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9일 일요일

난 어떻게 취업이 된걸까???

처음 회사에 입사를 하고나서 3개월의 probationary 기간의 쫄깃한 긴장감을 겪고있었던 시절, 저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근데 왜 내가 취업이 된거지?"

영주권을 받고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일을 잘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당장 실력이 좋아 가자마자 잘 할 자신이 있던것은 전혀 아니지만, 수 년 전에 제가 해왔던 개발자 세포 하나하나가 빠른 시일 내에 깨어나며 언젠가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이였죠.

하지만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 저를 돌아봐도 경력은 있으나 이미 5년 전 경력이고, 그렇다고 해도 그리 긴 경력도 아니고 4년 남짓의 경력일 뿐이고, 무엇보다 제가 해왔던 업무나 분야와 비슷한 직종은 찾기 힘들기에, 새로운 언어와 개발환경에서 일을 해야하는 것이 뻔했죠.

그러면 결국 엔트리레벨로 입사를 해야하는 상황일텐데, 엔트리레벨로 다른 경쟁자와 비교하자면 당장 컬리지 졸업도 안한 재학생인지라 처음 이력서를 작성하고 여기 저기 돌릴 때 부터 속으로 "안되겠지? 그래도 한 두번이라도 면접 걸리면 나중에 경험이 될테니 좀 해보자. 누가 알아? 이러다 덜컥 되버리면 좋은거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첫 구직에는 오랜시간이 걸린다는 많은 분들의 이야기 때문에 제 스스로 방어기재가 작동해서 자기 방어와 최면을 거는 것일수도 있죠.

그러다 처음으로 면접 기회를 잡은 곳이 지금 회사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면접 당일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면접 전부터 지원 포지션 상세설명을 잘 읽지않고 잘못 지원했던 포지션이였고, 전화 통화로 진행했던 스크리닝 인터뷰 때 전혀 경력도 없는 Java쪽인 안드로이드 개발 포지션도 제안 받았으며, 막상 면접에 도착해서는 제가 안드로이드와 Java쪽으로는 정말 쑥맥이였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만 하고 나오는 면접이였습니다.

진짜 마지막 VP 면접에서 VP가 같이 일하자고 말하기 전까지는 속으로 계속 눈물만 흘리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이미 답은 다 정해진 것 같은데, 여기 더 이상 남아서 인터뷰 볼 필요가 있나? 
그래 맘을 비우자. 처음부터 경험삼아 해보는거였자나. 괜히 욕심 부려서 맘만 상하지 말자. 
경험삼아 보는거니까 일단 계속 남아있자... 
면접 할 때 물어보나 하나하나 다 기억해두고 적어두고 나중엔 이런거 다 공부 한 다음에 면접보자.
그런데 집에는 뭐라고 말해야하지???"

그렇게 너무나도 운이좋게 직장을 구해서 일을 시작했고, 처음 일을 시작하며 Java라는 언어와 요즘의 개발환경, 그리고 프로세스에 어색해 하며 모르는 것 하나하나 구글링 해가며 감을 잡아가던 시기에도 '그런데... 내가 왜 뽑힌거지?' 라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회사를 떠나게 될 때, 혹은 내 매니져가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될 때, 한 번 물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팀런치를 하러 밖에 나가게 되었고 어쩌다 이야기가 각자의 이민 이야기와 처음 직장을 구할 때 에피소드 등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저나 제 매니져가 회사를 떠나는 상황은 아니였지만,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저는 오래된 궁금증 하나가 다시 떠올라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내 오래된 궁금증 하나가 떠오르네?
알렉스, 기억 날 진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처음 죠인할 때 기억나?
너 왜 날 뽑았었니???
난 경력이 있긴 했지만, 이미 5년도 지난 오래전 경력이고, 그나마도 4년 남짓으로 짧았고, 안드로이드는 커녕, 자바도 제대로 된 경험이 없고, 시니어도 아닌데 원래 시니어 포지션 포스팅에 지원한 거자나. 
더구나 솔직히 인터뷰 과정도 난 완전 엉망이였다고 생각했거든. 
너 왜 날 뽑았었니?"

이미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지라 사실 매니져도 당시의 상황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제 인터뷰 과정에서 안드로이드 팀과 Windows팀 양쪽에서 동시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몇 가지 특이한 상황이 있었던지라 그와 관련해서 하나 둘 씩 어렴풋한 기억을 꺼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솔직함으로 기억하는 바를 털어 내더군요.

"먼저 이유가 어찌되었던, 당시 면접 전에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면 Junior 포지션으로 뽑기로 이야기 되었었어. 분명 선입견이긴 하지만, 한국사람이라 잘 따를꺼라 생각했고, 그래서 junior로는 적절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

"회사가 커지며 업무가 많아지니까 중급 아니면 고급 개발자가 필요한건 맞긴 했지만, 당시에 사람 찾기는 어려웠고,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가고 있었지. 스티븐이랑 (윈도즈팀 매니져), HR이랑 이야기 하다가 그랙 괜찮다면 쥬니어로 받아보자 지금 당장 사람 필요한데 그렇게라도 사람 받아서 일해야지 라고 정했었어"

"네가 진행했던 기술 인터뷰 내용들은 내가 지금 기억이 안나. 얼마나 잘했었는지 못했었는지. 그런데 확실한건 기술 인터뷰들을 진행했던 interviewer들의 평가가 괜찮았다는거야.
처음부터 시니어 받는거라면 인터뷰 질문 과정들에 답변을 얼마나 잘하냐. 시니어로서 알아야만 할 만한 질문들에 다 대답을 하는지가 중요해. 그런데 넌 쥬니어 수준으로 면접 시작 한 거자나. 그러면 네가 얼마나 많이 정답을 맞췄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아, 그러고보니 몇가지 생각나는 피드백이 있었고 다들 그걸 좋게 생각했어. 어떤 질문들이 주어졌을때, 너는 '몰라' 라고 이야기 하면서, '예전에 이런거 했는데 그거 비슷한 것 같다. 이것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똑같은 개념은 아닌것 같은데 C에 있는 이런거랑 같은 방식으로 쓰이는거 아니야?' 등등, 몰라도 그냥 모르고 끝나거나, 모르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는게 좋았다. 시니어 면접이였으면, 이것도 모르면서 시니어야? 했겠지만, 쥬니어이기에 이런 접근 방식들이 좋았다"

"그리고 오스카 (당시 CTO)가 면접 전에 네 이력서 보고 맘에 들어하더라. 개발과 PO경력 둘 다 있다고. 개발자로서 PO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우선순위에 대해 명확할 거라고. 그리고 개발자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진척을 보이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나 우리 회사 제품에 익숙해지고, 만약 말도 좀 된다면, PO 포지션으로도 쓸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사실 위 이이야기는 면접 과정에서 오스카가 제게 '난 니가 개발과 PO경력 둘 다 있는 것이 맘에 들었다' 정도로 간략하게 말 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엔 그냥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냥 솔직히 이야기 했던 거였네요.

어찌되었건 지금은 매니져가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억을 못하지만, 정리해보니 역시나 저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실수로 시니어 포지션에 지원한 것이지만, 회사에서 마침 사람 부족한데 구하기는 힘들다보니 쥬니어라도 사람 괜찮아 보이면 채용 해보겠다고 매니져들이 결정한 것은 누가 뭐래도 100% 운이죠.

누가봐도 개발자로서 경력단절인 지원자였지만, 회사가 커지며 PO역량 또한 중요시 되고 있던 시점이였고, 당시 CTO가 PO와 개발을 모두 담당했었기에, VP가 보기엔 제가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는 멀티 플레이어 카드였습니다.

또한, 정말 고마운 분들은 저보다 먼저 제 회사를 거쳐갔던 많은 한국인, 혹은 한국 출신 선배들입니다. 그 분들 모두 남들과 다투기 보다는 따르는 편이였고, 일을 하면서 입으로 싸우기 보다는 코드로 싸웠고, 좋은 성과와 평가를 남기고 떠나셨기에 제 매니져에게 좋은 선입견을 심어준 것이죠. 만약 그 분들이 게으르고, 말만많고 결과는 없고, 분란을 조장하고 떠났다면 제 면접에 악재가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역시도 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저 운이라 할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예전에 유럽쪽의 소도시로 유학을 가셨던 어떤 분이, 외국에 나가서 한 사회에 정착하여 장기간 소수민족/소수인종으로 지내면서 겪게되는 어려움 중 하나는 나 하나라는 개인이 우리나라/우리민족/우리사회라는 대표성을 가지게 된다는 부담감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식이건 선입견이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한 저를 경험했던 다른 사람들이 한국인, 한국출신 사람들에 대해 좋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학교 다닐 때 같이 입학했던 친구들이 이제 졸업한지 9-10달 정도 지났는데, 이제 제대로 된 개발자 포지션으로 구직 소식이 하나 둘 씩 페이스북을 통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아직 소수의 학생들만 개발자 포지션을 구직 했지만, 첫 커리어를 구하는 것은 적어도 반년에서 일년은 보통 걸린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긴 하네요.

댓글 12개:

  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구직을 하는데 반년에서 일년 정도를 생각해야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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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졸업 전부터 이미 구직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반년 이상 걸리는 것 같아요.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실제로 저랑 같이 입학한 친구들을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사람이라면 첫 직장 잡는 시기는 정말 운칠기삼인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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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제나 도움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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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언제나 도움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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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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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답글을 수정을 하고 싶었는데 이상한 흉터가 생겼네요.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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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캐나다이민을 생각하면서 우연히 들어왔지만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개발자쪽 취업이 좀 더 수월한가요? 전 한국경력을 살려 회계쪽으로 현지취업을 하고자 하는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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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일하는 분야 외에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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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가 일하는 분야 외에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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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현재 캐나다 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왔는데...궁금한 점이 굉장히 많네요..
    현재 31살이고 Android 경력은 만 5년을 넘겼습니다. 더 늦기전에 해외취업을 해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제 준비하는데 정말 막막하네요 ㅠㅠ (미국이 목표긴한데 캐나다 찍고 가볼 생각입니다^^)

    우선.
    1. 당장 캐나다로 가보는게 좋을까요? (영어도 못합니다만.. 항상 자신감은 있습니다.) 아니면 한국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가는게 좋을까요?
    2. Android 개발자 풀이 많은지??? 비전은 있는지요??
    3. 국내에서 취업을 확정 지어놓고 넘어가는게 좋을까요?(이건 더 감이 안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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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번은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언어능력이 된다면,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일자리는 잡을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워킹퍼밋이죠. 영주권을 받으시거나 워킹퍼밋을 받으실 수만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2번은 indeed나 monster, 혹은 LinkedIn같은 곳에서 찾아보시면 Android개발자 구인 정보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바일쪽 개발 시장은 다른 분야대비 상대적으로 새로 생긴 직종이긴 하지만,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시장인만큼 일자리는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3번은, 당연히 국내에서 미리 취업을 확정하고, 그 회사에서 스폰서를 해주어 워크퍼밋을 받은다음에 넘어오면 당연히 더 좋죠. 흔한케이스는 아니지만, 전혀 없는 케이스도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해외 인력을 채용하면서 워크퍼밋을 서포트 해주려면 회사는 정부에 왜 국내에서는 해당 포지션의 인력을 못구하는지, 왜 이 사람을 구지 해외에서 데려와야만 하는지 증빙을 해야하기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커널개발자, OS개발자 등 시장도 좁지만 그만큼 인력 풀도 작은 분야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는데, Android 개발자는 솔직히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해외에서 초빙해야한다고 하면 잘 안먹힐 것 같긴 합니다. 토론토, 캘거리, 벤쿠버, 몬트리얼 등 대도시가 아닌 외지에 있는 회사면 모르겠지만요.

      개발자는 언어 능력만 된다면 여기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일을 할 수 있고 거주할 수 있는 워크퍼밋을 받는 것이 관건이죠. 그래서 한국 경력으로 영주권을 받아 넘어오거나, 여기서 커리지나 대학원을 졸업 한 후에, 캐나다 대학 졸업자가 받을 수 있는 Post Graduate Work Permit을 받아 3년간 일하면서 영주권 신청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3번 케이스죠.
      그런데, 제가 봐 왔던 3번 케이스는 사실 개발자가 캐나다에 가고 싶어서, 자신을 스폰서를 해 줄 회사를 찾아서 온 경우보다는 개발자는 한국에서 잘 생활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구하지 못해 미리 정부로부터 해외인력 채용 허가를 받은 회사에서 포럼이나,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인연을 통해 이메일과 스카이프를 통해 캐나다로 와달라고 초청한 경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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