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일하는 보람 ≠ 노동의 보상

안녕하세요. 갈 수록 블로그 포스팅이 뜨문뜨문 이뤄지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점점 이 곳에서 삶에 적응이 되어가다보니, day to day life에서 겪는 일들의 신선도가 이전만 못하여 그에 따른 감흥이 적어지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제 자신의 뒷치다꺼리도 잘 하지 못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요.

오래간만에 제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작년 이맘 때 부터 시작 된 저의 고민을 아직까지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처음 만큼 고민의 심각성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그 고민은 제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네요. 그렇다보니 저의 작년 이맘 때 적은 글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무언가 더 발전하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요즘 저의 근황을 남겨봅니다.

먼저 작년과 큰 변화가 없는 근황들을 풀어봅니다.

올 해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회사 MVP에 노미니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에도 작년과 같이 노미니까지가 한계였고 MVP 수상을 하지는 못했네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작년에는 노미니 되는 순간부터 MVP에 대한 욕심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입사 직후 저의 개인 목표가 MVP는 한 번 받아 보는 것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올 해에는 MVP 선정과정에 대한 내막을 조금 알게되어 그다지 욕심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MVP 선정 프로세스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되었고, 현재의 회사 권력구조 변경 이후 현실적으로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미리 포기를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그래도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내년 이맘 때 쯤에도 지금 이 회사에 남아있다면, 내년에는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작년 말 부터 시작된 제 고민 중 하나는, "내 능력에 맞는 몸값을 받고, 내 몸값에 맞게 일하기"인데, 세부적인 고민은 조금 바뀌었지만, 고민의 전체적인 틀은 아직까지 그대로입니다.

오롯이 저의 생각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 스스로 내린 진단은 상당한 거품이 있는 과대평가입니다. 제 능력에 맞는 성과를 냈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약간의 워커홀릭적인 개인 성향 + 업무 변경 후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들을 공부하면서 오버 페이스로 일을 하다보니 제 능력치를 상회하는 성과를 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연봉을 올리거나 더 많은 성과를 얻기 보다는 이제 서서히 제 능력에 맞춰 일하면서 연착륙을 하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램이죠.

그래서 작년 이맘 때 즈음 정한 저의 올 해 목표는 이것 저것 다 내려놓고, 해고되지 않을 만큼만 일하자는 것이였지만... 결국에는 제 욕심 + 주변의 기대치 + 쓸데없이 과도한 책임감 등등에 짓눌려 지난 1년간 뭐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지난 1년간 제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고, 예전에는 한 달에 1-2 주 정도 열심히 달리고 나머지 2-3주는 조금 빠르게 걸어가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1 달 내내 전력질주를 해야만 합니다.

언제쯤 내려놓고 비우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그나마 다행인 것인, 이제는 저희 부서에 매니져도 왔고, 매니져 역시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음을 알고 어떻게든 분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머릿 속 계획이고, 실제로는 업무 분할과 이전을 위한 실질적인 action은 아직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어진 기간 내에 계속해서 부서 성과를 내야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그리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연말/연시에도 중남미로 잠시 휴양을 떠납니다. 제가 방전되어 번아웃이 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어릴적 저의 여행 스타일은 돈이 있으면 자연과 함께 Extreme sports 즐기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면 역사적/문화적 유적지를 찾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고 발품팔고 사람들 만나는 여행이였는데, 지금은 그냥 상대적으로 물가 저렴한 중남미 휴양지를 찾아가서 아무 생각없이 먹고 쉬고 놀다오는 것이 최고가 되버렸네요. 제 아내가 원래부터 휴양지를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저와 달랐기에, 신혼 때 생각 한 것이 제 아내를 조금씩 변화시켜 제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였지만, 오히려 제가 제 아내에게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작년과 다른 점들을 찾자면 우선 올 해에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집에서 머무르지 않고, 잠시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패키지 일정이지만, 타임 스퀘어, 자연사 박물관 등등 다양한 곳에 들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요즘 읽는 책들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직접 보게되어 매우 기뻐하는 모습에 나름 보람을 느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뉴욕에 있는 회사에서 인터뷰 제안이 오기도 합니다. 페이는 확실히 캐나다 대비 2배 이상 되긴 하지만, 가족의 삶의 환경으로는 아무래도 캐나다가 나은 것 같아 이에 응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총기사고 등 치안 문제도 걱정이 되었고요. 하지만 막상 가보니 맨하탄의 치안은 생각보다 좋더군요. 어릴적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마피아나 갱단의 전투, 지하철에 있는 무법자 등 뉴욕의 치안 문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또, 아무래도 GTA보다 시장이 크다보니 맨허턴의 한인 거리에는 캐나다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카페베네, BBQ 치킨 등, 익숙한 한국 브랜드들이 있어 부러웠죠. 어쩌면 이런 한국 기업들의 진출에 뿌리가 된 것은, 수 많은 한인 이민 선배님들이 노력하셔서 그 비싼 맨허턴 노른자위 땅에 한인 거리를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것일텐데,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뉴욕에서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페이가 2-3 배가 되더라도 생활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가족을 꾸리고 살기에는 삶이 질이 캐나다보다 높기 힘들것 같아서요. 뉴져지 통근은 어떨까 싶어 뉴져지 집값도 찾아봤는데, 기차 통근이 가능한 지역 집값은... OTL.
뭐... 연봉을 million 정도 준다면 모를까, 뉴욕으로 이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작년 이맘때와 다른 것은 더 바빠졌고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년처럼 방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 스스로 오버 페이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기에 방전 직전이 되면 재택근무를 하면서 어떻게든 초절전 모드로 단 하루라도 휴식을 취하곤 했고, 올해 초 부터는 절대로 (까지는 아니고, 가능한) 휴일과 휴가 기간에는 업무를 본다거나 업무 관련 공부를 하지 않았고, 휴가기간에는 회사 메일/메신져 앱도 폰에서 잠시 꺼 둔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변화 한 가지가 있다면 이제는 저도 매니져가 있습니다. 이전 매니져와는 다르게 실무 개발 백그라운드가 없어 기술적인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일반 매니징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정말 맘에 듭니다. 단, 기술적 이해도가 낮다보니 저를 너무 자주 찾아 제 업무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긴 한데, 앞으로 몇 달 정도 지나면 나아지려니 하고 믿고 있습니다.

또 매니져가 있다보니 저에게 걸린 오버로드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도 차이점이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오버로드를 고르게 분산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고, 또 그간 저에게 오버로드가 걸려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제 compensation을 알아서 조정 해 주겠다고 하네요.

아직 구체적인 제안은 받지 않아 어느정도 조정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기분 좋은 일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도 현재 저의 개인적인 고민과 목표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을 더 받게된다면 제 스스로 목줄을 한 칸 더 줄이는 꼴이 될 수도 있기에, 가능하다면 연봉 인상보다는 휴가일수 증가 혹은 다른 베네핏 조정을 해달라고 말은 해 두었습니다. 만에하나 금전적인 부분만 가능하다면 연봉보다는 보너스가 더 좋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어찌될지는 더 기다려 봐야겠죠. 뭐, 매니져는 의지를 가지고 조정을 해보려 했으나, 인사나 개발 VP가 반대해서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오랜기간 동안, 일하는 보람에 너무나 목말라 있었기에 초반 몇 년간 열심히 달렸는데, 그 때 오버 페이스를 했고 그 오버 페이스가 너무 습관적으로 되어버려, 이제는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그 직장에서 저를 인정 해 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올 해에는 매니저의 의지도 있으니 제 업무 페이스는 조금씩 늦추면서 제 능력은 조금씩 더 끌어올려 여유롭게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내자는 저의 목표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해 봅니다.

늦었지만 모두들 Merry Christmas 하셨길 바라며, 2019년 새 해에 바라시는 일들을 모두 이루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