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숫자로 보는 2022 결산

2022년 12월 31일입니다.

2013년 12월에 이민을 위해 캐나다에 첫 발을 내딛었으니, 이제 이민 생활도 9년을 꽉 채워 10년차가 되었네요. 어찌어찌 살아오다보니 이민 10년 계획은 모두 달성을 하기는 했지만, 2022년 올해 한정으로 놓고보면 이룬 것도 많지만 놓친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료들을 정리하다 재미있는 데이터가 보여서 적어봅니다.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저의 2022년은 반반입니다. 첫 번째 반은 반으로 줄은 반이고. 두 번째 반은 반이 늘어난 반이네요.


1. 50% 감소

코로나 팬데믹 발생 직후 주식 시장 진입을 간보다가 폭락 후 반등보다 먼저 찾아온 레이오프 소식에 멘탈이 탈탈 털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진입한 주식시장... 그래도 연일 폭등하는 시장에서 막차를 탔어도 어느 정도는 수익을 보고 있었는데, 타노스도 아니고 결국 연초 대비 절반이 사라져버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네요.

자산투자 관점에서 2022년 저의 평점은 F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생활비와 모기지 낼 돈을 입금 해주는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2. 50% 증가

절대금액이 아닌 상대적 비율로 봤을때, 캐나다에서 처음 연봉 사인을 한 후 첫 1년이 가장 높은 연봉 인상률 기록이였습니다. 입사 후 석달간의 probation이 끝난 후에 곧바로 25% 정도 인상이 이뤄졌고, 다음 해 연초에 추가 인상을 하며 1년간 40%에 조금 못미치는 인상이 이뤄졌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기록은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비록 경력 단절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짬바가 있는데 거의 대졸 신입에 가까운 수준으로 처음 계약을 했었고 원래 연차가 낮을 수록 절대 인상금액은 작아도 비율로는 높은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팬데믹 기간동안 벌어진 일들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단 1센트도 받지 못했지만, 각국 정부에서 많은 돈을 풀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푼 것일까요???) 그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물가는 그 끝을 모르고 오르기 시작했고, 임금 역시 올랐죠.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넘어가면서 제가 몸담고있는 산업군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게 되고 사람 모시기에 혈안이 된 회사들 간의 경쟁으로 임금 수준이 놀라운 속도로 올라갔죠.

또한 비대면 활성화와 재택근무 활성화로 인하여 다수의 미국 회사에서 타국가의 근로자를 채용하는 형태가 많이 활발해졌습니다. 미국 내에 거주중이며 근로가 가능한 SW 엔지니어들 만으로는 시장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다보니, 해외에 오피스가 없어도 여러가지 방법들을 통해 채용을 하기 시작한것이죠.

결국 이러한 사회적 변화들이 저에게도 그대로 반영이 되었습니다.

우선 이직 전에, 이전 직장에서 제 연봉 조정을 해 주었습니다. 더 높은 연봉 제시하는 오퍼들이 시장에 넘쳐다다보니 회사에서도 이탈자들을 막기 위해 연봉을 올려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결국, 저는 미국회사들이 제시하는 달콤한 연봉 조건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직을 하며 다시 한 번 인상을 하게되니 연초대비 50%가 오른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이직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연봉이 50% 올랐다고 하여 실소득이 50% 증가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캐나다 회사들 대비 직원 복지 등에서 부족한면이 많고, 휴가일수와 법적공휴일 외 추가 공휴일 등등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보기도 하며, 근로 문화와 회사 시스템 등에서도 이전보다 많이 답답함을 느끼는 부작용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같이 타오르던 구인 시장은 어느덧 차갑게 식어 불경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 제 모기지 비용과 은행 이자 그리고 생활비를 꼬박꼬박 입금 해 주는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희 회사도 미국 오피스 직원은 티 안나게 조금씩 저성과자들을 해고 하면서 남미와 인도 등지에서 빠져나간 만큼 인력을 채우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내년이 되어도 그다지 경기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또 모르죠. 2020년에도 팬더믹이 시작되면서 많은 IT회사들이 인력 정리를 했지만, 채 1년을 넘기지 않고 수 많은 회사들이 구인 시장에 뛰어들며 인력 모시기 경쟁을 했던 선례도 있으니까요.


2023년에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 지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 더 밝은 혜안과 좀 더 넓은 꿈을 품을 가슴을 갖게될 줄 알았는데, 점점 눈은 탁해지고 마음은 좁아지는 것 같네요.

바라건데 앞으로 20년은 더 일을 하고 은퇴를 하기를 꿈꾸는데,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20여년 전의 저로 돌아가 앞으로 20년간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꿀 것인지 좀 더 생각 해 봐야겠네요.


2023년엔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2033년에는 무엇을 이루고 싶으시죠?

2043년에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이직, 반년 후 - 피로감

좀 더 큰 시장에 디딤돌을 놓고자, 그리고 아직도 찾지 못한 '여유'라는 것을 갖고자 미국 회사로 이직한지 이제 반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첫 시작부터 회사 시스템에 대해 많은 실망도 했고 연봉 외에는 제가 처음 추구했던 가치들에 대해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닿기는 했었죠. 하지만 지난 한달여의 시간동안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도 했고 새로운 저만의 계획을 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직을 하자마자 첫 일주일이 지나기 전부터 주어졌던 pilot 프로젝트가 결과 발표 후 별 소식이 없어 그냥 흐지부지 된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8월 말에 3개의 pilot중 하나가 최종 선정이 되어 곧 계약될테니 9월 말까지 전 제품의 static analysis를 이 서비스로 migration 하라는 오더가 나왔죠.

그렇게 옮겨야 할 파이프라인은 총 348개. 거기에 이번에는 아직 static analysis를 돌리지 않고있는 제품들까지 다 스캐닝을 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는데, 그 수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죠. 추가로 현 파이프라인들이 젠킨스나 드론CI에서 도는데 이를 깃헙 액션으로 단일화하라고도 했죠. 신규 CI는 깃헙 액션으로 가는게 현재 방향성이라면서요...

언제 계약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주일 이내에 계약이 되고 라이센스 키를 받는다 하여도 4주의 시간만 있었습니다.

총 20근무일에 348개의 파이프라인을 새로 만든다면 하루에 17-18개씩 해 내야하니 파이프라인 당 25분 정도의 시간만 있군요.

또, 보안 문제로 깃헙 액션은 self-hosted runners에서만 돌려야하는데, 이 시스템을 살펴보니 스케일링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였습니다.

말도안되는 일정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일단 잊고, 제 본업으로 돌아와 최대한 자동화를 시키고 각 사용자들이 self service를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당장 스케일링과 자동화가 어려운 mac과 windows 빌드 러너는 제외시키고 리눅스 빌드에 좀 더 촛점을 맞추었고, 모든 full기능 구현이 아닌 기존 security static analysis의 요구조건에만 딱 맞도록 자동화 툴을 설계 배포할 경우 업무 범위와 일의 양을 측정 해 보니, 각 사용자들에게 3주 조금 안되는 시간을 주고 self service로 migration을 할 수 있게 드라이브 가능할 것 같았죠.

다음 날 제가 추산한 일정과 기간, 계획을 알려주고 일을 진행하려는데, 이 일을 담당하는 매니져가 제 계획에 대해 아키텍트 리뷰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때만 해도 아무 생각없이 아키텍트에게 제 자료들을 건네주며 리뷰를 요청했는데 뭔 x 소리가 들려옵니다.

본 migration을 위한 자동화 툴을 자기가 만든 툴 내에 포함시키라는 피드백을 먼저 받았죠. 일단 제겐 생소한 golang이였지만, 기존에도 저는 가능한 CI/CD관련한 CLI툴은 각 기능별로 모듈화 시키되 원하면 단 하나의 툴이 모든 모듈의 umbrella가 되어 모든 기능이 같이 동작하는 것을 선호했기에 okay했죠.
그런데 이놈의 툴이 담긴 리포지토리의 리드미에는 아무런 문서도 없습니다.
사용자를 위한 툴 사용법도 없고, contributors 를 위한 설계나 개발 관련 문서도 없으며 그냥 자기가 이 툴로 무엇을 이루고싶은지 적은 philosophy에 대한 내용만 장문의 텍스트로 적혀 있었죠.

WTF...

아키택트에게 모듈 추가를 위해 문서 업데잇을 부탁하니 자긴 바빠서 그럴 시간 없고 저보고 작업하며 하나씩 추가 하라고 하네요.
결국 한 시간 가량 1:1 논쟁을 벌였습니다.
저도 4주가 안되는 기간 내에 ASAP로 개발팀에 툴을 공급하고 그들을 교육시켜야하여 시간이 불충분하니 서로 분리를 시키거나 합병을 위해서는 제 시간 세이브가 가능하도록 읽기 쉬운 최소한의 설계 문서라도 필요하다고 말을 했죠. 하지만 아키텍트는 인간계가 아닌 신계에서 신선놀음을 하는지, 한 달 동안 모든 제품을 migration 하는 것은 말도안되는 일정이라며 일정을 다시 짜라고 합니다. 라이센스 만료와 지시사항 등등 이야기를 해도 신선은 그냥 신선계에서 이상향 이야기만 계속 해댔죠.
결국 매니져의 중재로 제가 좀 더 빨리 개발을 해보고, 사용자들의 migration기간을 1.5-2주 정도로 줄여 이상향에 맞게 진행하도록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툴 개발이 거의 완료되고 배포 전 사용가이드 작성과 edge case들에 대한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아키텍트가 사용가이드에 다시 테클을 겁니다.
이번에는 해당 툴에서 static analysis를 자동 생성하는 별도의 커맨드가 있다는 것에 크게 반대를 하네요.
자기가 제 툴을 자기 툴 내에 구현하도록 한 이유는 회사에서 강제하는 이번 migration을 통해 도입률이 거의 0%에 가까운 자기 툴의 도입률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였다며 이럴꺼면 처음부터 제 툴을 자기 툴 내에 추가하라고 하지 않았을꺼라 합니다.

오케이...

별도 커맨드를 없애고 단일 커맨드로 모든 기능을 도입하도록 바꾸는 것 자체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죠.

그런데, 지난 아규에서 2주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 툴의 리포에는 아무런 문서 추가가 없네요???

저도 제 툴을 추가하긴 했지만, 기존 툴에서 어떤 기능들을 수행하는지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능 수행 시 타깃 리포지토리에 40-50여개의 신규 파일을 생성하고, 15개의 깃훅을 추가시키는 정도만 알죠.

제 문제는 개발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348개의 제품 팀들에게 2주라는 시간 동안 이 툴이 무엇이며 이 툴이 너희 제품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충분히 설명시키고, 그들이 이 툴을 통해 원클릭으로 CI를 생성시키고 한 번의 PR로 모든 것을 쉽게 완료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는 수십여개의 새로운 기능들과 파일들이 생성되고 이것들으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지 (이 아키텍트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오너들이 self service로 migration을 하겠습니까?

결국 이 시점이 되어 다시 한 시간이 넘는 아규가 펼쳐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사용자 입장에서 문서를 작성하여 어떤 것들이 추가/변경되고 이것들이 그들의 개발 프로세스와 툴들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려주기라도 하라고 말했지만 그의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이 리포에는 문서가 너무 안되어있어서 그 모든 것들을 추가하기엔 난 너무 바쁘다. 내 생각엔 우리의 개발 프로세스 표준화와 자동화를 위해 다 필요한 것들인데, 그냥 쓰라고 해라."

제가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도 수십개의 모르는 파일들이 생기고, 갑자기 커밋을 생성하거나 커밋 푸쉬를 하려면 깃훅이 에러를 내는데, 아무런 설명없이 그냥 하라고 지시하면 무조건 반감이 들 것이 확실했죠.

결국 또 다시 한참동안 논쟁을 한 뒤에 2-3일간 몇몇 가장 협조적인 팀들에만 먼저 툴을 배포하고 피드백을 받아 다시 의사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이번 파일럿에 차가한 6명의 개발자들 중 5명은 극렬한 부정적 피드백을 주었고, 단 한명만 하나씩 뜯어보면 괜찮은것 같긴 한데, 너무 많은 파일들을 생성해내니 overwhelmed 된다는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피드백을 모아 아키텍트에게 주고 제 기능만 따로 뺀 별도의 커맨드를 유지하겠다고 하는데 여전히 아키텍트는 고집불통입니다. 허들을 낮출 방법을 생각하여 적용하라고 했죠.

결국 어쩔 수 없이 디렉터에게까지 이런 말도안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이것이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이야기를 준 뒤에야 겨우겨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타협점도 결국 디렉터나 제가 원한 방향은 아니였죠. 해당 툴에 minimum 인스톨 옵션을 주고 현재는 static analysis CI만 generate 및 auto uploaded 되게 하고, 추후에 아키텍트가 원하는 바에 따라 minimum에 포함되는 리스트를 수정하면 모든 리포에 아키텍트가 원하는 툴들이 자동 설치되도록  만드는 것이였네요.
디렉터가 직접 개입을 했음에도 고집을 부리는 아키특트에 대해 또 디렉터에게 SOS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저도 양보하고 그렇게 툴 수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규 8시간 근무로 1주 -1.5주에 마무리 될 예정이였던 툴 개발, 가이드 문서/비디오 제작은 2주간 제 체력이 허락되는 한에서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마쳤죠.

이 때만 해도 저는 가장 높은 산을 넘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 계획 당시에 사용자들이 self service로 migration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키라고 했지만, 아키텍트의 똥고집을 마주한 후, 이 산이 더 높은 산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제 처음 생각이 옳았습니다. 아키텍트의 똥고집은 그냥 애교였죠.

한국에서 다녔던 삼성 이후로 제가 캐나다에서 다닌 직장들은 그 규모가 비슷했습니다. 입사 할 때엔 100-150명 정도의 엔지니어가 있었고, 톼직 할 때엔 300-400명 정도였죠. 이 회사는 입사 할 때에 이미 엔지니어 팀 규모가 1000명을 넘었습니다. 이전 직장과 달리 QA 엔지니어도 있고 (이전 직장은 100%자동화 테스트를 통한 full CD환경이였습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와 다수의 보안 엔지니어들이 있기는 해도 이전대비 배 이상의 엔지니어입니다. 똘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당연히 똘아이들도 두 배 이상 많겠지만, 회사가 잘 굴러가도록 해 주는 핵심적인 인물 (협조적이고 능동적인) 한 두 명은 각 팀마다 있을 터이니, 결국 제 이전 경험과 비슷하게 잘 굴러갈 것이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2주간 수많은 팀들과 1:n으로, 또 1:1로 접촉해 본 결과... 이 회사에는 팀 당 한 두명 의 협조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들이 매우 희귀했습니다.

일단, 대다수의 팀들은 매우 수동적이며 방관자적 자세만 보였죠.

본격 self migration을 앞두고 해당 프로젝트의 매니져가 모든 팀의 매니져들과 리드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것도 사실 불만인게 각 팀에 리소스 할당이 필요하니 미리 사전 예고를 부탁했는데, 제 툴과 가이드 문서가 완료되니 그제서야 보내더군요 ㅠㅠ)

그리고 전 2주 self migration 기간동안 매일 아침 저녁 각 1시간씩 줌 미팅을 열고 face to face 사용자 지원을 하기로 했죠.

그렇게 본격적인 migration이 시작되고 사흘째, 전 이 회사 엔지니어들의 전반적인 성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이틀과 당일 아침까지 아무도 접속을 안했습니다.
결국 매니져와 디렉터에게 좀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어필하며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이야기하자 결국 VP를 통해 각 팀 VP들에게 연락이 갔죠.

그렇게 사흘 째 저녁 face to face office hours 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1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참여했는데, 하나같이 아무런 사전 정보와 지식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묻는 질문이...

매니져가 이 미팅에 참석하라고 했는데 이거 뭔 미팅이니?

Static analysis 프레임웍을 바꾼다고? 그럼 바꾸면 되는데 난 왜 불렀어? 난 툴 잘 몰라

바꾸는거 내가 해야한다고? 왜? 난 그럼 static analysis 안할래. 아니면 난 그냥 기존 툴 쓸께. 기존 툴에 난 불만도 없어. 솔직히 그런 security scanning 있는줄도 몰랐다.

하...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나흘째, 이제는 능동적이되 비협조적인 인물들과 협조적이되 능동적이지 못한 인물들이 접속을 시작합니다.

누가 이 스캐닝 서비스 골랐냐? 왜 스캔 설정이 이따구냐? (응 위키 안읽었지? 자동화툴은 기본 설정으로 생성되고 이후 사용자 customization 가능함)
기본 설정이 왜 이따구냐? 나 golang 1.19쓰는데 왜 1.18을 CI러너에서 돌려? (응 위키 안읽었구나, 프로젝트 자동생성 yaml에서 네가 다른 프로젝트 그냥 복붙 했지? 네 프로젝트 설정에 1.18로 되어있네?)
난 unit test 있는데 왜 커버리지가 0%라고 나오냐? 버그냐? 툴 바꿔라 (응 또 위키 안읽었구나, 자동생성 ci에선 커버리지 리포팅 안해. Custom step으로 유닛테스트 돌리고 커버리지 리포팅 추가하면 됨)
왜 커버리지 자동화툴에서 지원 안해주냐? 귀찮다 해줘라! (응 프로젝트마다 빌드 스탭 다 달라서 build orchestration 툴 통합해서 다 쓰고 다 같은 커맨드로 빌드, 테스트, 클린 등등 되게 하자고 했을땐 바빠서 다들 싫다했지? 그게 없어서 못해. 툴이 사람도 아니고 각 프로젝트마다 다 다른 테스트 돌리는 커맨드를 어찌알고 알아서 다 하니?) 그러면 네가 해줘라. (응, 난 348개를 완료할 책임이 있고, 넌 3개를 완료햐야지? 누가 더 바쁠까? 그리고 우리 현재 목표는 테스트 커버리지가 아님. Security scanning 이지. 다 위키에 있음)
난 이 툴 싫어. 그냥 싫어. 난 안해 (회사 방침이고, 정부 프로젝트 요구사항에 필요함. 하셈) 그럼 난 다른툴로 스캐닝 돌려줘. 내가 툴 고를께 (응 니가 골라서 니가 스캐닝 돌려) 시러 난 안해. 바빠. 니가 해줘 내가 툴 고를께 (근데 너님 그 툴 라이센스는 있니?) 없어, 그러니 니가 라이센스도 해줘 (??? 그 툴 라이센스만 니가 니 매니져한테 말하고 알아서 받아와 그 툴 돌린거 현 스캐닝 프레임웍에 통합 가능함. 그건 가능하게 도와줄게) 아씨, 난 그거 싫다니까. 난 완전 따로 돌릴꺼야. (따로 돌리는건 좋다 쳐도, 보안팀에서 통합 데쉬보드를 원하더라. 이툴에 같이 리포팅 안하면 데쉬보드가 없어) 아, 그럼 보안팀에 해달라고 해야겠다 지들이 필요한거면 지들이 하지 왜 나보고 하라고그래. 빠이 (????)

결국 제 9월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매일 7시에 일어나 7시 반이면 인도 팀들을 위해 한시간 줌 미팅을 하고, 오후 5시에는 미국 팀들을 위해 줌 미팅을 하고, 나머지 시간들에는 각팀 공격수들의 공격을 다 몸빵으로 막고, 6시 이후이는 우리팀 아키텍트의 공격을 막으며... 한달간 4시간 이상 잔 날이 매우 드문것 같네요.

한 달이라는 빡빡한 데드라인을 밀어넣는 매니져들도 신기하고, 전에 본 적 없는 진귀한 팀웍을 보여주는 각 팀들도 그렇고... 정말 일 하기 힘든 조직인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한 달을 버텨낸 이후 나름의 계획도 생겼습니다.

그간은 승진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왔는데, 여기에서는 제가 승진을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고, 안하면 오히려 손해보는 장사가 될 것 같아요. 어쩌면 승진 안하고 하루하루 버텨나가다는 이들과 같은 그런 수동적인 사람이 될 것도 같고요.

그래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승진이라는 것을 제 개인 목표에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엔지니어다운 마인드셋을 지닌 엔지니어로 남기위해, 제 하루하루 상활에 조금이나마 목표와 의미를 심어주기위해 이 회사에선 승진이라는 것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네요. 

8월 마지막 주를 시작으류 하여 지난 한달 반 가량을 참 바쁘게 살아왔는데, 부디 잠시만이라도 한 숨을 돌릴 여유를 갖고 다른 일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제발...

IT시장 버블이 아직까지 휴효하기만 했어도 정말... ㅠㅠ

2022년 6월 7일 화요일

사람 오래 만나고 볼 일입니다 - 이직 3주차 후기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달 쯤 전, 현 직장의 인터뷰 프로세스 중 on-site 인터뷰를 할 때로 돌아갑니다.

두 번의 인터뷰를 거친 후 on-site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on-site 인터뷰 관련 상세 스케쥴이 전달되었는데, 다른 회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있었습니다. 각 1시간씩 총 3번의 인터뷰가 back to back으로 계획되어 있었죠.

사건은 그 중 첫 번째 세션인 architect와 인터뷰에서 발생했습니다.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한 후 제 경력에 대해 이것저것 짧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뒤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려는데, 인터뷰어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옵니다.

"평소의 내 인터뷰 스타일 대로 진행할께. 난 너에게 아무 문제도 던지지 않을꺼야. 네가 풀고싶은 문제를 풀어봐"

뭐라고? 이게 말인지 당나귀인지... 온라인 스도쿠라도 들어가서 스도쿠를 풀까? 숨은그림 찾기를 할까? 3+3=? 이런 산수 문제를 풀까? 도무지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발언으로 일단 저를 흔들었습니다.

10-20초 정도 "흠..."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을 끌자 인터뷰어는 짜증이 잔뜩 섞인 말투로 말을 합니다.

"내가 뭐 어려운 문제를 낸 것도 아니고, 그냥 네가 하고싶은 거 하라는데 뭐 그리 시간을 끌어? 이러다 한 시간 다 지나간다. 그냥 네가 좋아하는 문제 풀어."

이건 또 말인지 방구인지...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말 했죠.

"글쎄, 솔직히 네가 어떤 것을 보고싶은지 판단이 안되서 어떤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할지 방향을 아직 못잡았다."

"그런거 모르겠으면, 그냥 다른 회사에서 인터뷰 봤을 때 풀었던 문제를 지금 풀어봐."

이 회사의 인터뷰를 보기 전에 많은 인터뷰들을 봐 왔다면 모르겠지만, 이 회사는 이번 이직을 결심한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인터뷰였기에 단 한차례의 on-site인터뷰만 본 상황이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조사한 바와 on-site 이전에 기술 인터뷰에서의 질문내용을 보면 이 회사에서는 leetcode 스타일의 알고리즘 문제를 주로 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이전에 인터뷰를 본 회사는 알고리즘보다는 간단한 구현을 해 나가며 인터뷰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가는 과정을 보는 회사였기에 적합한 문제가 아니였죠. 설사 그 문제를 가져온다 하여도 문제를 풀 때에 받았던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다시 10-20초 정도 고민을 하니 인터뷰어의 짜증이 터졌습니다.

"아니 너, 아무것도 기억 안나니? 그냥 바로 직전에 본 인터뷰 문제 가져와 봐. 뭘 고민해 내가 복잡한 거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요구사항인데 그걸 대답 못해?"

결국, 다른 곳에서 봤던 on-site문제를 가져올 수는 없었기에 제 3의 다른 회사에서 본 첫 번째 technical interview 문제를 가져와서 다른 회사 인터뷰에서 풀은 문제가 이것이라고 말을 했죠.

제가 문제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인터뷰어가 한 마디 합니다.

"난 그 문제의 포인트를 모르겠다? 뭐가 문제상황이고 뭘 풀겠다는거야? 그런것도 인터뷰 문제가 되나?"

그래서 제가 leet code style의 알고리즘/자료구조 문제를 원하는 것인지, OOP 설계에 대한 문제를 원하는는 것인지, 아니면 코딩 스킬을 보는 문제를 보고싶은 것인지 재차 물었죠.

"아니, 그런것 말고 지식과 경험과 생각을 볼 수 있는 그런 문제 말이야."

뭐지? 인류의 공동번영과 공존을 위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제품을 가져오라는 것 같아 다시 10-20초정도 뜸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저를 뽑을 마음이 1도 없지만 그냥 인터뷰 프로세스가 시작되었으니 중도에 취소하기 미안해서 억지로 인터뷰를 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죠.

결국 잠시 짜증의 끝을 보이던 인터뷰어는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이런 것 까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자기가 문제를 내겠다고 합니다.

흠... 뭐지?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어가 내가 질문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을 품는다고? 그럼 나는 인터뷰이로서 내가 질문에 답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을 품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즉석에서 질문을 만들어가던 그가 낸 문제는 결국 graph를 통한 길찾기 문제였고, 문제를 풀어나가며 어떤 알고리즘을 쓸 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등등을 질문했습니다.

인터뷰 초반부터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하라는 아주아주 훌륭한 인간의 자율성을 북돋던 인터뷰어의 발언과 이후 몰아친 폭풍 짜증에 잠시 멘탈이 털렸던지라 인터뷰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가 없었죠.

질문을 하는 분위기 상 DFS와 BFS관련 내 지식을 테스트 하고 싶은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왔지만, 이 용어가 도무지 생각이 안나서, 끝장을 볼 때 까지 한 놈만 패는 방법과 일단 같은 레벨로 넓게 나가는 방법이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여지없이 인터뷰어는 지금 자신의 1분 1초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짜증섞인 말투로 추가 질문을 이어갔죠. 결국 나중에 Depth first와 Breadth first라는 말을 하자 작은 미소를 띄며 말 하더군요.

 "Now you are there. There you go"

이런 식으로 잔쯕 쫄아버린 저는 인터뷰 내내 평소같으면 알 만한 내용임에도 제대로 대답을 못하거나, 용어가 기억이 안나서 일반적인 자연어에 가까운 말로 답변을 지속하며 결국 1시간을 다 채웠습니다.

이렇게 엉망이 된 첫 세션을 마친 후 다행히 멘탈을 찾았고, 나머지 두 세션을 마쳤지만, 인터뷰 후의 느낌은 추후에 맞이하게 될 다른 인터뷰들을 위한 좋은 초석 정도였죠.

2 주 정도의 시간이 흘러 당연히 탈락일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도 안하고 다른 곳의 인터뷰들을 하나씩 보고 있는데, 이 회사의 리크루터로부터 15-20분 정도 통화를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탈락 소식과 함께 인터뷰 피드백을 주는 줄 알았는데, 통화를 해 보니 왠걸? 제가 붙었다고 하네요???

다만, 이 말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Tech interview, Hiring Manager interview, Director Interview, On-site interview 다 잘 한 것 같은데, 인터뷰어들 중 딱 한 명이 네 채용에 강하게 반대해서 의사결정이 좀 오래걸렸다 미안해"

이 말을 듣는 순간 누가 반대했을지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어, 맞아. 어떤 인터뷰인지 나도 알 수 있을것 같아. 나 한 번 심하게 절었어. 그래서 솔직히 너한테 연락 올 꺼라고 기대도 안했어."

"응. 다른 인터뷰어들 평가는 다 좋았는데, 그 한 친구가 채용에 반대를 해서 팀 내부적으로 의견 조율을 좀 오래 했나봐. 그래도 디렉터가 드라이브 해서 일단 최종 결론은 합격이야. 축하해."

그렇게 시작된 협상은 몇 번의 조율을 거친 후에 3 주 전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렇고, 일을 시작할 때 까지 계속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on-site에서 첫 세션에 저를 인터뷰 한 인터뷰어였죠. 인터뷰 전 리크루터가 보내온 인터뷰 패키지 상의 정보에 의하면 Architect라는 것 까지는 알겠지만, 저와 같은 팀인지 아닌지도 몰랐고, 저와 얼마나 자주 부딛치며 일을 하게 될 것인지도 의문이였습니다.

입사를 하고 회사 HR 시스템에 접속을 할 수 있게되자마자 바로 찾아본 것이 그 architect의 이름인데, 이런... 저와 같은 팀 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디렉터와 제 프로젝트의 매니져에게 지정받은 제 work peer인 컨택 포인트는 다른 Sr. Staff Engineer였죠.

하지만 제가 매니져와 디렉터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일까요? 프로젝트 전까지 총 3시간 정도의 Knowledge Transfer 미팅만 같이하고, 막상 프로젝트 킥오프를 하는데 저희 팀에서는 오직 저 혼자만 할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간 좌충우동 중구난방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찾아 긁어모아서 하나씩 해 나가다보니 몇몇 infrastructure에 변경이 필요하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한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이전에 지정받은 제 peer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그 쪽 전혀 모르고 그 architect가 요즘 그 쪽에 한창 작업을 리드 중이니 그와 함께 일을 하라는 답변을 받게 됩니다.

결국 제 채용을 끝까지 반대했다던, 그 architect와의 업무적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workaholic이라고 느낀 것이 이 친구는 동부 시간 기준으로 오전 10시 정도부터 slack message와 이메일 등을 날리기 시작해서, 동부시간 밤 10시가 되어도 slack으로 quick sync하게 통화 가능하냐는 메시지를 날립니다. 이 친구가 사는 서부 시간 기준으로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 까지 최소한 12시간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제가 금요일 밤 늦은 시간에 PR을 보내면 죄다 토요일이면 리뷰를 합니다.

기왕 가까이 붙어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으니 기존의 선입견은 최대한 버리고 다시 중립적으로 다가서려고 하는데, 오늘은 제가 PR리뷰 요청을 한 일도 없는데, 밤 9시 30분에 빨리 콜을 하자고 메시지가 옵니다. 지금 운동중이라 빨라야 30분은 걸린다고 해도, 아무리 늦어도 상관 없으니 오늘 내로만 연락을 달라고 합니다.

짐에서 운동을 하다말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콜에 들어가보니 인도 팀 직원이 이미 한 명 와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현재 리드중인 프로젝트의 개발환경 관련하여 인도팀에서 신규 채용한 직원이 문제를 겪고있었고, 본인의 개발환경은 intel CPU MacBook이지만 인도 친구는 M1 MacBook이기에, 최근에 M1 MacBook에서 개발환경을 셋업한 저에게 콜을 요청 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요청의 flow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방향성이 아닌 속도... 당장의 콜이 아닌 이메일이나 슬랙을 통해 시간차를 두고 async하게 진행 될 수도 있지만, 이 친구는 인터뷰 도중 10-20초 정도 마가 뜨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 처럼 인도에서 생긴 문제를 참지 못하고 본인 시간대 기준으로도 저녁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들은 것이죠.

그렇게 3자 통화를 하면서 다시 느꼈는데, 정말 이 친구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질문에 상대방이 답을 할 때 조금이라도 마가뜨면 바로 짜증을 냅니다. 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모두에게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였죠.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길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8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봐 온 저의 상관들은 대부분 그런 스타일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오래간만에 그들에게 사용했던 대화법을 이 architect에게도 사용 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무슨 질문이든 즉각적인 리액션이 필수입니다. 정말 어느 방향으로 답을 해야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질문을 rephrase하면서 약간의 추가 질문을 하는 식으로라도 시간을 벌어야지 질문에 즉답이 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바로 짜증이 날라옵니다.

그리고 질문이 아닌 의견 제시와 함께 동의를 구할 때에는 일단 긍정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제가 science보다 engineering을 더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정 반대의 답이 정답일 수도 있고, 부연 이유에 따라 또 다른 것이 정답이 될 수도 있죠. 짜증이 많건 나를 싫어하건 지금까지 봐온 바에 의하면 짜증으로 포지션을 차지한 것이 아닌 실력으로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맞습니다. 그러니 정말 똥멍청이 같은 소리는 적어도 하지 않기에 그의 의견에 긍정을 한다고 하여 완전히 틀릴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긍정을 해 준 후에 조금의 수정을 해 줍니다. 

"이야 좋은 생각이다. 너도 이미 생각 했겠지만 거기에 이런 반대급부까지 고려해서 이렇게 만들면 정말 최곤데?"

아니면 2개 정도의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가진 후보군 중 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골랐을 경우에는

"그래, 둘 중에 우리에게 좀 너 나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니 A가 적합한것 같아. 비록 B에 이런저런 장점이 더 크고 A에 이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종합적으로 보면 A가 더 맞겠지?"

이렇게 하면 결국 똥멍청이가 아닌 그는 A에 문제점에 대해서도 인식을 하고 최소한 이에대한 보완을 충분히 하거나, B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결국 최종 의사선택 과정에서 제 의견이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기에 구지 따지자면 제 공이 남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경험상 이런 유형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으며, 자존감이 높아 본인에 반대하면 일단 이에대한 방어를 하는데 머리까지 좋아 방어를 너무 잘 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며 대화를 하면 상대에 의견을 좀 더 들어주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잘 하죠.

아니나 다를까, 그 날 3자 통화를 하기 전 까지 사사건건 저와 충돌이 있던 architect는 제가 대화법을 바꾼 이후부터 저와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말 하는 방법을 바꾸고 이틀 정도가 지났을 때에는 이 친구가 저와 대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웃는 표정까지 짓더군요. 항상 미간에 주름이 가득한 모습만 봐 왔는데 말이죠.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팀 채널에 제가 올린 PR을 공유하면서 PR은 이렇게 작성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날립니다.

며칠 전 부터는 제가 POC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건들였던 쪽의 구조와 관련하여 변경이 필요 할 때 마다 저에게 의견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POC 프로젝트 관련하여 팀원들에게 Knowledge Exchange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아키텍트가 이를 녹화하여 엔지니어링 팀 전체에게 필독을 권장한다며 메시지를 보냅니다.

전 정말 대인관계를 귀찮아하고 대인관계의 시작인 사람 이름과 얼굴도 거의 기억 못하고 네트워크 쌓기 및 관리에 빵점인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군생활을 할 때 모셨던 대대장과 직장생활을 할 때 모신 상관들이 신기하게도 급한 성격에 짜증이 많은 스타일인지라 그나마 이런 사람들과 대충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네요.

요즘 느끼는 문제가 있다면 이 친구가 저에게 너무 자주 말을 거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상호간 아무 이슈가 없는데, 본인이 하고있는 여러 프로젝트들 중 하나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정하고 생각하면 꼭 저에게 말을 걸어 제 생각을 물어보네요.

아무래도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엔 그냥 제 생각대로 말을하면 안되고 살짝 전략적으로 말을 해야 이 친구의 짜증회로를 피해가기에 저도 대화를 하면서 다른 스트레스를 받으니 약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싶은데... 뭐 그래도 저의 채용에 끝까지 반대했던 사람인데, 이젠 나름 저를 믿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 같아 다행이긴 하네요. 실제로 작게나마 제가 이 회사에서 바꾸고 싶은 것 중 하나에 대해 제 의견에 강한 지지를 표명하며 추진되게 드라이브를 해 준 친구가 이 친구입니다.

이 친구와 이렇게 까지 가까이 일하게 될 지 전혀 몰랐는데, 하여간 사람은 오래 만나고 볼 일입니다. 

2022년 4월 28일 목요일

Go WEST



약 200여년 전 서부 개척시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노다지의 꿈을 꾸며 서부로 서부로 달려나갔다고 하죠. 21세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가 몸을 담고있는 SW 분야입니다.

흔히 실리콘 벨리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와 그 남부 주변에는 수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리하고있고, 또 그 외에도 새로운 빅테크를 꿈꾸는 수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이 있으며, 실제로 계속해서 새로운 강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기업이 대기업이 되면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미국 내 다양한 지역에 새로운 오피스들을 세우고, 또 다른 나라에도 수 없이 많은 오피스들을 설립하지만 같은 회사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 중 연봉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곳은 뉴욕 맨허턴의 사무실이나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의 사무실 근로자들입니다.

아무래도 현지 생활비와 그 지역의 임금수준이 반영된 결과일 것 같은데, 같은 회사의 같은 포지션이라 할 지라도 지역에 따라 곱절의 차이가 나기도 하죠.

사실 돈이야 생활비에 비례해서 준다 하면, 결국 쓰고 남은 가처분 소득을 비교했을 때엔 어느 지역에서 일을 하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수 많은 SW엔지니어들이 구지 고향을 떠나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는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그 중 다른 하나는 근로 문화라 할 수 있죠.

한국에서 살 때에, 본사와 미국 법인이 힘을 합쳐서 해야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판매/마케팅 법인은 동부 뉴저지에 있고 미국 연구소는 산호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사 개발-기획 인력들과 미국 법인과 연구소 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죠. 한참동안 대화를 하며 때론 다투고 때론 으쌰으쌰 의기투합을 하며 어느덧 저녁 시간을 넘겨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회의를 하려는데, 산호세에서 온 친구가 말을 하더군요

"역시 동부 애들은 너무 불필요하게 터프해. 일은 일이지, 일에 모든걸 걸고 너무 심각하게 한다니까."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회의를하고 오늘 아니면 결론을 짓지 못할 것 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질린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이 좌식... 너 본사 연구소에 와서 두어달만 일 해 봐라. 그래도 밤 10시 즈음엔 퇴근하는 뉴져지 애들이 얼마나 설렁설렁 일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꺼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동부는 좀 딱딱하고 일에 열정적이며, 서부는 좀 더 자유롭고 생활에 열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돈 외에 이러한 근로문화를 찾아 서부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일자리가 많아서, 근로 형태나 문화가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서, 돈을 더 많이 주기에, 다양한 동종업계 사람들과의 교류가 수월하기에... 다양한 이유로 더 많은 SW 엔지니어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그들 사이에 더 촘촘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탄생하게 되고, 그렇게 생긴 새로운 회사들에서 더 많은 인력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또 늘어난 인력 수요만큼 더 높은 compensation을 지불하는 경쟁이 생기고, 그렇게 오른 페이에 동네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다보니 이에 맞춰 타 지역대비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이러한 순환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부를 향하는 일이 없습니다. IT회사들이 몰려있는 지역도 GTA와 월털루-키치너 지역이고, 임금 수준역시 서부보다 GTA가 높으니까요.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있을지는 몰라도 알버타나 BC의 SW Engineer 평균 임금 데이터를 보면 선뜻 서부로 발을 옮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GO WEST란 국경넘어 따뜻한 남쪽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뿐이죠.

하지만 이 코로나라는 녀석이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락다운으로 인해 강제 digitalization을 택한 기업들이 많아지며 시장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락다운과 국경 통제로 인해 실리콘벨리에서는 예전만큼 해외에서 인력을 모셔오기가 쉽지 않아져 인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재직중인 직원들을 살펴보니 분명 엇그제까지 시에틀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직원들이 하나 둘 씩 미 중부나 남부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100% 리모트 근무인데 구지 말도안되게 비싼 월세를 내면서 단칸방에 살기 보다는 한적한 동네에 넓은 집을 사서 보다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거죠.

그래서일까요? 미국 회사들이 생각을 조금 바꾸기 시작 했습니다. 기왕 리모트 근무를 하는건데 구지 미국 내에서만 인력을 구하지 말고 미국과 같은 타임죤에 비슷한 문화를 가진 캐나다에서 채용을 하는 것이죠. 비록 캐나다 내에 오피스는 없지만 페이와 베네핏 지원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나 중간을 연결해 줄 글로벌 HR 서비스를 이용하면 채용이 가능하니까요.

정확히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제 링크드인 메시지를 기준으로 보면 작년 중순즈음부터 미국 회사의 리크루터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들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현 직장에 만족을 하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무기력증 때문에 구지 이 험란한 시기에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기 싫었으니까요.

한국에서 한창 휴가를 즐기던 올해 초 어느날, 평소같으면 읽지도 않았을 링크드인 메시지를 우연히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메시지를 읽다보니 JD에 제가 현 직장의 일 때문에 관심을 갖고있는 몇가지 키워드들이 보였죠. 그래서 리크루터에게 답장을 보내 한 번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팬더믹 이전에는 이직 생각이 전혀 없어도 일 년에 한두번 정도는 인터뷰를 보곤 했습니다.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제가 고생하고있는 것이나 아직 잘 모르지만 업무상 관심이 떠오르는 내용에 대해 발표한 프레젠터가 있으면 보통 그들과 간단히 대화를 해 보고 그 회사의 그 팀에 지원을 해 봅니다. 인터뷰를 통하면서 그들의 현재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떠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이 어떻게 해 냈는지 조금은 힌트가 될 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그러다가 정말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팀을 만나고, 그들 역시 저에대해 만족하게 된다면 정말 이직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팬더믹 이후 약 2년간 이러한 활동이 전혀 없었기에 우연히 찾아온 이 기회가 오래간만에 스파이 짓을 할 기회라고 생각 됐죠.

그렇게 리크루터와 이야기를 하고, 또 Hiring Manager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팀 내에 엔지니어 중 한 명과 Tech Interview까지 마치면서 제가 알고싶은 내용들을 하나씩 질문하며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점들이 많았기에 이 즈음에서 프로세스 중단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죠. Tech Interview까지 마치고 며칠 후, 리크루터가 축하 한다면서 Virtual On Site 인터뷰로 넘어가자고 연락을 해 옵니다.

진짜 이직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따로 공부가 필요한 on site 인터뷰를 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그래서 사알짝 발을 뺐죠. 그러자 리크루터는 혹시 다른쪽 오퍼를 받은거냐? 우리들의 Total Compensation은 매우 강력한 경쟁력이 있다며 저를 꼬십니다. 하지만 저의 현재 연봉수준이나 저의 희망 연봉 레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보통 캐나다 회사의 리크루터들은 연봉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저의 현 연봉이나 희망 연봉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일절 질문도 안했죠. 나중에 지인께 들은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리크루터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무턱대고 TC에 근자감을 보인 리크루터가 신기하여 levels.fyi, blind 등을 통해서 이 회사의 연봉수준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저의 현재 연봉을 한방에 부끄럽게 만드는 숫자들이였죠. 하지만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회사인만큼 샌프란시스코나 시에틀 쪽에 사는 직원들이 받는 페이니 당연한 결과였죠. 그리고 제가 토론토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각 지역별 적용되는 payscale에 따라 토론토 시장 레인지에 맞춰질 것이고요.

그렇게 동네 탓을 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은 수치가 3 번 보였습니다. 임금 폭발이 일어난 팬더믹 이전의 데이터일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처음 데이터를 열었을 때, latest 순으로 정렬을 시켜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위로 올라가며 그 세명을 찾아보니, 모두 2021년 데이터였습니다. 하지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거주지.

한 명은 Atlanta. 다른 한 명은 Philadelpia.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Toronto. 왓? 토론토?

네 회사 오피스는 실리콘 벨리에 달랑 하나만 있으니 모두 작년에 100% 리모트 조건으로 채용된 사람들이였고, 그들의 거주지역에 맞춘 payscale이 적용되어 남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였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등록한 연봉을 USD to CAD로 변환을 시켜서 보니... 지금 저보다 더 많이 벌고 있었습니다. 특히 토론토로 등록된 분의 YOE는 저보다 훨씬 낮음에도 저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죠.

그 때 부터 levels.fyi를 통해 캐나다 내에 오피스가 없으면서도 Toronto 지역에 임금이 등록된 회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회사에 리모트로 근무하면 적어도 캐나다 현지 연봉 레인지보다 30% 이상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는 순수 연봉만 생각한 것이고 추가로 주어지는 Stock Option까지 생각한다면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상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혹은 이미 상장을 한 회사들의 숫자에서도 캐나다 대비 압도적으로 많고, 동시에 직원들에게 주는 주식 수 면에서도 캐나다의 일반적인 회사들보다 높았기에 향후에 추가 수익 실현 가능성과 수익 규모에서도 대부분의 캐나다 회사들과 비교가 어려웠습니다.

어쩐지... 작년부터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 미국 회사로 가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예전에 제 와이프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칩니다.

"사람들이 몰리는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냥 우리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지."

우리 회사도 팬더믹 이후로 폭풍 성장중이였고, 나름 1,000인 미만 작은 회사들 사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페이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친구들이 나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자리를 채울 신규 채용의 속도에서는 유난히 뒤처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저희 팀을 떠난 네 명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로 더 큰 야망을 품으며 미국회사들을 택했던 것인데 저는 혼자 코로나 블루에 빠져 무기력하게 하루 하루 근근히 버티고 살아왔던 것이죠.

가자가자 서부로. 저도 이제 서부로 갑니다. 그런데 캐나다 서부 말고 방향을 남쪽으로 10도 정도 틀어서 미국 서부로 가봅니다.



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가장 무난했던, 격동의? 2020년을 보내며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현재 2020년 12월 31일.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역동적이였던 2020년을 한 번 결산 해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1분기 -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1분기의 시작은 상큼했습니다. 2019년 이직 후에 세웠던 계획들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거나, 이제 각 피쳐 개발팀으로 ownership 이전을 위한 knowledge transfer가 진행중이였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 목표들을 세워 시작하는 타이밍이였죠. 특히나 작년 한 해 동안 빌드/테스트 파이프라인 라이프사이클 시간 감축과 빌드 비용 절감이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였고, 올 해에는 테스트 고도화 및 안정성을 기하려 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코로나 소식이 들렸고 우한 상황을 보니 심상치가 않아 동료들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가 가능하면 온라인 쇼핑이 가능한 알리바바 같은 회사 주식을 왕창 사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주식에 손절한지 10년이되어 주식 살 생각도 안했죠. 일단 사면 마이너스의 손이고, 오르는 상품도 파는 타이밍을 잘 못잡고, 사고난 뒤 너무 타이트하게 관리하느라 제 일을 잘 못하거나, 잠시 잊고 살고자 하면 완전 잊어서 황금주에서 똥주로 바뀌는데 방치해 두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서요.

그러다 어느덧 covid19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때 까지만해도 한국에 사는 가족들이 걱정이였지 제 걱정은 안했는데... 3월이 되어 미국에서, 또 March Break를 맞이하여 유럽에 놀러갔던 수 많은 캐네디언들이 Covid을 가지고 오며 캐나다도 전국 락다운이 시작됩니다.

락다운 이전부터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갈 것 같으니 회사에서는 전원 재택근무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저희 팀에서 관리하던 서비스, 서버들의 보안관련 조치를 취하느라 바빴습니다. 원래 보안상 회사 내부망에서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재택근무 시에는 VPN을 이용해야 하는데, 회사의 VPN이 동시 접속자 200여명 정도만 사용 가능한데 직원 수는 이미 600명 가까이 늘어났으니 감당할 수 없었죠. 그래서 Google IAP를 통한 인증절차를 거치도록 급히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연말 셧다운 직전 개인 Innovation 기간동안 IAP를 좀 가지고 놀아보아 어렵지않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죠.

이 때 마지막 출근날 팀원들과 어떻게 원격에서 일을 할 것인지 짧은 미팅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경제 불황이 올 수도 있고 불황 뒤에는 이에대한 보상으로 큰 주가 반등이 있을테니 주식을 잘 보라고... 그리고 당장 투자한다면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관련 주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주식, 혹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엔터주에 투자를 하라고 말 했죠. 역시나 저는 주식 1주도 안샀습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출퇴근 통근시간이 사라져 하루에 2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습니다. 날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시기라 틈만나면 BBQ에 소주/맥주를 마셔가며 잘 놀며 지냈죠.




2분기 - 동트기 전 새벽? 최악의 암흑기

재택근무 체제로 저희 팀 시스템들을 죄다 변경한 이후 주변 팀들에도 비슷한 변경사항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나니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회사 벌크업을 위해 투자를 받아 적자운영을 하고있었는데, 글로벌 팬더믹으로 향후 2년은 추가 투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2-3년 이상 회사가 지속 생존을 하며 버티려면 어느정도는 레이오프가 필요하다는 CEO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합니다. 캐나다에와서 살아온 지난 7년간 살림살이가 점점 커지며 돈 나갈 구멍들도 점점 더 커졌는데, 갑자기 돈줄이 막히면 하루하루가 막막해질 것 같았죠. 실제 레이오프 발표를 하니 예상보다는 소규모였지만, 2-3주 정도 되었던 그 기간동안은 너무나도 심리적 압박이 심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저는 당시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양한 과민반응을 보였으며 최대한 운동과 술, 음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적지않은 수의 동료들은 그 기간동안 미리 살길을 마련하기위해 이곳저곳 인터뷰를 많이 봤던 모양입니다. 5-6월이 되자 적지않은 동료들이 다른 회사들로 이직을 해서 떠나갔죠.

오랜 락다운과 제한적인 생활에 지쳤고 재택근무 환경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여, 레이오프 예고 이후 떨어진 집중력은 다시 올라오지 못하여 평소대비 절반 정도? 혹은 그 미만의 효율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대한 야외 활동으로 해소 했습니다. 주 2-3회씩 자전거를 타고 토론토나 나이아가라에 다녀오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살았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면 혼자 다니기 심심해서 이렇게까지 엶심히 라이딩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동네에 맘 맞는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3분기 - 희망의 싹

이 일은 정확히는 2분기 말에 일어난 일이지만 공식화 된 것은 7월달이기에 3분기에 포함시킵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제가 진급을 했습니다.

제가 진급 요청을 한 적도 없었고 올 해 들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특히나 6-7월은 퍼포먼스 리뷰 및 진급을 하는 시기도 아니여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매니져가 저를 진급 시켜주었습니다.

진급과 연봉 상승시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역으로 제가 압박을 당하여 이에대해 마음을 비우고 살자고 생각하고 있어서 진급을 하니 그만큼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직장생활 중에 보너스와 진급만큼 기쁜 일이 또 없다보니 생각없이 그저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사알짝 희망의 씨앗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특히나 날씨는 점점 캐나다 최고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이라 아직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빼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세상은 원하는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죠? 제가 믿고 의지하던, 저와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와 함께 팀을 셋업했던 매니져가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 친구도 역시 회사 레이오프가 발표났을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가 잊고 살았는데, 그 때 넣었던 이력서 중 하나가 지금서 연락이 와서 채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봐도 워낙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 더 나은 포지션이기에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죠.

이 친구가 회사를 떠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집니다. 당장 매니져도 공석이다보니 제가 팀을 리드해야 하는데, 리드를 할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고... 이럴 때 일 수록 더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 했는데, 더 수렁에 빠지게 되며 희망의 싹이 보이다가 다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팀원의 이직이라는 큰 행사??? 덕분에 거의 반년만에 팀원들과 face to face로 만나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4분기 - 나는 태릉인?

3분기까지 술과 고기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제 체중이 인생 최고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체중이 불어난 것 자체는 좋은데 그로인한 무기력증과 나태함이 극에달아 다이어트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체중이 부는 와중에도 웨이트는 꾸준히 하여 운동은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운동량을 늘리고 제한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 목표는 40살 생일 (21년 2월) 전에 30살 생일에 측정했던 저의 체중으로 복귀를 하되, 당시의 저 보다 더 건강한 몸 (낮은 체지방, 높은 근육량)이며, 이를 측정하기위한 방법으로는 복근이 보이는 몸으로 정했죠.

이 때 부터 저의 주식은 닭 가슴살 (삶은것 까진 못하겠고 구이) + 고구마 or 떡 + 야채볶음 이였습니다. 주 5일은 이렇게 먹고 주말에는 치팅을 하는 식이였죠.



운동은 오전에 웨이트 2-2.5시간, 오후에 부트캠프 식의 유산소 및 코어운동 1시간을 했습니다. 간간히 아이들 운동을 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같이 줄넘기 1000개 및 동네 달리기도 했죠.

늘어난 운동량 덕분인지 보다 깔끔해진 식사 덕분인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자 하루에 600-800g씩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말에 탄수화물 폭탄 흡입 및 음주를 하여 주말 이틀동안 3Kg 정도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몇달간 프로그램을 지속해 보니 각 주차별로 최소 500g이상 체중이 감소하면서 두달 동안 10Kg 감량에 성공하게 되었죠.

이 때에도 저와 자전거를 탔던 친구가 다시 등장하는데, 제가 먼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 그 친구도 합류하여 일부 운동프로그램은 그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헬스는 '고립'이다 라고 하지만, 근육만 고립시키고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지 않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연말 - D.L. Disabled List & 동료애

점점 태릉인화 되가던 저는 11월 말이 되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11월 20일 금요일.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닭가슴 살을 꺼내 구우려 하는데 무언가 뱃속에 잔변이 남은 느낌이 들고 불편하여 식사를 거릅니다. 저녁이 되자 약간의 위통까지 생겨 체한 것이라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고 소량의 죽으로 식사를 했죠. 밤이되자 위통은 더 심해져 손을 따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위통은 점점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21일 새벽 2시 경에 잠든 아내를 깨워 응급실을 향합니다.

수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나자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MRI 검사를 했고 맹장염 확진을 받습니다.

결국 21일 밤 11시에 맹장염 수술을 받게 되었죠.

수술 후 깨어나 22일 오전, 집도의를 만났더니 맹장염이 심해져 맹장이 터지면서 복막염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맹장염의 경우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는데, 복막염의 경우 염증이 우려되어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에 이를 알리니 HR에서 연락이 와서 회사 보험사에 연락하여 Short-term disability를 신청하고 개인휴가가 아닌 단기장애로 인한 유급 휴직으로 하라고 말해주더군요.

결국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첨부하여 보험사에 단기장애를 신청하고 12월 중순까지 회복을 위한 유급 휴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만 해도 강력만 모르핀의 진통효과로 인해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해 12월 중순까지 휴직이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입원실에만 하루종일 머무르니 심심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퇴원해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 진통제가 몰핀에서 타이레놀과 에드빌로 변경되자 왜 의사가 12월 중순 이후에 복직을 하라고 정한지 알겠더군요. 덕분에 12월 중순까지 푹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병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제 다이어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닷세간의 기간 동안 제가 먹는 음식이라고는 커피 + 물 + 쥬스 두 잔 + 젤리가 전부였습니다. 식단명이 유동식 (fluid)인데 한국처럼 죽 같은 음식이 없어서인지 이것도 음식이라고.... 이걸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입원기간 중에는 단백질 부족 및 운동부족으로 인한 감량 (근손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다이어트 목표가 체중 감량 뿐이라면 문제가 아닐텐데... 복근이 보여야 할텐데 체중은 줄면서 체지방은 늘어난다면 점점 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니까요. 또 복부에 수술을 해서인지 우측 복횡근과 복직근 쪽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제 배는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걱정이 더했죠.

하지만 퇴원 후에 체중을 재보니... 왠걸? 입원 전 (11월 20일) 아침에 계체량보다 4-5Kg가량 늘어나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계속해서 맞은 수액으로 인해 체내 수분량이 늘어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때 부터는 제 계획이 점점 현실성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12월 초 퇴원 후 부터 12월 말 까지는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이후 빠른 회복을 위해 홈짐 꾸미기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더구나 12월 말 부터 다시 4주간 락다운을 하여 gym이 문을 닫는다하니 더욱 다급하게 했죠.

스텝박스를 사고, 가변중량 덤벨과 로잉머신도 사고, 스미스머신 까지는 살 용기가 없어서 엘라스틱 밴드를 샀습니다.

다행히 12월 말 부터는 어느정도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계획했던 수준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gym에서처럼 고중량을 다룰 수는 없다보니 근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긴 합니다. 락다운 직전에 gym에 두세차례 갈 수 있었는데, 하체의 경우에는 입원 전에 들던 무게의 2/3도 들기 버겁더군요.

이렇게 부상 회복을 하는 와중에 제 본업은 어땠을까요?

단기장애 휴직 이후에 복직을하니 하루는 회사 전체 연말 이벤트, 다른 하루는 개발팀 이벤트, 그리고 또 팀 내 연말 이벤트로 삼일 정도를 그냥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주일 정도가 남게 되었고 연초에 미리 계획해 둔 개인 Innovation Day를 보내며 회사 일을 하지 않고 개인 연구를 했습니다. 말이 개인연구지, 올 해에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푹 쉬었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내년 new year day까지는 회사 연말 셧다운이라 근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12월에는 3일정도 실제 근무를 했으나, 그나마 그 근무일들도 다양한 회사 이벤트들 덕분에 거의 놀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죠.

아, 12월 중순에 수술 후 복직을 하면서 우리 팀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직 후 첫 날 첫 아침 stand up 미팅을 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집이 아닌 길거리에서 화상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뭐지??? 하면서 미팅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 배경에 잡히는 모습이 왠지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경에 저희 집 드라이브웨이의 인터라킹과 같은 패턴이 잡힙니다.

"딩동"

뭐... 뭐야?

팀원들이 저희 집에 누가 온 것 같다며 빨리 현관으로 나가 보라고 합니다. 복직은 했지만 아직 복부 통증때문에 뛸 수는 없던 저는 천천히 걸어서 1층으로 올라가 현관 문을 열어봅니다. 이런... 이 녀석 저희 집 앞에 있었던거에요.

"힘든 시기에 수술까지 하면서 더 힘들었을텐데,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맙고 입원 중에도 이것저것 슬랙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알려줘서 고마워. 연말이기도 하고, 큰 일을 겪어낸 것을 축하하려고 팀에서 돈을 모아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라면서 이 녀석을 건내는군요.


양주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비싼 술을 잘 안마시다보니 잘 몰랐는데, 나름 $100불 정도 하는 술이더군요. 이제 팀원이라봐야 3명 뿐인데... ㅠㅠ 짜식들 돈 많이 썼네요.

수술 후 복귀하는 사람에게 줄 만한 선물은 아니긴 하지만 누가뭐래도 정말 고맙웠습니다.

덕분에 올 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는 값비싼 위스키도 마셔 보았습니다. :)


이렇게 2020년 올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진급했다는 것 외에 아무 일이 없었던 해이며, 전 세계적으로, 제 개인의 심리적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한 해 였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심리상태와 집중력을 되찾아 다시 열심히 일하는 둥이아빠가 되길 바래봅니다.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직장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이벤트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Covid19 덕분에 저는 평소보다 조금은 텐션이 내려간 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루틴에서 오는 안정감을 즐기면서도 그 루틴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지금의 생활이 이와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죠.

Covid19이 터지고 처음 2주 정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스 때 처럼 길어야 한 두 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재택근무라는 형태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또, 그 때만 해도 gym이 문을 열었기에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 시간으로 옮겨서 하루에 1-2시간 정도 하던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각 2시간 씩 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확정까지는 아니지만 3월 말이면 진급이 될 예정이였기에, 집에서 어떻게 파티를 할 까 즐거운 상상을 했었죠.
작은 문제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보니 non-verbal communication에 의존도가 남모르게 높았던 편인데, 각종 커뮤니케이션들이 화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보다 더 앞에 나서기 힘들었고 주변에 진행상황들을 이전보다 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gym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레이오프 계획 발표가 나면서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는 마당에 진급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만족을 누리던 운동이 모두 중단되었는데, 내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생겼으니까요.

다행히 레이오프의 규모가 처음 예상보다 작았고, 그 비수가 저와 저희 팀을 비껴나가기는 했지만 한 번 떨어진 텐션은 좀처럼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Covid19은 이전 전염병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장기간 진행될 것이 확실해지며, 어쩔 수 없이 6월에 계획한 여행도 취소를 하고나니 정신적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초반에는 작은 문제였던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죠. 초반 몇 주 정도는 이미 제가 잘 알고있는 context를 기반으로 회의가 진행되어 그 이후의 업데이트들에 대해 조금씩 놓치는 정도였는데, 몇 달이 지나고나니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면서 팀을 기술적으로 리드해야하는 입장임에도 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누가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까지 하는 깜깜이가 되어버린 것이죠.
결과적으로 제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의 생산력은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 중에 집중력 자체도 많이 떨어졌고, 저희 팀의 진행상황과 주변 팀의 근황에 대해 깜깜이가 되면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제대로 된 일을 하는데 그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짓을 하곤 했죠.

5월이 되어 캐나다 내에서 확진자 증가추세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는 다시 출퇴근 모드로 전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고,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면 출퇴근을 하고싶고 재택근무는 주 1-2회 정도 제한적으로 하고 싶다고 답변을 했죠. 하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계획은 최소 연말까지는 전원 재택근무를 하고, 내년 즈음부터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순환 출근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더군요. 예를들어서 A 팀은 매 주 월요일날 오전에 출근을 하여 다 같이 모여 회의와 업무를 보고, B 팀은 매 주 월요일 오후, C 팀은 화요일 오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 생활을 하다가는 심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아침마다 아이들과 러닝을 시작했고, 낮에는 같이 줄넘기, 오후에는 자전거 타기나 산책을 하면서 돌파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저의 몸을 이끌고 유산소를 하기에는 버겁고 힘들어서 잘 맞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 몸 보다 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내리는 것이 저와는 잘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거나 뛰거나 걸으며 동네를 돌다보면 요즘 실내외 공사는 초극 성수기인 것 같습니다. 다들 어디 여행이나 캠핑을 갈 수 없어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집 공사를 정말 많이 벌이고 있더군요. 손재주가 있으신 분들은 나무나 돌로 뒷마당 데크 공사를 직접 하시기도 하고, 저처럼 손재주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업체를 불러 가드닝, 인테리어, 데크, 팬스 공사를 정말 많이 합니다. 공사중인 업체 사람에게 물어보니 요즘 주문이 밀려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올 해에는 예약이 빈 틈 없이 꽉 차있다고 하네요. 저도 기분전환을 위해 무언가 하나 하고싶은 맘이 있지만 아무래도 자금의 압박이 있다보니 작은 것 부터 하나씩 직접 해 보려고 하고 있죠.

근황 내용이 좀 길었는데, 저는 이렇게 슬기롭지 못한 social distancing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제 업무시간이 다 끝나가는 오후 4시 30분경, 매니져가 quick call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늦게 저희 팀이 관리하는 infrastructure 중 하나가 말썽의 소지가 있어서 제가 손을 봤는데, 행여나 그 쪽에 문제가 터진 것이 아닐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화상전화를 시작 했습니다.


"3월달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얘기했던 진급도 회사 차원에서 전부 취소되서 참 미안하다. 그런데! 그런데,"


매니져가 먼저 3월달에 covid19이 터진 것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행여 레이오프 규모가 충분치 못해 2차 레이오프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바짝 긴장을 했죠.


"내가 회사에서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하면 그 때 너를 진급시키겠다고 했자나. But I am liar."


왓!!! 하반기에도 진급 프로세스가 없는 것일까? 아님 정말 최악의 메시지인 레이오프인 것인가?


"아무래도 네 진급을 다음 진급 프로세스 기간까지 미루는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를 에스컬레이션 했고, 위에서도 다 okay해서 넌 오늘부로 진급이야."


"진짜? 나 진급을 위한 문서 작성한거 없는데?"


"지난번에 네가 쓴 draft 기반으로 내가 따로 준비하고 있었어. 어차피 그 동안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기에 리뷰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정식 프로세스가 아니라 될지 안될지 확실하지 않아서 너에게 따로 뭘 요구하지 않은거야. 지난번처럼 또 취소되면 괜히 안좋을 것 같아서 나 혼자 했지. 축하해. 정말 축하해."


"와... 고맙다. 요즘 들은 소식중 제일 기쁜 소식이네."


"HR에서 따로 갱신 계약서 보낼꺼야. 네가 거기에 사인을 거부하지 않는한 넌 오늘부터 진급이다. 그리고 사인을 해서 보낸다면 다음 달 부터 갱신된 연봉을 받을텐데, 진급 시점을 6월 1일부터 진급으로 소급 적용하는거라 다음 월급에 돈이 좀 더 많이 들어올꺼야. 계속 그 금액이라고 착각하면 안되."


"오케이"


"아, 그런데 회사 진급 프로세스가 취소된 상태라 네 진급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을꺼야.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되고 진급자들이 나오면 그들하고 다 같이 발표될꺼야. 괜찮지?"


"괜찮지. 그러면 진급 사실을 숨겨야 하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구지 숨길 필요는 없어. 축하하고, 너만 괜찮다면 팀 내에는 내가 알릴께."


"당연히 완전히 당근 괜찮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잘하게 발생하는 즐거운 일들은 목표한 계획을 완수하고 끝냈을 때가 될 것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발생하는 즐거움은 아무래도 임금인상과 진급이 되겠죠.

진급을 하면 할 수록 늘어가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지만, 이미 제가 하고있는 일과 그 스트레스 레벨이 다음 직급 수준이라면 구지 타이틀을 바꾸고 임금을 올리는데 주저 할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직책이나 직급상 리드 타이틀은 분명 아닌데, 제가 이직을 하면서 팀을 셋업했고 팀원들 중 가장 seniority가 높다보니 알게모르게 리드롤을 맡고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최대한 외면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 시스템에서 저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고, 좀 더 넓고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생겼을테니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도 다음 주 휴가기간 까지는 지금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잠시 relax 할 것입니다.



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레이오프 폭풍 탈출 후

안넝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작년 9월, 하반기 고과평가 기간 직전에 제 매니져가 1 on 1 미팅을 하며 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넌 왜 승진 요청을 안하니?"



'승진을 요청한다고??? 승진은 그냥 실력 되고 성과 증명해서 때가되면 하는거 아닌가?'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조금 당황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포지션에 대한 제 생각을 말 했습니다.

"내가 매니져를 하고 싶어한다거나 그런 것 처럼 다른 롤이 하고싶다면 몰라도, 난 포지션 자체는 별로 관심 없어."

"그래? 하지만 자신의 롤에 맞는 정당한 포지션을 받아야지"

"포지션이 뭐가 되었건, 내가 하고있는 롤이 있고, 난 그 롤이 좋아. 타이틀이 롤에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별로 상관 없어"

"하지만 너의 타이틀이 네 공헌도를 충분히 반영해 주어야 하고 걸맞는 타이틀을 줌으로 해서 너의 실력과 성과를 respect 해야 해."

"I don't care my title is respecting my contribution or not,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 whatever it is."

"I'm not sure do you want promotion or not, but I will put you on promotion program next April. I insist it unless you seriously against it."



당시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프로모션을 요청해야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참 눈치도 느린 저는 승진은 때가 되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했었죠.

전 직장에서 매니져와 이것저것 현재 회사 운영/관리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우연치않게 제 직급이 이야기가 나와서 왜 난 아직도 타이틀이 그대로인지 살짝 짜증섞인 항의투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곧바로 다음 평가에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두어달 만에 이직을 했기에 실제 승진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승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저것 관리/운영을 두고 논쟁을 하다보니 심각하진 않았지만 살짝 서운했던 것이 어쩌다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이죠.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던 이유는 타이틀 변경이 없어도 제 연봉은 꼬박꼬박 원하는 수준 이상 잘 오르고 있었고, 타이틀과 무관하게 제가 하는 롤이 있었고 그 롤에 맞게 사내에서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직 후 새 직장의 새 매니져가 왜 승진요청을 안하는지 저에게 먼저 반문을 하자 캐나다 직장문화에서는 승진도 스스로 찾아먹어야 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네요.

매니져와 1:1이 끝난 후에는 매니져가 반년 뒤에는 그 이야기를 잊길 바라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습니다. 직장인에게는 일종의 훈장같은 것이라 승진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괜한 완장의 무게라고나 할까요? 특히나 커뮤니케이션에 단점이 크기에 타이틀 상으로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가이드 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매니져에게 말 한 것과 같이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라고 생각했기에, 평생 지금 타이틀에 머물며 지금처럼 필요에 따라서만 앞에 나서서 돌격대, 선봉장, 행동대장 정도의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뒤에 물러나 조용히 제 일만 하면서 제 기여도에 맞춰 임금이나 보너스, 베네핏 등의 인상을 하면서 타이틀에 따른 의무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자 했었죠.

하지만 작년 10월 평가가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현 직장은 job title이 바뀌지 않으면 임금 변화가 없었습니다. 진급이 되지않으면서 임금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사팀에서 매해 조사하는 시장 평균과 우리 회사 연봉수준과 차이가 있을 경우에 일괄적으로 올리는 예외적인 경우 뿐이였습니다. 아... 고용 계약서에도 있는 내용인데, 이 중요한 것을 그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죠.

타이틀이 뭐건 임금만 쭉쭉 올리면 된다는 생각이였는데, 임금을 올리려면 결국 진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더 벌기위한 진급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올 2월에 매니져가 제 진급 이야기를 다시 꺼냈을 때에는 'thank you'라고 애둘러 승낙 의사를 표시 했습니다.

자리의 무게에 대한 고민은 오래 했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나니 바뀌는 타이틀에 대한 괜한 기대감과 흥분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더 오를 연봉에 즐거웠어요.


그리고 한창 진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모으고 작성하려고 하는데, Covid-19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가격리 기간인 2주, 길어야 한 달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 한 달 후에 다시 출근을 했을 때엔 진급 심사 절차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훈장을 받아 더욱 더 즐겁게 일 할 것이라고 예상 했었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캐나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며 지속적으로 비지니스를 운영할 수 있는 IT 회사이지만 우리의 고객들은 그렇지 못해 대다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리니 우리의 매출과 소득이 줄게되었고, 전세계 시장이 얼어버리니 IT 캐피탈 시장 역시 모두 동결이 되어버려 우리 역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향후 2년 정도는 캐피탈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투자자들의 의견이였죠.

결국 약 2주 전에 향후 시장이 다시 풀리게 될 24개월 후 까지 회사를 유지시키기 위한 당장 비용절감을 해야만 하며 향후 2주간 모든 분야에서 비용절감 계획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IT 회사에서 비용절감이라는 것이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 외에는 머릿수 줄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임금 삭감도 방법일 수 있지만 이는 유능한 인재를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오기에 선택지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했기에 결국 그 발표는 레이오프를 하겠다는 발표일 수 밖에 없었죠.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 대외비를 조건으로 전 직원에게 미리 알린 것 자체는 칭찬받을 일이기는 했지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저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퍼포먼스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메트릭 상으로는 분명 퍼포먼스가 떨어졌음에도 새벽중에도 한밤중에도 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흔적들 역시 보였습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장의 비용절감 필요성 발표 직전에 사나흘이면 끝날 것이라고 계획했던 업무가 거의 2주간 붙잡고 있었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놀고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녘에 일찍 일을 시작해서 저녁식사 후 잠시 휴식을 가지고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했음에도 전혀 진전이 없었죠.

발표 이후 이렇게 저 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적지않은 동요가 일어났고, 이후 개발팀 전체 미팅을 하면서 저희 팀 내에 더 큰 동요가 있었습니다. 개발팀장이 레이오프 기준이 될 만한 몇가지 데이터 중 하나로 seniority를 예로 들어서 말했는데, 저희 팀 팀원들 중 절반은 경력 3년 미만의 신입들이였기 때문입니다. 24개월 후를 기약하며 그간 비지니스 성장은 못하더라도 충분히 내실을 다지고 향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개발자가 더욱 더 중요하고, 시장이 다시 성장 추세로 변했을 때에는 seniority가 높은 개발자들을 구하는 것이 더욱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였는데, 하필 그 많은 기준들 중 이 한가지만 언급을 하여 팀원들 중 절반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실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그들 뿐 아니라 모든 개개인이 그러했습니다. 한 팀원은 캐나다에 온지 갓 2년정도 되었고 아직 신분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도 아닌데다 아내는 아직도 인도에서 건너오지 못해 2년째 홀아비 생활 중인데, 이제 아내의 가족동반 비자문제가 거의 해결되어 올 2월달에 콘도 렌트와 차량 구매를 시작했고, 올 해 5월에 입국 예정인 아내를 맞기 위해 하나씩 가구들을 들여놓으며 준비중이였죠.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아내의 입국은 기약없이 연기 된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레이오프가 된다면, 신분도 문제고 이제 갓 시작한 차량 할부금에 콘도렌트 2년 계약 등 머리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사실 남 걱정 할 것이 아니고 저도 제 나름대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제가 이 회사로 이직한 이유도 제가 할 일이 회사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일이였기 때문인데, 회사의 규모가 오히려 뒷걸음질 칠 마당에 제가 과연 필요할까에 대해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죠. 차라리 당장 제품 기능 개발팀으로 들어가도 자신의 연봉만큼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신입들이 저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 했습니다. 또, 기준 중 하나로 Seniority가 언급된 것에 대해서도 '아... 작년에 그냥 진급 했으면, 좀 더 안전했을텐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죠.

이렇게 하루하루 팀원들 걱정과 제 자신 걱정에 불안해 하다가도, 남은 2주간 나를 더 잘 드러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진전시키지 못하며 패닉에 빠져있어 나와 내 팀원들을 더 사지로 몰고있다는 죄책감까지 겪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떨리는 2주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레이오프 발표가 났습니다. 다행히 저와 제 팀원들은 실직의 비수에서 벗어났지만, 제 팀 상위의 팀 조직 전체로는 20%가 조금 넘는 레이오프가 발생 했습니다. 레이오프 대상자들에게는 그 날 아침 개별 통보 및 면담이 이뤄졌다고 하고, 오후에 남은 직원들을 모아 따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더라도 팀원들과 인사할 수 있게 메일을 보내거나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이전에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것 같네요.

저희 팀에 살수가 미치지 못 한 이유 중 하나가 현재보다 더 폭넓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오프 공포에 빠지기 직전에 저희 팀의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심각성과 중요성, 긴급성이 높다고 보였으며 우리 팀에서 이에대한 솔루션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하기로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주간 제가 패닉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와중에 저희 팀 신입 중 한 명이 이 일을 멋지게 해내며 저희 팀의 가치와 가능성에 마지막 방점을 찍어 준 것입니다. 덕분에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앞으로 저희 팀에서 몇몇 업무들을 더 가져오며 업무 영역도 더 넓어지며 거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져 올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오히려 그 친구가 해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꼭 큰 사고를 하나씩 터트려 주는 우리 팀원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지금까지 일 한 팀들 중 가장 최고의 팀입니다. (비용절감 예정 발표 직후에도 이 말을 팀원들에게 했었죠.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인사를 못 할 수도 있으니까요)


레이오프 공식 통보 및 발표 이후에 지난 2주간 모든 직원들이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니 잠시 심신을 추스리라며 지난 금요일 1일간 전체 무급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주말 내에 지난 2주간 제가 진척시키지 못한 일들을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심기일전 해보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블랙베리처럼 여러 차례 레이오프를 하며 모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이 바닥을 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한 이번 한번으로 끝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거나 너무 장기화되어 앞으로 2년이 아닌 더욱 더 긴 기간동안 불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 번 레이오프 바람이 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신차려서 잘 이겨나가야하고, 다음에 이런 위기가 다시 닥치게 된다면 이번처럼 혼자 패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