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에 이직을 했으니 어느덧 이직 후 2달 반 가량의 시간이 지났고, 처음 3주 교육을 제외하고 업무를 시작한지도 1달 반 정도가 흘러 probation 기간의 절반 정도를 채웠군요.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나름 고민도 있었습니다.
전 직장의 업무와 분위기, 프로세스에 매우 익숙해져서 무엇을 하건 손쉽게 예상이 가능하고 또 해낼 수 있었고, 무언가 문제가 발생해도 구지 확인을 하지 않아도 머릿 속에서 그림이 쉽게 그려졌으며 해결방법 또한 단번에 떠올랐죠.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얼만큼 해 낼 수 있을지 알지 못했고, 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또한 충분하지 못했으며,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치보다 회사에서 너무 높게 가치를 평가 해 주는 것 같아 부담도 있었습니다.
이 부담감으로 인해 교육 기간중 기차로 출퇴근을 하며 새 직장에서 내가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기술들을 온라인 강좌로 계속 배웠고 퇴근 후에 틈 나는 대로 써보며 지냈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죠.
그렇게 업무가 시작되었는데, 저를 채용하면서 새로 팀을 꾸린 것이다보니 더 답답했습니다. 이전의 히스토리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고, 어느 정도의 업무량을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하는 것이 이 팀에대한 기대치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죠.
이렇게 저렇게 좌충우돌하며 1달 반 가량이 지난 지금은 나름의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새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들 중에 분명 저의 기존 경험보다 훨씬 진보된 것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제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도 많지만,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불합리한 것들이나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들 또한 많아서 당장 제가 contribution을 할 수 있는 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저~~~ 위쪽에서 팀을 만들면서 제 팀에게 당장 기대하는 업무들을 알아내고, 제가 찾아낸 개선점들 중에서 당장 제가 뛰어들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여부와 가시적 성과가 나올만한 부분을 위주로 판단하여 업무 우선순위를 정했고 지난 1달 반 동안 열심히 달려봤습니다. 달렸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출퇴근 시간이 곱절이 되어 피로도가 많기도 하고, 이 회사 분위기 자체가 이전 직장에 비해 일을 덜 하는 분위기인지라 저 역시도 분위기에 휩쓸려 늦어도 4-5시에는 보통 퇴근을 했습니다. 이전 직장에는 일을 잘하면서 또 많이하는 친구들이 많아, 제가 그들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 아니였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인정받고 저만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저 역시도 더 열심히 일을 했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친구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서너번 정도 7시 까지 일을 해 본 적이 있는데, 100여명의 개발팀 내에 그 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많아봐야 2-3명 정도였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회사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수다떠는 상황이 많았지, 그 시간까지 일을 하고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확실히 누구와 같이 일을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분위기에 따라 업무 환경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저 혼자 시작한 팀이였지만, 이제는 제 위에 Director도 새로 왔고 갓 UoT를 졸업한 신입사원도 받았고 기존 개발자 중 저희 팀으로 팀을 옮기면서 팀원을 더 충원 했고, 추가 TO 1명을 더 받아내 구인공고도 내어 이제는 점점 용병부대의 모습에서 진정한 팀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마다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거야. 오늘은 더 잘하자"
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좀 더 큰 일을 터트려야 할 것 같은데, 제 스스로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한 일거리가 잡히지 않았고, 그나마 하나 있는 큰 건은 계속해서 외부 문제로 인해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에 제 팀원들과 지금 제 팀과 함께 일했던 다른 동료들로부터 저에대한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받는 피드백인지라 어느정도 입에 바른 소리들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까지 내 입지나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에 솔직히 적지않게 불안했습니다.
하나 둘 포스트 잇에 적은 저에대한 피드백 종이를 가져와 화이트보드에 붙이며 이런저런 사례를 들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비록 입바른 소리라 할 지라도 맘 속에서 눈물이 찡 했습니다.
동료들의 피드백 |
그래도 그 동안 나름 노력하고 고민하며 살아온 것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까지 제 자신에게 너무 너그럽지 못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고, 지금 처럼만 쭈욱 이어나간다면 적어도 누가 날 짜르지는 않겠다 싶어 안도감이 밀려오기도 했죠.
하지만 또 다시 제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위에 나와있는 quite... 한국인 지인들이 이 평가를 듣는다면
"Quite? 네가?"
"반어법인가?"
"내가 모르는 quite의 다른 뜻이 있는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매일 주중에 아침마다 출근을 하면서 저는 외국어에 자신감이 없고 수줍은 영어캠프를 가는 학생으로 돌변을 하기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잘 말하지 않게됩니다. (아니 못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주변을 설득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 저의 롤이다보니 quite라는 것은 치명적 약점 중에 하나일 수 있는데, 전체적 평가 메시지는 긍정적이였지만 저의 단점으로 quite를 직접 언급한 것이 저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이메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활발한 분위기였기에 저 역시도 주로 이메일을 활용했고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는 평가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 회사에서는 주로 대면 대화나 짧은 미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주된 방식이라 저의 부족한 verbal skill이 이전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되어야 영어캠프에 오면 수줍어하는 이 학생이 말문을 트게 될지...
캐나다로 이민이나 이직, 혹은 캐나다에서 취업을 걱정하시는 Software Engineering분야에 계신 분들께 그나마 희망적인 메시지라면, 저 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기술과 어느정도의 운,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만 있다면 캐나다 취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보다는 조금 잘하지만, 제가 이 회사로 이직을 할 때 같이 온 친구들 중 2명이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이 회사에 취업하여 비자를 받고 온 친구들입니다. 한 명은 인도, 다른 한 명은 프랑스 출신으로 인도 친구는 인도인 치고 참 영어를 못하고, 프랑스 친구는 프랑스인 치고 영어를 조금 잘 하는 편이지만, 감히 제가 평가하기에 이 친구들의 영어실력 역시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고 저보다 살짝 잘하는 정도로 무언가 이야기를 할 때 저처럼 버퍼링이 심하게 걸리기도 하며, 영어식 표현이 아닌 모국어식 표현을 영어로 말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도 캐나다에 와서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이곳저곳을 두르려 봤고, 그러다 이 회사를 만나 화상 인터뷰 및 온라인 시험 등등의 절차를 거쳐서 온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하다고는 하기 힘든게 이 친구들의 나이가 이제 20대 후반으로 4-5년 정도의 길지않은 경력이지만, 회사에서 찾고있는 프로파일과 잘 매칭이 되었기에 이렇게 오게된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이야기가 조금 삼천포로 빠졌는데, Manager/Director/Principal Engineer/Team Lead 등의 롤이 아니라면, Software Engineering분야의 취업에서 인맥이나 언어능력은 부가적인 장점을 안겨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크리티컬한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언어가 필수요소가 아니다보니 이민온지 5년이 넘은 지금도 제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에 받은 피드백 덕분에 이번 long weekend에는 잠시 부담감을 떨궈내고 진정한 봄 날씨를 즐기면서 푹 쉬고 충분한 재충전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워 봅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데. 오늘도 어제처럼만 쭉 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