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일요일

어쩌다보니 이직.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변화라는 것은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하거나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5년 전, 이 일은 제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8년간 다녀왔던 직장도 버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던 것도 저에게는 큰 변화였지만, 그 때에는 두려움 보다는 즐거움과 기대가 더 컸습니다. 어쩌면 이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즐거워 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이민 만큼의 큰 폭의 변화는 아니지만 이민 다음으로 가장 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올 만한 일이 이제 곧 벌어질텐데, 그것은 바로 제 생에 첫 이직입니다.
한국에서는 퇴직 후 이민을 해서 캐나다에서 다시 취업을 한 것이니 재직 중에 다른 job offer를 받아 이직하는 것은 난생 처음입니다. 성년이 된 후에 깨어있는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당연 직장이였는데, 이 직장이 바뀌는 변화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큰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캐나다에서 첫 커리어 시작의 구직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회사와 포지션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 운칠기삼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허허... 저라는 놈은 실력은 없는데 운빨은 억세게 좋은것인지 이직역시 운칠기삼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이직에 대해 마음이 없었어도 이렇게 저렇게 Time Place Occasion 삼박자가 딱딱딱 맞아 떨어지니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이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제 이직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겠습니다.

딱 2년 전에 저는 회사에서 제안을 받고 사내에서 DevOps팀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딱 2년 전인데, 2년 전 수요일 즈음에 제안을 받았으나 DevOps에 대해 원래 관심이 없었고 정확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여 이번 Family Day 롱 위켄드 기간동은 이 일에대해 내가 좀 더 이해를 해보고 다음 주 화요일에 결정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바로 화요일에 팀을 옮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팀을 옮기면서 과연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 못해먹겠으면 다시 Android 팀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 걱정보다는 기대가 많았었죠.

DevOps로 이동 후 저는 기존과는 다른 완전한 신세계를 영접하게 되었고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익히고 배우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주력 제품 분야에서는 나름 최고의 기술로 선도하는 선도기업이였지만, DevOps를 놓고보면 제가 팀을 옮기는 시점 즈음에 갓 시작했고, 지금도 다른 시장선도 기업에 비하면 구석기 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청동기 시대 정도의 수준으로 많이 뒤쳐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리딩 업체들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아기들 걸음마와 옹알이 수준의 일들을 제가 하고있는 셈인데, 그래도 회사에서는 DevOps에 대해 확실한 방향성이 있었기에 기운을 받으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DevOps에 대해 역설을 하고 이끌던 VP가 회사를 떠났고, 그 VP 포함하여 제가 '이 3명은 정말 믿고 따를 수 있으니 DevOps가면 좋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인 저희 팀 매니져도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들을 대체하는 사람들이 모두 믿을만 하면 괜찮았겠지만, 새로이 개발을 책임지는 그 인물은 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신뢰와 존경이 사라지는 사람이였고 회사 내에서 DevOps에 대한 투자나 의지, 방향성이 모두 이전과는 다르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매니져와 VP 둘이서 방향성을 잡아주며 이끌었고, 저는 기술적인 방향성을 잡고 구현하면 되었는데, 그들 둘이 떠난 후 어쩌다보니 제가 그 방향성을 잡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회사에 정말로 DevOps분야에 정통했고 경험많은 노련한 DevOps 엔지니어를 데려와 내 위에 놓아달라는 요청을 수차례 하였으나 회사에서는 단순한 뗑깡 정도로 보았는지 오히려 '네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라는 말을 하면서 그에 걸맞는 연봉과 job 타이틀을 주겠노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처음 몇 달 정도는 이에대해 완강히 거부하며 지속 요구를 해 보았으나, 회사에서는 추가로 채용 할 생각이 전혀 없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회사에서 나를 이끌 사람을 데려 올 생각이 없다면 내가 나를 이끌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이제 갓 석기시대를 마치고 겨우겨우 청동기 시대를 연 회사에서 일해 온 DevOps Engineer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몇 달 간 많은 이들과 많은 회사들을 만났지만 내가 가서 배울만큼의 수준이 되며, 현재 엔지니어나 매니져가 나를 이끌만큼 매력적인 회사들은 하나같이 저의 기술력/경험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피드백과 함께 퇴짜를 놨었고, 저를 환영하는 회사들은 하나같이 청동기 시대나 신석기/구석기 시대인 회사들 뿐이였습니다.
결국 제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만 깨닿고 다시 회사일에 정진을 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노련한 DevOps를 고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다시 한 번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연봉이나 승진 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이 때 즈음에 지금 옮길 예정인 새로운 회사에서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linkedin 등에서 제 상태를 구직중에서 구직생각으로 없음으로 변경을 한 상태였는데도 말이죠.

지금에 와서 생각인데 이 회사의 리크루터들이 노련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저에게 온 연락은 구인/구직이 아니였습니다. 그 회사의 DevOps들과 함께 서로서로 기술적인 교류를 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식으로 제안을 해 왔습니다. 사실 기술적으로 진보 된 회사들에 인터뷰를 가서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해 승낙을 했습니다. 취업 인터뷰라면 이제 포기를 한 상태였고 계속된 거절에 지치기도 한 상황이라 시도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간혹 '너 혹시 이직 마음이 있거나, 네 주변에 일자리를 구하는 DevOps specialist가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 해. 우리는 포지션이 항상 열러있으니까'라는 식의 말을 던지기는 해지만 채용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대화가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 회사와 캐쥬얼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저는 기왕 지금의 회사에서 저의 깜냥 이상의 일을 죽을둥 살둥 열심히 발버둥 치면서 해내고 있는거, 그에 맞는 타이틀과 연봉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에서 저에게 말했던 승진과 연봉인상이 어떻게 진행중인지 물었습니다.

'Evaluation 기간인 8월달에 해줄께.'

'그래? 그러면 나도 그 타이틀에 맞는 일들은 8월부터 할께. 난 지금은 그냥 Software Developer니까. Senior도 아니고, 그냥 Software Developer'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작은 불만만 토로하고 마무리 했습니다

'내가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고 네가 먼저 나에게 제안을 한 것인데, 내년 evaluation 때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냥 없던 일과 마찬가지로 들린다. 그리고 정말로, 이 포지션에 나 말고 외부에서 진정한 전문가를 데려올 것을 생각해봐 난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라고 말했죠.

그 사이 이직을 할 회사와는 간략하게 전화상으로 서로 이런저런 교류를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회사에서 자기네 오피스로 한 번 방문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지간하면 Okay를 했을텐데, 그 회사의 위치가 저희 집에서 찾아가기에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기에 저는 그에 대한 답변은 차일피일 미루며 다른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HR 직원 한 명이 저희 부서로 뛰어와 말합니다.

"너희 팀 새 직원이 앉을 자리가 어디지?"

"뭔 소리야? 우리 새 직원 없어."

매니져 포함 모두에게 확인을 해 보았으나 새 직원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가 최근에 인터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새 직원이 올 리가 없죠.

"잘 확인해봐. 우리는 인터뷰 본 적도 없고, 우리 팀에 TO도 없어. 아마 다른 팀일꺼야."

"아니야 DevOps팀이라고 정확히 나와있어. 어찌되었건 자리 마련해놔. 얘 인도에서부터 날아와 어제 토론토 도착한 애야. 열 몇시간 비행해서 회사에 첫 출근했는데 자리도 없는 당황스런 환경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준비는 할텐데, 우린 인터뷰 본 적이 없어. 이 사람 interview 이력을 찾아봐. Interviewee가 누군지 보면 우리팀 말고 원래 어떤 팀이 hiring team인지 찾을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HR에서 돌아온 답변은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딱 한 번 봤고, 지금의 Dev팀 전체 리드와 봤다는 것입니다.

1차로 놀라운 것은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와 무관하게 단 한번의 인터뷰, 그것도 실무자가 아닌 개발 전체의 장과의 인터뷰 만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이고, 2차로 놀라운 것은 지금의 Dev팀장은 개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엔지니어 채용을 했다는 것이고, 3차로 놀라운 것은 그냥 캐나다 내에서 고용도 아니고, 인도에 있는 사람에게 회사에서 비자와 집과 차량과 이주비까지 지원을 하면서 Senior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주고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워낙 노련한 사람을 채용해 달라고 노래를 부렀던 상황이니, 아무래도 그런 사람을 인도에서부터 초빙 해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기대를 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의 지난 경력은 DevOps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고, 그의 지난 근무환경 또한 DevOps와는 완전히 무관한 회사였고, 그의 경력은 심지어 우리 회사의 그 어떤 팀과도 맞지않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tech stack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안그래도 지난번 고과평가시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느꼈던 새로운 개발팀장에 대해 최소한의 resptect와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과 더 이상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너무 불쾌하여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저희 팀 매니져에게만 강력하게 컴플레인 하였습니다.

결국 말도안되는 슈퍼 낙하산으로 저희 팀에 왔던 그는, 1주일만에 다른 팀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팀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뒷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요.

'승진시키고 돈도 더줄께'라는 말로 달래며 일을 시켜두고, 승진과 돈은 프로세스에 맞게 나중에라고 말을하고, 인력 계획상 저희 팀에 추가 TO는 못내준다고 하면서 자신의 낙하산을 위해 저희 팀 TO를 늘렸고, 더 근본적으로 회사의 프로세스는 완전히 무시하고 말도안되는 방법으로 실력도 없는 사람을 채용하는 그와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았고, 이렇게 말도않되는 사람을 개발의 장으로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신뢰하던 사람을 쫒아낸 CEO에 대한 믿음도 싸그리 사라졌습니다.

결국 '기왕 교류하는 것 우리회사에 한 번 방문할래?' 라는 제안은 채용 인터뷰로 확대가 되었고, 지난 몇개월 동안 서로 오간 연락과 교류는 정식 채용 프로세스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번 주에 이 회사에 방문하여 3차 인터뷰를 모두 마쳤고, 인터뷰 다음날 바로 연봉등 조건 협상이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또 그 다음날 모든 조건이 명시된 고용 계약서를 받았고, 계약서를 받자마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어 앞으로 2주 후에는 다른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됩니다.

사실 2주 notice주고 바로 이직보다는 현 회사에는 2주 notice를 주고 바로 퇴직하고, 새 회사에는 1주일 정도 시간을 갖고 이직을 하려고 했는데, 최종 고용계약서를 보내기 전 HR에서 세부 조건을 구두로 설명을 할 때 제에게 준다는 연봉에 너무 충격을 받아 이 말을 미처 꺼내지 못했습니다.
원래 임금인상이 이직의 목적이 아닌 저는 현재 회사에서 받는 연봉 + 이직 후 발생하게 될 교통비를 계산하여 회사에 기대 연봉을 정확히 제안 했습니다. 그런데 고용 계약서에 적혀있는 저의 연봉은 그보다 훠얼씬 높은 금액이였습니다. 이게 뭐 reverse auction도 아니고...
그러면서 우리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직원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니 너에게 이런저런 롤과 타이틀이 주어지면 잘 맞을 것 같고 그 롤에 맞는 연봉은 이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기에 이 금액을 제안한다고 설명을 해 줍니다. 

정말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독심술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현재의 회사에서 제가 겪은 마음고생을 정확히 읽어내어, 그와는 반대의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낸 것만 같았습니다.

인터뷰 거절에 지긋지긋해져 인터뷰 소리만 들어도 토할것 같았던 때에 인터뷰가 아닌 그냥 서로 교류를 해보자는 말로 접근을 했고, 
엔지니어를 박대하는 현재의 개발 임원에 질렸던 상황에 'We are thinking all about the people'이라며 자신의 회사문화를 이야기 했으며, 
회사의 프로세스를 싸그리 무시하고 벌어진 낙하산 질에 짜증나는 순간 3차례 인터뷰 포함 총 6단계의 명확한 채용 프로세스를 알려주고 진행했으며, 
승진과 연봉이라는 당근을 보여만 주고 일을 시키려했던 지금의 개발 임원에 짜증난 순간,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나에게 기대하는 role을 명확하게 이야기 해 주었던 이 회사...

아직 첫 출근까지는 2주가 남았지만 출근 전부터 저에게 너무 감성적으로 따뜻하게 다가와버렸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게 짝사랑에 빠질 때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들듯, 그냥 제 상황에 맞춰서 스스로 감성적으로 따뜻한 회사라고 느끼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기만 하네요.

하지만 저의 이직은 최소한 청동기 시대에서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화 정도되는 기술환경에 큰 변화인지라 감성적으로는 너무 따뜻하고 고맙고 감사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앞으로 3달 probation을 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정말 이직도 구직처럼 모든 것이 TPO가 맞아야 되는 것 같습니다. 이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던 순간에는 좀처럼 구하지 못했는데, 이직에 대한 의지가 1도 없던 순간 조용히 일이 벌어졌고,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저의 마음은 지금의 회사에서 새 회사로 완전히 옮겨저 있네요.

이상 제 생에 첫 이직에 대한 스토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