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일 수요일

목표를 꼭 다 이룰 필요는 없자나?, 조금은 다른 문화

오늘은 오래간만에 제 신변잡기적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매년 6월은 각 팀의 매니져들이 매우 바쁜 시기 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fiscal year (회계년도)는 매 년 9월 1일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8월 31일에 끝이 납니다. 즉 2016년 9월 1일은 2017 회계년도의 시작이죠. 그리고 이 회계년도에 맞추어 각 임직원 개개인의 평가와 연봉 협상이 이뤄지게 되다보니 6월에서 7월 사이에 각 팀의 매니져들은 각 팀원 개개인의 업무 평가와 함께 각 팀원과 평가 결과에 대한 미팅, 그리고 협상을 하게 되고, 7월 말 경에는 각 임직원들이 HR과 연봉 및 benefit 등에 대해 최종 담판을 짓게 됩니다.

평가는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가 있고, 개인 목표 달성도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개인 목표 달성의 정도는 보너스에 연결이 됩니다.

저는 이 개인 목표 중 10%의 가중치로 사내 기술 프레젠테이션을 정했는데, 이런 저런 사유로 인해 준비해 오던 강연 내용이 3차례 변경을 거치면서 due date인 5월 말일까지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 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 있듯, Victoria Day long weekend기간을 포함해 월말에 준비를 마무리 짓고, 5월 마지막 주차에 강연을 하려고 했었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6월 1일 현재 저는 이 강연을 실행하지 못했고, 결국 2016년도 업무목표의 일부를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차피 다 부질없는 핑계이지만, long weekend 기간 몇 일 전에 대형 긴급 고객 이슈가 한 건이 유럽/아메리카/아시아 등 거의 전 세계에 걸쳐 터졌고,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weekend 직전인 금요일에 저도 하던 일을 중단하고 문제 분석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 담당자도 아니고, 저희 팀이 담당 팀도 아니였지만, 상황이 어찌어찌 제가 리드하는 것 처럼 흘러가버려 연휴 기간동안 회사에 와서 테스트 폰도 챙겨오고, 집에서 이런저런 테스트도 하고, 검증도 하고, 매일 저녁이면 삼성전자와 컨퍼런스 콜을 하느라고 연휴 기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연휴 이후에도 며칠간 본 건에 대한 추가 분석과 리포팅을 하고, 고객 대응 매뉴얼 작성을 돕고, 또 매일 밤이면 한국과 컨퍼런스 콜을 하느라 개인 업무목표에는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 위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공식적인 개인 업무 목표의 일부임에도 이루지 못 하게 될 것 같아 속이 타들어 가던 중, 다른 팀원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저희 팀 대부분의 개발자들 역시 비중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사내 기술 프레젠테이션을 올 해 목표 중 일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하려 노력 해 보아도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지난 일년 동안 이를 수행한 기억이 없더군요. 그래서 저랑 같이 카풀을 하는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습니다.

"너 Lunch & Learn 강연 준비 다 했니?"

"나? 주제는 생각 했는데, 그냥 안하려고."

"너 그거 올 해 업무목표 아니야? 난 비중 10%인데... 보너스는 받아야지"

"나도 10%야. 근데 나머지 90% 달성하면 90%는 인정 받는거니까 보너스의 90%는 받는거지나. 그래서 보너스의 10%를 위해 내 시간을 낼 만한 가치가 없을 것 같아 안하려고."

"그런데... 말이 10%지, 안하면 보너스가 더 큰 가중치로 줄어들지 않겠어?"

"그러면 말이 안되지. 개인 목표는 전부 측정 가능한 (measurable) 목표로 정했고 각 목표마다 비중이 있는건데, 10%를 못 이루었다고 해서 나머지 90%가 영향을 받으면 부당한거지."

"I agree, but I am still concerning unaccomplished 10%. It's what I supposed to do."

"Feel free for minor things. You deserve to get another 90% bonus. And is's not what you should do. It's just optional for bonus."



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제 마인드 셋에서는 선뜻 수긍이 가지않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사내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은 다른 팀원들에게도 시간이 날 때 마다 넌지시 질문을 던져 봤는데, 다들 비슷한 대답을 했습니다. 
회사 업무나 제품, 프로젝트와 연관된 것도 아니고, 필수적인 것도 아닌데, 그냥 10% 정도는 포기를 하겠다는 것이죠.

그 동안 한국에서 일하면서 체득하여 알고있는 바로는 몇몇 지시사항이나 설정된 목표에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 한 상황이 오는 경우, 특히나 이번 건 처럼 무언가 하기로 약속했지만 전혀 수행되지 못한 경우에는 연간 목표에서 가중치가 5%라도 저의 성과 평가와 역량 평가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쳐 상위 고과를 받는데 작지않은 걸림돌이 됩니다. 심지어 저의 정의된 R&R을 벗어나고, 평가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 범위에 속하지도 않지만, 상사의 개인적인 관심과 호기심에 진행하는 조사/수행/문서작성 등등에서 상사를 만족시키지 못 할 경우에는 오히려 더 큰 감점 요인이 되었죠. 심지어 신입 사원 때 부서 총무 역할을 하면서, 회식이나 단합대회를 재미있게 이끌지 못한 것이 영향을 주는 경우도 가끔 봤었죠.

그래서 중요한 일이건, 사소한 일이건, 긴급한 일이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이건, 저에게 할당된 모든 일들은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해야만 한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근무 문화는 확실히 한국과 다르긴 한 것 같습니다.

10% 정도의 비중을 가진 개인적인 목표라면, 자신의 개인적 삶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직원들이 많고, 또 회사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10%에 대한 미달은 10% 한도 내에서만 평가를 하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문화는 기획/개발 단계에서도 많이 느낍니다.
한국에서 어떤 개발방법론을 쓰건, 사실상 water fall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영향을 받습니다.
Agile을 한다고 하며 가장 중요한 steak holder인 '사장님'의 평가와 보고가 반복이 되고, 사장님 지시사항 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저런 요구사항들이 계속 추가가 됩니다. 그리고 당초 기획에서 생각하던 제품의 핵심 기능은 빠지게 되더라도, '사장님 지시사항'으로 설정된 요구사항은 강화되면 강화되지 약화되거나 삭제되는 경우가 거의 없죠.
여기서도 major 버젼 발행 시 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key feature들이 있고, 여러 task들 중 해당 key feature관련 task들을 비교적 높은 우선순위로 설정하여 feature freeze 전에 위 조건을 만족 시키려고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scrum 방식으로 진행을 하면서 해당 key feature는 의미있는 작은 스토리로 분할이 되어 개발하다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나 지연이 발생 할 경우 지금까지 개발 된 스토리 까지만 릴리즈 됩니다. feature freeze를 1~2 스프린트 정도 남겨 둔 상황에서 개발팀에 푸시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feature freeze 전 까지 마지막 한 두개 정도의 스토리가 완성되지 않았고, 그 스토리들이 구현되지 않을 경우 해당 feature의 의미가 크게 퇴색될 경우 관련 기능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재시키고 릴리즈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고요.

모든 것을 다 붙잡고 나아길 수만 있다면 그래도 좋지만, 그러기 힘들다면 놓을 수 있는 것은 놓고가는 각 개개인들의 자세와 그러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근무 문화... 논리적으로 맞아 보이기도 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달성하지 못한 10%가 저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걱정되네요.

언제쯤 되면 저도 상대적으로 소소한 것 들에 대해서는 feel free 할 수 있을까요???

댓글 3개:

  1. 애독자로써 또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합리적인 직장 및 사회 문화가 참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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