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여년 전 서부 개척시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노다지의 꿈을 꾸며 서부로 서부로 달려나갔다고 하죠. 21세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가 몸을 담고있는 SW 분야입니다.
흔히 실리콘 벨리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와 그 남부 주변에는 수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리하고있고, 또 그 외에도 새로운 빅테크를 꿈꾸는 수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이 있으며, 실제로 계속해서 새로운 강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기업이 대기업이 되면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미국 내 다양한 지역에 새로운 오피스들을 세우고, 또 다른 나라에도 수 없이 많은 오피스들을 설립하지만 같은 회사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 중 연봉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곳은 뉴욕 맨허턴의 사무실이나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의 사무실 근로자들입니다.
아무래도 현지 생활비와 그 지역의 임금수준이 반영된 결과일 것 같은데, 같은 회사의 같은 포지션이라 할 지라도 지역에 따라 곱절의 차이가 나기도 하죠.
사실 돈이야 생활비에 비례해서 준다 하면, 결국 쓰고 남은 가처분 소득을 비교했을 때엔 어느 지역에서 일을 하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수 많은 SW엔지니어들이 구지 고향을 떠나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는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그 중 다른 하나는 근로 문화라 할 수 있죠.
한국에서 살 때에, 본사와 미국 법인이 힘을 합쳐서 해야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판매/마케팅 법인은 동부 뉴저지에 있고 미국 연구소는 산호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사 개발-기획 인력들과 미국 법인과 연구소 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죠. 한참동안 대화를 하며 때론 다투고 때론 으쌰으쌰 의기투합을 하며 어느덧 저녁 시간을 넘겨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회의를 하려는데, 산호세에서 온 친구가 말을 하더군요
"역시 동부 애들은 너무 불필요하게 터프해. 일은 일이지, 일에 모든걸 걸고 너무 심각하게 한다니까."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회의를하고 오늘 아니면 결론을 짓지 못할 것 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질린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이 좌식... 너 본사 연구소에 와서 두어달만 일 해 봐라. 그래도 밤 10시 즈음엔 퇴근하는 뉴져지 애들이 얼마나 설렁설렁 일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꺼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동부는 좀 딱딱하고 일에 열정적이며, 서부는 좀 더 자유롭고 생활에 열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돈 외에 이러한 근로문화를 찾아 서부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일자리가 많아서, 근로 형태나 문화가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서, 돈을 더 많이 주기에, 다양한 동종업계 사람들과의 교류가 수월하기에... 다양한 이유로 더 많은 SW 엔지니어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그들 사이에 더 촘촘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탄생하게 되고, 그렇게 생긴 새로운 회사들에서 더 많은 인력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또 늘어난 인력 수요만큼 더 높은 compensation을 지불하는 경쟁이 생기고, 그렇게 오른 페이에 동네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다보니 이에 맞춰 타 지역대비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이러한 순환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부를 향하는 일이 없습니다. IT회사들이 몰려있는 지역도 GTA와 월털루-키치너 지역이고, 임금 수준역시 서부보다 GTA가 높으니까요.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있을지는 몰라도 알버타나 BC의 SW Engineer 평균 임금 데이터를 보면 선뜻 서부로 발을 옮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GO WEST란 국경넘어 따뜻한 남쪽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뿐이죠.
하지만 이 코로나라는 녀석이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락다운으로 인해 강제 digitalization을 택한 기업들이 많아지며 시장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락다운과 국경 통제로 인해 실리콘벨리에서는 예전만큼 해외에서 인력을 모셔오기가 쉽지 않아져 인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재직중인 직원들을 살펴보니 분명 엇그제까지 시에틀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직원들이 하나 둘 씩 미 중부나 남부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100% 리모트 근무인데 구지 말도안되게 비싼 월세를 내면서 단칸방에 살기 보다는 한적한 동네에 넓은 집을 사서 보다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거죠.
그래서일까요? 미국 회사들이 생각을 조금 바꾸기 시작 했습니다. 기왕 리모트 근무를 하는건데 구지 미국 내에서만 인력을 구하지 말고 미국과 같은 타임죤에 비슷한 문화를 가진 캐나다에서 채용을 하는 것이죠. 비록 캐나다 내에 오피스는 없지만 페이와 베네핏 지원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나 중간을 연결해 줄 글로벌 HR 서비스를 이용하면 채용이 가능하니까요.
정확히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제 링크드인 메시지를 기준으로 보면 작년 중순즈음부터 미국 회사의 리크루터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들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현 직장에 만족을 하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무기력증 때문에 구지 이 험란한 시기에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기 싫었으니까요.
한국에서 한창 휴가를 즐기던 올해 초 어느날, 평소같으면 읽지도 않았을 링크드인 메시지를 우연히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메시지를 읽다보니 JD에 제가 현 직장의 일 때문에 관심을 갖고있는 몇가지 키워드들이 보였죠. 그래서 리크루터에게 답장을 보내 한 번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팬더믹 이전에는 이직 생각이 전혀 없어도 일 년에 한두번 정도는 인터뷰를 보곤 했습니다.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제가 고생하고있는 것이나 아직 잘 모르지만 업무상 관심이 떠오르는 내용에 대해 발표한 프레젠터가 있으면 보통 그들과 간단히 대화를 해 보고 그 회사의 그 팀에 지원을 해 봅니다. 인터뷰를 통하면서 그들의 현재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떠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이 어떻게 해 냈는지 조금은 힌트가 될 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그러다가 정말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팀을 만나고, 그들 역시 저에대해 만족하게 된다면 정말 이직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팬더믹 이후 약 2년간 이러한 활동이 전혀 없었기에 우연히 찾아온 이 기회가 오래간만에 스파이 짓을 할 기회라고 생각 됐죠.
그렇게 리크루터와 이야기를 하고, 또 Hiring Manager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팀 내에 엔지니어 중 한 명과 Tech Interview까지 마치면서 제가 알고싶은 내용들을 하나씩 질문하며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점들이 많았기에 이 즈음에서 프로세스 중단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죠. Tech Interview까지 마치고 며칠 후, 리크루터가 축하 한다면서 Virtual On Site 인터뷰로 넘어가자고 연락을 해 옵니다.
진짜 이직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따로 공부가 필요한 on site 인터뷰를 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그래서 사알짝 발을 뺐죠. 그러자 리크루터는 혹시 다른쪽 오퍼를 받은거냐? 우리들의 Total Compensation은 매우 강력한 경쟁력이 있다며 저를 꼬십니다. 하지만 저의 현재 연봉수준이나 저의 희망 연봉 레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보통 캐나다 회사의 리크루터들은 연봉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저의 현 연봉이나 희망 연봉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일절 질문도 안했죠. 나중에 지인께 들은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리크루터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무턱대고 TC에 근자감을 보인 리크루터가 신기하여 levels.fyi, blind 등을 통해서 이 회사의 연봉수준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저의 현재 연봉을 한방에 부끄럽게 만드는 숫자들이였죠. 하지만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회사인만큼 샌프란시스코나 시에틀 쪽에 사는 직원들이 받는 페이니 당연한 결과였죠. 그리고 제가 토론토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각 지역별 적용되는 payscale에 따라 토론토 시장 레인지에 맞춰질 것이고요.
그렇게 동네 탓을 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은 수치가 3 번 보였습니다. 임금 폭발이 일어난 팬더믹 이전의 데이터일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처음 데이터를 열었을 때, latest 순으로 정렬을 시켜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위로 올라가며 그 세명을 찾아보니, 모두 2021년 데이터였습니다. 하지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거주지.
한 명은 Atlanta. 다른 한 명은 Philadelpia.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Toronto. 왓? 토론토?
네 회사 오피스는 실리콘 벨리에 달랑 하나만 있으니 모두 작년에 100% 리모트 조건으로 채용된 사람들이였고, 그들의 거주지역에 맞춘 payscale이 적용되어 남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였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등록한 연봉을 USD to CAD로 변환을 시켜서 보니... 지금 저보다 더 많이 벌고 있었습니다. 특히 토론토로 등록된 분의 YOE는 저보다 훨씬 낮음에도 저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죠.
그 때 부터 levels.fyi를 통해 캐나다 내에 오피스가 없으면서도 Toronto 지역에 임금이 등록된 회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회사에 리모트로 근무하면 적어도 캐나다 현지 연봉 레인지보다 30% 이상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는 순수 연봉만 생각한 것이고 추가로 주어지는 Stock Option까지 생각한다면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상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혹은 이미 상장을 한 회사들의 숫자에서도 캐나다 대비 압도적으로 많고, 동시에 직원들에게 주는 주식 수 면에서도 캐나다의 일반적인 회사들보다 높았기에 향후에 추가 수익 실현 가능성과 수익 규모에서도 대부분의 캐나다 회사들과 비교가 어려웠습니다.
어쩐지... 작년부터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 미국 회사로 가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예전에 제 와이프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칩니다.
"사람들이 몰리는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냥 우리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지."
우리 회사도 팬더믹 이후로 폭풍 성장중이였고, 나름 1,000인 미만 작은 회사들 사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페이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친구들이 나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자리를 채울 신규 채용의 속도에서는 유난히 뒤처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저희 팀을 떠난 네 명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로 더 큰 야망을 품으며 미국회사들을 택했던 것인데 저는 혼자 코로나 블루에 빠져 무기력하게 하루 하루 근근히 버티고 살아왔던 것이죠.
가자가자 서부로. 저도 이제 서부로 갑니다. 그런데 캐나다 서부 말고 방향을 남쪽으로 10도 정도 틀어서 미국 서부로 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