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Covid19 덕분에 저는 평소보다 조금은 텐션이 내려간 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루틴에서 오는 안정감을 즐기면서도 그 루틴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지금의 생활이 이와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죠.
Covid19이 터지고 처음 2주 정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스 때 처럼 길어야 한 두 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재택근무라는 형태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또, 그 때만 해도 gym이 문을 열었기에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 시간으로 옮겨서 하루에 1-2시간 정도 하던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각 2시간 씩 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확정까지는 아니지만 3월 말이면 진급이 될 예정이였기에, 집에서 어떻게 파티를 할 까 즐거운 상상을 했었죠.
작은 문제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보니 non-verbal communication에 의존도가 남모르게 높았던 편인데, 각종 커뮤니케이션들이 화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보다 더 앞에 나서기 힘들었고 주변에 진행상황들을 이전보다 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gym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레이오프 계획 발표가 나면서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는 마당에 진급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만족을 누리던 운동이 모두 중단되었는데, 내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생겼으니까요.
다행히 레이오프의 규모가 처음 예상보다 작았고, 그 비수가 저와 저희 팀을 비껴나가기는 했지만 한 번 떨어진 텐션은 좀처럼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Covid19은 이전 전염병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장기간 진행될 것이 확실해지며, 어쩔 수 없이 6월에 계획한 여행도 취소를 하고나니 정신적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초반에는 작은 문제였던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죠. 초반 몇 주 정도는 이미 제가 잘 알고있는 context를 기반으로 회의가 진행되어 그 이후의 업데이트들에 대해 조금씩 놓치는 정도였는데, 몇 달이 지나고나니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면서 팀을 기술적으로 리드해야하는 입장임에도 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누가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까지 하는 깜깜이가 되어버린 것이죠.
결과적으로 제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의 생산력은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 중에 집중력 자체도 많이 떨어졌고, 저희 팀의 진행상황과 주변 팀의 근황에 대해 깜깜이가 되면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제대로 된 일을 하는데 그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짓을 하곤 했죠.
5월이 되어 캐나다 내에서 확진자 증가추세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는 다시 출퇴근 모드로 전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고,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면 출퇴근을 하고싶고 재택근무는 주 1-2회 정도 제한적으로 하고 싶다고 답변을 했죠. 하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계획은 최소 연말까지는 전원 재택근무를 하고, 내년 즈음부터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순환 출근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더군요. 예를들어서 A 팀은 매 주 월요일날 오전에 출근을 하여 다 같이 모여 회의와 업무를 보고, B 팀은 매 주 월요일 오후, C 팀은 화요일 오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 생활을 하다가는 심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아침마다 아이들과 러닝을 시작했고, 낮에는 같이 줄넘기, 오후에는 자전거 타기나 산책을 하면서 돌파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저의 몸을 이끌고 유산소를 하기에는 버겁고 힘들어서 잘 맞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 몸 보다 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내리는 것이 저와는 잘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거나 뛰거나 걸으며 동네를 돌다보면 요즘 실내외 공사는 초극 성수기인 것 같습니다. 다들 어디 여행이나 캠핑을 갈 수 없어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집 공사를 정말 많이 벌이고 있더군요. 손재주가 있으신 분들은 나무나 돌로 뒷마당 데크 공사를 직접 하시기도 하고, 저처럼 손재주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업체를 불러 가드닝, 인테리어, 데크, 팬스 공사를 정말 많이 합니다. 공사중인 업체 사람에게 물어보니 요즘 주문이 밀려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올 해에는 예약이 빈 틈 없이 꽉 차있다고 하네요. 저도 기분전환을 위해 무언가 하나 하고싶은 맘이 있지만 아무래도 자금의 압박이 있다보니 작은 것 부터 하나씩 직접 해 보려고 하고 있죠.
근황 내용이 좀 길었는데, 저는 이렇게 슬기롭지 못한 social distancing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제 업무시간이 다 끝나가는 오후 4시 30분경, 매니져가 quick call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늦게 저희 팀이 관리하는 infrastructure 중 하나가 말썽의 소지가 있어서 제가 손을 봤는데, 행여나 그 쪽에 문제가 터진 것이 아닐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화상전화를 시작 했습니다.
"3월달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얘기했던 진급도 회사 차원에서 전부 취소되서 참 미안하다. 그런데! 그런데,"
매니져가 먼저 3월달에 covid19이 터진 것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행여 레이오프 규모가 충분치 못해 2차 레이오프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바짝 긴장을 했죠.
"내가 회사에서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하면 그 때 너를 진급시키겠다고 했자나. But I am liar."
왓!!! 하반기에도 진급 프로세스가 없는 것일까? 아님 정말 최악의 메시지인 레이오프인 것인가?
"아무래도 네 진급을 다음 진급 프로세스 기간까지 미루는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를 에스컬레이션 했고, 위에서도 다 okay해서 넌 오늘부로 진급이야."
"진짜? 나 진급을 위한 문서 작성한거 없는데?"
"지난번에 네가 쓴 draft 기반으로 내가 따로 준비하고 있었어. 어차피 그 동안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기에 리뷰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정식 프로세스가 아니라 될지 안될지 확실하지 않아서 너에게 따로 뭘 요구하지 않은거야. 지난번처럼 또 취소되면 괜히 안좋을 것 같아서 나 혼자 했지. 축하해. 정말 축하해."
"와... 고맙다. 요즘 들은 소식중 제일 기쁜 소식이네."
"HR에서 따로 갱신 계약서 보낼꺼야. 네가 거기에 사인을 거부하지 않는한 넌 오늘부터 진급이다. 그리고 사인을 해서 보낸다면 다음 달 부터 갱신된 연봉을 받을텐데, 진급 시점을 6월 1일부터 진급으로 소급 적용하는거라 다음 월급에 돈이 좀 더 많이 들어올꺼야. 계속 그 금액이라고 착각하면 안되."
"오케이"
"아, 그런데 회사 진급 프로세스가 취소된 상태라 네 진급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을꺼야.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되고 진급자들이 나오면 그들하고 다 같이 발표될꺼야. 괜찮지?"
"괜찮지. 그러면 진급 사실을 숨겨야 하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구지 숨길 필요는 없어. 축하하고, 너만 괜찮다면 팀 내에는 내가 알릴께."
"당연히 완전히 당근 괜찮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잘하게 발생하는 즐거운 일들은 목표한 계획을 완수하고 끝냈을 때가 될 것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발생하는 즐거움은 아무래도 임금인상과 진급이 되겠죠.
진급을 하면 할 수록 늘어가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지만, 이미 제가 하고있는 일과 그 스트레스 레벨이 다음 직급 수준이라면 구지 타이틀을 바꾸고 임금을 올리는데 주저 할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직책이나 직급상 리드 타이틀은 분명 아닌데, 제가 이직을 하면서 팀을 셋업했고 팀원들 중 가장 seniority가 높다보니 알게모르게 리드롤을 맡고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최대한 외면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 시스템에서 저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고, 좀 더 넓고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생겼을테니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도 다음 주 휴가기간 까지는 지금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잠시 relax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