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캐나다에서의 삶의 여유란?

지난 한 달여간 저희 집에 장모님이 머물다가 가셨습니다.

당초에는 2달 조금 넘게 계실 예정이였는데, 이 곳에서 생활이 언어나 교통편 등의 문제로 제약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조금 무료하셨던 것 같더라고요. 다른 이민자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도 처음에는 아들딸도 보고, 손주들도 보고 싶어서 오실 때 항공권이 비싸다보니 몇 달 일정으로 잡고 오시지만, 막상 오고나면 자녀들이 휴가를 내 봐야 며칠 혹은 1-2주 뿐이니 남는 시간에 무어라도 하셔야 하지만 캐나다에는 지인도 없고 언어도 불편하니 몇 주가 지나면 항공권을 다시 변경해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 중 한 마디가 생활과 삶의 여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도 필력이 아주 부질없지만, 오늘의 글은 그냥 머릿 속에서 터져나온 생각을 정리없이 쓰는 글이라 정말 난잡한 낙서같이 될 것 같군요.

아내의 사촌언니는 이민은 아니지만 주재원과 주재원 연장으로 지금 10년 넘게 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중국의 물가는 상대적으로 싸다보니 아이들 교육도 필요하면 모두 과외를 시키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사람을 가사도우미를 써서 합니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비싼 캐나다에서 사는 저희는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제 아이들도 과외나 학원을 다니기도 하지만 예체능 쪽만 그러하고, 아이들의 한국어, 영어, 수학 등 공부와 관련된 것은 제 아내가 주로 붙잡고 시킵니다. 얼마 전에 중국 처형네 놀려갔다 오셨던 터라 캐나다에 오셔서 저희가 사는 모습을 보시니 아무래도 제 아내의 생활 측면에서 비교가 되면서 조금 속상하셨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 아내에게 캐나다 생활에 만족은 하고 있는지, 또 이민을 온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이야기를 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만족하고 후회 없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저 역시도 캐나다에 온 것에 후회나 미련은 없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온 이유와 궁극적 목적은 단 하나, 제 직업이였습니다. 다시 Developer가 되고 싶었고, 또 평생 그 일을 즐기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일단 "평생 즐기면서" 부분은 앞으로 수십년간 더 살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시 Developer가 되기"는 성공을 했으니 현재까지 진척률은 좋은 것 같고 이에 상당히 만족합니다.

그런데, 이 목표를 위해 캐나다까지 오게 된 것은 당시 저의 어정쩡한 나이에 개발 경력이 단절된 상황에서 개발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면 전혀 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죠. 정말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았다면 무급이나 열정페이 인턴이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스타트업에서 지분을 일부 받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 할 수도 있었고, 육아휴직 기간 중 창업을 준비하던 친구의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들어가 개발을 다시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한 번 Developer가 되기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기 싫어서였습니다. 한국에서 Developer가 된다면 페이가 얼마건 저희 부부에겐 가장 암흑기였던 시간으로 돌아가 저녁/주말/휴일 없이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고, 당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내에서는 지금만큼의 연봉이 전혀 보장되지 못했고, 일정규모가 되거나 자체 수익 솔루션이 없는 IT 회사로 간다면 직위가 올라갈 수록 개발보다는 결국 관리나 영업으로 빠져야 할텐데, 그렇다면 평생 개발자의 목표에 반하게 되니까요.

즉 다시 한 번 당시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면, "개발자가 되고싶고, 이 일을 평생 하고싶은데, 즐기면서 하기 위해 충분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충분한 개인시간을 보장받고 싶다."가 저의 생각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제 목표에서 직업 관련은 이미 이루었다고 치고 삶의 영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삶의 여유인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돈? 저녁이 있는 삶? Work-Life Balance? 노후에 대한 안정감? 시간?

노후에 대한 안정은 한국 보다는 나아요. 한국도 국민연금이 잘 되어있긴 하지만, 캐나다의 연금제도가 한국 보다 살짝 조금 더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기는 합니다. 토론토 도심같이 집세가 비싼 곳에서 거주 할 만큼의 돈은 안나오지만, 시골의 한적한 동네에서 자신의 집 재산세를 내거나, 렌트비를 내면서 살기에는 살만한 수준의 돈이 나옵니다.

충분한 연봉? 이건 사실 아닌것 같습니다. 평균적인 개발자 임금 수준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확실히 높기는 합니다만, 한국 대기업 기준으로 보자면 썩 높지는 않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보다 물가도 더 비싸고, 최저임금도 2배 이상 높고 세율도 한국보다 많이 높으니 저도 처음에는 캐나다에서 시니어 개발자가 되면 20만불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회사 후배 중 실리콘벨리에서 일을 하고있는 후배에게 듣기로, 실리콘 벨리의 인턴 개발자 연봉이 요즘 10만불 언저리라고 했고, 저는 그 정도의 임금수준이 북미 전역에서 비슷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캐나다에서 인턴이나 엔트리 레벨 개발자의 경우 4.5-5.5만불 정도의 임금을 받고, 시니어가 되어도 10만불도 못받는 시니어들이 적지않게 있었습니다. 세율과 물가를 무시하고 환율 차이만 계산하여 고려해도 엔트리 개발자의 임금은 사원 수준이며, 시니어의 연봉도 대리에서 과장 수준이였습니다. 과장 이상에 평가 고과가 좋은 경우라면 세전 절대금액도 캐나다 시니어 개발자 임금 이상을 수 있는데다 한국은 캐나다에 비해 소득세율도 낮고 물가도 낮으니, 소득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해보면 한국에서 더 높은 소득을 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캐나다에 가면 한국보다 더 나은 소득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사실 소득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처임금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2배 이상 높지만, 최저소득과 그 언저리를 벗어난 일자리들의 임금수준을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 보다는 나아도 평균 임금수준이 높고 상여금이 많이 나오는 한국의 대기업들과 비교 시 썩 높지 않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다소 찬밥 신세인 전기/배관공 등 기술을 요하는 trade 일자리들의 경우 한국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습니다. 보통 지식노동자 일자리들은 시간당 임금보다는 연봉인데, 이를 시간당 임금으로 전환 해 계산해보면, 지식과 기술이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는 사회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금 당장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충분한 연봉이나 이전보다 더 나은 가계수입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라면 장점은, 이 나라에서는 제가 시장성이 있는 수준으로 계속 제 지식과 기술을 높여 나간다면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 능력과 실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계속 진급을 하여 임원도 되고 부사장도 되고 사장도 되면서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저의 몸값에 걸맞는 수준의 실력을 유지만 하면 됩니다. 즉 계속 치고 올라가야만 생존이 가능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러도 생존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 수십년이 남아있긴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은퇴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의 누적 소득을 생각하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과 Work-life balance는 어떨까요?
간혹 캐나다 등 복지가 발달된 국가들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들이 있는데 그 나라 국민들은 게으르다는 인식 입니다. 하지만 이미 제가 선입견이라고 말 한 것 처럼 잘못된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요즘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교육 받을 때에는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라는 말을 자주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한국인들이 근면성실할까요? 한국인의 DNA에는 근면과 성실이 기본으로 자리잡은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사회적으로 근면 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회는 각 개인에게 모두 근면 성실할 것을 강요하고, 또 근면 성실의 영역이 주어진 시간을 외에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책무 영역에 투자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면 성실하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노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을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인의 삶 기준으로 보기에 캐나다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책임감이 낮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부류의 캐나다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바빠도 사전에 계획한 개인 휴가가 있다면 뒤도 안돌아보고 휴가를 갑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떠나는 휴가에 대해 제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 시간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이라면 비록 몸은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고 업무시간 외 근무에 대해 주어진 책임은 없지만, 관련 업무에 일이 생기면 즉각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 주말 밤에 저희 팀에서 관리하는 서비스들의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이상동작이 보고되었습니다. 메일을 본 저는 회사 PC로 원격 접속해서 로그 분석을 하고 하나씩 수정 및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30여분이 지나자 매니져 포함 6명의 팀원 중 4명이 접속을 해서 매신져를 통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1시간 정도 흘러 root cause 분석이 완료 된 시점 즈음에는 개발팀 VP도 접속해서 같이 확인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머지 2 명은 계속 오프라인 이였지만, 그들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질책을 받거나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그냥 각자 스스로 가진 책임감의 범위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에 압력을 받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요즘은 중국어도 필요하다고 하니 중국어 공부도 하고, 업무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PT도 잘해야 하니 PT 교육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 정책에 따라 직원 일인당 특허 하나씩 보유해야 해서 특허 연구도 하고...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이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곳도 있지만, 회사가 아니더라도 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도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계속 행사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계속 치고올라가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에,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으니 반 강제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에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더 높은 자리로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찾아 공부하고 익힙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그냥 현재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알고 지내는 캐네디언이 누구냐에 따라 보이는 시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제가 회사에서 보는 대다수의 동료들은 상당히 부지런하며, 자기계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제 매니져만 해도 1달간 휴가를 내고 캐러비안에 놀러간 기간 동안 당시로서는 저희 팀에서 새로 도입하는 툴인 chef와 kitchen, 그리고 AWS 서비스 세가지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왔더군요. 사실 이제는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닌 매니져인지라 그렇게 깊은 수준으로 기술 공부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ㅠㅠ

지금도 저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7시까지 일을 하면서 거의 12시간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퇴근은 3-4시에 하지만 퇴근 후 일을 하기도 합니다. 오랜기간 현업을 떠난 상황이라 그 시간공백을 메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거니와 제 나름의 목표하는 지향점에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4시에 퇴근을 한 다 해도 사실 그 때부터 완벽한 자유시간은 아닙니다. 그 때 부터 또 다른 환경에서 업무와 공부가 시작되지요.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모든 시간이 물리적으로 강제된 환경이 아니고, 시간에 대해 제 자율로 조절을 할 수 있기에 제 스스로만 조절을 잘 한다면 100% 만족 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work-life balance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민 후의 생활이 정말 꿀같고 달콤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하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생활비 대비 소득으로 보면 매우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본인인의 위치에 따라서는 캐나다에서 소득이 덜 풍족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나 근무시간 등은 정말 꿀같고 달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차에 따른 대우를 받는 사회는 아니기에 더 인정받고 더 올라가고 싶다면 그 달콤함을 완전히 즐길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채찍 질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 위치와 자리와 대우에 만족하고 그대로 머무르고 싶다면 도태되지 않는 수준으로만 노력하면 되기에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나 private sector가 아닌 public sector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겠죠. :)

댓글 5개:

  1.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올 6월에 토론토로온 학생입니다.
    내년 1월달 센테니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테크니션과정 입학 예정인데 학과 과정에 대해 좀 자세히 질문 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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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목표외에도 자녀들의 교육 및 생활 만족도도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지 여줘보고 싶네요? 캐나다에 적응하느라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그 아이들이 즐겁게 잘 생활하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국내보다는 더 낫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큰 가치라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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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들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결국 아이들이 정규교육을 마칠때 즈음이 되어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이민을 왔기에 사교육이나 입시에에 치이는 그런 삶을 경험 해 본적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라 아이들이 티없이 맑게 자라고 있는데 이것이 캐나다라 그러한 것인지, 한국에서도 이 또래엔 (여기선 초3, 한국에선 초2) 원래 그런 것인지 솔직히 가늠을 못하겠어요.
      이 나라도 사회 초년생이 첫 발을 내딛기 상당히 어려운데,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과연 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잘 찼을 수 있는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또 맘껏 할 수 있는지를 봐야지 느낄 수 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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