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헤어짐에 익숙해지기

타이틀을 적어두고보니 마치 연인과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회사생활 이야기입니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동기나 선후배, 혹은 직속 상관이 회사를 떠나는 일들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너무나도 완벽한 직장이라 turn over rate이 아무리 낮은 회사라고 해도 결국에 은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적성에 도무지 맞지않아 떠나는 사람이 있으니 결국 한 번 이상은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죠.

한국에서 직장을 다녔던 8년여간 저는 가깝게 지냈던 동료들과의 이별의 순간을 그다지 많이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저와는 거리가 아주 먼 전무, 부사장, 사장 급 임원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은 거의 매 해 임원인사 시즌마다 경험했지만, 저의 직속 상관이나 저의 직속 후배들, 혹은 저와 같은 팀에서 일을하는 팀원들이 떠나는 경우는 지금까지 딱 2번이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신입사원 때 부터 저희 소파트를 이끌던 책임님이 과도한 업무부담으로 회사를 떠난 적이 있었고, 서비스 기획자로 변신한 직후 저희 소파트를 이끌던 과장님이 다른 회사의 독일 법인장으로 스카웃되어 떠나면서 이렇게 단 2번의 이별을 경험 했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일을하면서보니 이러한 이별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지는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회사 내 경력으로는 중고참 급에 해당합니다. 그 만큼 캐나다의 직장문화는 한국에 비해 turn over rate이 훨씬 높더군요. (적어도 개발자라는 직업군에 한해서는...)

오늘도 저는 회사에서 가장 신뢰하고있는 사람 중 한명을 떠나 보냈습니다.

바로 저희 팀 매니져인데, 이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 중 일부에 대해 저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각별히 응원 해 주고 싶으면서, 동시에 더 안타깝습니다.

제가 다른 팀에 속했을 때 이 친구에대한 저의 인상은 매니져가 아닌 Senior Developer였습니다. 사실 제가 현재의 팀으로 옮기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친구가 개발자라고 생각했었죠. 이렇게 착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업무상 이 친구의 소속팀과 협업을 할 일이 있었는데, 누가봐도 사통팔달 시원시원하게 기술적 해답과 의견을 제시했고, 또 이 친구의 이름으로 된 커밋을 간간히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Developer에서 Manager로 전직을 한 것인데, 개발 일에대한 애착과 열정이 넘치다보니 Manager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따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고 살아온 친구입니다.

이렇게 development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대한 무한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워낙 좋아하는 일이고 누구보다도 잘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보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seniority를 보기 보다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자기보다 항상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는 것이지요.

제 주변에도 몇몇 이런 사람이 있는데, 정말 제 기준에서는 "천재 아니야?" 싶은 분들도 같이 이야기 해보면 단순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 스스로를 slow learner라고 하거나,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기술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다고 하거나, 지금은 몰라도 미래에 먹고살기 힘들다며 자책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 친구와 1년 가까이 같이 일을 하면서 1:1 면담이나 개인적 사담을 통해 제가 왜 캐나다에 왔고,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그런만큼 다른 모든 조건을 떠나서 내가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의 이런 이야기가 이 친구에게 작지않은 자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최근 기술 트랜드와 여러가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만약 business opportunity를 찾으면 직접 창업을 할 수도 있고, 결국 경제적 압박이 심해지면 지금 회사로 돌아오거나 다른 회사의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죠.

지금까지 만났던 매니져 중에 가장 개발자를 잘 이해하고, 가장 잘 배려하면서, 개발 일손이 부족하면 직접 일선에 뛰어들 수 있는 최고의 매니져였는데, 너무 아쉽네요.

언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며 그 친구도 저도 Happy New Year가 되길 바랍니다.

댓글 4개:

  1. 2018년이 밝았네요. 건강하시고, 더욱 지경이 넓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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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선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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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올려주신 여러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는데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계신 동료들 중에 IT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 출신/독학 출신으로 취업하신 분들도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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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이전부서 동료가 전자과 석사였는데, tech 서포트로 입사해서 독학으로 sw공부하고 나중에 개발자로 전직 한 케이스입니다. 고졸이라 비전공자라고 하긴 힘들지만, 고등학생때 해커톤 입상해서 고졸 후 일하는 친구도 있고요. 그 외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컴공/컴싸 학과 학사/석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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