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7일 월요일

기쁘지만 다소 허무하게 끝난 연봉 협상

 한국에서 매년 연초에 연봉 계약을 할 때면 직장 동료들과 우스갯 소리로, "이번에 계약하면서 계약금은 얼마나 부를까?" 이런 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이미 본인의 직급과 연차, 고과 등급에 따라 정해져 있는 금액을 받는 것이기에 사실 허튼 소리였지만, 뉴스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협상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럴 날이 올까? 하며 로망이 있었지요.

 캐나다에서 첫 직장을 잡을 때에 비로소 연봉협상 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로망을 처음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캐나다에서 경력도 전혀 없었고, 한국 경력이라고 해도 최근 5년간은 실무 개발을 하지 않았기에 부담이 컸던 상황이라 배팅을 하며 베짱을 튕길만큼 간이 크지 못했죠. 결국 간작은 제가 작은 간 만큼이나 작은 연봉을 제시했고, 회사에서 단방에 오케이를 해버려 아무런협상 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입사 후 사내 규정을 찾아보니 저는 2월에 입사를 했기에 해당연도 7월에 진행되는 성과평가 대상자가 아니였고, 성과평가가 없기에, 연봉 조정도 없었습니다. 저의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입사 후 1년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였죠.

 일찌감치 연봉 협상에 대한 꿈은 접고 처음 몇달간 Probationary기간 버티기 모드로 살았고, Probationary가 끝난 이후에는 자리잡기 및 나만의 영역 구축하기 모드로 정신없이 살고 있던 어느날... 다른 팀원들은 성과평가 기간이라 자기 성과를 스스로 측정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느데 매진하고 있던 와중에, 매 격주 진행되는 메니져와 1:1 면담 시간이 찾아 왔습니다.

 매니져: "너 혹시 오늘 하고싶은 말 있니?"
 나: "아니 없는데?"
 매니져: "나도 오늘 딱히 없다."
 나: "하긴 그럴꺼야. 요즘 다들 성과평가로 할 말들이 많을꺼고 너도 그들에게 관련해서 할 말이 많을텐데, 난 대상자가 아니자나."
 매니져: "어... 나도 지금 평가대상 정하는 제도가 썩 맘에들진 않아. 그래도 룰은 룰이자나"
 나: "아니아니... 회사 policy가 이상하다는게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뭐 이상하면 또 어때. 회사에 다니는 이상 회사 폴리시 지켜야 하는건 당연하자나."

저는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한 말이였습니다. 그냥 뇌에서 떠오른 생각이 입으로 바로 나왔을 뿐이죠.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1:1 면담 시간...

매니져: "너 내년 여름에 성과평가 대상인거 알지?"
나: "당근이지"
매니져: "근데 사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봤을때 우리가 너에게 합당한 대우를 못해준다고 생각하고, 회사 정책에는 맞지 않지만 연봉인상이건 인센티브건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게 맞는 것 같아"
나: "된다면야 나야 오 땡큐지."
매니져: "내가 개런티는 못해. 규정상 원래 그런거 안되는거니까"
나: "알아. 규정이 그런거라 나야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지"

오오오!!! 이런!.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던 모습이 벌어져 버렸습니다. 회사에서 먼저 연봉 올려준다는 말을 꺼내다니... 아니 사실 한국에서는 직원이 먼저 이런말 꺼내기도 쉽지 않긴 하죠.

솔직히 이 때 까지만해도 그리 큰 기대는 안했습니다.
원래도 규정을 아는 상태에서 입사를 했고, 입사를 할 때 이 금액이라도 일단 캐나다에서 경력을 시작하면 좋은 것이고, 사실 제가 받는 금액도 꼭 나쁜 금액은 아니였으니까요.

그러고 1달 정도 지나,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 조차 가물가물 해질 무렵, 어쩌다 코워커와 단둘이 버거킹에서 점심을 하게 됐습니다.

코워커: "나 곧 나가. 한 2-3주 후에 회사 옮기려고."
나: "엥? 진짜? 너까지 나가면 우리팀 어쩌냐? 왜이리 요즘 줄줄나가?"
(근 3달 사이에 시니어 2명 포함 3명이 나갔고 이친구 포함 2주 내로 2명이 더 나갈 예정입니다)
코워커: "너 왜 나가는지 몰라? 요즘 샐러리 올릴 기회야."
나: "뭥미?"
코워커: "요즘 시장에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씨가 말랐다자나. 경력좀 되면 요즘 올리는건 일도 아니야"
나: "오오.. 그래서 다들 줄줄히 나간거야? 너도 그렇고?"
코워커: "꼭 돈만은 아니지만, 일단 연봉이 갑자기 튈 수 있으니까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었지. 나 말고 다들 그랬을껄? 넌 이 회사에서 일 시작한지 오래되진 않았으니까, 몇달 정도는 더 있다가 나중에 옮겨. 다른 회사는 시니어 직함 쉽게 달아줘, 시니어인 만큼 연봉도 오를꺼고"
나: "너... 시니어로 가는거겠구나. 축하해"
코워커: "고마워. 근데 요즘 오퍼오는 조건들 보면 지금 가는데가 그리 높은수준의 연봉은 아닌듯. 약간 후회되기도 하지만, 오피스가 워낙 집하고 가까워서 그냥 여기로 옮기려고"
나: "교통비와 시간 생각하면 출퇴근 편하고 쉬운게 연 오천불 이상 가치는 있어"
코워커: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이직하면 아마 몇천이 아니라 몇만불도 가능할껄?"
나: "끙..."

이렇게 다들 이번 기회에 몸값을 올리면서 이직을 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갑작스런 고민이 몰려들어 왔습니다. 분명 입사 전에는 다소 적다고 보이는 연봉이라도, 경력 단절된 사람이 다시 일 시작한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고, 캐나다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것이 큰 의미였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일들인데,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안그래도 나보다 많이 받던 친구들이 더 오려받으려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복잡해지더군요. 그러면서 한달 쯤 전에 매니져가 했었던 말이 다시 기억이 났습니다.

아하... 올해 성과평가를 하면서 본인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연봉이 나오지 않은 친구들이 줄줄히 떠난 것 같고, 회사는 외부에서 개발자를 구하고자 했는데, 쉽게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였던 것이죠. 그런데 메니져 눈에는 제가 갑자기 연봉에 대해 무언가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 메니져가 카드를 하나 꺼내들은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안그래도 이사를 해서 돈 나갈 곳은 많이 생겼지만 딱히 다른 돈줄이 없어 자금 압박이 있던 터이기에 이번에 연봉을 올려주지 않으면 나도 이직이나 할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봉인상 10%를 목표로 입사 후 지금까지 제 성과에 대해 하나씩 틈 날때마다 정리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회사 복도를 지나가다 메니져와 만나게 되었고, 잠깐 저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서 회의실로 끌고 가더군요. 회의실 문이 닫히자 메니져는 바로 말을 꺼냈습니다.

메니져: "내가 전에 샐러리 미리 조정할 수 있게 해보겠다고 한 말 기억하지?"
나: "응"
메니져: "Executive랑도 이야기 다 해봤고 그래서 10월부터 xx,xxx으로 네 연봉을 조정할까 하는데?"

오옷? 제가 생각했던 인상 비율보다 높은 금액이 단번에 던져졌고, 목표금액보다 높은 제시안에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와 Thank you가 제 입에서 튀어 나와 버렸습니다.

확실히 이 나라에서는 해고할 때에도 거리낌 없이 해고가 되지만, 반면 연봉 인상에도 연차와 무관하게 시장가에 따라 바로바로 올려주기도 하네요.

시장 변동에 따라 이런 점들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항상 저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하루만에 해고 통지가 날라오고 일을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별 생각없이 그냥 던진 말이 의도치않게 메니져에게는 무력시위로 비춰진 것도 좀 그렇고, 예전에 항상 꿈에 그리던 순간이 이번에도 순식간에 지나쳐버린 것도 아쉽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기에 참 기뻤습니다.

노동절 연후 직전에 기쁜 소식을 받아 이번 노동절 연휴는 더 즐거운 연휴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