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8일 토요일

영어를 못해서 대인배가 된 사연

안녕하세요.

영어를 못해서 조금 답답한 일들은 그간 많이 겪어봤지만, 영어를 못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저 외에 모든 팀원들이 out of office이기 때문인데, 한 명은 컨퍼런스 참석으로 자리를 비웠고, 다른 2명은 이번주 내내 휴가이고, 나머지 한 명은 섬머쟙으로 갓 들어온 인턴인데, 수요일부터 2주간 휴가입니다. 

그렇다보니 지난주부터 시작된 이번 스프린트를 계획할 때 평소대비 일의 양을 절반수준으로 잡아 계획된 업무 처리에는 큰 문제가 없긴 했는데, 문제는 옆에서 치고들어오는 이슈들이였습니다. 각 유관부서에서 저희 팀에 요청을 한다거나, 저희 팀이 관리하는 서비스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불끄러 나가야 한다는 등의 일들을 저 혼자서 다 해야하다보니 이번 주 내내 이런 '잡무'들로 평소보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주 수요일에 제가 예전에 소속되었던 개발팀에서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어젯 밤 늦게 (메일 작성 기준) 릴리즈를 앞두고 300여개가 넘는 모든 variation들을 전부 빌드하는 full build job을 실행시켰는데, 저희 팀에서 관리하는 외부 서비스 미러링 서버에서 time out이 발생하는 바람에 총 7시간이 걸린 빌드가 막판에 fail이 나버렸다는 메일이였습니다.

그 당일에는 다른 불을 끄느라 바빠 미처 메일 확인을 하지 못했고, 다음 날인 지난주 목요일에 처음으로 메일을 읽었는데, 이미 이틀 가까운 시간이 흘러버려 저희가 관리하는 미러링 서비스에서는 일부 로그들이 자동으로 삭제가 된 상황이였죠
그래서 간략하게 문제 상황과 fail된 빌드의 로그 등등을 확인해 본 후에, 이런저런 상황 설명과 함께, 정황에 근거하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fail이 되지않고 자동 복구가 가능한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능 할 수도 있는) 방법 등을 설명하여 메일을 보냈고, 몇 시간 뒤 다시 그 팀의 개발자 중 한명인 OOO은 제가 제안한 방법들의 side effect들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들은 time out이 발생하지 않는 reliable한 서비스가 필요하고, 현재의 서비스가 그렇지 못하다면 별도의 서비스 셋업을 고려해야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그 답장을 보기는 했지만, 저는 또 다른 불을 끄고있던 상황인지라 당장은 대응을 하지 않았고, 끄고있던 불을 다 해결 한 이후에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분석을 하다보니 저희가 제공하는 미러링 서버의 특성과 그들의 빌드 시스템의 특성 상 제가 제안한 대안 중 한 가지의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문제 케이스에서는 특히 그러했죠. 그래서 관련 로그와 분석내용, 관련 코드의 일부를 캡쳐한 부분 등을 정리하여 정확한 원인과 그 원인에 따른 대안 제시를 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짓고 그간 밀린 메일과 메신져 메시지들을 하나씩 열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수신함의 마지막 메일을 보니, 미러링 서비스 관련하여 문제가 되었던 그 팀의 매니져에게 온 메일이였습니다. 메일 수신시간을 보니 제 분석 메일의 발신시간 직전이였죠.

혹시 제 문제분석에서 누락된 것이 있지않을까 생각해 메일을 열었는데, 수신인에 저만 단독으로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책 의견을 주고받는데 왜 나한테만 보냈지?' 

약간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메일을 읽지 시작했는데, 제 생각과는 달리 사과 편지였습니다.

우리 팀 OOO이 보낸 메일에 대해 사과한다. OOO이 너한테 따지거나 항의하거나 비난하려고 메일을 보낸 것도 아니고 너한테 화가 난 것도 아니다. 너한테 지금 화가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자체에 대해 화가 난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표현이 잘못된 것 같다. 매니져로서 내가 대신 사과한다. 지금 OOO이 너한테 이거 고쳐달라고 떼쓰는게 아니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여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문제 분석의 도움을 받아보고자 하는 것이였지 절대로 너나 너희 팀을 공격하고자 한다거나 너에게 해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의도가 아니였다...

뭐 이런 내용이였습니다.

처음에 메일을 훑어보면서 잘못보낸 메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비난을 받거나 공격을 당했다거나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메일 본문 아래로 이전 메일 thread가 있어 스크롤 해보니 제가 그 팀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메일 내용이 맞았습니다.

'뭐지?'

'뭔 말이지??' 

'누가 나 공격했었어???' 

'나 맞은 적이 있던거야????'

'내가 정녕 사과받을 만한 일이 있기는 있는거야?????'

혹시나 제가 읽지않고 실수로 삭제한 메일이 있다거나, 업무 메신져에서 놓친 글이 있는지를 다시 찾아보았지만, 딱히 그럴만한 사건이 보이지 않았죠.

그 팀은 1년 반 전만 해도 제가 소속되었던 팀이라 대부분 다 친분이 있었기에 다른 팀원을 통해 제가 보낸 분석 내용에 대한 의견 확인을 하는 척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은근슬쩍 떠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팀에서 마지막으로 OOO이 메일을 보낸 후 몇몇 사람들이 수근거렸다고 합니다. 너무 강압적이고 공격적으로 메일을 작성했다고요. 그래서 OOO과 팀리드, 매니져 등등이 관련해서 이야기도 몇 번 했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다시 읽어봐도 저의 영어실력에는 그냥 7시간 걸린 빌드에서 막판에 문제가 발생했으니 빨리 문제 수정을하자는 메일로만 보이고, 딱히 저를 비난한다거나 쫀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원어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봅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본인 같으면 성질나서라도 아무것도 안 해줄텐데 저보고 대인배라고 합니다.
진짜 대인배가 아니였고 그냥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이였던지라 생각나는대로 횡설수설 아무말이나 막 했습니다.

'OOO이 화가 날 만도 하지. 이해해. 7시간 넘게 걸리는거라 밤새 돌렸는데, 에러 떴고, 그거 다시 하려면 또 밤에 해야해서 다시 하루가 흘러가는 거고. 어찌되었건 우리팀 responsibility 아래있는 서비스에서 time out이 발생한 것이 직접적인 현상이였고....'

제 횡설수설에 그 친구가 너무 쿨하다고 하네요.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한 후 다시 돌아와 메일을 보니, OOO이 수신인을 저로만 설정해서 지난번 자신이 보낸 메일에 대한 excuse와 함께 Sorry 레터를 보냈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팀의 매니져가 다시 한 번 Thank you & Sorry 레터를 보내더군요.

허허허...

참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무언가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죠.

저의 일반적인 성질머리를 생각한다면, 메일을 읽고 원어민들이 느꼈던 그런 감정을 저도 느꼈더라면 결코 이번처럼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나 계속해서 외부 요청들이 저에게만 깔대기처럼 몰리고 있는 이번 주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화끈하게 맞대거리를 한다거나, 아니면 메일을 읽지도 못했고 뭔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무시를 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의 부족한 영어실력 덕분에 저는 대인배가 되어버렸습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절대적인 언어실력의 부족 때문인지, 문맥상 전해지는 감성을 캐치하는 언어적 센스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복합작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다시 OOO이 보냈던 원래 메일을 읽어보아도 도무지 제가 공격을 받았다거나, OOO이 저에게 화를 낸다거나 저를 비난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네요. 어쩌면 한국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다양한 방법의 갈굼들과 압박에 익숙해져 이 정도의 공격에는 흔들리지 않는 내구성과 면역력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요.

여하튼 영어를 잘 알지 못해서, 잘 하지 못해서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저의 유일한 경험 이야기입니다.

벋어나기 힘든 꼰대기질


안녕하세요.

요즘들어 부쩍 드는 생각이 한국에서 12년 공교육과 4년 대학생활, 2년 2개월의 군생활과 8년여의 직장생활을 겪으면서 저도 모르게 오지랖과 꼰대근성을 갖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입니다.

보통 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간혹 캐나다 회사에서 다른 팀 동료들과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느끼곤 합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차이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3가지 정도가 가장 많이 차이난다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다.

1. 짧은 근무시간
2. 연차없는 사회
3. 단순한 상하관계

근무시간의 경우에는 요즘 예전 한국 직장의 동기들이나 후배들을 통해 소식을 들으면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고 한국 떠난지 고작 5년밖에 안되었지만, 간혹 동기들을 통해 전해듣는 이야기를 보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더군요.

제가 한국에서 개발자라는 커리어를 버리게 된 이유가 한 달에 100시간 잔업에 토요일 일요일 중 바쁘지 않은 시기에도 토요일에 4시간 정도는 근무를 했어야만 했고, 릴리즈 기간 전후로 2-3달 동안은 주말에도 8시간 이상 씩 풀 근무를 하며 가정생활에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고, 개발직을 떠난 이후에도 주당 68시간 근무라고 해도, 항상 주말에 잡히는 임원회의 때문에 회의 전 저희 팀 임원 회의준비로, 회의 후에는 회의 시 나온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토요일에 보통 출근을 해야했고, 주중 68시간 근무 역시 계산해보면 매일 5-6시간은 더 근무를 하는 것이였으니, 개발실에 있을 때 보다는 줄어들었어도 일몰 이후,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퇴근한다는 것에서는 거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제가 이민을 위해 퇴직을 하던 시기에도 자율 출근제나 자율 출퇴근제가 회사에 도입이되어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말이 있긴 했어도 대부분 저의 동기들은 항상 입에 한약을 물고 살았고, 영양제 한두통은 항상 책상머리에 두고 상시섭취를 했는데,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당 52시간 근무 이야기가 나올 무렵부터 회사에서 미리부터 이에 대비하여 각종 정책과 방안들이 공지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52시간 근무제가 자리잡혀서 저녁 7시만 되면 사무실에서 사람 얼굴을 보기 힘들정도이고, 자율출퇴근제도 잘 자리잡혀 각 개인의 생활패턴에 따라 6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이나, 주초에 일을 몰아서 하고 금요일에는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한국에서 한 번 개발자 커리어를 버렸던 이유도, 개발자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 망설였던 이유도 모두 근무시간의 문제였기에 얼마 전 동기들과 단톡방에서 워라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농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나 그냥 돌아갈까? 너희 수석님께 사람 필요 없냐고 물어볼래?"

하지만 아무리 근무시간이 개선 되었어도 나머지 두가지 차이점 때문에라도 아직은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할 마음은 아직 없습니다. 근무시간의 차이점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다른 두 가지 차이점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죠.

먼저 연차에 대한 문제는 제가 개발자 커리어 복귀를 위해 캐나다에 올 수 밖에 없었던 문제입니다. 개발자 복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근무시간에 대한 어려움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해 과감히 포기했는데, 사실 이건 제 마음속에만 있던 문제였고,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개발자 복귀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연차 때문이였죠.

전체 커리어의 연차로는 8년 경력이지만, 개발자로의 연차는 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커리어 초반 4년 경력이기에 4년 넘는 단절 기간이 있었죠. 캐나다라면 그냥 신입의 조건으로라도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죠.
8년 연차라는 것 때문에 연봉과 직급 등의 조건도 걸리고, 만에하나 신입의 조건으로 들어간다 하여도 이미 30대인 신입사원을 받고싶어하는 20대 대리는 없으니, 고용주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인력이였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그래도 대기업인지라 40-50대의 실무자도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IT기업에서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점점 실무에서 관리직이나 영업직으로 전환을 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개발 실무로의 꿈을 갖고있는 제가 갈 수 있는 자리도 매우 한정적이였고요.

다시 커리어 복귀를 한 지금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연차와 관련된 문제는 이래저래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연차가 쌓임에 따른 관리직이나 영업직 전환의 문제도 있고, 커리어 복귀는 했지만 이전의 개발과는 다른 분야 개발을 하기에 현 분야에서 연차는 그다지 높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 연차와 어쩌면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 문제가 복잡한 상하관계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전혀 문제점이라고 느낀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한국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캐나다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다는 느낌입니다. 나의 인사권과 지휘권을 가진 직속상관과의 관계 뿐 아니라 같은 부서 내에서 상위 직급과 하위 직급간에도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같은 직급 내에서도 윗 기수와 아랫 기수간에 상하관계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기수와 직급 사이에도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가 간혹 나타나기도 합니다.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러한 상하관계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의 직장문화도 모르고, 직장에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몰랐을 때에, 한국에서 사수나, 회사 선배가 없는 캐나다 직장에서 나침반 잃은 항해사처럼 표류하면서 선배하나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한국 회사는 신입사원이나 연차가 썩 높지않은 경력 사원이 들어오면 보통 2-4년정도 차이나는 선배들을 사수로 붙여 사수의 업무를 쉐도잉 하거나, 사수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면서 일을 하나씩 배우고, 그 회사와 부서의 특성이나 업무 프로세스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하나씩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회사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그저 메뉴얼 문서만 전달 될 뿐이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시스템 내에서 스스로 찾아서 해야했고, 현재 회사 제품의 코드 구조와 설계에 대해서도 혼자 프로젝트를 열어보고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간혹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물론 친절하게 설명은 해 주었지만 그들의 시간을 빼았는 것이기에 사수들에게 그랬듯 세세한 것 하나하나 물어보고 지도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죠.

그렇게 캐나다에서 '신입'? 기간을 거치고 어느덧 이러한 직장문화에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한국의 복잡한 다단계의 상하관계가 상당히 피곤한 구조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선배나, 상위직급의 팀원들에게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업무에 대한 간섭을 받기도하고, 때로는 업무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제 직속상관의 지시와 선배다 다른 상급자의 말이 다른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또한 업무관련 회의를 할 때에 선배나 상급자가 제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논리를 펼친 상황이라면 제가 그에대한 반론을 함부로 펼치기 힘듭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잘 포장해서 그들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도록 이야기 하거나, 공식회의 외에 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생각하는 방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를 하거나, 반론이 아닌 조금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책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반대 방향으로 끌고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저의 인사권자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직급체계 자체도 한국보다 매우 단순하지만, 직급의 상하관계는 단순 그 사람의 직급일 뿐이지 저에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으며 일을 함에있어 저와 같은 1:1의 동등한 팀원 관계였습니다. 직급에 따른 차이가 없으니 당연히 기수나 나이에 따른 서열관계도 없을 수 밖에 없고요.

그렇다보니 일을 할 때 참 편합니다. 저만의 논리가 분명하다면 상대가 그 누구라고 해도 마음껏 저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고, 저의 업무에대한 판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수평적 관계는 팀원들간 뿐 아니라 인사권자와 팀원 사이에도 보입니다.

한 팀을 이끄는 사람은 그 팀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팀원들의 연봉이나 복지수준을 조정 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새로운 팀원을 고용하거나 기존 팀원 중 누군가를 해고 할 권한도 가지고 있죠. 어찌보면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인사권자와 일반 팀원들 간의 관계도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이른바 '갑질' 이라고 불리는 것 만큼이나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제가 봐 온 인사권자들의 영향력은 캐나다에서의 그것보다 더 넓고 크고 깊었죠. 
일을 하다보면 누가 보더라도 방향이 한 가지로 귀결되는 당연한 일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각 개인마다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갖게하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엔 보통 이련 경우에 그 인사권을 지닌 부서장이 혼자 생각하여 결정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본 이후에 본인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서장이 팀원들에게 토론의 장을 열어줬을 때에는 팀원들간 열띈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일단 부서장이 방향을 정한 이후에는 그 결정에 토를 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팀원들 간 몇 번 캐쥬얼하게 토론을 했고, A, B 두가지 중에 B쪽이 맞는 것 같다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매니져는 A를 선택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팀원들이 매니져를 찾아가 성토대회를 연 것이였습니다.

또 한번은 A, B 두가지 중에 서로 장단점이 맞물리는 것이 많아 팀원들간 의견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매니져가 A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B를 주장하던 팀원 뿐 아니라 A를 주장했던 팀원까지 매니져를 찾아 가서는 아직 우리가 기술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무슨 정무적 판단에 의해 A로 결정된 것인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해보니 별다른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 아니고, 매니져의 관점에서 A가 더 나은 것 같아 A로 추진을 하려던 것이였고, A와 B를 지지하던 팀원들이 모두 그에 반대를 했습니다. 실무 기술자의 검토와 의견을 들을 것이 아니라면 왜 내가 여기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는 친구도 있었고, 양쪽의 장단점을 계속 토론해서 어느 쪽이건 단점을 보완하는 대비를 해야하는데 그에대한 대비도 없이 결정하는건 문제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매니져가 technical decision에 정무적 판단 없이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반대하는 친구도 있었죠.

물론 캐나다에도 한국의 인사권자같은 스타일의 사람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이 어떻건 자신이 방향을 정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기도 하고, 그러다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가차없이 쳐내기도 하고요. 저희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죠.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이라면 한국에서 제가 그런 분들을 봤을 때엔 그다지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분이라면 오히려 능력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여기에서는 모두들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그 누구도 같이 일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 이전 직장동료도 팀이 이동하며 그 VP밑으로 들어가자 수 개월 내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저의 경험이 모든 한국의 직장과 모든 캐나다의 직장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8년간 일 한 회사는 단 하나의 회사였을 뿐이고, 캐나다에서도 지난 5년 간 일 한 회사도 단 하나의 회사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제 경험에 의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미 단순한 인간관계에 적응이 되어버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복잡한 다단계의 상하관계 하에서 근무를 하고싶은 마음이 없네요.

그런데, 제가 오지랖과 꼰대정신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우습게도 바로 이 복잡한 상하관계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회사에 졸업 후 이제 갓 회사생활을 시작한 동료가 있습니다. 이제 회사에 들어온지 1년정도 되었는데, 갓 졸업한 junior치고는 상당히 일을 잘 하는 편이며, 팀에 적지않은 기여를 하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저희 팀 평균으로 보자면 상당히 자주 재택근무를 합니다. 보통 주당 2-3일 정도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하겠다며 팀에 공지할 때 그 사유를 보면...

 "아마존에서 주문한게 있는데, 오늘 꼭 받아야 한다. 택배받아야하니 재택근무 할께"

 "어제 택배 온다고 했는데, 안왔다. 오늘 하루 더 재택근무 할께."

 "여자친구가 너무 외롭다고해서 오늘은 집에서 근무할께."

이런 사유들입니다.

사실 개발자라는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런 사유없이 재택근무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저희 회사의 다른 팀의경우 총 10명이 조금 넘는 팀이지만, 그 중 3-4명은 거의 상시 재택근무중이며, 또 다른 2-3명 정도는 매우 자주 재택근무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할 때에 별도의 팀 공지도 하지않는 팀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공지를 하는 경우에는 팀원들이 모두 참석해야하는 회의가 있는 날 재택근무를 할때, '오늘 재택근무를 하니 회의는 skype voice call로 참석 예정이다.' 정도이죠.

하지만, 저희 팀 동료의 이런 재택근무 공지를 볼 때 마다 저의 오지랖과 꼰대정신에 의해 제 입이 근질근질 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단순하고 하찮은 일들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선배 대 후배의 관계에서 해 주고 싶어지죠. 특히나 이 친구가 전반적으로 하는 업무량은 junior로서 충분하기는 하지만, 매일매일의 업무성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출근일과 재택근무일의 업무량과 퀄리티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차제가 저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고, 그 친구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고, 또 그 친구가 결국 해내는 일의 총량에는 문제가 없기에 문제없는 일에 트집잡고 이야기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아무말도 안하고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종종 그 친구를 보면...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말이야...."

 "마치 나의 신입 때를 보는 것 같아서인데..."

 "지금 잘 하고는 있지만, 더 잘 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고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려 참기 힘들 때가 있네요.

이러한 단순한 상하관계에서 오는 장점을 누리고 살고있지만, 반대로 저에게 익숙해져버린 오지랖때문에 이런 단순한 상하관계가 불편하기도 하네요. 언어에 대한 문제와 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업무 때문에, 매니져라는 직책은 절대로 맡고싶은 생각이 없기는 하지만, 저의 이러한 오지랖과 꼰대기질 때문에라도 매니져 롤은 절대로 맡아서는 안될 것 같네요. 만약 제가 매니져가 된다면 캐나다 역사상 손에 꼽힐만큼 악랄한 매니져가 될 것 같아서요.

2018년 6월 17일 일요일

선물을 주고간... 그리고 다시 가져간 녀석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근황을 올리네요.

요즘 저희 집은 drive way 공사를 하느라 집 주변이 한창 어수선합니다.

제가 이사온 이후로는 drive way 포장이나 보수를 한 적이 없었고, 이전 주인이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아스팔트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그 필요성이 있었는데, 고민끝에 인터라킹이라고 아스팔트나 콩크리트로 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 블럭으로 포장을 하는 방식을 선택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집 양쪽 사이드에는 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잔디가 잘 자라지 못했고, 그래서 비가 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는 곳이 많아 항상 고민이였는데, 인터라킹 공사를 하면서 집 양쪽 사이드도 포장을 하기로 결정을 했죠.

하지만 이 공사를 하는데 생각외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동반하더군요.

우선 공사 업체 선정과 계약은 3월 초에 했습니다. 계약을 하면서 공사 시작일을 잡는데,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하면서 4월 말 즈음에 시작을 할 것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4월 셋째주, 넷째주 계속 시간이 지나도 업체 쪽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업체에 전화를 하면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다가 어쩌다 연락이 되면 다음주에 시작한다. 그리고 한 주가 흘러가면 다시 다음주에 시작한다, 다음주에는 한다, 다음주는 진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말 다음주다... 이렇게 계속 같은 말만 반복을 하다 결국 6월이 되어서야 약 2주 전 부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공사 첫 날, drive way에 포장되어 있던 기존 아스팔트를 뜯어냈고, 그 다음날에는 블럭을 쌓아야 하는 구간에 고운 모래를 깔고 특수 차량으로 꾹꾹 눌러주며 바닥을 다지더니 공사 셋째 날 부터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물론 '내일은 쉽니다' 라는 식의 통보는 전혀 없었고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기다리다가 오후 늦게 전화를 거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거는데 수차례 발신 끝에 연결이 되었고, 오늘은 아니고 내일 갈 것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다음날 업체에서 왔는데, 30여분간 블럭 수십개만 앞마당에 내려두고는 다시 자취를 감췄고 또 그 다음날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 이틀간 전화 발신끝에 다시 연락이 닿았는데, 자재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헐... 자재가 준비되지 않았으면 왜 공사를 시작한 것인지... 3월 초에 계약금 지불하면서 주문을 한 것이고, 공사를 시작하는 날 착수금을 준 것도 이미 1주일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자재가 없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그래서 언제 시작할 수 있냐고 물으니 내일 확인하고 전화를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역시나 전화가 오지 않았죠. 그래서 다시 전화를 수차례 걸은 끝에 연결이 되니 오히려 업체쪽에서 좀 차분하게 기다리라며 저희를 다그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재가 없거나 이런저런 차질이 생겨 지연되는 것은 인정한다 쳐도 연락을 주기로 하고 단 한번도 먼저 연락이 오지 않는게 너무나도 괴씸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니 이 나라 공사업체들의 특성이 대부분 그런것 같더군요. 주변에도 공사를 한다고 다 뜯어놓고 일주일 넘게 아무런 진척이 없는 집들이 한 두 곳도 아니였고요.

어쩐지... 저녁마다 산책을 하다보면 간혹 drive way가 비포장인 상태로 거진 한달동안 지내는 집들이 있어 "이 집 주인은 off-road 취향인가? 왜 이렇게 drive way를 관리하지?" 라며 의문을 가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아마 지금의 저와 같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사가 지연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퇴근 후에 텃밭과 화단에 물을주는데, 뒷마당 한 구석에 요상한 먹구름 한 무더기가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었이였는고 하니, 파리 떼였죠. 

헉! 

안그래도 저희 집 뒷마당에 야생동물들이 너무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런저런 짓들을 해 대는 것이 고민이였는데, 지금은 때마침 공사 때문에 뒷마당 문을 열어둔 상태로 고정시켰기에 그 통행이 너무나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여우나 너구리 같이 덩치가 좀 있는 녀석이 우리집 뒷마당에 똥이라도 싸고 도망갔으려니 생각을 했고, 파리가 더 몰리기 전에 치워두기 위해 파리떼가 몰린 허공에 호스로 물을 뿌려 파리를 쫒아내고 작은 봉지를 하나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바닥을 보니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더군요.

저를 맞이한 것은 여우나 너구리의 배변이 아닌... 다름아닌...

하반신만 남아있는 토끼와 이곳 저곳에 뒹굴고 있는 뼛조각과 고기 찌꺼기, 그리고 토끼 털이였습니다.

헉!!!

아마도 여우가 토끼를 사냥한 이후 조용히 먹을 곳을 찾다 때마침 문이 열린 저희 집을 식사장소로 선택한 것 같더군요.

"이런... 육식동물이 사냥해서 먹는걸 뭐라 할 순 없지만, 기왕 먹는거 주택지가 아닌 숲에 들어가서 먹거나, 주택지에서 먹더라도 남기지 말고 다 먹지 이거 반만먹고 왜 남기고 간건지..."


우리 동네 여우 (출처: 동네 이웃)

대략 2016년 겨울 즈음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안그래도 요즘 우리 동네 사람들 사이에 이 여우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집 앞에서 놀고있는 고양이를 공격하려들기도 했기에 반려묘를 키우는 가정에서 걱정이 많고, 또 세균 감염의 위험도 있고, 특히나 아주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안전에 위험이 될 수도 있어 이래저래 걱정이 적지 않죠.

그래도 처음 출몰하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낮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해가 진 이후 자정녘에나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여우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위 사진에서 처럼 밝은 대낮에도 맘껏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정확한 개체수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는 한 번에 한마리 이상 보인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제가 직접 본 것만 해도 3마리가 같이 몰려다니기도 했고 이런저런 느낌상 개체수도 더 늘어났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진 것 같고요.

그나저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토끼 사체 처리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언제 여우가 냠냠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 주변에서는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고, 대규모의 파리떼가 뒷마당에 몰려있는 것도 너무나 꺼림직했지만, 막상 치울 수도 없는 것이 쓰레기 수거일은 금요일이라 앞으로 한참 남았고, 집 안이나 차고 안의 쓰레기통으로 가져오자니 그 악취가 너무나도 심했습니다.

뉴질랜드 rural 지역에 사시는 부모님들께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계신데 제가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를 갔을 때만 해도 아직 1살도 되지않은 아기 고양이인지라 작은 벌레에는 관심을 가지고 덤벼들었어도 큰 나방같은 벌레에는 겁을 먹어 몸을 웅크리고 눈치만 살폈던 기억밖에 없는데, 요즘에는 녀석이 완전히 자라서 이제는 쥐도 잡고, 토끼도 잡고, 때로는 낮은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뛰어올라 사냥을 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냥을 하고나면 보통 머리부터 잡아먹은 후 부모님께 자랑한다며 꼭 현관문 앞에 남은 시체를 가져다 놓아 제발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자기 딴에는 이쁜짓 자랑한다고 하는 것인지라 그냥 웃으며 넘긴다고 하시죠.

저는 반려동물도 아니고 야생 여우인데... 저에게 주는 선물로 이렇게 가져다 놓은 것인지 ㅠㅠ
여우를 그렇게 이뻐한 적도 없고, 오히려 저희 이웃집 고양이를 공격할 때 내 쫒은 기억만 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여하튼, 이 토끼 사체를 집이나 차고로 가져올 수는 없고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부모님 집처럼 대지가 넓은 것도 아니니 어디 먼 곳에 묻어버릴 수도 없어, 오랜 고민 끝에 일단 파리도 쫒고 악취도 막을 겸 여러겹의 비닐봉지로 밀봉을 해서 뒷마당에 놔 두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밤에 블랙백에 같이 담아두어 쓰레기 수거 시 같이 나갈 수 있도록 하려고요.

그렇게 목요일이 찾아왔고, 목요일 저녁 퇴근길에 저는 이제 뒷마당의 골치덩어리 하나를 치울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신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퇴근 후 보니, 그 비닐봉지가 있어야 할 자리가 깔끔하더군요. 그래서 제 아내가 이미 치운 줄 알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행여나 피냄새를 맡은 너구리가 블랙백을 찢고 집 앞을 쓰레기판으로 만들 것이 걱정되어 아내에거 토끼는 어느 봉지에 담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너구리의 만행 예시 (출처: 동네 이웃)

그... 그런데... 아내가 하는 대답은

"응? 무슨소리야? 토끼는 뒷마당에 뒀자나."

헉!!!

그... 그럼 토끼는 어디로 간거지?

그래서 뒷마당에 나가 다시 한 번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우나 너구리가 봉지채 들고 날랐다면 그 문제가 덜 할텐데, 뒷마당의 제 3의 장소로 가서 다시 먹다가 어딘가 남겨두고 갔다면 그 문제가 심각하니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뒷마당을 샅샅이 다 뒤져봐도 찢어져 뒹굴고 있는 봉투 몇개만 보일 뿐 토끼 사체나 그 잔해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뒷마당에서 봉지를 다 찢어낸 이후 꺼내서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더군요.

다시 한 번 고마운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주고 간 선물???을 다시 꺼내어 빼앗아 갔습니다.

요즘 갈 수록 동네주민들 사이에 동네에 자주 출몰하는 여우에 대해 안좋은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동네에서 사슴을 보면 이쁘다고 좋아하고, 매를 보면 멋지다고 좋아하면서 똑같은 야생동물인데, 여우에게 너무 모질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이는 개체수와 빈도도 늘고, 인간에게 점점 적응해 나아가며 대낮에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더군요. 저는 그들이 걱정을 할 때에도 제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아이들이 여우가 쉽게 공격 할 만큼은 작지도 않았고, 생각해보면 인간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전에는 다 여우같은 야생동물들이 살던 땅을 사람이 빼앗은 것이니 좋지는 않더라도 그냥 인정하고 같이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여우에게 선물을 받아보기도, 또 다시 빼앗겨 보기도 하니, 

여론이 안좋을 때에 저는 반려동물도 키우고 있지 않고 저희 애들도 여우가 쉽게 공격 할 만큼 작지는 않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이렇게 여우가 저에게 선물을 줬다 다시 빼았아가는 경험을 해보니 여우는 집 북쪽에 있는 숲에만 살고 주택가로는 가능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연봉협상 준비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 회사의 시즌에 맞추어 연봉협상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다니고있는 회사에서 5월 말일은 지난 1년간 저의 업무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날입니다. 회사의 fiscal year가 7월부터 시작되기에 회사 회계상으론 7월이 되면 2019년이 되는 것이고 연간 목표/계획/예산 등도 이에 맞추어서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5월 말부터 6월 말 까지는 각 개개인의 퍼포먼스 평가와 함께 연봉 협상이 이루어지죠.

저는 보통 지금 즈음에 일반적인 인상 폭이 넘게 기대를 한다면 매니져에게 내가 원하는 조건에 대해 살짝 귀뜸을 합니다. 그래야 매니져도 미리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그에 맞게 팀 예산과 계획을 잡아두어 추후 연봉 및 베네핏 조건을 협상할 때 좀 더 빠르고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올 해에는 조금 상황이 애매합니다. 매니져도, 그 위에 VP도 공석인지라 딱히 말을 꺼낼 상대가 없으니까요.

일단 이러한 저의 문제는 제가 스스로 답을 찾아 보기로 하고, 보통의 연봉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연봉 협상에 들어가기 전 최고의 준비는 지난 1년간 일을 잘 하는 것이라고요.

네 맞는 말이에요. 회사가 구호단체도 아니고, 본인이 현재 받고있는 샐러리 이상의 일을 하고있지 않다면 회사에서 연봉을 올려 줄 이유가 없기에 어마어마한 달변가가 아닌 다음에야 어떤 준비를 해 간다 한들 연봉 인상의 요구는 먹히지 않을겁니다.

그러면 지난 1년간 일을 정말 잘 해왔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연봉대비 자신의 기여도와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본인의 상관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경우에 따라 연봉협상 기간이 아니고, 내가 요구 한 적이 없음에도 회사에서 먼저 올려주기도 하죠. 이런 경우는 보통 회사가 인력난에 시달릴 때 종종 일어납니다. 제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때, 인터뷰를 마치고 job offer를 받고 첫 출근일 사이에 저희 팀에서 2명이 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 probation 기간 3달 동안 추가로 3명이 퇴사를 했는데 비지니스 규모는 점점 커지고 backlog에 밀려있는 일들은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 와중에 퇴사한 1명은 지난 3달간 저와 친하게 붙어다니던 친구였고요. 사실 저는 언제 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3달간 시달리다 가까스로 Probation을 통과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Probation 통과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했던 시기인데, 회사에서 먼저 제 연봉을 20% 넘게 올려줬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고용하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니 추가 이탈자를 막기위한 조치였던 것 같아요.

제가 특별히 잘나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때마침 상황도 그러했고, 제가 하는 일의 양이 제가 받던 연봉에 비해 많았기에, 회사차원에서 추가 이탈자를 막기 위해 각 개인의 시장가로 연봉을 다 올려 준 상황이였고 저에게만 있던 일은 아니였어요. 이미 검증된 집토끼가 아직 어떨지 모르는 산토끼보다는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매니져라면 이런 상황에 이렇게 대응을 하기도 하며 저희 회사의 다른 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던 적이 있으며 다른 회사에 일하는 제 지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종종 있습니다. 
유니크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특별한 케이스죠.

그러면 일반적인 경우로 돌아오자면, 평소에 일만 잘하면 안됩니다. 자신이 하고있는 일과 성과에 대해 잘 포장을 하고 널리 알려야 합니다. 매니져의 스타일에따라 다른데, 각각의 팀원들의 성향과 현재 업무와 성과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는 매니져도 있고, 잘 알고있는 것을 넘어서 micro management하려는 매니져도 있고, 잘 알고는 있지만 이해는 못하는 매니져도 있고, 잘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알고 이해하는 매니져고, 회사 재무팀에서도 팀 연봉 예산에 대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을 하는 경우라면 사실 특별한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본인이 생각한 연봉 인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충분히 수긍 할 만한 수준의 인상이 이뤄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매니져를 두고있을 경우, 매니져도 사람인지라 팀원들 개개인에 대해 주관적인 의견을 평소에 갖게 됩니다. 만약 매니져의 생각이 내 실제 성과와 우연치않게 같다거나 과대평가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불행하게도 보통의 경우 한국분들은 과소평가되기 쉽습니다.

과소평가되는 이유중에 큰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더 큰 것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것 같아요. 힘들어도 힘들다는 이야기 잘안하고, 문제가 있어도 사소한 것이면 혼자 해결하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문화요. 저도 처음엔 저의 job role에 맞는 일을 그냥 한 것이기에 내 일이라 따로 알릴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 했지만, 여기는 예전에 한국에서 많이 이야기했던 "자기 PR"이 중요한 곳이라 스스로를 포장하고 광고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몰라줄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내가 일을 많이 하고있고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우선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사소한 문제들까지 거론하면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적절한 수준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들어 나만 겪을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문제가 나올만한 상황 같은거요.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만 이야기 하기 보다는 문제 해결책을 어느정도 찾았을 때가 좋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 다른 애들도 겪을 수 있어서 생산성에 문제가 있을것 같다. 당장 나는 임시로 이렇게 해결을 했지만, 환경이나 인프라나 프로세스가 이런 식으로 바뀐다면 모두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만약 내가 한 일이 현재 나의 타스크에만 영향을 줄 만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까지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면 관련 담당자들에게 널게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죠.

이렇게 평소에 동료들에게, 매니져에게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 자주 알리는 것이 과소평가 받는 것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아무리 숨어서 일을해도 그 실력이 워낙 출중한 낭중지추 같은 인물들은 말 한마디 안하고 혼자 묵묵히 일을 해도 누구나 다 알아채지만,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니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되고 일을 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해냈는지 잘 알려야합니다. 단, 여기도 너무 잘난체 하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자랑하고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려도 자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고, 너희들의 업무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래서 개선된 것은 무었이고 행여 발생 가능한 부작용은 무었일지에 대해 공지하는 식으로 하는거죠.

커뮤니케이션 관련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나의 발전 가능성을 인지시키는 것입니다. 개발자라면 꾸준히 이런저런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실텐데, 혼자서 조용히 하기 보다는 매니져와 1:1 면담 시간에 조금씩 흘리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면담은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캐쥬얼합니다. 딱히 특정한 문제가 없을 때엔 그냥 서로의 사는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데, 이 때 내가 하고있는 공부들을 조금씩 꺼내놓는 것이죠. 한국도 그렇지만 여기도 발전적인 사람을 당연히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현재 타이틀이 junior나 intermediate 라면, 내가 그 위로 오르기 위해서 부족한 것이 무었인지 간간히 묻는 것 역시 좋습니다. 타인이 평가하는 나에대해 알게되며 진짜로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프로모션에 대한 일종의 압박이 되기도 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상도 남길 수 있습니다. 만약 이미 senior라면 회사의 중장기 플랜을 묻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 내가 이런걸 공부중인데, 이걸 잘 활용하면 이런저런 부분에서 우리 제품이 더 좋아질 수도 있을것 같아 참 재미있더라. 근데 우리 플랜에 이 부분에 대한 개선도 있긴 하냐? 우리 중장기 플랜은 지금 뭐냐?" 이런 식으로요. 단... 잘못 걸리면 그 신기술 관련 사내 세미나 혹은 발표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게 좀 함정입니다... ㅠㅠ

그 다음은 자기가 한 업무 성과를 잘 정리 해 두는 것입니다. 거창한 보고서 양식은 아니더라도 필요시 언제든지 찾아보고 내가 1년간 이룬 업적과 성과들은 무었이 있는지 한 눈에 보일 수 있으면 됩니다. 만약 업적 중에 요구사항에 의한 기능 구현이나 단군한 버그 수정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생산성을 올릴만한 일이나, 오랜기간 난제였던 것을 해결한 성과가 있다면 가능한 수치화 하여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들어 "빌드 후 테스트시간이 이전엔 30분이였는데, 15분으로 개선되어 피드백 타임이 절반으로 줄었다", "자동화 테스트 커버리지가 40%였는데, 80%까지 올랐다" 같이요.

간혹 회사와 연봉 협상을 하면서 회사에서 먼저 연봉 상승 요인이 별로 없다며, 혹은 너의 성과에 걸맞는 가격이라며 선수를 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팀원들이 한 일들을 예시로 들면서 얘네들은 이런 큰 일들을 해 냈고, 회사 전체에 더 넓고 크게 영향을 주었지만 넌 이런 것이 없어 상대적으로 인상 요인이 적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요. 인상을 기대하고 테이블에 앉았지만 회사에서 회사의 논리를 펴면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럴때 사전에 정리해 둔 지난 1년간의 자신의 성장과 성과와 업적들을 수첩에서 꺼내어 하나씩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이런 일도 했고, 요런 저런 개선도 해서 회사 전체 생산성도 올랐고, 해결 못하던 난제들도 해쳐 나갔고, 비용도 이만큼 절감이 됐을텐데, 그래도 더 안줄래?

그 다음은 시장가격에 대한 파악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어마어마한 일을 해 냈다고 해도,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가격대라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기에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정말 혁신적인 일을 해 낸 경우라고 해도 보통 연봉을 올리기 보다는 그 해의 보너스만 수만불 쥐어주고 끝내는 경우가 많죠. (연봉이 오르면 그에 따른 베네핏도 같이 오르고, 연봉을 다시 깎기는 힘들기에 그 연봉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 회사 입장에서는 보너스로 주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반대로 직원은 같은 총액이라도 보너스 보다는 연봉을 올리고 싶어하고요)
그럴 때에는 자신의 시장가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게 한국에 비하면 쉽지가 않아요. 한국에서는 대략적으로 직장과 자신의 연차에 따라 연봉이 정해집니다. 한국에서 각자의 연봉을 오픈하지 않아도 xx회사의 과장이다, oo회사의 차장이다 라고 하면 연봉이 얼추 나오고, 연차가 yy년차다 라고 하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직급이 얼추 보입니다만, 캐나다에서는 그렇지 않다보니 내가 받아야 할 만한 수준을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10년을 일해도 쥬니어일 수도 있고, 2-3년만에 시니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음 두 가지 정도를 제 레이더 망 내에 포함시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죠? 먼저 제 자신의 스킬셋에 대해 잘 정리하고 하나씩 발전 시킵니다.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혼자 공부해서 익힌 새로운 기술에 대해 때로는 끝없는 자신감이 솓아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자신감이 무너지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코드 리뷰를 할 때 그들이 작성한 코드에서 오류나pitfall 이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기 보다는 제가 이걸 구현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고, 그들이 구현한 코드와 제 머릿속에 있는 코드와 비교를 해 봅니다. 그러면서 배우기도 하고 내 자신의 위치에 대한 짐작을 해 보는 것이죠. 또한 리뷰를 하면서 그들이 어느정도의 난이도에 있는 어떤 일들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있기에 나중에 회사에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할 때 내 스스로의 기준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시장에서 내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꼭 이직 할 마음이 없더라도 간간히 다른 회사를 만나보면 도움이 됩니다. linkedin 계정을 잘 다듬어두고, 현지 경력이 조금만 쌓여도 리크루터들로부터 간간히 연락이 옵니다. 그들을 전부 만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만 컨택 온 회사나, 제시하는 롤에 따라 필터링을 해서 연락을 해 봅니다. 보통은 면접 전에 리크루터가 기대연봉을 묻는데, 이 때 반대로 너희의 budget range를 물어봅니다. 보통은 실제 네고를 거쳐 받을만한 수준보다 낮은 가격대가 먼저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서류상 보이는 내 경력에 맞는 대략의 수준을 알게됩니다. 현재 내 연봉이 그 범위 이하라고 한다면 이직을 통해서건 현 직장에 요구를 해서건 올릴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말이 되죠. 또 그렇게 이야기가 잘 풀려 면접을 보다보면 다른 회사에서는 요즘 어떤 기술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보여 지금 회사에서 부족한 점이나, 내가 가진 스킬 중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잘 되면 진짜 이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안되더라도 최소한 나를 과대평가 해주고 있는 지금 직장에 고마움이 생기죠 ㅎㅎ.

이렇게 평소에 준비를 해 둔 후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미리 귀뜸을 해 둡니다. 임금 인상보다는 긴 휴가가 더 절실하다면 자신의 남은 휴가 기간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며 넌지기 더 긴 휴가가 필요함을 어필한다거나, 베네핏을 좀 더 개선하고 싶다면 베네핏을 이야기하고, job title을 올리고 싶다면 내가 그 타이틀이 되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묻는 것 같은 방식이죠.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사람의 특성 상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똑같이 작년에 한 일들이고 비슷한 영향력을 지닌 업적이라도 가장 근래의 업적이 더 큰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제나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연초에 개봉한 작품들보다는 연말에 개봉하여 영화제 기간 중에 폭발적 관심과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더 많이 수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1년 내내 자신의 에너지를 고르게 분산기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나 바이오리듬에 따라 실적 역시 오르락 내리락 하죠. 그러니 고과시즌 반년쯤 전에는 잠시 힘을 빼고 충전을 해 둔 다음에 서너달 전부터 에너지를 모아 큰 일들을 하나 둘 쳐 내면 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 입니다. 하지만 개인 고과만 신경써서 회사 전체의 흐름에 어긋나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혼자 느슨하게 하면 안되요. 보통 +1점보다 -1점의 영향이 훨씬더 커서 '+1 - 1'의 총점은 0이 아니라  -1 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연봉협상에서 최고의 준비는 지난 1년간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잘 해왔음에도 계속 그에 걸맞는 연봉을 받지 못하고있다면 셋 중 하나입니다. 내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거나, 회사가 집토끼 관리에 인색한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거나 (실제로 그런 회사들이 적지 않아요), 아니면 내가 나의 업적을 잘 어필하지 못해서입니다. 내가 스스로를 과대평가 중 이라면 내 눈높이에 맞게 스스로를 더 발전시키거나 눈을 낮춰야하고, 회사가 인색하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 옮겨야 하고, 내가 잘 어필하지 못하고 있어서라면 내가 하고있는 일들과 나의 기여도를 꾸준히 잘 정리 해서 이야기를 해 보세요. 그리고 일종의 소극적인 정치 행위이지만, 평소이 자신의 업적을 널리 알려서 회사 내에 나의 가치를 알려두고 믿을만한 인력임을 각인시켜 두세요. 그런 경우엔 구지 연봉 협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회사에서 먼저 납득할 만한 수치를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봄 맞이 작업

안녕하세요.

요즘 캐나다에도 봄이 찾아와 따스한 날들을 원없이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봄날인지.


봄이 오니 슬슬 몸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거의 매일 밤마다 산책을 다닙니다.


원체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하다보니 걷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 산책을 다녔는데, 올해부터는 제 아내도 저와 함께하기로 해서 더 좋네요. 매일 밤마다 1-2시간 정도는 동네 이곳 저곳을 누비며 다른 이웃들은 앞마당과 집을 어떻게 꾸몄는지 둘러보고, 서로의 일상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도 하면서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는 조금씩 조금씩 가드닝을 하느라 바쁩니다.


작년 여름에 너구리와 토끼들이 제가 손을 쓰는 속도보다 빠르게 앞뒷마당의 잔디를 다 뒤집어 놔서 반 쯤 포기 한 상태인지라 예전만큼 많은 공을 들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민들레 만큼은 용서할 수 없기에 퇴근 후에 짬이나면 앞뒷 마당에 잡초들을 뽑아댑니다.


또 조만간 집 drive way를 공사하면서 앞마당 쪽에 가든을 없앨 예정인지라 가든에 있는 꽃들과 나무들을 하루에 하나씩 뒷마당 가든으로 옮기고 있고, 뒷마당 옆쪽에 있는 텃밭 역시 drive way 공사를 하면서 포장을 할 예정이라 뒷마당 데크에 화분을 놓고 그 쪽으로 작물들을 옮겼죠.


아버지께서 저희 집에 오셨을 때 만들어 주신 텃밭이라 없애고 싶지 않았지만, 그 쪽이 뒷마당 물이 빠지는 길인데 그걸 모르고 텃밭을 만들어 뒷마당 배수가 잘 안되는 문제도 있고, 텃밭의 2/3 이상은 볓이 잘 들지않아 햇빛이 많이 필요한 작물들은 또 잘 자라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기에 과감히 넓은 텃밭을 포기하고 화분을 쓰기로 했네요.




그리고 저의 꿈 하나도 이뤘습니다. ^^


고기를 워낙 사랑하다보니 아파트에서 하우스로 이사 온 이후에는 거의 매 주 2회 이상 BBQ를 해 왔습니다. 뒷마당 데크에 BBQ 그릴용 가스관이 나와있긴 했지만, 그릴 가격이 워낙 후덜덜 해서 숯 그릴을 사용해 왔죠.


숯으로 고기를 구우면 다양한 향도 낼 수 있고, 불맛도 더 잘 살릴 수 있다지만, 제 불 조절 스킬이 미약하다보니 삼겹살을 구울 때면 기름 덕분에 불쑈를 하기도 하고, 립을 구울 때면 겉은 태우고 속은 덜 익기도 하는 등 문제도 있었고, 밖에 외출 후 돌아와 한참 배고플 때면 BBQ를 하고 싶어도 처음 숯에 불을 붙이고 숯불이 안정화 될 때 까지 시간이 오래걸려 편하게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 바로 사용하는 가스 그릴이 너무나도 부러웠지만 일이천 불은 족히 넘어가는 가스 그릴을 쉽사리 살 수 없었죠.


하지만 코스코에서 시즈널 상품으로 나온 제품이 있었는데, 가격도 천불 미만이였고, 사용 평가도 좋아 제 아내가 통 크게 저에게 선물을 해 주었네요.


그런데 참... Ikea로 대표되는 조립식 가구들이 이 나라에는 참 많다보니 가구를 살 때 돈내고 주문하면 끝이 아니라, 배송을 받은 후에 직접 조립을 해야하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물론 돈을 더 내고 조립 서비스까지 이용하면 되지만, 인건비가 비싼 나라인지라 왠만하면 직접 하는게 나아요. 그런데 가스그릴도 이 셀프 조립에는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금새 조립이 될 줄 알고 그릴 개시를 위해 아내에게 고기를 사다달라고 부탁을 한 후 조립을 시작했는데 조여야 하는 나사는 왜 그리도 많은지.... 전동드릴이 아니였다면 아마도 오른손 손목에 관절염이 걸렸을 것 같아요. 이 나라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전동드릴 하나 쯤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한참을 조립하고, 나사 몇개가 부족하여 부가 기능에 필요한 나사는 다시 푸르고 필수 기능쪽으로 옮겨서 일단 완성!!!



아내가 동네의 할랄 정육점에서 사온 양념 닭다리 3개를 구워보았습니다. 저희가 무슬림은 아니지만 이 정육점의 가격과 품질이 괜찮아 종종 이용하죠.



역시 가스그릴은 참 편하더군요. 처음에 조립하느라 땀을 빼긴 했지만, 조립 완료 후에는 바로 점화! 화력도 괜찮아 점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니 바로 조리가 가능했습니다.


다시 시작된 따스한 봄 날. 앞으로 반년 정도는 일 좀 줄여서 뇌는 쉬게하고 몸은 좀 더 바쁘게 지내보려 합니다. 누군가 추운 겨울날 캐나다에서 버티는 힘은 봄여름철의 추억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2018년 5월 7일 월요일

백만년만에 진행한 기술 세미나

안녕하세요.

"May Forth be with you." 지난주 금요일은 May 4th, 스타워즈 데이였습니다. 스타워지 팬이라면 아시겠지만, May force be with you 대사에서 착안하여 사람들이 만들어 낸 날이지요.

그런데 GTA 지역에는 그 포스가 진짜로 찾아왔습니다. 100 Km/h 가 넘는 어마어마한 강풍이 GTA 전역에 불어닥쳐 나무가 쓰러지고, 집 담장이 무너지고, 전기가 끊기고, 집 지붕이 날아가는 등 (지붕 전체가 날아간 것은 아니고 집 지붕에 기왓장이요) 어마어마한 포스가 찾아 왔었죠. 저희 동네에도 민둥산이 되어버린 집들이 많이 보이는데, 주말 내내 roof 업체들은 전화연결이 안 될 정도로 바빴다고 합니다.
저희 집은 잠깐 몇분간 정전이 있었던 것과, 뒷마당에 트램폴린이 바람에 날려 마당 한 구석으로 밀려난 것 외에는 다행히 별다른 피혜는 없었죠.

이렇게 포스가 지나간 후 토요일, 저는 오래간만에 토론토로 상경을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토론토 한인 전산인 모임에서 세미나를 하기 위해서였죠.

캐나다에 와서 모임에 참석 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고수님들의 세미나도 듣고 스터디도 하고, 첫 구직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구직 시 팁이나 이력서 작성 등을 도움받기도 했고, 구직 후에는 회사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나 한국 직장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연봉협상 등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많은 선배님들께 조언과 격려를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아오기만 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처음으로 저도 세미나 발표를 하면서 작게나마 기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세미나는 지금처럼 따뜻한 봄날에 하기 보다는 추위가 시작되는 시점에 많이 합니다. 날씨가 추운 시기엔 아무래도 야외 활동이 적어지면서 다들 개인 시간도 많이 남게되기에, 세미나 연사도 발표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생기기도 하고, 참석자들 역시 평일 퇴근 후에나, 주말 오후에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어 참석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죠. 저도 사실 이 세미나를 하기위해 처음 준비했던 시기는 올해 1월인데, 번아웃에 제 몸과 마음이 시들시들 해지면서 세미나 주제와 윤곽만 잡아놓고 한참동안 손을 놓고 살다가, 때마침 신임 회장님이 선출되어 모임의 정권교체??? 도 이루어졌고, 저 역시 그 시기 즈음에 번아웃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스스로 긴장을 주기 위해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채 한달도 안된 기간 사이에 다소 급하게 일정과 장소를 잡다보니 프로젝터와 마이크 등 장비도 없으면서, 시간당 $50불이 넘어 비싸고, 룸 인원제한에는 엄격한 공공도서관 세미나 룸을 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날자는 평일도 아닌 주말 오후였고, 날도 맑아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였죠. 설상가상으로 그 전날 GTA에 불어닥쳤던 강풍 덕에 일부 지역은 전기도 끊겼었고, 나무도 쓰러지고, 집 담장도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간 집들도 많아서 참석률이 낮아 혹시나 회비에 적자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죠. 하지만 참가 신청자 중 금요일에 집이 파손되어 부득이하게 불참하신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해 주셨고, 혹시나 현장에서 참석할 수 있을까 싶어 오신 회원님들 덕분에 그나마 비어있던 자리도 채워져 덕분에 완판남이 되었죠.

2시간 강연을 촬영했던 동영상을 돌려보니 제 준비가 부족했던 부분과,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지만, 세미나 진행도중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 등 참 비루한 세미나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장 아쉬운 점은 애초에 Target Audience를 명확히 잡지 못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전산인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오픈된 모임이고, 가입과 활동에 별도의 제약도 없고 별도의 가입비도 없는 모임이기에 세미나를 진행하면 참석자의 층이 넓습니다. 이제 갓 학교에 입학을 해서 SW에 대해 하나씩 공부를 시작하신 학생들도 계시고, 한국에서 이미 커리어를 쌓을만큼 쌓은 알고보면 무림의 고수 중에 고수이시지만, 어쩔 수 없이 워크퍼밋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학교에 재입학 하신 분들도 계시며, 이미 이민을 오셨거나 이런저런 경로로 워크퍼밋을 받으신 후 구직을 하고계신 분들도 계시고, 당연히 현재 직장을 다니고 계신 분들도 계시죠. 애초 세미나 공지를 할 때, 타깃 층을 정하고 그에 맞추어 준비를 했다면 좀 더 좋았을텐데, 동영상을 다시보니 별도의 설명없이 제 분야의 용어를 신나게 써가며 설명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실무에 계신 분들께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 할 만큼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쓸데없이 길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도 했더라고요.

역시 저는 무언가 직접 부딛쳐봐야 그때서야 제가 부족한 점을 뒤늦게 깨닿는 것 같네요.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 경험에 아쉬운 점들이 있다보니 다음에 다시 한 번 제대로 하고싶은 욕심이 좀 생깁니다.

아무래도 다음 세미나의 target audience는 이제 막 첫 커리어를 시작하기위해 준비중이신 학생/구직자 분들이 될 것 같아요. 저도 개발 내에서 DevOps라는 분야로 옮긴 것이 1년 조금 넘은 정도인지라 내공이 많이 부족해 모임 내 고수분들 앞에선 제 미천이 탈탈 털리다 못해 영혼까지 깔끔하게 탈곡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번에는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실질적인 툴의 사용과 구현에 대한 내용인지라 강연식 세미나 보다는 직접 같이 해보는 스터디 방식을 생각중이기 때문입니다.
컬리지는 정말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하기에 스스로 주제를 정해 파고들지 않으면 졸업 후 거대한 장벽을 만나기 쉬운데, 간단한 설명 + 스터디를 하게되면 새로운 기술에 대해 어떻게 접근을 해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을 생각 해 보아도 그랬던 것 같더라고요.

군입대 이전 1학년 때에는 신나게 노느라 선동렬 방어율과 수비형 포수의 방어율 사이의 학점에 머물렀다가 제대 후에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1년 정도 공부를 해도 내가 배운 내용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좋은 선배들을 만나 선배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형들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공부를 할 때 같이 공부하고, 또 그 형들이 그 기술들을 활용하여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시도하는지를 보고 배우며 제 시야도 많이 넓어졌고, 스스로 학습하는 것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 당시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학생과 구직자에게는 참가비를 받지 않다보니, 참석자들이 모두 학생이 되어버리면 세미나룸 임대료는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가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일단 일을 저지르면 어떻게든 해결 되겠죠???

토론토 인근에서 재직중인 한국인 개발자, 혹은 개발 매니져 등 IT 종사자가 이미 백여명이 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은 한국의 IT 종사자 분들께서 캐나다로 더 많이 진출하셔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기 더 좋은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의 SW 산업은 각종 법적 규제들과 사회/관습적인 제약들, 그리고 기업 문화로 인해 마치 갈라파고스 섬 처럼 동떨어진 생태계를 구성하고있고,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경제규모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지만, 인력들의 경우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정말 많은 곳이거든요. 뭐... 제 이전 직장에서는 현 임직원 중에 구글에 갈 수 있는 역량의 사람은 1~2% 밖에 안된다는 자기비하적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지만, 반대로 구글 직원들 중 그 회사의 입사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고 근로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의 비율도 1~2% 정도일 겁니다. 각자 주어진 환경에 맞춰 진화하는 것인데... 세계 최고의 기업임을 내세우는 회사에서 자기의 임직원들의 역량이 매우 떨어지는 것 처럼 말하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더더욱 한국에 계신 훌륭하신 분들이 보다 더 공정한 대우를 받기위해 나와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한국의 기업문화도 인재가 점점 줄어든다면, 아무래도 인재들을 좀 더 소중히 모시지 않겠어요? 비록 저는 인재는 아니고 단순한 인력이지만,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전반적인 기업/근로 문화가 자리잡히고, 인재 뿐 아니라 인력들 하나 하나 까지도 모두 소중히 여기는 환경이 된다면, 언젠가는 저도 더 이상 영어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 살 수도 있을 것이고요. ㅎㅎㅎ


2018년 4월 18일 수요일

Good bye my friend

어제 하루는 갑자기 회사에 가기 너무너무 힘들고 귀찮아 아침에 급히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IKEA에 가서 이전에 봐 둔 가구들을 사다 하루 종일 조립하고, 주말 사이 우박이 쌓여 만들어진 얼음들 깨고 부수고 치운 덕에 오래간만에 어깨와 허리가 욱신욱신 하네요. 그런데 어깨와 허리 보다 마음이 더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가구 조립을 마치고 드라이브 웨이의 얼음을 다 치운 후 샤워를 하려는데, 페이스북 메신져에서 띠링~ 하고 새 메시지를 알려옵니다.

 "어라? 이 친구 요즘에 연락해도 답장도 없어서 전화번호도 바뀌고 페북도 끊은 줄 알았는데 왠일이지?"

  연락이 온 친구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저와 비슷한 또래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할 때 연도를 보니 3~4살 정도 많은 것으로 추정) 일본인 친구입니다. 성격이 워낙 조용하다보니 같이 어울려 놀은 기억은 딱히 없지만, 짧게나마 1년간 학교를 다니며 모든 전공 과목을 같이 들었고, 모든 과목의 팀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죠.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였지만, 제가 토론토에 살 때에는 한두달에 한 번 정도 서로 만나 커피 한잔을 하며 짧게나마 서로의 안부도 묻고 근황 이야기도 했었고, 제가 옥빌로 이사를 간 이후에는 간혹 이메일이나 페북 메신져,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반년 정도 전에 이 친구가 위니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 한동안 연락두절 상태였죠. 사기꾼이 아니라 편하다고???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특정국가 출신 학생이 과반수 이상인데, 그 특정국가 출신 학생들 중 다수가 그런 특징이 좀 있었습니다. 팀 프로젝트에서 각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력과 능력의 과대포장에는 뛰어나 쓸데없이 많은 일을 하겠노라고 commitment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를 지키지 못하죠. 설상가상으로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뛰어난 공작능력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포장을 잘 하다보니 놀 때에는 따로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놀았어도, 프로젝트 팀을 꾸릴 때에는 저와 비슷한 문화/성향을 지닌 홍콩/대만/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출신 학생들이나 우리의 형제국가인 터키 출신 학생들과 주로 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over commitment나 블러핑은 하지 않으니까요. 특히 30대 이상 아저씨들과 주로 팀을 했는데 실력의 정도를 떠나 30대 이상인 경우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어 같이 일을 함에있어 서로 불편한 일이 없었거든요.

 사실 이 친구의 성격은 저와 썩 맞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안그래도 저의 영어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한데 이 친구 역시 영어를 잘 못해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 하다보면 대화의 맥이 끊기고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영어 네이티브이거나 잘하는 친구와 이야기 할 때엔 제가 개떡같이 이야기 해도 상대방이 찰떡같이 알아듣기도 하고, 제가 모르는 어휘나 표현이 나와 이해를 못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보다 쉬운 어휘나 표현으로 rephrase를 해 주거나, 정 안되면 그 단어의 뜻을 설명 해 주어 상대방은 좀 귀찮을지언정 대화가 이어지는데 반해 이 친구와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모국어 억양과 발음이 달라 쉬운 단어도 서로 못알아듣기도 하고, 영어도 못하는 것들이 그 와중에 각자 자신만 아는 어휘나 표현이 있어서 서로 이해를 못하는데, 다른 동의어로 대체하여 rephrase 할 능력은 없다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는 경우도 참 많죠.
그래도 1년간 모든 전공과목들을 같이 듣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같이 잘 지냈습니다.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각 과목마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2-3명 정도는 있어서 같이 팀을 꾸려야 편한데, 이 친구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 제가 편하게 프로젝트에 얹혀 갈 수 있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성실했고, 자기 실력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 대해 블러핑도 안했고, 저와 나이도 얼추 비슷했던지라 계속 붙어 다녔죠.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FSWP로 영주권 신청을 할 때에 저는 이 친구에게도 졸업을 기다리지 말고 FSWP 지원을 해 볼것을 권유 했었습니다. 이 친구도 어학 점수만 6.5 이상 나오면 FSWP로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1년이 조금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패스웨이를 한 후에 시험 없이 학교에 입학을 한 친구입니다. 1년넘게 패스웨이가 걸린만큼 원래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도 했고, 한 번도 영어 시험을 본 적이 없던터라 IELTS 시험을 보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시험보기 무섭다며 제가 FSWP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아갈 때 차일피일 미루고 또 미뤘습니다. 그러다 그 해 가을 제 FSWP 이민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이 친구는 드디어 IELTS 시험 준비를 하면서 시험 예약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FSWP 67점은 안되었지만 거의 그에 근접할 수준의 성적표를 받은 시점에, 그 해 SW Engineer NOC의 FSWP 티오가 마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음 해를 위해 그 친구는 계속 시험을 치뤘지만 2015년이 되어 Express Entry에 대한 모든 것이 알려진 이후에는 사실상 FSWP 이민을 포기하고 영어 시험 준비도 중단을 했었습니다.

 결국 저는 입학 후 1년이 안되어 영주권을 받았고, 바로 회사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 PGWP를 위해 계속 학교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이 친구가 하던 프로그램은 코업이 있는 프로그램이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컬리지 학생들이 코업 일을 구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코업을 구하지 못해 중간에 강제 방학을 맞이하기도 했고, 결국에는 졸업 전까지 코업을 못하여 프로그램도 논 코업 프로그램으로 변경하여 졸업을 했죠. 그렇게 졸업을 하고 이제 진짜 일을 구할 시기가 되었는데, 이 친구의 캐나다 취업운은 졸업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제가 보기엔 이 친구보다 실력도 부족하고 영어를 더 잘하지도 않는 다른 친구들도 결국엔 어떻게든 취업을 했지만, 이 친구는 면접 과정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저희 회사에 오픈된 포지션과 매칭이 되기에 이 친구를 추천하려 했는데 HR에 연락을 하니, 방금 전에 인터뷰 본 지원자를 채용하기로 해서 해당 포지션은 지금 close 될 것이라고 해서 인터뷰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힘겹게 전공 관련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 친구의 PGWP의 남은 기간은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였습니다. 이 친구가 원래 생각했던 CEC를 위해서는 (또한 다른 대부분의 이민을 위해서는) 1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한데, 남은 워크퍼밋 기간을 풀로 다 채워도 1년 경력이 안나오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 때부터 이 친구는 저에게 종종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이민 프로그램을 아는지, 그런 케이스를 본 적이 있는지 많이 물어봤었습니다. 정확한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1-2달 정도 짧은 기간이였던 것 같은데, 이 친구는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의 주정부 이민 지원 등 여러가지 가능성들에 대해 이러저리 알아 보았지만, 1년 미만으로 남은 현재의 워크퍼밋으로는 토론토에서 영주권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위니펙으로 날아갔죠. 위니펙에서는 6개월만 일을 하면 주정부로 이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죠.

 처음 위니펙에 간 이후에는 간혹 직장은 구했는지, 이민은 계획대로 잘 진행 중인지 안부차 연락을 하면 "여긴 벌써 겨울이 시작되나봐", "토론토는 참 따뜻한 도시였어" 등 조금 다른 이야기들의 답변이 오더군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메신져로 연락을 해도 답장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 전화는 이미 위니펙으로 넘어가면서 지역번호가 바뀌면서 번호가 변경되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고, 메신져는 페북을 끊었나 생각했죠. 그렇게 썩 친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저도 힘들었던 학생시절에 함께 했던,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궁금했던 그 친구에게 오래간만에 연락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 메시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였습니다.

 "나 7월 말에 일본행 '편도' 항공권을 예약 했어"

저의 손가락들은 한동안 핸드폰 화면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냥 일본행 항공권을 샀다고 하면

 "휴가가니? 잘 다녀와"

 "너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등의 인사라도 할텐데, '편도' 라는 이 한 마디가 지금 이 친구의 상황에 부정적인 모든 것을 내포하고 심하게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구지 애둘러서 '편도' 티켓을 샀다고 애둘러 말 한 상황에서 스스로 아픔을 꺼내기 전에 제가 들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애둘러서 이상한 소리들만 한동안 한 것 같아요.

 "Is it still cold in Winnipeg? Entire my village became arena due to frozen rain during last weekend."

 "We should meet once again sometime. Let's drink Sake and Biru at that time."

 "Try to visit gorgeous places before you leave. Have you been Banff?"

 "I think you must see Aurora at once."

 ...

 얼추 계산을 해보니 이 친구가 15년 여름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했으니, 올해 8월 즈음이면 PGWP가 만료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인가 10월 즈음에 위니펙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고, 현재는 당장 오늘 취업을 한다 해도 워크퍼밋 만료 전 까지 매니토바에서 6개월의 경력을 만들 수 없으니 포기를 한 것 같네요. 

어쩌다보니 오래간만에 연락을 하는데 서로 정작 하고싶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서로 변죽만 울리는 상황에서 그냥 진심으로 하고싶은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If you have a chance to come to Oakville or near to Oakville, please contact me. I would like to serve a dinner once, indeed!" 

하지만 제 말에 이 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더 마음아픈 말이였습니다.

 "Thank you, but I don't think I will come to Canada again."

저의 빈약간 기억력에 정확히 캐나다였는지 미국이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친구는 20대 때에도 이민을 위해 북미에 몇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고 실패하여 일본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30대 후반에 (혹은 40대 초반) 재 도전을 했지만 40대가 된 지금 이렇게 다시 한 번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으니, 다시는 안올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정말일 것 같네요.

 이 친구는 워낙 말이 느리고, 말주변도 별로 없지만 (처음엔 단순히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영어과목 강사 중 한 분이 일본에서 오랜기간 강사 생활을 하여 일본어를 아주 잘 했는데, 그 분 말에 의하면 이 친구는 일본말도 대화의 템포가 상당히 느린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무언가 질문을 던지면 10-20초 후에나 full sentence를 만들어서 대답하는 그 친구의 화법이 행여 취업 길을 막은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영어를 참 못하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내용이면 비문이더라도 휘릭휘릭 대답은 합니다. 단, 한국말과 비슷하게 주어가 생략된 말은 매우매우 자주 하는 편이고, 시제와 단/복수도 거의 생각 안하고 마구잡이로 말하는 편이며, 심지어 수동/능동 또한 제 멋대로 바꿔 그냥 제 입에 잘 붙는 말을 해버리는 편입니다. '난 내 할 말을 내가 알아서 다 한 것으로 나의 임무를 마쳤으니 너는 니가 알아서 내 말을 이해하는 것으로 너의 임무를 다 하거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대화의 템포는 참 숨 넘어가게 느리지만, 이 친구가 하는 말들을 곱씹어보면 마치 성문 종합영어 예문에서 봤던 것 같은 완성형 문장을 만들어서 하거든요.

 5년 밖에 안된 저의 이민 생활이지만 간혹가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인들이 각자의 모국으로 돌아갈 때면, 그다지 친하게 지낸 사람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오곤 하는데, 참 헤어짐이라는 것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이벤트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몰랐는데 이민 생활을 하면서 생긴 허전함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다시 캐나다로 올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고, 저도 딱히 일본에 갈 것 같지도 않으니 앞으로 서로 볼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부디 일본에서 세번째로 다시 시작하는 그의 삶에는 어려움이 없이 잘 풀리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