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4일 화요일

Dr. Strange가 되고픈 Hulk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오늘 제목은 Dr. Strange가 되고픈 Hulk라고 뽑아 봤습니다.
Avengers 시리즈를 안보셨으나 조만간 정주행 하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약간의... 아주아주 약간의 영화 스포도 포함되어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어느 한 도시에 헐크가 살고 있습니다.
명석한 머리와 빠른 두뇌회전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어 파고드는 능력은 없지만, 타고난 괴력으로 상대방이 버티지 못할 때 까지 끊임없이 타격을 해서 물리칩니다.
상대방이 공격을 해 오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타고난 힘 만큼이나 덩치와 맷집도 좋아서 어지간히 두드려 맞더라도 그냥 힘으로 밀어부치죠.
말 그대로 만인지적이기에 어마어마한 빌런들이 나오더라도 어벤져스는 이렇게 말 합니다.
"걱정마, 우리에겐 헐크가 있자나."


나름 어벤져스 멤버인 헐크이지만, 그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스스로 헐크의 존재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헐크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브루스 박사는 화가나면 헐크로 변해 무시무시한 괴력을 보이지만, 헐크로 변한 이후에는 피아식별이 안될 만큼 분노 조절이 잘 안되고 스마트하고 똑똑함과는 정 반대의 방법으로 전투를 합니다. 그로인해 때로는 목표는 성취했으나 주변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전투 후 분노가 가라앉아 브루스 박사로 돌아왔을 때엔 찢어진 옷가지들 덕분에 알몸이 되는 부끄러움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자신이 헐크라는 사실이 싫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헐크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납니다. 딱히 힘이 세지도 않고 무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운동 능력이 타고나지도 않지만, 말도 안되는 신기한 재주들을 부리며 정말 마술처럼 신묘하게 적들을 물리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자신이 시키거나 컨트롤하지 않아도 망토가 저절로 날아가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적을 제압하기도 합니다. 신묘한 마법을 부리는 것 뿐 아니라 머리도 아주 좋습니다. 원래 엘리트 의사 출신이니까요. 특히 힘과 기술 그 어떤 것으로도 물리칠 수 없었던 절대 강자인 도르마무를 몰아낼 때엔 기막힌 방법으로 가능성이 없어보였던 거래를 성사시켜 지구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헐크는 그런 닥터 스트레인지가 한없이 부럽습니다. 전투 후 벌거벗을 필요 없이 항상 멋진 망토를 매고있을 수 있고, 무식하게 두드려맞으며 돌격 앞으로를 할 필요가 없이 마법의 힘으로 방패를 만들어 내어 방어하고 공간의 문을 열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도 가능하며, 물리적 공격으로 타격을 입히는 갓이 아니라 다양한 마법으로 적을 공격하여 무찌르기에 덜 힘들어보이고 더 멋져보입니다.
특히나 100대 맞더라도 끝까지 밀어부쳐서 한대만 때리면 그 누구든지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는데, 타노스와 싸우며 힘 대결에서 밀리고, 난생처음 엄청 아프게 두드려 맞은 후 저 먼 곳으로 내팽겨쳐진 이후에는 이전처럼 돌격앞으로를 하기에 겁이 나서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한 번 크게 겁을 먹어서인지 예전엔 분노하기 싫어도 분노해서 헐크로 변신했는데, 이제는 헐크로 변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좀 처럼 변하지 못합니다.
이상 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헐크처럼 타고난 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일을 하는 방식에 비슷함이 있습니다. 낙수물이 돌을 뚫듯이 주어진 문제가 있으면 끊임없이 두드려봅니다. 이것 저것 가능한 경우의 수들을 모조리 두드리다보면 최선의 수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찾아내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일하는 방식이 썩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더 고민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일종의 미래 부채를 만들어내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작은 믿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해 나가며 제가 성장을 해서 어느 순간에는 순리대로 일을 해도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였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 마다, 벽을 만날 때 마다 그 벽이 부서질 때 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렸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인정도 받았고, 덕분에 우리 네 식구가 먹고사는데 큰 문제가 없을만큼의 대접도 받고 있고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무식하게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서 무언가 파고 파고 또 파고, 두드리고 두들려야 할 때에는 가능한 남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밤을 새어 고민을 해보고 다양한 시도 끝에 답을 찾아냈더라도, 남들에게는 순간 번뜩이는 기치를 발휘하여 멋진 마법사 같은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 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죠. 처음에는 어느정도 저의 이러한 포장이 먹히는 듯 했지만, 아무리 숨겨도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제 이미지는 헐크에 가깝게 되어 버렸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시간과 많은 노력이 수반되는 업무 방식이지만, 어느정도 선 까지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분명 오늘도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도 확고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작년에 두 번이나 번아웃을 경험하기고 했고, 회사에 큰 벽이 나올 때 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팀의 믿음 덕분에 저의 도메인이 아는 다른 분야의 문제들이나 모든 경우의 수를 각개격파 해 보기에는 말도안되게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가진 문제들을 맡아 해결해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일은 성사시켜도 제 자신에게 찾아오는 데미지가 적지 않은데 지난 수년간 이렇게 받은 데미지들이 계속 누적이 되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이직 후에 무언가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무한전진 돌파가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 달려들을 만한 꺼리가 있더라도 예전만큼 집중이 되지도 않고, 집중이 되더라도 체력적으로 힘이들어 잠깐 반짝하다 끝나서 곯아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또, 예전처럼 주어진 일만 하면 끝나는 그런 위치도 아니고 다른 팀원들을 이끌기도 하고 새로운 비젼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는데, 불도져 식의 업무 방식으로는 도무지 답이 안나오죠. 예전에 우려했던 미래의 부채가 이제는 정말로 찾아왔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온갖 마법을 부리듯 저도 모든 일들을 auto-magically 해결하고 싶은데 현실에서 저의 법력은 부족하기 그지없으며, 이제는 끊임없이 부딛쳐 보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예전만큼 하기 힘든 다소 지친 헐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이라면 그 동안 불나방처럼 앞뒤 안가리고 다양한 문제들을 항해 돌진하고 부딛치면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미미하더라도 이런저런 것 들을 경험 해 보아 기존 경험을 기반으로 해결 방법을 빨리 찾는 경우도 조금은 잦아졌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를 지구에서 몰아냈을 때 처럼 획기적인 방법으로 game change는 할 수 없더라도 절대 해결 할 방법이 아닌 케이스들을 선험적으로 좀 더 많이 알기에 이전보다는 조금 덜 좌충우돌 해도 답을 찾기도 하죠.
몇 주 전에 아이들과 함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왔습니다. 종종 회사에서 저에게 비유되었던 헐크가 이제는 헐크와 브르스라는 2 명의 분리된 자아에서 헐크의 피지컬과 브루스의 머리가 합쳐진 하나의 자아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좀 더 나은 다음 단계로 발전하길 바라며, 오늘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SW 마법사가 되기를 꿈 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