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현재 2020년 12월 31일.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역동적이였던 2020년을 한 번 결산 해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1분기 -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1분기의 시작은 상큼했습니다. 2019년 이직 후에 세웠던 계획들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거나, 이제 각 피쳐 개발팀으로 ownership 이전을 위한 knowledge transfer가 진행중이였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 목표들을 세워 시작하는 타이밍이였죠. 특히나 작년 한 해 동안 빌드/테스트 파이프라인 라이프사이클 시간 감축과 빌드 비용 절감이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였고, 올 해에는 테스트 고도화 및 안정성을 기하려 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코로나 소식이 들렸고 우한 상황을 보니 심상치가 않아 동료들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가 가능하면 온라인 쇼핑이 가능한 알리바바 같은 회사 주식을 왕창 사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주식에 손절한지 10년이되어 주식 살 생각도 안했죠. 일단 사면 마이너스의 손이고, 오르는 상품도 파는 타이밍을 잘 못잡고, 사고난 뒤 너무 타이트하게 관리하느라 제 일을 잘 못하거나, 잠시 잊고 살고자 하면 완전 잊어서 황금주에서 똥주로 바뀌는데 방치해 두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서요.
그러다 어느덧 covid19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때 까지만해도 한국에 사는 가족들이 걱정이였지 제 걱정은 안했는데... 3월이 되어 미국에서, 또 March Break를 맞이하여 유럽에 놀러갔던 수 많은 캐네디언들이 Covid을 가지고 오며 캐나다도 전국 락다운이 시작됩니다.
락다운 이전부터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갈 것 같으니 회사에서는 전원 재택근무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저희 팀에서 관리하던 서비스, 서버들의 보안관련 조치를 취하느라 바빴습니다. 원래 보안상 회사 내부망에서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재택근무 시에는 VPN을 이용해야 하는데, 회사의 VPN이 동시 접속자 200여명 정도만 사용 가능한데 직원 수는 이미 600명 가까이 늘어났으니 감당할 수 없었죠. 그래서 Google IAP를 통한 인증절차를 거치도록 급히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연말 셧다운 직전 개인 Innovation 기간동안 IAP를 좀 가지고 놀아보아 어렵지않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죠.
이 때 마지막 출근날 팀원들과 어떻게 원격에서 일을 할 것인지 짧은 미팅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경제 불황이 올 수도 있고 불황 뒤에는 이에대한 보상으로 큰 주가 반등이 있을테니 주식을 잘 보라고... 그리고 당장 투자한다면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관련 주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주식, 혹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엔터주에 투자를 하라고 말 했죠. 역시나 저는 주식 1주도 안샀습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출퇴근 통근시간이 사라져 하루에 2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습니다. 날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시기라 틈만나면 BBQ에 소주/맥주를 마셔가며 잘 놀며 지냈죠.
2분기 - 동트기 전 새벽? 최악의 암흑기
재택근무 체제로 저희 팀 시스템들을 죄다 변경한 이후 주변 팀들에도 비슷한 변경사항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나니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회사 벌크업을 위해 투자를 받아 적자운영을 하고있었는데, 글로벌 팬더믹으로 향후 2년은 추가 투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2-3년 이상 회사가 지속 생존을 하며 버티려면 어느정도는 레이오프가 필요하다는 CEO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합니다. 캐나다에와서 살아온 지난 7년간 살림살이가 점점 커지며 돈 나갈 구멍들도 점점 더 커졌는데, 갑자기 돈줄이 막히면 하루하루가 막막해질 것 같았죠. 실제 레이오프 발표를 하니 예상보다는 소규모였지만, 2-3주 정도 되었던 그 기간동안은 너무나도 심리적 압박이 심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저는 당시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양한 과민반응을 보였으며 최대한 운동과 술, 음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적지않은 수의 동료들은 그 기간동안 미리 살길을 마련하기위해 이곳저곳 인터뷰를 많이 봤던 모양입니다. 5-6월이 되자 적지않은 동료들이 다른 회사들로 이직을 해서 떠나갔죠.
오랜 락다운과 제한적인 생활에 지쳤고 재택근무 환경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여, 레이오프 예고 이후 떨어진 집중력은 다시 올라오지 못하여 평소대비 절반 정도? 혹은 그 미만의 효율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대한 야외 활동으로 해소 했습니다. 주 2-3회씩 자전거를 타고 토론토나 나이아가라에 다녀오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살았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면 혼자 다니기 심심해서 이렇게까지 엶심히 라이딩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동네에 맘 맞는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3분기 - 희망의 싹
이 일은 정확히는 2분기 말에 일어난 일이지만 공식화 된 것은 7월달이기에 3분기에 포함시킵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제가 진급을 했습니다.
제가 진급 요청을 한 적도 없었고 올 해 들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특히나 6-7월은 퍼포먼스 리뷰 및 진급을 하는 시기도 아니여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매니져가 저를 진급 시켜주었습니다.
진급과 연봉 상승시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역으로 제가 압박을 당하여 이에대해 마음을 비우고 살자고 생각하고 있어서 진급을 하니 그만큼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직장생활 중에 보너스와 진급만큼 기쁜 일이 또 없다보니 생각없이 그저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사알짝 희망의 씨앗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특히나 날씨는 점점 캐나다 최고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이라 아직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빼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세상은 원하는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죠? 제가 믿고 의지하던, 저와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와 함께 팀을 셋업했던 매니져가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 친구도 역시 회사 레이오프가 발표났을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가 잊고 살았는데, 그 때 넣었던 이력서 중 하나가 지금서 연락이 와서 채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봐도 워낙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 더 나은 포지션이기에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죠.
이 친구가 회사를 떠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집니다. 당장 매니져도 공석이다보니 제가 팀을 리드해야 하는데, 리드를 할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고... 이럴 때 일 수록 더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 했는데, 더 수렁에 빠지게 되며 희망의 싹이 보이다가 다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팀원의 이직이라는 큰 행사??? 덕분에 거의 반년만에 팀원들과 face to face로 만나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4분기 - 나는 태릉인?
3분기까지 술과 고기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제 체중이 인생 최고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체중이 불어난 것 자체는 좋은데 그로인한 무기력증과 나태함이 극에달아 다이어트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체중이 부는 와중에도 웨이트는 꾸준히 하여 운동은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운동량을 늘리고 제한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 목표는 40살 생일 (21년 2월) 전에 30살 생일에 측정했던 저의 체중으로 복귀를 하되, 당시의 저 보다 더 건강한 몸 (낮은 체지방, 높은 근육량)이며, 이를 측정하기위한 방법으로는 복근이 보이는 몸으로 정했죠.
이 때 부터 저의 주식은 닭 가슴살 (삶은것 까진 못하겠고 구이) + 고구마 or 떡 + 야채볶음 이였습니다. 주 5일은 이렇게 먹고 주말에는 치팅을 하는 식이였죠.
운동은 오전에 웨이트 2-2.5시간, 오후에 부트캠프 식의 유산소 및 코어운동 1시간을 했습니다. 간간히 아이들 운동을 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같이 줄넘기 1000개 및 동네 달리기도 했죠.
늘어난 운동량 덕분인지 보다 깔끔해진 식사 덕분인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자 하루에 600-800g씩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말에 탄수화물 폭탄 흡입 및 음주를 하여 주말 이틀동안 3Kg 정도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몇달간 프로그램을 지속해 보니 각 주차별로 최소 500g이상 체중이 감소하면서 두달 동안 10Kg 감량에 성공하게 되었죠.
이 때에도 저와 자전거를 탔던 친구가 다시 등장하는데, 제가 먼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 그 친구도 합류하여 일부 운동프로그램은 그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헬스는 '고립'이다 라고 하지만, 근육만 고립시키고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지 않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연말 - D.L. Disabled List & 동료애
점점 태릉인화 되가던 저는 11월 말이 되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11월 20일 금요일.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닭가슴 살을 꺼내 구우려 하는데 무언가 뱃속에 잔변이 남은 느낌이 들고 불편하여 식사를 거릅니다. 저녁이 되자 약간의 위통까지 생겨 체한 것이라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고 소량의 죽으로 식사를 했죠. 밤이되자 위통은 더 심해져 손을 따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위통은 점점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21일 새벽 2시 경에 잠든 아내를 깨워 응급실을 향합니다.
수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나자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MRI 검사를 했고 맹장염 확진을 받습니다.
결국 21일 밤 11시에 맹장염 수술을 받게 되었죠.
수술 후 깨어나 22일 오전, 집도의를 만났더니 맹장염이 심해져 맹장이 터지면서 복막염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맹장염의 경우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는데, 복막염의 경우 염증이 우려되어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에 이를 알리니 HR에서 연락이 와서 회사 보험사에 연락하여 Short-term disability를 신청하고 개인휴가가 아닌 단기장애로 인한 유급 휴직으로 하라고 말해주더군요.
결국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첨부하여 보험사에 단기장애를 신청하고 12월 중순까지 회복을 위한 유급 휴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만 해도 강력만 모르핀의 진통효과로 인해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해 12월 중순까지 휴직이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입원실에만 하루종일 머무르니 심심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퇴원해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 진통제가 몰핀에서 타이레놀과 에드빌로 변경되자 왜 의사가 12월 중순 이후에 복직을 하라고 정한지 알겠더군요. 덕분에 12월 중순까지 푹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병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제 다이어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닷세간의 기간 동안 제가 먹는 음식이라고는 커피 + 물 + 쥬스 두 잔 + 젤리가 전부였습니다. 식단명이 유동식 (fluid)인데 한국처럼 죽 같은 음식이 없어서인지 이것도 음식이라고.... 이걸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입원기간 중에는 단백질 부족 및 운동부족으로 인한 감량 (근손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다이어트 목표가 체중 감량 뿐이라면 문제가 아닐텐데... 복근이 보여야 할텐데 체중은 줄면서 체지방은 늘어난다면 점점 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니까요. 또 복부에 수술을 해서인지 우측 복횡근과 복직근 쪽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제 배는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걱정이 더했죠.
하지만 퇴원 후에 체중을 재보니... 왠걸? 입원 전 (11월 20일) 아침에 계체량보다 4-5Kg가량 늘어나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계속해서 맞은 수액으로 인해 체내 수분량이 늘어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때 부터는 제 계획이 점점 현실성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12월 초 퇴원 후 부터 12월 말 까지는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이후 빠른 회복을 위해 홈짐 꾸미기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더구나 12월 말 부터 다시 4주간 락다운을 하여 gym이 문을 닫는다하니 더욱 다급하게 했죠.
스텝박스를 사고, 가변중량 덤벨과 로잉머신도 사고, 스미스머신 까지는 살 용기가 없어서 엘라스틱 밴드를 샀습니다.
다행히 12월 말 부터는 어느정도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계획했던 수준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gym에서처럼 고중량을 다룰 수는 없다보니 근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긴 합니다. 락다운 직전에 gym에 두세차례 갈 수 있었는데, 하체의 경우에는 입원 전에 들던 무게의 2/3도 들기 버겁더군요.
이렇게 부상 회복을 하는 와중에 제 본업은 어땠을까요?
단기장애 휴직 이후에 복직을하니 하루는 회사 전체 연말 이벤트, 다른 하루는 개발팀 이벤트, 그리고 또 팀 내 연말 이벤트로 삼일 정도를 그냥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주일 정도가 남게 되었고 연초에 미리 계획해 둔 개인 Innovation Day를 보내며 회사 일을 하지 않고 개인 연구를 했습니다. 말이 개인연구지, 올 해에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푹 쉬었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내년 new year day까지는 회사 연말 셧다운이라 근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12월에는 3일정도 실제 근무를 했으나, 그나마 그 근무일들도 다양한 회사 이벤트들 덕분에 거의 놀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죠.
아, 12월 중순에 수술 후 복직을 하면서 우리 팀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직 후 첫 날 첫 아침 stand up 미팅을 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집이 아닌 길거리에서 화상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뭐지??? 하면서 미팅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 배경에 잡히는 모습이 왠지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경에 저희 집 드라이브웨이의 인터라킹과 같은 패턴이 잡힙니다.
"딩동"
뭐... 뭐야?
팀원들이 저희 집에 누가 온 것 같다며 빨리 현관으로 나가 보라고 합니다. 복직은 했지만 아직 복부 통증때문에 뛸 수는 없던 저는 천천히 걸어서 1층으로 올라가 현관 문을 열어봅니다. 이런... 이 녀석 저희 집 앞에 있었던거에요.
"힘든 시기에 수술까지 하면서 더 힘들었을텐데,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맙고 입원 중에도 이것저것 슬랙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알려줘서 고마워. 연말이기도 하고, 큰 일을 겪어낸 것을 축하하려고 팀에서 돈을 모아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라면서 이 녀석을 건내는군요.
양주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비싼 술을 잘 안마시다보니 잘 몰랐는데, 나름 $100불 정도 하는 술이더군요. 이제 팀원이라봐야 3명 뿐인데... ㅠㅠ 짜식들 돈 많이 썼네요.
수술 후 복귀하는 사람에게 줄 만한 선물은 아니긴 하지만 누가뭐래도 정말 고맙웠습니다.
덕분에 올 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는 값비싼 위스키도 마셔 보았습니다. :)
이렇게 2020년 올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진급했다는 것 외에 아무 일이 없었던 해이며, 전 세계적으로, 제 개인의 심리적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한 해 였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심리상태와 집중력을 되찾아 다시 열심히 일하는 둥이아빠가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