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올해 연봉 협상시 사용한 주요 실적 중 세번째 내용을 적어볼까 합니다.
사실 이 성과는 6월에 발생한 건으로 이번 연봉 협상에 제 실적으로 반영이 될 내용은 아니기에, 본인 스스로 작성하는 self evaluation에는 그 내용을 직접 언급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의 기억과 느낌은 아무래도 최근의 이벤트들이 좀 더 강렬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연초 흥행작보다 연말 흥행작이 대종상이나 아카데미 시상식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 처럼 말이죠. 그래서 제 스스로 문서상 기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몇 번 언급은 될 수 밖에 없었고 연봉 결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6월 어느 날, 지난 삼성 이슈에서 같이 일했던 OEM Relationship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보안 이슈 때문에 MDM App의 인증 과정 중 크리티컬 한 프로세스 하나가 긴급히 변경 될 것이고, 변경될 모델 범위는 러프하게 잡아도 Galaxy S3 이후 모든 단말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였죠. 그리고 올 해 8월부터 시작될 펌웨어 변경 이후에는 기존 당사의 MDM 앱들은 업데이트 된 단말에서 사용 불가능하기에 재 발행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였습니다.
매우 중요한 이슈이고, 저희 같은 B2B 서비스 회사 입장에서는 5년 전 SW 버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고객들도 있는 상황이기에 광범위하고 긴급하게 대응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재발행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간 저희 빌드 머신이 수차례 변경을 거치면서 솔직한 말로 3년 이전의 SW들을 현 머신에서 이전과 동일하게 빌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수백개의 버젼들을 8월까지 재 검증을 하기에도 역시나 물리적인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으며, 삼성 펌웨어 업그레이드 이후 동작 상황에 대한 검증과 펌웨어 업글 이전에 우리의 사전대응으로 인한 새로 발행된 동일 버젼이 업글 이전 단말에서 동작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도 미지수였습니다.
삼성 입장에서 보안상 이슈로 상세한 이야기를 다 풀어놓지 못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파트너사의 입장에서는 대응 방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어떻게 변경되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데, 이를 알지 못해 오리무중에 빠진 안타까운 상황이였죠.
이슈 자체가 크리티컬 한 만큼, 당장 CEO 포함 주요 개발/검증 담당자에게 삼성의 공문을 첨부한 메일이 날아갔고, 각 시니어 개발자들은 문서 + 추정을 통한 분석을 내놓기 바빴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삼성에서 배운 기술을 써 먹었습니다.
개발을 떠나 서비스 기획을 담당하면서 스스로 느낀 것은, 내가 무엇인가 알아야 할 신규 분야나 서비스가 있을 경우, 문서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 보다는 단 한 번이라도 직접 써봐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09년, 처음 개발에서 기획으로 직군을 옮기고 나서, SNS라는 것이 너무나도 생소 하고, 주변에 사용자가 아무도 없을 때, 페북이나 트위터, MySpace, LinkedIn 계정을 만들고 부서 사람들 끼리 각 SNS 채널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블로그나, 싸이월드 등과는 어떻게 다르고 이 기능들을 어떻게 폰과 잘 어우러지게 할 수 있을지 연구 했었습니다.
애플의 iTunes 서비스나, Netflix, Hulu, Spotify를 연구 할 때에도 구글링이나 컨설팅 자료만을 찾아보지 않고, 회사에서 별도의 지원은 없었지만 제 개인 해외 계정을 만들고 해외 VPN 서비스를 구매해서 직접 이런 저런 컨텐츠들을 구입해보고 이용 해 보면서 어떠한 장점과 단점들이 있고 우리는 어떻게 서비스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이용해 보았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고객이나 파트너사 미팅 시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고있는 그들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예측할 수 있고, 또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우선 공문 내용과 각 시니어들의 의견들을 먼저 읽어 본 후에, 삼성에서 보내온 샘플 app 패키지들을 직접 단말에 설치해 보기도 하고, 패키지 압축을 풀어서 파일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기도 하고, 바이너리 파일 비교, jar 파일 리버스 엔지니어링 등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비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비교를 해 보니 어느정도 답이 보였습니다.
그 날 저녁 퇴근 전에 현재까지 상황에 대한 내부 공유를 위해 메일로 제 분석 내용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어 알지 못하는 궁금증들에 대해 다시 한 번 '한국어 네이티브'라는 강점을 살려 한국에 전화하여 물어보기 시작 했습니다. 기획 일을 하면서 개발팀 책임/수석님들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할 지 종종 경험을 해 보았기에 삼성의 보안사항을 제외하고 기술적으로 어떤 변경이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었죠.
밤 늦은 시간 수 차례 통화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제가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 해 보니, 우리 입장에서 현재 서비스에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각 영향 별로 어떤 대응방안 옵션들이 있는지, 그리고 각 옵션들의 장단점은 무었인지 얼추 그림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에서 기획할 때 했던대로, 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변경되었고, 각 변경사항 마다, 우리의 각 MDM 버젼별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적었고, 다음 열에는 각 영향들 마다 우리는 어떤 대응 옵션들이 있는지를 적고, 다시 그 다음 열에는 각 대응 옵션들 마다 장점과 단점은 무었인지 적었고,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의견상 어떤 옵션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를 기술 했습니다.
사실 튀기 위해서 이렇게 분석을 하고 메일을 작성한 것은 아니였고, 아무래도 수 년간 삼성에서 익혔던 근무 방식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장 크리티컬했던 반응은, CEO의 땡큐 레터였습니다. CEO는 땡큐 레터를 작성하면서 원래 mail thread에 없었던, 개발팀 시니어 메니져를 포함 시키더군요. 사실 제 팀 개발 매니져가 저의 연봉을 산정하여 상신을 하지만, 최종 결정은 개발팀의 시니어 매니져가 HR에서 사전에 정한 개발팀 내 총 샐러리캡과 가이드 내에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시니어 매니져가 담당하는 업무 영역이 안드로이드와는 크게 관련있지 않은 편이였고, 저와 직접적으로 같이 일 한 적 또한 없었죠. 그렇기에, 저와 메니져간 협의로 다시 한 번 조정된 연봉에 대해 시니어 매니져가 거절을 하거나, 2차/3차 조정이라는 단계를 거칠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시니어 매니져의 머리 속에 제 이름 역시 남기게 되어, 이번 연봉 협상에서 저와 제 직속 매니져간 협의된 결과에 대해 단칼에 승인을 하는 쿨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실 직접 써보고 만져보고 느껴야 한다는 것은 문서 자체나, 영어로 작성된 웹 상의 다양한 컨텐츠들에 대한 이해도 부족과, 그렇게 글로 배운 'OOO'은 제 머릿 속에 잘 저장되어 남아있지 않아 시작하게 된 버릇입니다. 하지만 수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제 삶에 도움을 주는군요.
제가 개발을 떠나 적성에 맞지 않는 커리어로 너무나 큰 고민과 고뇌에 빠져있을 때, 제 와이프가 저에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싫은 일을 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 돈은 나만 벌어도 되니까 벤쳐를 가건 중소기업을 가건 하고 싶은 일을 해. 하지만 지금 이 일이 너무 가치없다고는 생각하지는 마. 사람이 하는 모든 경험은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마련이야."
당시에는 제가 하는 일이 너무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모든 일 하나하나가 가치없고 그저 힘들기만 하다고 느꼈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해" 부분을 제외하면 와이프의 조언을 크게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와이프의 말이 모두 맞았습니다.
자의건 타의건 당시에 갖게 된 '문서로만 배우지 말아라' 라는 습관과 비교/분석 표 작성, 그리고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의견 개진의 기술은 역시나 수 년이 지난 후 캐나다에서 빛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모토로라와 삼성 x 2, 이 세 가지 이슈 덕분에 올 해 연봉협상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봉 협상이 끝난 후 매니져가 내년에 저에게는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리드하는 롤을 기대한다며, 상품화 가능한 많은 의견과 기술들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 해 보고, 서버 개발쪽에서도 올해 안드로이드에서 한 것과 동등한 수준의 역량을 기대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올 한 해 이 세 건의 사건 해결로 인해 올라간 저의 연봉 만큼이나 저에대한 회사의 기대치 역시 높여 놓았습니다.
내년 연봉 협상의 전략과 카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부담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2 주간의 휴가 기간 동안에는 이번에 마무리 된 성과 평가 및 연봉 협상 결과의 기쁨을 만끽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