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2일 금요일

가끔 한국이 그리울때?

이민을 결정했을 때에는 일단 건너가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 지에 대한 대책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문제였고, 이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

"내가 가서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간혹 던져보곤 했습니다.

만약 영주권도 잘 받고, 일자리도 잘 구했고, 돈도 부족하지 않게 잘 벌고, 아이들도 튼튼하고 바르게 자라더라도 행여 향수병에라도 걸려 매일 저녁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보며,

"아... 그립다. 사무치게 그립다. ㅠㅠ" 

라고 중얼거리며 눈물 흘린다면 일/선배/상사/야근에 치이고 시달리며 사는 것 만큼이나 힘들 것 같았거든요. 특히나 그다지 길지 않았던 교환학생 시절을 생각해봐도 마지막 학기가 종료되기 직전에 학기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을 때 즈음에 학기 종료되고 좀 더 놀다 갈 생각보다는 한국으로 빨리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앞으로 평생 수십년간 다른 땅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그냥 그것 자체로도 어려울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비록 이제 캐나다에 건너온지 4년도 채 안되었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향수병과 같은 증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종종 한국의 무언가가 하나씩 개별적으로 그리울 때는 있습니다.

예를들면 인터넷이나 전화 서비스 등에서 문제가 생겼을때, 한국의 경우 제가 부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당하게 조목조목 요구하면 어지간한 일들은 다 들어줍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우선 제가 한국말 처럼 이야기를 못하죠. 어눌해도 문제가 되는 상황과 문제점에대해 당당하게 요구를 하면 한국처럼 문제를 수용하고 다른 보상이나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 말을 듣고 회사도 저에게 당당하게 '어쩔수 없다', '규정 상 안된다', '정 불편하면 해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너 약정 남은거 없으니 문제 없다.' 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요즘 2주 정도 거의 매일 한국 문화가 그리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이 납니다.

얼마 전에 팀에 새로 합류한 동료가 있는데 요즘 거의 매일 1~2시간 정도는 그 내용과 주제는 다르더라도 전반적인 프레임으로 이 친구와 아규가 벌어집니다.

그 프레임은 항상 이런식입니다.

- 동료가 본인 업무 관련해 제게 자문을 요청
- 질문 내용은 그 친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task 관련 미래에 생길 수도 있는 변화나 확장에 대한 다양한 고려를 어떻게 해서 어떤 architecture로 잡고 나아가야 하는지임
- 간혹 아주 valid한 포인트를 잡아내고도 하지만 보통은 현재 상태로는 고려대상이 아닌 내용임
- 전 항상 당장 주어진 requirements를 만족하는 것을 완수한 후 변화와 확장에 대한 고려는 개별로 확인하여 하나씩 해결하자고 Divide and Conquer를 하자고 말함
- 이 친구는 자기는 나중에 두 번 일하기 싫다며 전부 고려해서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함
- 당장 필요한 기능에 대해 구현은 되어 있는지, 당장 필요한 기능 개발에 당장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지금 사용하고자 하는 CLI나 API들이 문서 구현된바와 같은 behaviour를 보이는지 물어봄
- 보통은 아직 전체 그림을 잡느라 일 시작은 안했다며 모름
- 이쯤되면 저는 "나도 안해봤고 너도 안해봤고 우리 회사에서 누구도 안해본 분야에 일 시작하는거라 전체 그림을 잡을만큼 이 분야에 seniority가 있는 사람도 없는데 완벽한 전체 architecture는 잡고 시작할 수 없으니 Divide and conquor를 하자" 라고 다시 주장
- 그래도 이 친구는 자신의 concerns에 대해 해결책을 미리 세워놓고 시작해야 추후 수정/확장을 할 만한 구조로 잡을 수 있을것 같다며 이 문제들을 다 확인하자고 함
- 전 다시 기본적인 가장 주된 핵심 기능부터 확인해 보라고 제안함
- 그러면 이 친구는 다시 그것만 돌려보면 자기랑 다시 이 문제점들 얘기 할 것인지 물어봄
...

뭐 이렇습니다.

거의 매일 같은 형태의 대화를 하고있는데, 어제 갑자기 한국이였다면 확 이렇게 말하고 끝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놔.. 야, 우리가 지금 AWS 만드냐? 우리에게 지금 요구사항은 테스트 돌릴 때 마다 서버 인스턴스 5개만 만들었다가 다시 죽이면 되는건데 왜그래? 니가 걱정하는 사항들 이미 우리 요구사항과 환경에 다 제한적인 것으로 정해진거자나"



그냥 잠시 혼자 생각하고 혼자 헛웃음 지었던 짧은 생각인데, 이렇게 하고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매우매우 간절했었나봅니다. 이 일이 어젯밤 꿈에 벌어지고 말았네요. 인물은 그 친구와 제가 그대로 유지되는데, 장소가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 사무실로 바뀌고, 그 친구도 저도 한국말로 말하고 ㅋㅋㅋ

그리고 제가 현실에서 잠시 생각했던 것에도 없던 대사가 더 추가되더라고요.

"니가 내 사촌동생 같아서 하는 얘긴데, 회사는 책에서 보던것과는 다른 세상이야. 일단 현실의 일부터 집중하고, 네 역량이 된다면 그 다음일은 그 다음에 해봐. 우리가 rocket science하는거 아니자나. 그런식으로 일해도 니가 다 해낼꺼면 몰라. 안그러면 너 나중에 남는 성과가 없어서 아무도 인정 안해. 회사에선 실천력과 성과와 결과물이 우선이야. 사회생활이란 말이야..."

헐... 한국식으로 선배로서 하찮은 2 cents 충고까지...

자고 일어나서 사뭇 놀랐습니다. 여기 직장 문화가 오히려 편하고 좋다고 말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약 35년여간 살아온 곳의 문화에서 제가 벗어나지 못한것 같더라고요. 회사에 다른 한국인 개발자 분들도 여럿 계시기는 하지만, 만에하나라도 저보다 seniority가 낮은 한국인 개발자가 같은 팀으로 오게 된다면 행여나 제가 꿈에서 했던 짓들을 진짜로 행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가끔 한인 업소에서 일을하고있는 혹은 일을 했던 분들이

 "여기가 뭔 한국인줄 아시는지, 그럴꺼면 한국에서 장사하지 왜 캐나다와서 그런식으로 하시는지..."


 "더 싫은건 캐네디언 직원들에겐 안그러면서 꼭 우리에게만... 만만한게 동포인가?"

라는 식의 이야기들 듣는데, 지금까지는 보통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감정적인 동조를 하게 되었는데, 막상 제가 이런 꿈을 겪고나니 그 사장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정말 안좋은 심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악의를 가지고 그러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제가 꿈에서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모르게 자신에게 익숙한 생각이나 분위기나 감정이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늘도 그 친구와 대화를 마치고 어젯 밤에 꾼 무서운? 꿈이 생각나 글을 남깁니다.

오늘은 몇 시간 대화 했냐고요? 다행히 10-20분입니다. ㅎㅎ
어젯 밤에 그 친구가 어제 던진 수많은 문제점들 중 가장 크리티컬한 몇가지가 생각나 혼자 이리저리 확인해보고 테스트도 돌려보고 몇가지 해결 가능한 방안을 말해줬더니 오늘은 그래도 빨리 끝났습니다 ㅎㅎㅎㅎㅎㅎ

계속되는 반복되는 대화가 매일같이 제 머리를 아프게도 하지만, 또 이렇게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계기도 만들어 주네요. 그래도 간혹 제가 생각하지 못한 크리티컬한 잠재적 문제들을 찾아내고 문제 제기를 해주기에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제 두통은 대화 자체에서 온다기 보다는 장시간 지속되는 영어 대화에 대한 스트레스와 대부분의 질문들을 제가 깔끔하게 답변하고 매듭을 짓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자책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비록 꿈은 그렇게 꾸었어도 그래도 전 지금 이런 문화가 전반적으로 더 좋습니다.

진짜에요. 진짜라니까요? 한국에서 을이되는건 싫어도 갑이되는건 좋은, 그런게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ㅠㅠ

댓글 2개:

  1. 타지 생활이 녹록하지 않군요.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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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주는 못보지만 간간히 들어와서 올려주시는 글 잘보고있습니다^^
    저도 타국(인도ㅠ)에서 일하고있어서 어떤 기분인지 잘 알것같네요...ㅎ
    이제 곧 저도 경험이민을 위해 8월에 캐나다 컬리지에 갈예정입니다~
    향수병이 젤 걱정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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