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

안녕하세요.

한국은 오늘까지 특별휴일 - 추석 - 개천절 - 한글날로 이어지는 10일간의 연휴로 알고있는데, 캐나다도 오늘까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이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연휴 기간을 보통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정말 특정한 날이 중요한 경우, 예를들어서 캐나다의 개천절 쯤 되는 7월 1일 Canada Day나 12월 25일 Christmas, 1월 1일 New Year Day 같은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휴일이 "xx월 n번째 월요일"와 같이 지정이 되어있어 항상 연휴가 되기에, 일반적인 주말보다 더 길어서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긴 것인가를 보자면, 그냥 주말보다 조금 깁니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과 같이 3일씩 되는 휴일이 없이 모두 단 하루만 휴일이기에 토일월 3일 휴일이 되는 것이지요.

Christmas가 주말을 끼고 있다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도 Boxing Day 휴일이기에 운이 정말 좋다면 4일간의 연휴가 이론상 가능하기도 하고, 바로 올해가 그렇게 4일 연휴가 만들어지는 해 입니다.

한국의 추석이 올 한 해동안 농작물의 수확에 감사드리고 조상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명절인데, 사실 추수감사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Long weekend기간동안 Family re-union이 이뤄집니다. 부모님의 집 등 가족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편한 제 3의 휴양지나 다른 곳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다른 휴일들의 경우 각자 자신의 가족 (부모 + 자녀)이 함께 이곳 저곳 놀러가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만큼은 이들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 추석의 대표 음식이 송편이라면 여기는 모두들 아시듯 커다란 칠면조를 오븐에 구운 요리를 먹습니다. 10여년 전 벤쿠버에서 유학중일때, 저도 친구들과 함께 명절 기분을 내보고자 마트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칠면조를 사서 오븐에 구워본 적이 있는데, 다시는 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칠면조는 몸통이 워낙 커서 굽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겉 표면이 타지 않도록 칠면조를 구우면서 발생하는 기름을 계속 칠면조에 부워가며 구워주어야 해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리며, 또 손이 많이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그다지 맛있지 않은데 그 양이 어마어마 합니다. 결국 칠면조 한 번 구운 덕에 이후 거의 1달동안 4명의 유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칠면조 샌드위치였다는 슬픈 전설이...

그 음식이 무엇이 되었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 뜻 깊은 시간일텐데,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힘든 이민자들은 Thanksgiving에 무엇을 할까요?

저의 기억력은 좋지 않지만 IT 기술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구글포토도, 페이스북도 몇 년전 오늘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제 기억을 되살려 주네요.

캐나다로 건너온 후 첫 추수감사절에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했었네요.


첫 추수감사절 여행을 간 호텔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서 머물며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을 즐기러 갔었죠. 위 사진만으로는 참 조용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을 것 같지만, 당시의 일기를 보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에 흔들리며 어려웠던 그 때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이 납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본인도 어렵고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를 위해서라도, 또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힐링을 하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 했었습니다. 아직 차가 없던 시기라 차량 렌트도 해놓고, 비싸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을 갔다는 기분은 적어도 낼 만한 지역과 숙소를 찾아 예약하면서도, 지난 10개월간 단 돈 1센트도 벌어본 적이 없는 가장이 무책임하게 이런 소비를 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했던 흔적도 보이고, 여행 중에도 스스로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이 작은 실수 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당겨 쓸데없이 아이들을 혼내놓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고...

사진첩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차있긴 하지만, 셀카봉으로 찍은 가족 사진 중 한 장에는 아빠의 감정조절 실패로 쓸데없이 잔뜩 혼나 주눅이 들은 아이들과 함께 억지 웃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 다음 해 추수감사절을 사진을 통해 돌아보니 별다른 여행은 하지않았고, 새로 이사 온 동네 탐방에 나섰었네요. 동네 주변 farm에서 열리는 Thanksgiving 페스티벌과, 동네 올드타운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을 했었네요.
Oakville 추수감사절 행사

뭐 이벤트라고 해봐야 대단한건 아니고 올드타운 시내를 한바퀴 도는 마차를 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전년과 달리 사진 속 저와 아내의 표정에 근심이 보이지 않고, 소소한 페스티벌과 행사이지만 그 자리를 즐기고 있군요.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생활과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때라, 휴일 이후 학교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고, 잔뜩 혼난 후 억지웃음 지으며 찍은 사진도 없네요. 첫 추수감사절 long weekend와는 달리 신분과 일자리와 또 살 곳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 여러모로 근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마지막 날 월요일, 밤에 아이들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면서 "양가 부모님들이 이런 명절 때라도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남겼군요.

이후 Thanks giving은 계속 비슷한 것 같습니다. Long weekend 성수기인지라 구지 비싼 숙소를 예약하기 보다는, 인근 Provincial Park나 Conservation Area를 찾아가 트래킹도 하고, 월말의 할로윈을 대비해 pumpkin carving을 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찾아가는 정도로요.

현지 사람들처럼 Thanksgiving이 되었다고 비행기나 기차나 차를 타고 먼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가족을 향해 떠나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한 것이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가 아닐까 합니다.

올 해 Thanks giving은 그래도 좀 특별합니다. 한국에서 장모님이 와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민을 오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특히 장모님, 장인어른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을 떠날 때에는 정말 약속 된 것도 없고, 뚜렷한 미래도 없는 상태에서 외손주들과 딸을 데리고 떠나는 사위였고, 이후로 저희 가족끼리는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 정도로 정착을 했지만,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고, 또 먼 곳에서 피붙이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을 갖고 살게 했기 때문이지요.

이맘때가 되면 가족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것은 비단 한국인과 캐네디언 뿐만은 아닙니다.

연어 또한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지금이 바로 연어의 회귀 시즌입니다. 그래서 이번 Thanksgiving을 연휴 기간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지금 한창인 연어 회귀를 보러 나갔습니다.


어쩌다보니 한 곳도 아니고 세 곳을 보고왔네요.

토론토 인근에 가장 유명한 Salmon Run watching spot은 Port Hope와 Bowmanville 입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집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있어 가까운 미시사가의 Erindale 공원으로 갔었습니다.

어떤 블로거께서 Port Hope나 Bowmanville은 약간 인공적인 냄새가 가는 관광지의 성격이라면 Erindale Park는 대자연 속의 연어를 볼 수 있다고 한 말 때문이기도 했죠.

사바나의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 사파리 여행을 가면 에버랜드 사파리와는 달리 사자라고는 하루에 한 마리 보면 잘 보는 것입니다. Salmon run 역시도 대자연 속에서 보다보니 한시간에 한마리를 볼까말까 하더군요. 약 45분 가량을 크레딧 강 줄기따라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그 동안 본 연어라고는 낚시꾼이 잡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어가 만약 많다 하여도, 연어가 Jump를 할 만한 낙차구간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강물을 역류하여 오르는 연어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랜 기간동안 고향을 찾아가느라 먹지도 못하고 지친 연어들이 폭포와 같은 낙차구간을 만나게 되었을때 실패해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종족 보존의 본능과 도전정신 등을 일깨워주는 멋진 장면이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공원에서 아침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폭풍 검색을 하여 지난번에 이미 방문한 바 있는 Port Hope말고 새로운 장소인 Bowmanville로 갔습니다.


Bowmanville creek에 들어섰을 때 산책로의 모습과, 작지만 이쁜 계곡물은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또 이른 새벽부터 낚시를 즐기고, 어른 몸통 길이만한 연어를 각자 한 마리씩 들고 나오는 낚시꾼들이 제 아이들에게 서로 질세라 자신이 낚은 연어를 자랑질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가득 차 댐이 있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댐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일단 댐의 규모가 Port Hope보다 작다보니, 댐 밑에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도 작았고 그래서 연어들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Erindale의 Credit river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연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Port Hope에 비하자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고, 연어들의 수가 적다보니 점프를 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없었습니다.

Bowmanville에서는 비교적 연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30분 가량을 Bowmanville에서 보내다가 이미 Durham Region까지 나온 마당에 조금 더 가서 Port Hope까지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Port Hope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Port Hope에 도착하여 Fish Ladder가 있는 곳으로 가니 수 많은 연어, 아니 사람 떼를 만났습니다.

오늘만 생긴 특수한 일인지,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더 유명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Fish Ladder 앞 주차장은 물론, 인근 길가에도 차로 가득 찼더군요. 그래서 먼저 가족들을 내려준 후 몇 번 주변을 빙빙돌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역시 Port Hope는 그 규모면에서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동영상의 첫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댐에서 200-300m 떨어진 하류에 물길이 약간 잔잔한 곳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의 장면이 연출됩니다. 댐 바로 아래 웅덩이에는 물 약간 대부분 고기인 장면이 연출되고요.
물 반 고기 반

이렇게 연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적어도 1 분에 한마리 꼴로는 댐을 거슬러오르기 위해 시도하는 연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어류학자도 아니지만 오늘 하룻동안 세 개의 강을 방문하여 연어가 회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ort Hope에서 댐보다 조금 위 상류부터 강물을 따라 하류까지 아이와 같이 걸어가다가 도중에 지쳐 죽어있는 연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빠, 나 아빠랑 같이 낚시 꼭 해보고 싶은데, 연어 낚시는 안할래요."

"왜? 너 연어 스시 좋아해서 연어 낚시를 해볼까 했는데?"

"강에서 점프하다 돌에 머리 부딛쳐 죽고, 점프 잘못해서 숨 못숴서 죽고, 지쳐서 죽고... 댐에선 올라가려고 계속계속 점프해서 겨우겨오 올라가서 이제 막 알 낳으려는 연어인데, 어떻게 그걸 잡아요?"

한국을 떠나기 전 자주 봤던 뽀로로 덕분에 항상 낚시에 대한 로망이 있던 아이인데, 계속해서 부딛치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연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 하더군요.

확실히 몇 해 전 처음 이 곳을 왔을때 보다는 생각이 더 여물은 것 같습니다. 그 때엔 분명,

"아빠도 낚시 할 줄 알아서 나랑 같이 연어 낚시하면 좋겠어요"

라고 했었거든요.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커나가는 것 같습니다.



2017년 10월 6일 금요일

이민병 환자들을 위한 싸구려 조언

마음의 병 역시 병인지라 육신에 이상이 생긴 것 만큼이나 힘들고 불편하고 아프죠.

대표적인 병으로는 황진이를 사랑하는 바람에 마음에 병이들어 같은 동네 총각을 죽게 했다던 '상사병'이 있을 것이고, 미국 정신의학회에 등록되기까지 한 '화병'도 있을 것이고,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다는 '우을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있고, 또 '이민병'이 있을 것입니다.

이민병이나 상사병이나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망과 목표가 있으나 본인의 의지와 뜻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생기는 병이라는 점과 그 병의 완벽한 치료는 결국 그 목표/욕망을 이룰 때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음의 변화, 혹은 포기로 인해서도 치유가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요.

이전에도 밝힌 바 있듯, 저 역시도 마음의 병인 '이민병'을 한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을 당시, 이 병의 root cause는 work-life balance를 가진 삶을 꿈구는 것이였고, , 나중에는 career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던 시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 첫 포스팅에도 소개가 되어있습니다. 그 때에는 직군 전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은 견딜만한 수준의 work-life balance를 이루며 마음의 상처가 어느정도 보듬어졌고, 또 아이들의 탄생으로 인해 이민을 노릴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게 되자 포기로 이어져 치료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직군을 변경하고 견딜만한 work-life balance를 갖었을 때 입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말이나 휴일 근무가 눈에띄게 줄었으며, 밤늦게 퇴근하는 일은 많았지만 새벽에 퇴근하는 일은 적어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일과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의 관계가 좋았기에 일은 싫어도 사무실이 싫지는 않았으며, 잦은 해외출장이 때로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리프레쉬 역할을 해주기도 했으며, 제 R&R 중 하나가 해외 지법인 상대 교육 및 고객 상대 PT인데, 이 역할은 제 적성에 맞는 영역이다보니 제 병의 수준이 중증은 아니였습니다. 또, 처음 병을 치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갓난아이 둘이 있다보니 한국에서 다진 기반을 모두 포기하고 이국땅으로 향하는 것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죠. 그렇다보니 이민에 지속적인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액션을 취할 만한 단계는 아니였습니다.

반면 나중에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벼랑 끝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에대한 만족도가 낮고, 저의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져 또 다른 직군으로 도전을 했지만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가 되어버렸고, 일에대한 만족도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도, 또 Work-Life Balance도 이전보다 더 안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며, 또 다른 커리어로의 도전과 같은 운신의 폭 역시 더욱 줄어들은 상황이였죠. 결국 이러한 상황은 '이민병'을 재발시켰으며, 더 이상의 선택이 없다고 느꼈기에 이민을 통한 치유를 그 대처 방안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여러분께서 지금 이민병을 앓고 계시고 이런저런 이민 방안을 찾아봐도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왜 발병하게 되었는지 그 root cause를 먼저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인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불안하고 무엇이 만족스럽지 못한지, 또 현재 상황에서 이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불만족과 불안을 해소 할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하시다 보면, 이민보다 더 안정적이고 나은 다른 치유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이민병을 앓고 계시다면, 그 분에게 이런 식의 조언은 하지 않으시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들었을 때에는 그 마음을 보듬아주는 것이 이성적/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성적/논리적 접근은 어느정도 상처가 아물어야 가능하거든요.

이민병의 root cause를 찾아보고 그에 걸맞는 치유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민 외에는 답이 없다면, 이민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어느 나라로 내가 이민을 갈 수 있을지, 그 나라에는 어떤 이민 프로세스가 있으며 나에게 가능한 이민 프로그램은 무었일지, 그 프로그램에 도전 시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성공 가능성을 계산할 때 변수가 될 것들은 무엇인지와 그 변수는 나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 가능한 변수인지 외부 변수인지 등등이 되겠죠.

가장 안좋은 공부 방법은 계속해서 이주공사/유학원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처음 이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가 막막하니, 이주공사, 유학원이나, 이민 유학 박람회에 가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해가 된 이후부터는 가장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는 정보를 공부하시는 것이 좋은데, 바로 목표하는 국가의 이민성 홈페이지입니다.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이민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요구조건, 선발 과정, 선발 기준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밥벌어먹고 살 생각을 하신 마당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생활의 일부가 될 영어 읽기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꼭 이민 정보의 오리지널 소스인 이민성 홈페이지를 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만약 스스로 정확한 정보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잘못된 업체를 만나게 되는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민 자체에 대한 정보와 기준이 확립이 되었다면, 실제 이민자의 생활, 취업 가능성 등등,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잘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익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이민 카페나 블로그, 관련기사, 혹은 모임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겠죠. 만약 해외 생활에 경험이 전혀 없다면 시간을 내어 한번 쯤 목표하는 나라에 직접 탐방을 나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영주권 획득 방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구직자로서 그 나라에서 나의 경쟁력이 무엇일지도 연구를 충분히 해야 하겠고요.


저도 1차 발병 시 당시 목표하던 이민 대상국이였던 호주에 직접 방문을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민이 아닌 다른 치유법을 선택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저의 직군전환과 아이들의 탄생이였지만, 그 이전에 직군전환을 했던 이유는 호주 방문 시 체감한 물가와 함께 다양한 간접경험들을 통해 느낀 리스크의 정도가 직군전환에 따른 리스크보다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선택은 제 커리어를 꼬이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고, 1/2차 치료 모두 악수에 악수를 거듭하는 꼴이 되었지만, 반대로 이민병의 치유 방법으로 이민 실행을 실천하시는 분들 중에 '이민' 자체가 악수 중에 악수인 경우가 되는 케이스도 분명 있습니다. 제 예전 포스팅에도 있지만 이민을 염두하고 캐나다에 오는 한국인은 한 해에 수만명 이지만 실제로 영주권을 받는 한국인은 한 해 평균 많아야 4000명 수준입니다. 4000명 중에는 당연히 캐나다에 오지 않고 아웃랜드로 영주권을 받는 사람들도 포함이 된 수치이고요.

만약 본인이 지금 이민병으로 인해 이민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단계가 되셨다면, 제 블로그 포함 각종 이민관련 카페와 모임, 블로그, 웹사이트 등에 접근을 자제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미 여러분은 이민 프로세스에 대한 숙지가 되어있으며, 본인이 도전하고자 하는 이민 프로그램에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 알고계신 상태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목표하는 이민 프로그램(들)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하여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 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아직 이민을 위한 본격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민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수준이 되면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접근을 자제하게 되지만, 간접 경험 채널인 모임, 카페, 블로그 등은 발걸음을 끊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개가 넘는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또 필력이 좋은 분들이 올리시는 글이라도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게 되죠. 또,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그 목마름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기도 하고, 간접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려해도 각 필자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보여주다보니 항상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매일 올라오는 수십, 수백개의 글 중에서 완전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똑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다른 분들이 새로 공유를 해주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 단계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정보를 긁어모을 단계가 아닙니다. 이미 결심을 했고 액션을 취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본인의 액션에 더욱 주목을 하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기 보다는, 그 몇 시간을 내가 채워나가야 할 것을 채우는데에 조금 더 집중하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이민 신청을 위해서건, 학교 입학을 위해서건, 혹은 이주 후 현지 정착을 위해서건 가장 공통적인 준비요소가 어학실력일텐데, 하루에 수십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는 것 보다는 그 시간에 어학 점수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시는 것이 더욱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 다른 생각과 의견이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 보다 공부에 집중을 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 안정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장기간 이민병 중증 증상에 시달리면서 아직까지 이민 외에 뚜렷한 대안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이민 실천을 위한 명확한 action item도 없거나 있어도 실천을 제대로 못하고 계시면서 줄기차게 웹 검색과 이/유 박람회, 이주공사 세미나 참석을 하고 계시다면 힘드시더라도 당분간 이민과 관련된 정보채널의 접근을 차단하시고 현재 생활에 집중을 해보시면서 이민병이 발생한 root cause가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하시면 새로운 대안이 나오거나, 이민을 위한 진짜 action item을 수립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대안을 찾으시건 이민으로 결정이 나셨건 치유 방법이 보이신다면, action item을 수립하여 바로 행동에 옮기시는 것이 마음의 병을 다스리시는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군대에서 배운 몇 안되는 지혜 중 하나인데, 몸이 바쁘면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이상 이민병 병력을 가져본 바 있는 전 환자의 값 싼 1¢ 조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