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Work smart v.s. work hard

오늘 회사 오피스와 회사 서버들이 있는 Data Centre간 네트워크가 다운되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네트워크 자체 문제라는데, Bell 엔지니어들이 와서 고치고 있지만 아침에 터진 문제는 퇴근 시간까지수정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놀고있는 상태네요.

아직 모두가 출근하기 전인 오전 9시 즈음에 문제가 생기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탁구대나 푸즈볼 테이블, 키친에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 가까이 되어도 복구가 되지 않자 수다를 떨고, 푸즈볼을 하는 것도 지쳤는지 키친에는 빈자리가 하나 둘 씩 늘어났고, 대부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웹 서핑을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또 시간이 더 지나자 하나 둘 씩 조기 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오후 1시에도 아직 정확한 문제나 복구 예정시간이 나오지 않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보다는 퇴근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지요.

저 역시도 원래 출근일에는 점심을 거르는 편이지만 할 일이 없어 팀원들과 점심 외식도 하고, 웹서핑도 하고, 수다도 떨며 너무나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조기 퇴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에하나 곧 네트워크 복구가 된다면, 곧바로 대응해야 할 일들도 있고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적어도 제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 혼자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데, 다른 팀 매니져가 지나가다가 저에게 말을 건냅니다.

    "Why are you still here?"

    "Cause I'm so busy to find to do something during this idle time."

    "Oh, man. You are so hard worker always."

워낙 그 친구도 저도 지금 할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농담으로 시작된 대화는 회사 구석 구석을 옮겨 다니며 계속 되었습니다.

잠시 시계를 돌려 한국에 살 때로 돌아가보죠. 당시 한국 회사 인사팀에서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Work hard하지 말고, work smart를 해라."

정작 웃긴 것은 이 말을 하는 인사팀 역시 개발실 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항상 야근을 하고 있었고, 주말이면 임원회의 준비 때문에 출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work hard를 하기는 싫었지만, 회사 프로세스나 주어지는 일의 양이나 위에서 지시를 따르다 보면 work hard를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정말 언행불일치라고 생각 했었죠. 회사에서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smart 한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근무 환경과 시스템이 그렇다보니 그들 역시 work hard를 했고, 어떻게 하는 것이 work smart인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평균 근무시간은 더 짧으면서, GDP는 한국보다 더 높은, 이른바 선진국 중 하나인 캐나다에서는 과연 어떻게 일을 하기에 work smart가 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기본적인 비교를 해 보자면 캐나다 직장생활의 근무시간은 짧았고, 한국과 달리 출퇴근 시간에 대한 별도의 확인도 없었으며, 근무시간 중에도 내가 무엇을 하건 아무런 간섭도 안하고, 공식적/암묵적인 잔업 요청/강요도 없습니다.

초기에는 이런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일단 3개월 probation 통과가 목표였으니 work hard를 했지만,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자 work smart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work smart를 어떻게 하는지 제가 잘 모르기에 자타공인 일 잘하고 똘똘하다는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면서 제 롤 모델로 삼으려 했죠. 

하지만 관찰하면 할 수록 work smart가 무엇인지 더 알기 힘들었습니다.

예를들어 평소에 10시 즈음 출근하고 왠만해서는 늦어도 4시 30분에는 퇴근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정받는 실력자였고요. 한번은 신규 프로젝트 셋업을 그 친구와 함께하게되면서 pair programming을 하기로 했고 출근하면 같은 PC 앞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코드를 작성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에 저희가 논의했던 구조를 적용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한동안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 오후 4시가 되어 그 친구는 먼저 퇴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pair programming을 하려는데 그 친구가 어제 발견한 문제의 해답을 이야기 합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면 몇몇 우려되는 점들이 있어 이에대해 이야기 하자, 자신이 테스트 한 것을 보여줍니다. 테스트 데이터들을 보아하니 어젯 밤에 퇴근 후 혼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ilot 코드를 짜고 직접 검증까지 해 본 것 같더군요.

네, 그랬습니다. 겉보기에는 하루 6시간 정도만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 같았지만, 퇴근 후에도 항상 혼자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외에도 동료들 중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을 뜯어보니 퇴근 후에 지속적으로 일이나 연구를 하는 동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죠. 물론 동료들 중 과반수 이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치고 퇴근 이후에는 메일이나 메신져 확인조차 안하지만, 이른바 '잘나가는' 친구들은 퇴근 이후에도 무언가 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행여 무언가 긴박한 일이 있어 메신져나 메일을 보내면 거의 즉답이 왔죠. 결국 근무시간이 짧다 해도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만 짧은 것이지, 실제로 일을 하고있거나, 업무와 관련된 연구/고민을 그 외의 시간에 스스로 하고있는 것이였죠.

흠... 그렇다면 과연 work smart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work smart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에 정답은 work hard인 것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팀을 옮기며 다른 팀으로 가게될 때, 이전팀 매니져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은 것 같습니다.

"I was happy to work with you. You are very hard worker, and you are smart. Not really genius level smart, but at least you are smarter than average developer, and you are fast learner." - 아... 쓸데없는 too much information. 그냥 you are smart에서 끝났으면 좋았을걸.

"Just keep going, keep improving. And I believe you will be good at your new team as well. Any manager will like you as you are working so hard and doing things well."

흠... 그래... work hard를 좋아한단 말이야?
팀을 옮기고 몇달이 지난 후, 회사 보드게임 night에서 1:1로 카탄 게임을 하다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As a manager, which developer do you prefer? Hard worker? or Smart developer?"

과연 대답은 무었이였을까요?

대답은 work hard를 하건, genius건 상관 없이 더 많고 정확한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랍니다. 아하... 이런 우문현답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혼자 머리를 탁 치는데,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합니다.

"But. But. If both are making same amount and quality of output, I do prefer....."

저는 이 때 즈음에, 'Smart Worker'라고 예상을 했습니다만, 대답은 'Hard Worker'였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hard worker를 옆에서 보면 다른 동료들도 보통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하기도 하며, 때로는 천재성으로 돌파할 수 없는 난제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끊임없이 두드리는 근면함으로 무장한 hard worker가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이후 회사에서 매니져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간혹 hard worker v.s. smart worker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결론은 다들 대동소이 했는데, 결국 퍼포먼스가 잘 나오는 사람이 좋다는 말이였습니다.
그리고 심화 질문인 같은 아웃풋인 hard worker와 smart worker에 대한 질문에는 아웃풋만 동일하다면 아무상관 없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지만, 구지 둘 중 하나를 꼭 고른 답변들 중에는 의외로 hard worker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았죠.

이유는 여러가지였는데, smart worker지만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면 잘못을 지적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잘하지만 직접 뛰어들지는 않기에 기꺼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영어로는 손일 적신다고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사람이 필요하다, 고과 평가시 좀 더 smart하게 일을 잘 한 사람보다는 정말 hard working 한 사람이 더 편하다는 답변도 있었고, 조금 재미있는 답변으로는 스마트한 개발자들은 나랑 일하면 답답한지 일찍 회사를 떠난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또 제가 듣기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과평과 관련된 이유였습니다. 좀 더 스마트해서 일을 잘하는 팀원이 있는 경우 고과면담을 해보면 다른 팀원들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그보다 더 잘하거나 적어도 그 개발자 만큼은 한다고 생각하지만, hard working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 '내가 그래도 그 친구 만큼 일을 많이 해내지는 못하지...' 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오늘도 그 친구와 같이 커피도 마시고 푸즈볼도 하며 돌아다니다 work hard vs smart 주제가 생각나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친구의 답 역시 성과만 잘 나오면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인사팀에서는 "No work hard, work smart"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상관들은 work hard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Work Smart라는 건 없는거 아니야? 원래 smart한 사람은 더 빨리 일을 해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고, work hard한 사람은 조금은 느리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내는거지. Work well은 몰라도 모두가 smart하게 할 수는 없자나. 각자 역량이지. 만약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의미의 smart라면 그건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smart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은 smart하지 않은데 일을 smart하게 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 같네."

그 친구와 다른 대화를 계속 하면서도 이 말이 계속 제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사무실과 그 주변을 모두 돌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그 친구가 묻습니다.

"이제 집에 갈껀가?"

"아니, 만약에 네트워크는 복구 되었는데 우리 서비스가 뭔가 고장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지. 그 동안 다른 밀린 메일도 보면서 기다리려고."

"난 너의 이런 work ethics가 참 좋아. 이게 바로 work well이지."

흠... 결국 제가 퇴근을 할 때 까지 네트워크는 복구되지 않았고, 오늘 하루 제가 만들어 낸 output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work well에 들어간다면, 결국 매니져들이 생각하는 work well이라는 범주에는 work hard가 포함되는 것이고 구지 한국 회사에서 정신교육 했던 내용과 매칭시켜 보자면 자기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입니다.
종합해보면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좋아하는 직원은 다 매한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자기 일과 회사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일에대한 욕구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나 부족한 사람에게나 모두 평등하게 잔업과 특근을 요구했었고, 진취적인 도전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다소 무리가 되는 양의 업무를 던져 주었습니다. 만민에게 평등하게요. 캐나다에서는 욕구와 열정이 넘치면 얼마든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두지만, 없다면 그냥 기본만 하도록 놔둡니다. 대신 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 낸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고 기본만 한 사람의 연봉은 동결이 되지요. 한국에서 연봉은 개인별 성과에 따른 차등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차에 따라 직급이 정해지고 직급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기에 열정이 있는 직원들은 더 뛰어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열정이 없는 직원들도 '잘 나가는' 직원들이 받는 보상을 보고 자극받아 더 좀 더 분발하도록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모두에게 평등하게 전원 달려가도록 회사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해외 취업이 되어 일을 하는데, 야근을 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서 우리 회사의 철학과 근로문화에 반한다며 경고를 주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Probation기간 중 짤리지 않기위해 work hard harder hardest를 할 때에 만에하나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요즘 생각에는 이런 것은 걱정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면 모두 좋아하며, 그 와중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 나아가면 더욱 더 좋아합니다. 적어도 제가 일하는 지금 이 회사에서는요.

저 처럼 언어가 딸려도, 저 처럼 경력이 부족해도, 또 저 처럼 지식과 지혜가 모자라도 열심히 한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네요.

결국 저는 아직까지는 Work Smart의 왕도를 모르고, 충분히 스스로 smart한 상태도 아니기에 일단은 work hard가 경쟁력일 수 밖에 없는 감사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 네트워크 고장으로 8시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잡생각들을 하다 나온 결론입니다. ㅎㅎ

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벌써 5년... 그 다음 5년을 향해.

요즘 제 삶에 새로운 중장기 목표를 수립하지 못해 다소 목적의식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내던 중, 목표수립 이전까지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수립한 저의 단기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외발 자전거 타기!

그래서 며칠 전 인터넷 쇼핑을 통해 외발 자전거 한 대를 주문 했습니다.



외발 자전거 타는 법 관련해 구글링을 하다보니 대략 15시간 정도 연습을 하면 어느정도 탈 수 있다고 해서, 눈/비 오는 날이나 어쩌다 연습을 거르는 날 등을 고려해 매일 30분씩 연습하여 올 해 말일까지는 외발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목표를 정해서 연습 중이죠. 물론 이 목표보다는 덜 재미있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연말까지 다음 5개년 계획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겠지요.

보통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일몰 이후에 집 앞 drive way에서 연습을 했는데, 지난 주말에는 한낮에 연습을 했습니다. 여느 때 처럼 열심히 구르고 넘어지고 까지며 연습을 하다 잠시 쉬고있는데, 차량 한 대가 저희 집앞에 멈췄습니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아이들이 외발자전거 타는거 보고싶다고 해서 잠시 보려고 멈췄답니다.

저는 이거 며칠 전에 사서 아직 못탄다는 말과 함께 미처 패달이 2바퀴도 돌기 전에 뒤로 나자빠짐을 시연해 보임으로서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과감히 증명해 보였죠.

"굳럭!"

이 말을 남기고 그 차는 떠나갔습니다.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그만둘지, 더 연습할지를 고민하던 찰나,

"띠링"

핸드폰에 알림이 떴습니다. 

구글 포토에서 5년전 오늘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알려주는데, 평소에 보이는 아아들 사진이 아닌, 건물 사진 한 장만 달랑 보이네요.


사진을 딱히 좋아하지 않기에 아이들 사진 외에는 잘 찍지도 않는 제가 건물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캘린더와 당시 저의 SNS를 찾아보니 5년 전 오늘이 한국에서 저의 사표 결재프로세스가 모두 완료되어 퇴직일이 확정이 되었던 날이며, 그간 같이 지냈던 다른 분들께 곧 퇴직한다는 인사를 뿌린 날이더군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8년을 보낸 곳이기에 괜시리 센치해져 사업장 밖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건물 사진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이 날로부터 8년 전, 신입사원 때만 해도 저는 이 회사에서 평생 일을 할 줄 알았습니다. 아니 신입사원 시절까지 시계를 돌리지 않더라도, 그 해 3월에도 제가 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안되는 것이지만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어 이직조차 마다했었고 강인한 성품을 지니지 못해 이것 저것 재고 또 비교하면서 타이밍을 놓치기에 도가 튼 제가 부서 이동도 아니고, 한국 내 이직도 아닌 이민을 결정에서 실행까지 단 반년만에 끝내버렸습니다. 4월달부터 시작된 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5월이 되자 이민으로 변했고, 6월에는 캐나다라는 대상 국가가 확정되었으며, 7-8월에는 이민을 위해 영어 공부했고 9월 IELTS를 3차례 연속으로 치뤘고, 필요한 성적이 나오자 11월에 퇴직을 한 후, 12월에 캐나다로 왔습니다.

이 때엔 

'한창 왕성한 경제활동이 필요한 지금 나이에...'

'혼자도 아닌 처자식을 데리고...'

'집도 절도 없는데...'

'말도 잘 안통하는데...'

'한국에서도 해내지 못했으면서 하물며 캐나다에 가서 5년간 손 놓았던 일을 다시 하는게 맞는 선택이기는 한 것인지...' 

등등 정말 수 많은 고민과 걱정과 근심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제 삶과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과 숙제들을 가지고 살지만, 이 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고민들 뿐 이군요.

하지만, 이민 고민부터 실행까지 타임라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때에 저는 충분히 조사하고 준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소 무모한 돈키호테식 결정 덕분에 "무식하면 용감"해졌고, 그래서 캐나다까지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성향상, 제가 지금 알고있는 것들을 5년 전에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냥 한국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을 것입니다. 
저의 지난 5년은 좋은 기회들과 행운들이 말 그대로 우연히 연속되면서. 자칫 한걸음만 삐끗 해도 떨어질 수 있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이민에서 실력/언어/재력/지식/경험 무엇하나 빼어난 것이 없는 제가 이만큼 전진할 수 있었는데, 이런 우연들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5년 전 계획들이 정말 많은 행운과 우연들로 인해 이뤄졌다면, 다음 5개년 계획들은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을 통해 저의 땀으로 이뤄내고 싶습니다. 지금 시도중인 외발자전거 타기는 어쩌면 그 과정 중에는 구르고 넘어지고 깨진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하는 노력은 결국에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제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은 증명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2018년 10월 8일 월요일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제가 종종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에 어떤 회원께서 이 속담관련 글을 남기셨는데, 이를 읽고 갑자기 옛 학창시절 추억이 떠올라 제 추억 한자락을 풀어봅니다.

별 것 아닌 일들이긴 하지만 제 인생에 이런저런 영향을 준 사건들이지요.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저의 중고등 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 때의 저에게

"넌 나중에 캐나다에서 살게 될꺼야"

라고 말해 준다면 아마 저는 미래에서 온 저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고 하나도 믿지 않았을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영어는 완전히 손을 놓고 공부를 하지 않았거든요.
아마 저의 영어실력은 공부를 통해서 보다는 중학생 때 빼먹지 않고 매주 시청한 NBA농구 중계와 (저는 챨스 바클리 팬이였어요), 고등학생 때 매일같이 인터넷에 들어가 읽은 NBA기사들과 (갓 ADSL이 시작한 시기인지라 어마어마하게 느린 속도였기에, 이 때 인내심도 키운듯), 요즘은 거의 한국 방송만 보지만 대학생 때 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수십번 씩 돌려본 미드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영어에 손을 놓은 계기는 학교 수업인데, 알파벳 대문자는 알지만 소문자는 전혀 모르고 입학한 중학교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통해 배우는 영어임에도 글자는 가르치지않고 갑자기 문법을 이야기하고, 그나마도 '이런 기본적인건 너희 다 알자나' 하면서 넘기는 모습에 먼저 질렸던 탓이 가장 큽니다. 그래도 그 때엔, 갓 중학생이 된 마당이라 의욕이 넘쳤기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보려 했지만 이에 결정타를 날려 더 이상 영어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사건입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수업시간 끝날 무렵마다, 숙어나 속담 한 문장씩 알려주며, 다음 수업 시작시간마다 단어 쪽지시험과 함께 이전 시간에 배운 숙어나 속담 시험을 봤는데, 어느 날 이 속담을 알려 준 것입니다.

당시에 선생님은 이 속담위 뜻은 부단히 노력하면 나태해지지 않고, 조약돌처럼 항상 반짝반짝 윤이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설명 하셨습니다.
저는 이 속담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 계속 정처없이 떠돌면, 아무런 노하우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뜻이 아니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단칼에 아니라고 잘라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고, 저는 교탁으로 쪼로로 달려가 선생님에게 찾아가 그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니다' 라고 한마디 하며 교무실로 향했고, 저는 계속해서 선생님을 쫒아가면서 왜 내가 생각 한 뜻이 될 수는 없는 것인지 물었고 결국 저는 교무실까지 끌려가 그 선생님 책상 앞에 서서 꾸중을 들었죠.

"야, 이끼가 좋아? 이끼가 좋은거냐고! 그게 뭐에 좋은데!" 

다음 수업시작 종이 울릴 때서야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 제가 교무실에서 혼나는 것을 보고 저를 빼내서 교실로 보내줬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저는 영어공부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정말 멘탈도 약하면서 아이러니하게 고집은 또 엄청 셌어요) 당시엔 완전한 작별이라 생각 했는데, 나중에 캐나다에 오기위해 다시 공부를 했으니, 완전한은 아니였네요. ㅎㅎ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고등학생 때도 있었는데, 그 때엔 국어였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단편소설 지문의 마지막에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다" 라는 문장으로 끝이 났었죠.
그 때 이 문장에 대해 제가 부정적으로 해석을 했었는지, 선생님이 부정적으로 해석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명은 "한 개인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변화를 시키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대세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해석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이렇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여전히 푸른 하늘처럼 희망이 있다"는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긍정적 메시지로 해석을 했었죠.
선생님과 몇 번 왈가왈부를 하다가 저는 사진작가를 하시는 작은아버지께서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해도 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예술은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요?"

라고 말했고, 선생님께서는

"그래, 그 나름에 따라 네 대입도 결정된다." 

라는 말과 함께 결국 지휘봉으로 머리 한 대를 쥐어박히고 끝이 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말 혁신적인 '체벌 없는 학교' 였기에 정식 체벌도 아니였고, 반 장난식으로 쥐어박힌 거라 맞은것 자체는 크게 기분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원래도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 이과를 어느정도 염두 해 두긴 했는데, 이 사건 이후 각 문장이나 단어의 뜻 하나하나도 모두 암기를 해야하는 인문계가 너무 싫어 이공계로 진로를 확정을 하게 되었죠. 적어도 고등학생 때 까지 배우는 수학이나 물리에서는 간단한 증명으로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정확한 답이 나오기에 내가 틀려도 얼마든 수긍 가능했고, 내가 맞다면 얼마든 증명이 가능했으며, 작은것 하나하나 외울 필요없이 기본적인 몇가지 툴 만으로도 풀이가 가능했으니까요.

한국의 교육이 나쁘다거나, 당시 선생님들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학창시절 좋은 은사님들과 인연이 많이 있었고(신기하게도 다 수학/물리 쌤들...), 이민 온 이후에도 한국에 갈 때 마다 찾아뵙는 분들도 계세요. 

당시엔 그 선생님들이 이해도 안가고 솔직히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되었건 제가 더 높은 점수를 얻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고, 또 제가 문학적 클리셰나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복선들을 놓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지요.

교사라는 직업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당시의 사건들에 대해 그 분들은 아무런 기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저 처럼 학생 개인에게는 적지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부모라는 역할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작은 말 한 마디와 생각없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저는 나름 아이를 걱정해 던진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하나의 큰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었던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이들과 지난 4일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글을 읽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저를 반성해 보는 뜻깊은 롱 위켄드네요.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 시작인데, 크리스마스 연휴 때 까지 다시 매일매일이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도록 만들어 나가야겠네요.

그런데...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이 속담의 올바른 해석은 과연 무엇인가요???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한국인이라 행복했던 하루

안녕하세요. 약 2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분명히 7월 말에 연봉협상을 할 때만 해도 제 마음 속에 다음 한 해의 목표는 일을 조금만 하면서 남들만큼 여유롭게 살고, 기존의 성과는 어느정도 유지를 하는 것이였는데, 작심삼일이라고 벤쿠버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온갖 일들이 터지기도 했고 이것저것 제가 달려들 일들이 생겨버려 바쁘게 정말 바쁘게 살았네요.

어제는 팀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제가 한국인이라서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약 석달 전 기술이민으로 캐나다에 와서 저희 회사로 입사한 인도 친구와 대화 하면서 생겼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주에 하루 휴가를 내고 G1  라이센스 시험을 봤지만 탈락을 했었죠. 오전에 스프린트 스크럼 미팅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옥빌에 driving test는 어때? 미시사가보다 좀 더 편하다는 말이 있던데?"

저는 당연히 한국 면허증을 G1으로 교환했으니 캐나다 라이센스 시험과 절차에 대해서는 1도 모르니, 캐나다 면허시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대답 했습니다. 

"어 그래? 혹시 너 우버타고 다니니 너희 집에서 회사까지 대중교통 없자나."

이 친구 입장에서는 모국의 면허증을 캐나다 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 제가 면허가 없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죠. 한국 캐나다간 상호 운전면허증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주니 정말로 부러워했습니다.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갑자기 이 친구가 몇 년 전까지는 미국에 살았다는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아, 맞다. 너 근데 미국에 살때 면허 따지 않았어?"

"어 미국 면허 있지."

"그러면 미국 면허를 캐나다 면허로 교환하는 방법을 한 번 찾아봐. 아마 있을꺼야."

"근데 반년 전쯤에 만료됐어.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 떠나기 전에 갱신 해두고 떠나는거였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려던 찰나, 다음주가 캐나다 Thanks Giving이라는 것이 생각나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 만료된 면허 갱신 방법 알아봐. 만료 된 면허라도 비교적 쉽게 갱신 될껄?"

"면허 갱신은 미국 내에서만 될꺼야.?"

"어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니까 캐나다 휴일에 미국은 평일이니 다음주 월요일에 잠깐 미국 가면 되자나."

"차라리 시험 서너본 보고말지 언제, 어떻게 미국 비자를 받아"

아... 이 친구가 캐나다 영주권은 있지만, 인도 여권이니 미국에 잠시 간다 하더라도 관광 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잠시 깜빡 했던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 갈때 ESTA 신청은 해도 비자 신청은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해줄까 하다가 너무 부러워 할 것 같아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퇴근을 하려는데, 얼마 전 캐나다 시민권 신청서를 낸 우크라이나 친구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어보니 11월 초에 컨퍼런스가 있는데, 메일 확인을 지금에서야 해서 갈 수 없다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오전에 인도 친구와 에피소드가 있었건만 까맣게 잊고 다시 멍청한 소리를 꺼냈습니다.

"왜? 컨퍼런스 참가신청 마감됐어?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어. 마감이라고 떠도 나중에 다시 열리기도 하고"

"아니, 비자가 필요하자나 한달만에 비자받기 거의 불가능이자나"

"아... 넌 비자가 필요하겠구나..."

"너 벌써 시민권 받았어?"

"아니"

"한국도 미국 갈 때  비자 필요 없어?"

"어. 국경 검사에서 캐나다 여권만큼 쉽게 패스하는건 아니지만, 따로 비자 안받아도 되."

"헐... 넌 그럼 시민권 구지 받을 필요 없겠구나"

"어... 나만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지금 캐나다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있는 아이들 생각하면 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아마 애들 군대 문제때문에라도 시민권 신청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한 일들인지라 별다른 혜택이라고 느끼지도 못하고 지내지만, 가끔 다른 나라 출신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한국인이기에 참 많은 혜택을 받고 산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캐나다에 부모님이 처음 오셨을 때에도 당시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파키스탄인 가족이 (이미 시민권도 받았고, 캐나다에서 아내는 의사 신랑은 저와같은 SW 개발자입니다) 정말 부러워 했었습니다. 자기들도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부모님 비자가 계속 나오지 않는다고요.

잠시 잊고 살았지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