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희 집은 drive way 공사를 하느라 집 주변이 한창 어수선합니다.
제가 이사온 이후로는 drive way 포장이나 보수를 한 적이 없었고, 이전 주인이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아스팔트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그 필요성이 있었는데, 고민끝에 인터라킹이라고 아스팔트나 콩크리트로 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 블럭으로 포장을 하는 방식을 선택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집 양쪽 사이드에는 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잔디가 잘 자라지 못했고, 그래서 비가 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는 곳이 많아 항상 고민이였는데, 인터라킹 공사를 하면서 집 양쪽 사이드도 포장을 하기로 결정을 했죠.
하지만 이 공사를 하는데 생각외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동반하더군요.
우선 공사 업체 선정과 계약은 3월 초에 했습니다. 계약을 하면서 공사 시작일을 잡는데,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하면서 4월 말 즈음에 시작을 할 것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4월 셋째주, 넷째주 계속 시간이 지나도 업체 쪽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업체에 전화를 하면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다가 어쩌다 연락이 되면 다음주에 시작한다. 그리고 한 주가 흘러가면 다시 다음주에 시작한다, 다음주에는 한다, 다음주는 진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말 다음주다... 이렇게 계속 같은 말만 반복을 하다 결국 6월이 되어서야 약 2주 전 부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공사 첫 날, drive way에 포장되어 있던 기존 아스팔트를 뜯어냈고, 그 다음날에는 블럭을 쌓아야 하는 구간에 고운 모래를 깔고 특수 차량으로 꾹꾹 눌러주며 바닥을 다지더니 공사 셋째 날 부터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물론 '내일은 쉽니다' 라는 식의 통보는 전혀 없었고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기다리다가 오후 늦게 전화를 거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거는데 수차례 발신 끝에 연결이 되었고, 오늘은 아니고 내일 갈 것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다음날 업체에서 왔는데, 30여분간 블럭 수십개만 앞마당에 내려두고는 다시 자취를 감췄고 또 그 다음날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 이틀간 전화 발신끝에 다시 연락이 닿았는데, 자재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헐... 자재가 준비되지 않았으면 왜 공사를 시작한 것인지... 3월 초에 계약금 지불하면서 주문을 한 것이고, 공사를 시작하는 날 착수금을 준 것도 이미 1주일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자재가 없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그래서 언제 시작할 수 있냐고 물으니 내일 확인하고 전화를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역시나 전화가 오지 않았죠. 그래서 다시 전화를 수차례 걸은 끝에 연결이 되니 오히려 업체쪽에서 좀 차분하게 기다리라며 저희를 다그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재가 없거나 이런저런 차질이 생겨 지연되는 것은 인정한다 쳐도 연락을 주기로 하고 단 한번도 먼저 연락이 오지 않는게 너무나도 괴씸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니 이 나라 공사업체들의 특성이 대부분 그런것 같더군요. 주변에도 공사를 한다고 다 뜯어놓고 일주일 넘게 아무런 진척이 없는 집들이 한 두 곳도 아니였고요.
어쩐지... 저녁마다 산책을 하다보면 간혹 drive way가 비포장인 상태로 거진 한달동안 지내는 집들이 있어 "이 집 주인은 off-road 취향인가? 왜 이렇게 drive way를 관리하지?" 라며 의문을 가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아마 지금의 저와 같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사가 지연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퇴근 후에 텃밭과 화단에 물을주는데, 뒷마당 한 구석에 요상한 먹구름 한 무더기가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었이였는고 하니, 파리 떼였죠.
헉!
안그래도 저희 집 뒷마당에 야생동물들이 너무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런저런 짓들을 해 대는 것이 고민이였는데, 지금은 때마침 공사 때문에 뒷마당 문을 열어둔 상태로 고정시켰기에 그 통행이 너무나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여우나 너구리 같이 덩치가 좀 있는 녀석이 우리집 뒷마당에 똥이라도 싸고 도망갔으려니 생각을 했고, 파리가 더 몰리기 전에 치워두기 위해 파리떼가 몰린 허공에 호스로 물을 뿌려 파리를 쫒아내고 작은 봉지를 하나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바닥을 보니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더군요.
저를 맞이한 것은 여우나 너구리의 배변이 아닌... 다름아닌...
하반신만 남아있는 토끼와 이곳 저곳에 뒹굴고 있는 뼛조각과 고기 찌꺼기, 그리고 토끼 털이였습니다.
헉!!!
아마도 여우가 토끼를 사냥한 이후 조용히 먹을 곳을 찾다 때마침 문이 열린 저희 집을 식사장소로 선택한 것 같더군요.
"이런... 육식동물이 사냥해서 먹는걸 뭐라 할 순 없지만, 기왕 먹는거 주택지가 아닌 숲에 들어가서 먹거나, 주택지에서 먹더라도 남기지 말고 다 먹지 이거 반만먹고 왜 남기고 간건지..."
우리 동네 여우 (출처: 동네 이웃) |
대략 2016년 겨울 즈음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안그래도 요즘 우리 동네 사람들 사이에 이 여우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집 앞에서 놀고있는 고양이를 공격하려들기도 했기에 반려묘를 키우는 가정에서 걱정이 많고, 또 세균 감염의 위험도 있고, 특히나 아주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안전에 위험이 될 수도 있어 이래저래 걱정이 적지 않죠.
그래도 처음 출몰하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낮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해가 진 이후 자정녘에나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여우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위 사진에서 처럼 밝은 대낮에도 맘껏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정확한 개체수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는 한 번에 한마리 이상 보인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제가 직접 본 것만 해도 3마리가 같이 몰려다니기도 했고 이런저런 느낌상 개체수도 더 늘어났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진 것 같고요.
그나저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토끼 사체 처리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언제 여우가 냠냠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 주변에서는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고, 대규모의 파리떼가 뒷마당에 몰려있는 것도 너무나 꺼림직했지만, 막상 치울 수도 없는 것이 쓰레기 수거일은 금요일이라 앞으로 한참 남았고, 집 안이나 차고 안의 쓰레기통으로 가져오자니 그 악취가 너무나도 심했습니다.
뉴질랜드 rural 지역에 사시는 부모님들께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계신데 제가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를 갔을 때만 해도 아직 1살도 되지않은 아기 고양이인지라 작은 벌레에는 관심을 가지고 덤벼들었어도 큰 나방같은 벌레에는 겁을 먹어 몸을 웅크리고 눈치만 살폈던 기억밖에 없는데, 요즘에는 녀석이 완전히 자라서 이제는 쥐도 잡고, 토끼도 잡고, 때로는 낮은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뛰어올라 사냥을 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냥을 하고나면 보통 머리부터 잡아먹은 후 부모님께 자랑한다며 꼭 현관문 앞에 남은 시체를 가져다 놓아 제발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자기 딴에는 이쁜짓 자랑한다고 하는 것인지라 그냥 웃으며 넘긴다고 하시죠.
저는 반려동물도 아니고 야생 여우인데... 저에게 주는 선물로 이렇게 가져다 놓은 것인지 ㅠㅠ
여우를 그렇게 이뻐한 적도 없고, 오히려 저희 이웃집 고양이를 공격할 때 내 쫒은 기억만 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여하튼, 이 토끼 사체를 집이나 차고로 가져올 수는 없고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부모님 집처럼 대지가 넓은 것도 아니니 어디 먼 곳에 묻어버릴 수도 없어, 오랜 고민 끝에 일단 파리도 쫒고 악취도 막을 겸 여러겹의 비닐봉지로 밀봉을 해서 뒷마당에 놔 두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밤에 블랙백에 같이 담아두어 쓰레기 수거 시 같이 나갈 수 있도록 하려고요.
그렇게 목요일이 찾아왔고, 목요일 저녁 퇴근길에 저는 이제 뒷마당의 골치덩어리 하나를 치울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신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퇴근 후 보니, 그 비닐봉지가 있어야 할 자리가 깔끔하더군요. 그래서 제 아내가 이미 치운 줄 알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행여나 피냄새를 맡은 너구리가 블랙백을 찢고 집 앞을 쓰레기판으로 만들 것이 걱정되어 아내에거 토끼는 어느 봉지에 담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너구리의 만행 예시 (출처: 동네 이웃) |
그... 그런데... 아내가 하는 대답은
"응? 무슨소리야? 토끼는 뒷마당에 뒀자나."
헉!!!
그... 그럼 토끼는 어디로 간거지?
그래서 뒷마당에 나가 다시 한 번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우나 너구리가 봉지채 들고 날랐다면 그 문제가 덜 할텐데, 뒷마당의 제 3의 장소로 가서 다시 먹다가 어딘가 남겨두고 갔다면 그 문제가 심각하니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뒷마당을 샅샅이 다 뒤져봐도 찢어져 뒹굴고 있는 봉투 몇개만 보일 뿐 토끼 사체나 그 잔해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뒷마당에서 봉지를 다 찢어낸 이후 꺼내서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더군요.
다시 한 번 고마운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주고 간 선물???을 다시 꺼내어 빼앗아 갔습니다.
요즘 갈 수록 동네주민들 사이에 동네에 자주 출몰하는 여우에 대해 안좋은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동네에서 사슴을 보면 이쁘다고 좋아하고, 매를 보면 멋지다고 좋아하면서 똑같은 야생동물인데, 여우에게 너무 모질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이는 개체수와 빈도도 늘고, 인간에게 점점 적응해 나아가며 대낮에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더군요. 저는 그들이 걱정을 할 때에도 제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아이들이 여우가 쉽게 공격 할 만큼은 작지도 않았고, 생각해보면 인간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전에는 다 여우같은 야생동물들이 살던 땅을 사람이 빼앗은 것이니 좋지는 않더라도 그냥 인정하고 같이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여우에게 선물을 받아보기도, 또 다시 빼앗겨 보기도 하니,
여론이 안좋을 때에 저는 반려동물도 키우고 있지 않고 저희 애들도 여우가 쉽게 공격 할 만큼 작지는 않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이렇게 여우가 저에게 선물을 줬다 다시 빼았아가는 경험을 해보니 여우는 집 북쪽에 있는 숲에만 살고 주택가로는 가능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