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넝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작년 9월, 하반기 고과평가 기간 직전에 제 매니져가 1 on 1 미팅을 하며 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넌 왜 승진 요청을 안하니?"
'승진을 요청한다고??? 승진은 그냥 실력 되고 성과 증명해서 때가되면 하는거 아닌가?'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조금 당황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포지션에 대한 제 생각을 말 했습니다.
"내가 매니져를 하고 싶어한다거나 그런 것 처럼 다른 롤이 하고싶다면 몰라도, 난 포지션 자체는 별로 관심 없어."
"그래? 하지만 자신의 롤에 맞는 정당한 포지션을 받아야지"
"포지션이 뭐가 되었건, 내가 하고있는 롤이 있고, 난 그 롤이 좋아. 타이틀이 롤에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별로 상관 없어"
"하지만 너의 타이틀이 네 공헌도를 충분히 반영해 주어야 하고 걸맞는 타이틀을 줌으로 해서 너의 실력과 성과를 respect 해야 해."
"I don't care my title is respecting my contribution or not,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 whatever it is."
"I'm not sure do you want promotion or not, but I will put you on promotion program next April. I insist it unless you seriously against it."
당시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프로모션을 요청해야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참 눈치도 느린 저는 승진은 때가 되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했었죠.
전 직장에서 매니져와 이것저것 현재 회사 운영/관리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우연치않게 제 직급이 이야기가 나와서 왜 난 아직도 타이틀이 그대로인지 살짝 짜증섞인 항의투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곧바로 다음 평가에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두어달 만에 이직을 했기에 실제 승진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승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저것 관리/운영을 두고 논쟁을 하다보니 심각하진 않았지만 살짝 서운했던 것이 어쩌다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이죠.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던 이유는 타이틀 변경이 없어도 제 연봉은 꼬박꼬박 원하는 수준 이상 잘 오르고 있었고, 타이틀과 무관하게 제가 하는 롤이 있었고 그 롤에 맞게 사내에서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직 후 새 직장의 새 매니져가 왜 승진요청을 안하는지 저에게 먼저 반문을 하자 캐나다 직장문화에서는 승진도 스스로 찾아먹어야 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네요.
매니져와 1:1이 끝난 후에는 매니져가 반년 뒤에는 그 이야기를 잊길 바라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습니다. 직장인에게는 일종의 훈장같은 것이라 승진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괜한 완장의 무게라고나 할까요? 특히나 커뮤니케이션에 단점이 크기에 타이틀 상으로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가이드 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매니져에게 말 한 것과 같이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라고 생각했기에, 평생 지금 타이틀에 머물며 지금처럼 필요에 따라서만 앞에 나서서 돌격대, 선봉장, 행동대장 정도의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뒤에 물러나 조용히 제 일만 하면서 제 기여도에 맞춰 임금이나 보너스, 베네핏 등의 인상을 하면서 타이틀에 따른 의무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자 했었죠.
하지만 작년 10월 평가가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현 직장은 job title이 바뀌지 않으면 임금 변화가 없었습니다. 진급이 되지않으면서 임금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사팀에서 매해 조사하는 시장 평균과 우리 회사 연봉수준과 차이가 있을 경우에 일괄적으로 올리는 예외적인 경우 뿐이였습니다. 아... 고용 계약서에도 있는 내용인데, 이 중요한 것을 그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죠.
타이틀이 뭐건 임금만 쭉쭉 올리면 된다는 생각이였는데, 임금을 올리려면 결국 진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더 벌기위한 진급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올 2월에 매니져가 제 진급 이야기를 다시 꺼냈을 때에는 'thank you'라고 애둘러 승낙 의사를 표시 했습니다.
자리의 무게에 대한 고민은 오래 했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나니 바뀌는 타이틀에 대한 괜한 기대감과 흥분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더 오를 연봉에 즐거웠어요.
그리고 한창 진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모으고 작성하려고 하는데, Covid-19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가격리 기간인 2주, 길어야 한 달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 한 달 후에 다시 출근을 했을 때엔 진급 심사 절차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훈장을 받아 더욱 더 즐겁게 일 할 것이라고 예상 했었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캐나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며 지속적으로 비지니스를 운영할 수 있는 IT 회사이지만 우리의 고객들은 그렇지 못해 대다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리니 우리의 매출과 소득이 줄게되었고, 전세계 시장이 얼어버리니 IT 캐피탈 시장 역시 모두 동결이 되어버려 우리 역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향후 2년 정도는 캐피탈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투자자들의 의견이였죠.
결국 약 2주 전에 향후 시장이 다시 풀리게 될 24개월 후 까지 회사를 유지시키기 위한 당장 비용절감을 해야만 하며 향후 2주간 모든 분야에서 비용절감 계획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IT 회사에서 비용절감이라는 것이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 외에는 머릿수 줄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임금 삭감도 방법일 수 있지만 이는 유능한 인재를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오기에 선택지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했기에 결국 그 발표는 레이오프를 하겠다는 발표일 수 밖에 없었죠.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 대외비를 조건으로 전 직원에게 미리 알린 것 자체는 칭찬받을 일이기는 했지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저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퍼포먼스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메트릭 상으로는 분명 퍼포먼스가 떨어졌음에도 새벽중에도 한밤중에도 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흔적들 역시 보였습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장의 비용절감 필요성 발표 직전에 사나흘이면 끝날 것이라고 계획했던 업무가 거의 2주간 붙잡고 있었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놀고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녘에 일찍 일을 시작해서 저녁식사 후 잠시 휴식을 가지고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했음에도 전혀 진전이 없었죠.
발표 이후 이렇게 저 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적지않은 동요가 일어났고, 이후 개발팀 전체 미팅을 하면서 저희 팀 내에 더 큰 동요가 있었습니다. 개발팀장이 레이오프 기준이 될 만한 몇가지 데이터 중 하나로 seniority를 예로 들어서 말했는데, 저희 팀 팀원들 중 절반은 경력 3년 미만의 신입들이였기 때문입니다. 24개월 후를 기약하며 그간 비지니스 성장은 못하더라도 충분히 내실을 다지고 향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개발자가 더욱 더 중요하고, 시장이 다시 성장 추세로 변했을 때에는 seniority가 높은 개발자들을 구하는 것이 더욱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였는데, 하필 그 많은 기준들 중 이 한가지만 언급을 하여 팀원들 중 절반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실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그들 뿐 아니라 모든 개개인이 그러했습니다. 한 팀원은 캐나다에 온지 갓 2년정도 되었고 아직 신분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도 아닌데다 아내는 아직도 인도에서 건너오지 못해 2년째 홀아비 생활 중인데, 이제 아내의 가족동반 비자문제가 거의 해결되어 올 2월달에 콘도 렌트와 차량 구매를 시작했고, 올 해 5월에 입국 예정인 아내를 맞기 위해 하나씩 가구들을 들여놓으며 준비중이였죠.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아내의 입국은 기약없이 연기 된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레이오프가 된다면, 신분도 문제고 이제 갓 시작한 차량 할부금에 콘도렌트 2년 계약 등 머리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사실 남 걱정 할 것이 아니고 저도 제 나름대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제가 이 회사로 이직한 이유도 제가 할 일이 회사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일이였기 때문인데, 회사의 규모가 오히려 뒷걸음질 칠 마당에 제가 과연 필요할까에 대해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죠. 차라리 당장 제품 기능 개발팀으로 들어가도 자신의 연봉만큼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신입들이 저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 했습니다. 또, 기준 중 하나로 Seniority가 언급된 것에 대해서도 '아... 작년에 그냥 진급 했으면, 좀 더 안전했을텐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죠.
이렇게 하루하루 팀원들 걱정과 제 자신 걱정에 불안해 하다가도, 남은 2주간 나를 더 잘 드러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진전시키지 못하며 패닉에 빠져있어 나와 내 팀원들을 더 사지로 몰고있다는 죄책감까지 겪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떨리는 2주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레이오프 발표가 났습니다. 다행히 저와 제 팀원들은 실직의 비수에서 벗어났지만, 제 팀 상위의 팀 조직 전체로는 20%가 조금 넘는 레이오프가 발생 했습니다. 레이오프 대상자들에게는 그 날 아침 개별 통보 및 면담이 이뤄졌다고 하고, 오후에 남은 직원들을 모아 따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더라도 팀원들과 인사할 수 있게 메일을 보내거나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이전에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것 같네요.
저희 팀에 살수가 미치지 못 한 이유 중 하나가 현재보다 더 폭넓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오프 공포에 빠지기 직전에 저희 팀의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심각성과 중요성, 긴급성이 높다고 보였으며 우리 팀에서 이에대한 솔루션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하기로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주간 제가 패닉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와중에 저희 팀 신입 중 한 명이 이 일을 멋지게 해내며 저희 팀의 가치와 가능성에 마지막 방점을 찍어 준 것입니다. 덕분에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앞으로 저희 팀에서 몇몇 업무들을 더 가져오며 업무 영역도 더 넓어지며 거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져 올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오히려 그 친구가 해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꼭 큰 사고를 하나씩 터트려 주는 우리 팀원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지금까지 일 한 팀들 중 가장 최고의 팀입니다. (비용절감 예정 발표 직후에도 이 말을 팀원들에게 했었죠.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인사를 못 할 수도 있으니까요)
레이오프 공식 통보 및 발표 이후에 지난 2주간 모든 직원들이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니 잠시 심신을 추스리라며 지난 금요일 1일간 전체 무급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주말 내에 지난 2주간 제가 진척시키지 못한 일들을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심기일전 해보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블랙베리처럼 여러 차례 레이오프를 하며 모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이 바닥을 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한 이번 한번으로 끝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거나 너무 장기화되어 앞으로 2년이 아닌 더욱 더 긴 기간동안 불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 번 레이오프 바람이 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신차려서 잘 이겨나가야하고, 다음에 이런 위기가 다시 닥치게 된다면 이번처럼 혼자 패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