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일 월요일

일상으로의 복귀

안녕하세요. 7월 중순부터 어제까지 약 2주 조금 넘게 휴가차 한국에 다녀 왔습니다.

사실 어지간해서는 구지 한국에 휴가로 가고싶지는 않았지만, 정리해야 할 것들도 있고, 장인어른/장모님이 아이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시기도 했고, 또 아이들이 커 갈수록 한국에 들르기 점점 더 힘들어 질 것 같아 기회가 되고, 아직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남아 있을 때 쓰자는 생각으로 약 3년만에 한국에 다녀 왔습니다.

전에는 출장으로 매 달 한번 이상 가던 인천공항인데, 휴가차 인천 공항에 내리니 뭔가 다르더군요. 그 전에는 "이제 집이다." 라는 생각에 마음도 편안하고 좋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편안함도 없고, 이국적인 분위기와 색다른 여행에 대한 설렘도 없어서 오래간만에 친구들과 가족들을 본다는 기대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첫 번째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 짐을 풀고 평일이 찾아와, 급한 은행과 관공서 업무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발품을 팔고 다니며 좋았던 점들은,

  1. 택시비가 매우매우 저렴하다
  2. 버스/지하철 노선이 거미줄보다 더 촘촘하게 되어있음에도 정말정말정말정말 싸다
  3. 외식비가 매우매우매우 저렴하다
  4. 돌아다니다 목이 말라 주변을 돌아보면 지천에 널린 것이 편의점과 카페다
  5. 주점은 그 보다 더 많다!
  6. 사전 약속을 잡지 않고 갔음에도 은행과 관공서의 대기시간이 짧은 편이고 매우 친절하다
  7. 주민센터(구 동사무소) 건물이 무지하게 멋지고 크다!!!
  8. 주민센터 내에서 매우 다양한 무료 (혹은 저렴한) 강좌들이 매일 제공된다!



이렇게 다시 익숙한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다시 안좋은 일들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서 주민센터까지 거리는 약 2Km로 걸어서 갈 만한 거리인데다, 하천변 산책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기에, 휴가기간 중 부족한 운동량을 조금이라도 채워 볼 요량으로 도보로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한바탕 싸움, 혹은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딱 위 사진의 지점이였는데요. 횡단보도 신호를 받아 길을 건넌 후 위 사진 왼쪽의 교통 섬에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건너는 중이였습니다. 40~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회전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고, 안전을 위해 저는 건너기 전 그 운전자와 눈을 맞췄습니다. 분명 그 운전자도 저를 쳐다봤고요.
그래서 저는 이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고 1/3 정도 지점에 왔을 때 쯤, 가속 패달을 밟은 엔진 광음과 함께 크락션 소리를 듣고 우측을 쳐다 봤습니다. 그런데 저와 눈이 마주쳤던 그 액티온 차량 운전자가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죽고싶냐며 욕을 하며 달려오고 있더군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아슬아슬하게 차를 피했습니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그 차를 쫒아 뛰어갔지만 멀어져 가는 욕지거리 소리만 들릴 뿐 따라 잡을 수는 없었죠.

허허 참... 제가 무단횡단을 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보행자가 우선인 횡단보도에서 저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분명 충분히 먼 거리에서부터 눈이 마주쳤으면서 저를 보자마자 오히려 가속패달을 밟으며 저 보다 먼저 지나가려 하다니...

휴가 시작부터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긴 했지만, 그 날 이후로 왠만해서는 도보 이동을 삼가하기 시작 했고, 아이들과 어디 나갈 때에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하며 길을 건넜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런 보행 습관에 다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전형적인 한국의 여름 날씨가 시작 되었습니다.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사우나가 된 것 처럼 습하고 끈끈하고 더운 날씨가 밤낮을 가리지 않았죠. 캐나다에서는 온타리오 남부가 호수들 때문에 습도가 높아 여름에 끈적끈적하다고들 말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매우 뽀송뽀송한 날씨죠.

며칠간 급한 일들을 먼저 정리한 후, 낮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추억을 남기기 위한 수도권 인근 여행을 다녔고, 저녁에는 친구들, 옛 은사님, 친지 등을 만나러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한국에 살 때에도 수도권에 살았지만, 성향상 서울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오래간만에 서울 이곳 저곳을 누볐는데, 이제는 양평, 용문산, 춘천까지 지하철로 갈 수 있어서 참 편하고 또 놀랍더군요. 뭐... 차량 안에 승객들을 보니 8할 이상은 노년층 무임승차 대상자로 보여 아마도 적자노선일듯 했지만, 어쨋건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참 편했습니다.

또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전화가 필요해 선불유심을 구매 했는데, 정말 전화요금이 저렴하더군요. 캐나다 요금을 생각해서 선불유심을 살 때, 5만원 정도를 충전하고, 500MB 정도 선불 데이터를 별도로 구매하려고 했는데, 대리점 사장님이 일단 3만원만 충전해도 될 것이라고 말리더군요. 나중에 추가 충전도 가능하니 일단 그 말을 따랐는데, 결국 2주간 지내면서 3만원 중 1만원도 채 다 쓰지 않았습니다.
통화를 많이 하지 않기는 했지만, 나름 길을 찾고, 맛집 검색을 하고, 버스 노선을 찾는 등 적지않게 데이터를 쓴 것 같은데 실제사용 요금은 얼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한국이지만, 다음 휴가에는 다시 한국으로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 가자고 말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지 않다면요.
귀향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저의 일상이 있는 곳이 아닌지라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천공항에서 캐나다로 가는 출국 비행기를 탔을 때 오히려 집에 간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들었습니다. 또, 저에게는 이국적이거나 신비롭고 새로운 곳이 아닌지라 설레임이 없었구요. 그리고 분명 휴가 기간임에도, 제가 오랜 기간 살아온 곳이라서 그런지 제 자신이 나태하게 사는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특히 매일 아침 한강 고수부지나 하천변 산책로에 러닝을 하러 갈 때 마다 출근길에 오르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나 길 막히기 전에 출근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래도 되나?"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한국/한국인에 대한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서라도 5~6년에 한 번 정도는 한국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아니였지만 이번에 한국 여행을 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아이들과 함께 한글 공부를 하면서 'ㄱ'으로 시작하는 단어들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국기'라는 단어가 나와 국기를 그리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태극기가 아닌 캐나다 국기를 바로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뭔지 모를 서운함을 느낀 것도 한 몫을 했거든요.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나도 더웠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제가 미리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하지 못 해, 대중 교통으로만 이동한다는 제약이 있었기에, 고궁이나 민속촌, 박물관 같은 곳은 건너뛰었지만, 다음 번에는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철에 한국에 와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 한 곳과 함께 한국의 역사와 색깔을 보여주는 곳 들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2주라는 시간이 썩 길지 못해 만나고 싶은 모든 분들을 뵙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잡초제거/집안청소/잔디깎기 등 집안일들과 수백통의 회사 이메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운동부족 + 과식 + 과음이 데리고 온 새로운 살 3.2Kg이 "빨리 저를 빼 주세요" 라고 소리치고 있네요.

이번 한 주 동안은 밀린 집안일과 회사일을 처리하느라 바쁠 듯 하고, 8월 한 달(혹은 그 이상)은 의도하지 않게 구매한 3.2Kg의 새로운 뱃살들을 반품하느라 바쁘게 지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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