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4일 금요일

좋은 매니져, 좋은 친구, 그리고 싫은 동료

전에 여기 매니져가 하는 일이 한국과는 좀 다르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지금 10달 째 같이 일하고 있는 우리 팀 매니져 자랑을 좀 해볼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잦은 이직을 하면 커리어의 단점이지만, 여기에서는 이직이 없으면 오히려 단점이죠. 그런데 그리 좋은 연봉이나 조건이 아님에도 6년째 한 회사에 다니는 분께서 매니져가 너무 좋아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게 뭔 소리인가 했는데, 지금 매니져와 계속 일을 하면서 저도 어느정도 그런 마음이 생기긴 합니다.

부모 잘 만나면 금수저라고 하는데, 저는 여기에 와서 메니져를 잘 만난 개발자이니... 금수저 보다는 금 키보드? 개발자 정도 될 것 같네요.

한국에서 같이 일 한 모든 메니져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회사 생활의 많은 기간을 썩 좋지 못한 메니져와 함께 일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메니져 복이 묵은지가 되어 캐나다에서 한번에 터진 것 같아요.

사실 한국식 매니져도, 서구식 매니져도 서로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제가 함께 일하는 매니져는 양쪽의 장점들이 살짝 섞여있어서 특히나 동양 문화권에 익숙한, 아니 솔직히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저에게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얼마 전 새해를 맞이하여 회사 내에서 조직 및 인력 개편이 있었고, 저는 신규 개발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간 함께 일했던 매니져와 작별을 하게 되었죠.

이 매니져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의 장점들을 나열해 보면 아래 정도 될 것 같네요
- 업무 지시에 명확한 우선 순위가 있음
- 스마트해서 저의 후진 영어도 잘 알아들을 수 있음
- 업무에 대해 책임질 줄 앎
- 자기 식구 챙길 줄 앎
-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음
-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해 인정할 줄 앎
- 감사함을 표시할 때 주저함이 없음
- 업무 뿐 아니라 개인사에 대해서도 충고나 조언을 아끼지 않음
- 충고나 조언은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음
-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있음
- 개인 의식 보다는 팀 의식이 강하나 팀웍을 강요하지 않음
- 팀 의식이 강해서인지 종종 팀빌딩 행사를 하는 것을 좋아함
- 자기 자신과 성과에 대한 포장과 PR을 하지 않아도 팀원의 실력과 성과를 잘 알아서 인정함
- 팀 내 성과에 대해 외부에 잘 알리고 홍보함

원래부터 신규 개발이나 리팩토리 팀에 가고 싶었기에, 팀 변경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막상 매니져가 변경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저를 고용한 것이 이 매니져고, 제가 요청한 적도 없고 규정상 되는 것도 아닌데 먼저 알아서 제 연봉을 올려준 것 역시 이 매니져였고, 이미 친해진데다 같이 일하기 편해서 다른 매니져와 일하는 것은 어떻지 살짝 걱정이 되었죠.

매니져가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며칠 전 팀 동료 중 한명이 아침 일찍 저에게 잠깐 이야기 하자며 부르더군요.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 했지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단점은 험블한 자세다. 동양 문화권과 달리 여기서 겸손하게 굴면 너를 실력이 없는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네 문화에서 살짝 거만하다고 볼 정도로 네 스스로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네가 한 업적들을 외부에 많이 알리고 자랑하고 너의 시간과 리소스를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이 나눠주지 말아라.

그러면서 지금 매니져는 네가 험블하게 굴어도 험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 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으니 새 팀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성장하려면 험블한 자세를 조금은 버리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매니져 복 뿐만 아니라 동료 복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동료만 있는 것은 아니긴 하죠. 조금 인종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지만, 싫은 동료도 역시 있고, 위에 이야기 한 일과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어 적어봅니다.

얼마 전에 인도인 개발자 한 명이 새로 팀에 죠인을 했습니다. 경력은 토론토에서 대학교 다니면서 인도 회사에 프리랜서로 2년 정도 일 한 친구죠.
머리에 터번, 손에는 은인지 스댕인지 철인지 모를 은빛의 팔찌...
저는 시크교인의 복장으로 아는데, 어떤 분들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정도 높은 신분인 사람의 복장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정확히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

어쨌건, 신분 때문인지, 인도 전반적 문화인지, 개인적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거만합니다. 여기에 와서 만났던 많은 인도인 친구들이 모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인도 친구들 중에 조금 거만하고, 자잘한 잔일에는 자기 손을 절대 안대는, 그런 친구들이 많았는데, 새로 온 개발자 역시 좀 거만하고 이상하게 자잘한 일들을 저에게 부탁아닌 부탁을 하더군요.

예를 들어 처음 팀에 합류해서 개발 환경을 설정해야 하기에 관련 매니져가 관련 메뉴얼을 던져 주었는데, 개발환경 설치 시 발생하는 에러 하나하나를 저를 불러 수정하려고 덤벼듭니다. 컴파일 에러나 링크 에러가 생겨도 저를 붙잡고 늘어지고요.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테니 하나 씩 봐줬는데, 왠지 괴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런 단순한 설치 문제 같은것은 구글링 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얼마 전 부터는 무슨 오류가 생겼는지 물어보고, 제가 경험한 적 없으면 구글링 해보라고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저의 큰 오산이였죠. 앞에서 부탁아닌 부탁이라고 말 한 이유가 있는데, 제가 직접 그 친구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 액션을 취하기 전 까지는 제가 무어라 대답을 하건 계속 저에게 말을 합니다.

  "이거 안되", "뭔지 모르겠어", "와서 한번만 봐봐", "너 아는 것일 수도 있자나", "일단 와서 보라니까"...

으아아아... ㅠㅠ

 며칠 전에는 불쑥 제 자리로 찾아와 파일명 하나 불러주고 보라고 합니다.
 파일을 열어보니 제가 몇 달 전에 짠 코드더군요. 여러가지 제약사항들로 인해 그리 깔끔하게 만든 코드는 아니지만, 나름 회사에서 1년째 묵혀오던 문제점을 수정한 코드라 제 새끼나 다름없는 녀석이죠.
 그러더니 저에게 이거 너무 이상하다. 비효율적이다. 디자인 패턴이란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고민 없이 그냥 본능적으로 만든 것 같다. 코드 리딩하기 힘든게 아니라 싫어져서 그러는데 무슨 구조인지 설명을 해 줄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을 물어보더군요.

 속에서 열불이 올랐지만, 제가 그 개발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랬을테니, 누그러트리고 설명을 해주고, 관련 설계 문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도 같이 알려줬습니다.
 나중에 더 화가나는 것은 다른 팀원이 말하길 그 전날 자기에게 찾아와 이거 누가 만든건지 물어보고 가기에 저라고 알려줬다고 하더군요. 으.....................

 그리고 다음 날 스크럼 미팅을 하는데, xxx 모듈이 너무 어지럽고 엉망이라 내가 이거 개선하고 특정 타깃 모델이 아니라 범용적으로 사용 가능한 코드로 바꾸겠다. 이런 코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떠들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런저런 제약사항으로 깔끔하게 만들지 못했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듯, 정말 구조가 복잡하고 어지럽긴 합니다. 원래 깔끔한 구조의 코드였으나, 안드로이드 OS 업글이 되면서 생긴 제약사항 등으로 여러가지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구현된 기능이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프로덕트에 반영하기 전 다른 시니어들과 같이 연구도 많이 해봤고, 코드 리뷰도 2차례나 받아가며 넣은 코드이긴 합니다.

 그래도 정말 무언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개선이 된다면 당연히 좋은 것이기에 그 날 오후 그 친구를 찾아가 어떻게 변경할 것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결국 그 답은... 우리의 원래 코드와 유사한 구조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할 경우 어떤 문제들이 있었고, 각각의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 어떤 코드들이 생겨난 것인지 설명을 다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답은.

  "원래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일 와서 봐봐. 내가 다 고쳐놓을께."

 이런 respect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녀석 같으니... 그래도 지금 코드가 제 새끼지만 무언가 항상 불안한 내 새끼인지라 정말 방법이 있다면 한번 고쳐 보자는 생각으로 놔뒀죠.
그렇게 지금 1주일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까지 커밋한 코드도 없고 별다른 말도 없습니다. 아마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스크럼 미팅 때 갑자기 또 다른 화두를 던지는 것을 보니, 이건 조용히 혼자 포기하고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흉 볼 만한 일은 아니지만, 팀에 갓 합류해서 마땅히 한 일도 없으면서 자기 치적 자랑은 엄청 잘합니다. 어떤 면에선 그런 그들의 모습이 조금 부러울 때도 있죠.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자기과시 사례도 있었죠.
 제가 옆 동료 코드를 리뷰해주고 있었는데, 그 인도 친구가 지나가다 보면서 옆에서 한가지 훈수를 두더군요. "이렇게 하면 더 좋을꺼야, 그게 더 좋을것 같으니 그렇게 바꿔"
 그러더니 팀 미팅에서 자기가 한 일 중에 하나라 어떤 어떤 모듈 가독성과 성능 개선에 대해 자기가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라고 자기가 한 일 중 하나로 이야기 하더군요.
 일단 그 친구는 코드리뷰를 할 수 있는 권한자도 아니고, 제안 사항 중 하나는 method명 노테이션 법칙에 대한 것인데, 그 친구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내 노테이션 룰에는 맞지 않았고, 다른 제안 역시도 if else에서 비교 컨디션 순서인데, negative comparison은 지양한다는 룰이 있기에 positive comparison으로 먼저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걸 알려줬었죠.

 안그래도 이 친구가 유독 저를 붙잡고 늘어지는 일들이 많아 뭐가 문제인가 혼자 궁금하던 차에 팀 동료가 "험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귀에 확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사람이 어찌 그리 쉽게 변하겠습니까. 더구나 제가 겸손하고 싶어서 겸손하다기 보다는 자기 PR을 하고 치장을 할 만큼의 언어 실력도 부족하고, 딱 개발자로의 업무 외에 다른 일은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성격이라 바꾸고 싶어도 바뀌지는 않네요. 그나마 좋은 소식은 신규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기면 이 인도 친구와는 멀어진다는 사실. ㅎㅎ

 글을 쓰던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네요.

 제가 속할 팀과 다른 팀의 매니져가 서로 스왑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오게 되는 새 매니져가 저의 지금 매니져입니다.
 ㅎㅎㅎ 오늘 아침에 매니져와 서로 덕담 주고받으며 작별 인사 메일 교환했는데, 상황이 좀 우습게 되었네요 ㅋㅋㅋ


아직까지는 제 매니져 복이 끊기지 않고 계속 가려나 봅니다.

댓글 1개:

  1. 와 인복이 있으시군요! 마지막에 반전까지!! ㅋㅋ 매니저 분 장점 써주신거 보니 정말 좋은 상사같아요. 저도 회사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싶네요! 그 싫은 동료분은 정말 잘난척대마왕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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