 바쁘게 정말 바쁘게 살았네요.

어제는 팀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제가 한국인이라서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약 석달 전 기술이민으로 캐나다에 와서 저희 회사로 입사한 인도 친구와 대화 하면서 생겼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주에 하루 휴가를 내고 G1  라이센스 시험을 봤지만 탈락을 했었죠. 오전에 스프린트 스크럼 미팅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옥빌에 driving test는 어때? 미시사가보다 좀 더 편하다는 말이 있던데?"

저는 당연히 한국 면허증을 G1으로 교환했으니 캐나다 라이센스 시험과 절차에 대해서는 1도 모르니, 캐나다 면허시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대답 했습니다. 

"어 그래? 혹시 너 우버타고 다니니 너희 집에서 회사까지 대중교통 없자나."

이 친구 입장에서는 모국의 면허증을 캐나다 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 제가 면허가 없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죠. 한국 캐나다간 상호 운전면허증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주니 정말로 부러워했습니다.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갑자기 이 친구가 몇 년 전까지는 미국에 살았다는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아, 맞다. 너 근데 미국에 살때 면허 따지 않았어?"

"어 미국 면허 있지."

"그러면 미국 면허를 캐나다 면허로 교환하는 방법을 한 번 찾아봐. 아마 있을꺼야."

"근데 반년 전쯤에 만료됐어.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 떠나기 전에 갱신 해두고 떠나는거였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려던 찰나, 다음주가 캐나다 Thanks Giving이라는 것이 생각나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 만료된 면허 갱신 방법 알아봐. 만료 된 면허라도 비교적 쉽게 갱신 될껄?"

"면허 갱신은 미국 내에서만 될꺼야.?"

"어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니까 캐나다 휴일에 미국은 평일이니 다음주 월요일에 잠깐 미국 가면 되자나."

"차라리 시험 서너본 보고말지 언제, 어떻게 미국 비자를 받아"

아... 이 친구가 캐나다 영주권은 있지만, 인도 여권이니 미국에 잠시 간다 하더라도 관광 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잠시 깜빡 했던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 갈때 ESTA 신청은 해도 비자 신청은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해줄까 하다가 너무 부러워 할 것 같아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퇴근을 하려는데, 얼마 전 캐나다 시민권 신청서를 낸 우크라이나 친구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어보니 11월 초에 컨퍼런스가 있는데, 메일 확인을 지금에서야 해서 갈 수 없다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오전에 인도 친구와 에피소드가 있었건만 까맣게 잊고 다시 멍청한 소리를 꺼냈습니다.

"왜? 컨퍼런스 참가신청 마감됐어?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어. 마감이라고 떠도 나중에 다시 열리기도 하고"

"아니, 비자가 필요하자나 한달만에 비자받기 거의 불가능이자나"

"아... 넌 비자가 필요하겠구나..."

"너 벌써 시민권 받았어?"

"아니"

"한국도 미국 갈 때  비자 필요 없어?"

"어. 국경 검사에서 캐나다 여권만큼 쉽게 패스하는건 아니지만, 따로 비자 안받아도 되."

"헐... 넌 그럼 시민권 구지 받을 필요 없겠구나"

"어... 나만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지금 캐나다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있는 아이들 생각하면 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아마 애들 군대 문제때문에라도 시민권 신청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한 일들인지라 별다른 혜택이라고 느끼지도 못하고 지내지만, 가끔 다른 나라 출신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한국인이기에 참 많은 혜택을 받고 산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캐나다에 부모님이 처음 오셨을 때에도 당시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파키스탄인 가족이 (이미 시민권도 받았고, 캐나다에서 아내는 의사 신랑은 저와같은 SW 개발자입니다) 정말 부러워 했었습니다. 자기들도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부모님 비자가 계속 나오지 않는다고요.

잠시 잊고 살았지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