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8일 목요일

Go WEST



약 200여년 전 서부 개척시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노다지의 꿈을 꾸며 서부로 서부로 달려나갔다고 하죠. 21세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가 몸을 담고있는 SW 분야입니다.

흔히 실리콘 벨리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와 그 남부 주변에는 수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리하고있고, 또 그 외에도 새로운 빅테크를 꿈꾸는 수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이 있으며, 실제로 계속해서 새로운 강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기업이 대기업이 되면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미국 내 다양한 지역에 새로운 오피스들을 세우고, 또 다른 나라에도 수 없이 많은 오피스들을 설립하지만 같은 회사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 중 연봉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곳은 뉴욕 맨허턴의 사무실이나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의 사무실 근로자들입니다.

아무래도 현지 생활비와 그 지역의 임금수준이 반영된 결과일 것 같은데, 같은 회사의 같은 포지션이라 할 지라도 지역에 따라 곱절의 차이가 나기도 하죠.

사실 돈이야 생활비에 비례해서 준다 하면, 결국 쓰고 남은 가처분 소득을 비교했을 때엔 어느 지역에서 일을 하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수 많은 SW엔지니어들이 구지 고향을 떠나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는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그 중 다른 하나는 근로 문화라 할 수 있죠.

한국에서 살 때에, 본사와 미국 법인이 힘을 합쳐서 해야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판매/마케팅 법인은 동부 뉴저지에 있고 미국 연구소는 산호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사 개발-기획 인력들과 미국 법인과 연구소 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죠. 한참동안 대화를 하며 때론 다투고 때론 으쌰으쌰 의기투합을 하며 어느덧 저녁 시간을 넘겨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회의를 하려는데, 산호세에서 온 친구가 말을 하더군요

"역시 동부 애들은 너무 불필요하게 터프해. 일은 일이지, 일에 모든걸 걸고 너무 심각하게 한다니까."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회의를하고 오늘 아니면 결론을 짓지 못할 것 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질린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이 좌식... 너 본사 연구소에 와서 두어달만 일 해 봐라. 그래도 밤 10시 즈음엔 퇴근하는 뉴져지 애들이 얼마나 설렁설렁 일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꺼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동부는 좀 딱딱하고 일에 열정적이며, 서부는 좀 더 자유롭고 생활에 열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돈 외에 이러한 근로문화를 찾아 서부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일자리가 많아서, 근로 형태나 문화가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서, 돈을 더 많이 주기에, 다양한 동종업계 사람들과의 교류가 수월하기에... 다양한 이유로 더 많은 SW 엔지니어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그들 사이에 더 촘촘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탄생하게 되고, 그렇게 생긴 새로운 회사들에서 더 많은 인력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또 늘어난 인력 수요만큼 더 높은 compensation을 지불하는 경쟁이 생기고, 그렇게 오른 페이에 동네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다보니 이에 맞춰 타 지역대비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이러한 순환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부를 향하는 일이 없습니다. IT회사들이 몰려있는 지역도 GTA와 월털루-키치너 지역이고, 임금 수준역시 서부보다 GTA가 높으니까요.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있을지는 몰라도 알버타나 BC의 SW Engineer 평균 임금 데이터를 보면 선뜻 서부로 발을 옮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GO WEST란 국경넘어 따뜻한 남쪽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뿐이죠.

하지만 이 코로나라는 녀석이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락다운으로 인해 강제 digitalization을 택한 기업들이 많아지며 시장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락다운과 국경 통제로 인해 실리콘벨리에서는 예전만큼 해외에서 인력을 모셔오기가 쉽지 않아져 인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재직중인 직원들을 살펴보니 분명 엇그제까지 시에틀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직원들이 하나 둘 씩 미 중부나 남부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100% 리모트 근무인데 구지 말도안되게 비싼 월세를 내면서 단칸방에 살기 보다는 한적한 동네에 넓은 집을 사서 보다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거죠.

그래서일까요? 미국 회사들이 생각을 조금 바꾸기 시작 했습니다. 기왕 리모트 근무를 하는건데 구지 미국 내에서만 인력을 구하지 말고 미국과 같은 타임죤에 비슷한 문화를 가진 캐나다에서 채용을 하는 것이죠. 비록 캐나다 내에 오피스는 없지만 페이와 베네핏 지원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나 중간을 연결해 줄 글로벌 HR 서비스를 이용하면 채용이 가능하니까요.

정확히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제 링크드인 메시지를 기준으로 보면 작년 중순즈음부터 미국 회사의 리크루터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들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현 직장에 만족을 하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무기력증 때문에 구지 이 험란한 시기에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기 싫었으니까요.

한국에서 한창 휴가를 즐기던 올해 초 어느날, 평소같으면 읽지도 않았을 링크드인 메시지를 우연히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메시지를 읽다보니 JD에 제가 현 직장의 일 때문에 관심을 갖고있는 몇가지 키워드들이 보였죠. 그래서 리크루터에게 답장을 보내 한 번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팬더믹 이전에는 이직 생각이 전혀 없어도 일 년에 한두번 정도는 인터뷰를 보곤 했습니다.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제가 고생하고있는 것이나 아직 잘 모르지만 업무상 관심이 떠오르는 내용에 대해 발표한 프레젠터가 있으면 보통 그들과 간단히 대화를 해 보고 그 회사의 그 팀에 지원을 해 봅니다. 인터뷰를 통하면서 그들의 현재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떠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이 어떻게 해 냈는지 조금은 힌트가 될 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그러다가 정말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팀을 만나고, 그들 역시 저에대해 만족하게 된다면 정말 이직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팬더믹 이후 약 2년간 이러한 활동이 전혀 없었기에 우연히 찾아온 이 기회가 오래간만에 스파이 짓을 할 기회라고 생각 됐죠.

그렇게 리크루터와 이야기를 하고, 또 Hiring Manager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팀 내에 엔지니어 중 한 명과 Tech Interview까지 마치면서 제가 알고싶은 내용들을 하나씩 질문하며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점들이 많았기에 이 즈음에서 프로세스 중단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죠. Tech Interview까지 마치고 며칠 후, 리크루터가 축하 한다면서 Virtual On Site 인터뷰로 넘어가자고 연락을 해 옵니다.

진짜 이직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따로 공부가 필요한 on site 인터뷰를 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그래서 사알짝 발을 뺐죠. 그러자 리크루터는 혹시 다른쪽 오퍼를 받은거냐? 우리들의 Total Compensation은 매우 강력한 경쟁력이 있다며 저를 꼬십니다. 하지만 저의 현재 연봉수준이나 저의 희망 연봉 레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보통 캐나다 회사의 리크루터들은 연봉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저의 현 연봉이나 희망 연봉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일절 질문도 안했죠. 나중에 지인께 들은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리크루터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무턱대고 TC에 근자감을 보인 리크루터가 신기하여 levels.fyi, blind 등을 통해서 이 회사의 연봉수준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저의 현재 연봉을 한방에 부끄럽게 만드는 숫자들이였죠. 하지만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회사인만큼 샌프란시스코나 시에틀 쪽에 사는 직원들이 받는 페이니 당연한 결과였죠. 그리고 제가 토론토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각 지역별 적용되는 payscale에 따라 토론토 시장 레인지에 맞춰질 것이고요.

그렇게 동네 탓을 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은 수치가 3 번 보였습니다. 임금 폭발이 일어난 팬더믹 이전의 데이터일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처음 데이터를 열었을 때, latest 순으로 정렬을 시켜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위로 올라가며 그 세명을 찾아보니, 모두 2021년 데이터였습니다. 하지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거주지.

한 명은 Atlanta. 다른 한 명은 Philadelpia.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Toronto. 왓? 토론토?

네 회사 오피스는 실리콘 벨리에 달랑 하나만 있으니 모두 작년에 100% 리모트 조건으로 채용된 사람들이였고, 그들의 거주지역에 맞춘 payscale이 적용되어 남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였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등록한 연봉을 USD to CAD로 변환을 시켜서 보니... 지금 저보다 더 많이 벌고 있었습니다. 특히 토론토로 등록된 분의 YOE는 저보다 훨씬 낮음에도 저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죠.

그 때 부터 levels.fyi를 통해 캐나다 내에 오피스가 없으면서도 Toronto 지역에 임금이 등록된 회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회사에 리모트로 근무하면 적어도 캐나다 현지 연봉 레인지보다 30% 이상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는 순수 연봉만 생각한 것이고 추가로 주어지는 Stock Option까지 생각한다면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상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혹은 이미 상장을 한 회사들의 숫자에서도 캐나다 대비 압도적으로 많고, 동시에 직원들에게 주는 주식 수 면에서도 캐나다의 일반적인 회사들보다 높았기에 향후에 추가 수익 실현 가능성과 수익 규모에서도 대부분의 캐나다 회사들과 비교가 어려웠습니다.

어쩐지... 작년부터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 미국 회사로 가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예전에 제 와이프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칩니다.

"사람들이 몰리는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냥 우리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지."

우리 회사도 팬더믹 이후로 폭풍 성장중이였고, 나름 1,000인 미만 작은 회사들 사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페이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친구들이 나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자리를 채울 신규 채용의 속도에서는 유난히 뒤처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저희 팀을 떠난 네 명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로 더 큰 야망을 품으며 미국회사들을 택했던 것인데 저는 혼자 코로나 블루에 빠져 무기력하게 하루 하루 근근히 버티고 살아왔던 것이죠.

가자가자 서부로. 저도 이제 서부로 갑니다. 그런데 캐나다 서부 말고 방향을 남쪽으로 10도 정도 틀어서 미국 서부로 가봅니다.



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가장 무난했던, 격동의? 2020년을 보내며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현재 2020년 12월 31일.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역동적이였던 2020년을 한 번 결산 해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1분기 -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1분기의 시작은 상큼했습니다. 2019년 이직 후에 세웠던 계획들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거나, 이제 각 피쳐 개발팀으로 ownership 이전을 위한 knowledge transfer가 진행중이였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 목표들을 세워 시작하는 타이밍이였죠. 특히나 작년 한 해 동안 빌드/테스트 파이프라인 라이프사이클 시간 감축과 빌드 비용 절감이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였고, 올 해에는 테스트 고도화 및 안정성을 기하려 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코로나 소식이 들렸고 우한 상황을 보니 심상치가 않아 동료들에게 중국 주식에 투자가 가능하면 온라인 쇼핑이 가능한 알리바바 같은 회사 주식을 왕창 사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주식에 손절한지 10년이되어 주식 살 생각도 안했죠. 일단 사면 마이너스의 손이고, 오르는 상품도 파는 타이밍을 잘 못잡고, 사고난 뒤 너무 타이트하게 관리하느라 제 일을 잘 못하거나, 잠시 잊고 살고자 하면 완전 잊어서 황금주에서 똥주로 바뀌는데 방치해 두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서요.

그러다 어느덧 covid19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때 까지만해도 한국에 사는 가족들이 걱정이였지 제 걱정은 안했는데... 3월이 되어 미국에서, 또 March Break를 맞이하여 유럽에 놀러갔던 수 많은 캐네디언들이 Covid을 가지고 오며 캐나다도 전국 락다운이 시작됩니다.

락다운 이전부터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갈 것 같으니 회사에서는 전원 재택근무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저희 팀에서 관리하던 서비스, 서버들의 보안관련 조치를 취하느라 바빴습니다. 원래 보안상 회사 내부망에서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재택근무 시에는 VPN을 이용해야 하는데, 회사의 VPN이 동시 접속자 200여명 정도만 사용 가능한데 직원 수는 이미 600명 가까이 늘어났으니 감당할 수 없었죠. 그래서 Google IAP를 통한 인증절차를 거치도록 급히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연말 셧다운 직전 개인 Innovation 기간동안 IAP를 좀 가지고 놀아보아 어렵지않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죠.

이 때 마지막 출근날 팀원들과 어떻게 원격에서 일을 할 것인지 짧은 미팅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경제 불황이 올 수도 있고 불황 뒤에는 이에대한 보상으로 큰 주가 반등이 있을테니 주식을 잘 보라고... 그리고 당장 투자한다면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관련 주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주식, 혹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엔터주에 투자를 하라고 말 했죠. 역시나 저는 주식 1주도 안샀습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출퇴근 통근시간이 사라져 하루에 2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습니다. 날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시기라 틈만나면 BBQ에 소주/맥주를 마셔가며 잘 놀며 지냈죠.




2분기 - 동트기 전 새벽? 최악의 암흑기

재택근무 체제로 저희 팀 시스템들을 죄다 변경한 이후 주변 팀들에도 비슷한 변경사항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나니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회사 벌크업을 위해 투자를 받아 적자운영을 하고있었는데, 글로벌 팬더믹으로 향후 2년은 추가 투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2-3년 이상 회사가 지속 생존을 하며 버티려면 어느정도는 레이오프가 필요하다는 CEO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합니다. 캐나다에와서 살아온 지난 7년간 살림살이가 점점 커지며 돈 나갈 구멍들도 점점 더 커졌는데, 갑자기 돈줄이 막히면 하루하루가 막막해질 것 같았죠. 실제 레이오프 발표를 하니 예상보다는 소규모였지만, 2-3주 정도 되었던 그 기간동안은 너무나도 심리적 압박이 심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저는 당시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양한 과민반응을 보였으며 최대한 운동과 술, 음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적지않은 수의 동료들은 그 기간동안 미리 살길을 마련하기위해 이곳저곳 인터뷰를 많이 봤던 모양입니다. 5-6월이 되자 적지않은 동료들이 다른 회사들로 이직을 해서 떠나갔죠.

오랜 락다운과 제한적인 생활에 지쳤고 재택근무 환경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여, 레이오프 예고 이후 떨어진 집중력은 다시 올라오지 못하여 평소대비 절반 정도? 혹은 그 미만의 효율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대한 야외 활동으로 해소 했습니다. 주 2-3회씩 자전거를 타고 토론토나 나이아가라에 다녀오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살았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면 혼자 다니기 심심해서 이렇게까지 엶심히 라이딩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동네에 맘 맞는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3분기 - 희망의 싹

이 일은 정확히는 2분기 말에 일어난 일이지만 공식화 된 것은 7월달이기에 3분기에 포함시킵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제가 진급을 했습니다.

제가 진급 요청을 한 적도 없었고 올 해 들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특히나 6-7월은 퍼포먼스 리뷰 및 진급을 하는 시기도 아니여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매니져가 저를 진급 시켜주었습니다.

진급과 연봉 상승시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역으로 제가 압박을 당하여 이에대해 마음을 비우고 살자고 생각하고 있어서 진급을 하니 그만큼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직장생활 중에 보너스와 진급만큼 기쁜 일이 또 없다보니 생각없이 그저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사알짝 희망의 씨앗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특히나 날씨는 점점 캐나다 최고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이라 아직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빼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세상은 원하는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죠? 제가 믿고 의지하던, 저와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와 함께 팀을 셋업했던 매니져가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 친구도 역시 회사 레이오프가 발표났을때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가 잊고 살았는데, 그 때 넣었던 이력서 중 하나가 지금서 연락이 와서 채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봐도 워낙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 더 나은 포지션이기에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죠.

이 친구가 회사를 떠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집니다. 당장 매니져도 공석이다보니 제가 팀을 리드해야 하는데, 리드를 할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고... 이럴 때 일 수록 더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 했는데, 더 수렁에 빠지게 되며 희망의 싹이 보이다가 다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팀원의 이직이라는 큰 행사??? 덕분에 거의 반년만에 팀원들과 face to face로 만나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4분기 - 나는 태릉인?

3분기까지 술과 고기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제 체중이 인생 최고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체중이 불어난 것 자체는 좋은데 그로인한 무기력증과 나태함이 극에달아 다이어트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체중이 부는 와중에도 웨이트는 꾸준히 하여 운동은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운동량을 늘리고 제한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 목표는 40살 생일 (21년 2월) 전에 30살 생일에 측정했던 저의 체중으로 복귀를 하되, 당시의 저 보다 더 건강한 몸 (낮은 체지방, 높은 근육량)이며, 이를 측정하기위한 방법으로는 복근이 보이는 몸으로 정했죠.

이 때 부터 저의 주식은 닭 가슴살 (삶은것 까진 못하겠고 구이) + 고구마 or 떡 + 야채볶음 이였습니다. 주 5일은 이렇게 먹고 주말에는 치팅을 하는 식이였죠.



운동은 오전에 웨이트 2-2.5시간, 오후에 부트캠프 식의 유산소 및 코어운동 1시간을 했습니다. 간간히 아이들 운동을 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같이 줄넘기 1000개 및 동네 달리기도 했죠.

늘어난 운동량 덕분인지 보다 깔끔해진 식사 덕분인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자 하루에 600-800g씩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말에 탄수화물 폭탄 흡입 및 음주를 하여 주말 이틀동안 3Kg 정도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몇달간 프로그램을 지속해 보니 각 주차별로 최소 500g이상 체중이 감소하면서 두달 동안 10Kg 감량에 성공하게 되었죠.

이 때에도 저와 자전거를 탔던 친구가 다시 등장하는데, 제가 먼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 그 친구도 합류하여 일부 운동프로그램은 그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헬스는 '고립'이다 라고 하지만, 근육만 고립시키고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지 않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연말 - D.L. Disabled List & 동료애

점점 태릉인화 되가던 저는 11월 말이 되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11월 20일 금요일.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닭가슴 살을 꺼내 구우려 하는데 무언가 뱃속에 잔변이 남은 느낌이 들고 불편하여 식사를 거릅니다. 저녁이 되자 약간의 위통까지 생겨 체한 것이라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고 소량의 죽으로 식사를 했죠. 밤이되자 위통은 더 심해져 손을 따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위통은 점점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21일 새벽 2시 경에 잠든 아내를 깨워 응급실을 향합니다.

수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나자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MRI 검사를 했고 맹장염 확진을 받습니다.

결국 21일 밤 11시에 맹장염 수술을 받게 되었죠.

수술 후 깨어나 22일 오전, 집도의를 만났더니 맹장염이 심해져 맹장이 터지면서 복막염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맹장염의 경우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는데, 복막염의 경우 염증이 우려되어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에 이를 알리니 HR에서 연락이 와서 회사 보험사에 연락하여 Short-term disability를 신청하고 개인휴가가 아닌 단기장애로 인한 유급 휴직으로 하라고 말해주더군요.

결국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첨부하여 보험사에 단기장애를 신청하고 12월 중순까지 회복을 위한 유급 휴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만 해도 강력만 모르핀의 진통효과로 인해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해 12월 중순까지 휴직이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입원실에만 하루종일 머무르니 심심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퇴원해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 진통제가 몰핀에서 타이레놀과 에드빌로 변경되자 왜 의사가 12월 중순 이후에 복직을 하라고 정한지 알겠더군요. 덕분에 12월 중순까지 푹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병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제 다이어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닷세간의 기간 동안 제가 먹는 음식이라고는 커피 + 물 + 쥬스 두 잔 + 젤리가 전부였습니다. 식단명이 유동식 (fluid)인데 한국처럼 죽 같은 음식이 없어서인지 이것도 음식이라고.... 이걸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입원기간 중에는 단백질 부족 및 운동부족으로 인한 감량 (근손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다이어트 목표가 체중 감량 뿐이라면 문제가 아닐텐데... 복근이 보여야 할텐데 체중은 줄면서 체지방은 늘어난다면 점점 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니까요. 또 복부에 수술을 해서인지 우측 복횡근과 복직근 쪽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제 배는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걱정이 더했죠.

하지만 퇴원 후에 체중을 재보니... 왠걸? 입원 전 (11월 20일) 아침에 계체량보다 4-5Kg가량 늘어나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계속해서 맞은 수액으로 인해 체내 수분량이 늘어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때 부터는 제 계획이 점점 현실성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12월 초 퇴원 후 부터 12월 말 까지는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이후 빠른 회복을 위해 홈짐 꾸미기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더구나 12월 말 부터 다시 4주간 락다운을 하여 gym이 문을 닫는다하니 더욱 다급하게 했죠.

스텝박스를 사고, 가변중량 덤벨과 로잉머신도 사고, 스미스머신 까지는 살 용기가 없어서 엘라스틱 밴드를 샀습니다.

다행히 12월 말 부터는 어느정도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계획했던 수준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gym에서처럼 고중량을 다룰 수는 없다보니 근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긴 합니다. 락다운 직전에 gym에 두세차례 갈 수 있었는데, 하체의 경우에는 입원 전에 들던 무게의 2/3도 들기 버겁더군요.

이렇게 부상 회복을 하는 와중에 제 본업은 어땠을까요?

단기장애 휴직 이후에 복직을하니 하루는 회사 전체 연말 이벤트, 다른 하루는 개발팀 이벤트, 그리고 또 팀 내 연말 이벤트로 삼일 정도를 그냥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주일 정도가 남게 되었고 연초에 미리 계획해 둔 개인 Innovation Day를 보내며 회사 일을 하지 않고 개인 연구를 했습니다. 말이 개인연구지, 올 해에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푹 쉬었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내년 new year day까지는 회사 연말 셧다운이라 근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12월에는 3일정도 실제 근무를 했으나, 그나마 그 근무일들도 다양한 회사 이벤트들 덕분에 거의 놀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죠.

아, 12월 중순에 수술 후 복직을 하면서 우리 팀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직 후 첫 날 첫 아침 stand up 미팅을 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집이 아닌 길거리에서 화상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뭐지??? 하면서 미팅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 배경에 잡히는 모습이 왠지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경에 저희 집 드라이브웨이의 인터라킹과 같은 패턴이 잡힙니다.

"딩동"

뭐... 뭐야?

팀원들이 저희 집에 누가 온 것 같다며 빨리 현관으로 나가 보라고 합니다. 복직은 했지만 아직 복부 통증때문에 뛸 수는 없던 저는 천천히 걸어서 1층으로 올라가 현관 문을 열어봅니다. 이런... 이 녀석 저희 집 앞에 있었던거에요.

"힘든 시기에 수술까지 하면서 더 힘들었을텐데,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맙고 입원 중에도 이것저것 슬랙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알려줘서 고마워. 연말이기도 하고, 큰 일을 겪어낸 것을 축하하려고 팀에서 돈을 모아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라면서 이 녀석을 건내는군요.


양주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비싼 술을 잘 안마시다보니 잘 몰랐는데, 나름 $100불 정도 하는 술이더군요. 이제 팀원이라봐야 3명 뿐인데... ㅠㅠ 짜식들 돈 많이 썼네요.

수술 후 복귀하는 사람에게 줄 만한 선물은 아니긴 하지만 누가뭐래도 정말 고맙웠습니다.

덕분에 올 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는 값비싼 위스키도 마셔 보았습니다. :)


이렇게 2020년 올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진급했다는 것 외에 아무 일이 없었던 해이며, 전 세계적으로, 제 개인의 심리적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한 해 였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심리상태와 집중력을 되찾아 다시 열심히 일하는 둥이아빠가 되길 바래봅니다.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직장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이벤트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Covid19 덕분에 저는 평소보다 조금은 텐션이 내려간 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루틴에서 오는 안정감을 즐기면서도 그 루틴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지금의 생활이 이와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죠.

Covid19이 터지고 처음 2주 정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스 때 처럼 길어야 한 두 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재택근무라는 형태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또, 그 때만 해도 gym이 문을 열었기에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 시간으로 옮겨서 하루에 1-2시간 정도 하던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각 2시간 씩 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확정까지는 아니지만 3월 말이면 진급이 될 예정이였기에, 집에서 어떻게 파티를 할 까 즐거운 상상을 했었죠.
작은 문제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보니 non-verbal communication에 의존도가 남모르게 높았던 편인데, 각종 커뮤니케이션들이 화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보다 더 앞에 나서기 힘들었고 주변에 진행상황들을 이전보다 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gym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레이오프 계획 발표가 나면서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 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는 마당에 진급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만족을 누리던 운동이 모두 중단되었는데, 내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생겼으니까요.

다행히 레이오프의 규모가 처음 예상보다 작았고, 그 비수가 저와 저희 팀을 비껴나가기는 했지만 한 번 떨어진 텐션은 좀처럼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Covid19은 이전 전염병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장기간 진행될 것이 확실해지며, 어쩔 수 없이 6월에 계획한 여행도 취소를 하고나니 정신적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초반에는 작은 문제였던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죠. 초반 몇 주 정도는 이미 제가 잘 알고있는 context를 기반으로 회의가 진행되어 그 이후의 업데이트들에 대해 조금씩 놓치는 정도였는데, 몇 달이 지나고나니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면서 팀을 기술적으로 리드해야하는 입장임에도 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누가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까지 하는 깜깜이가 되어버린 것이죠.
결과적으로 제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의 생산력은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 중에 집중력 자체도 많이 떨어졌고, 저희 팀의 진행상황과 주변 팀의 근황에 대해 깜깜이가 되면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제대로 된 일을 하는데 그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짓을 하곤 했죠.

5월이 되어 캐나다 내에서 확진자 증가추세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는 다시 출퇴근 모드로 전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고,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면 출퇴근을 하고싶고 재택근무는 주 1-2회 정도 제한적으로 하고 싶다고 답변을 했죠. 하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계획은 최소 연말까지는 전원 재택근무를 하고, 내년 즈음부터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순환 출근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더군요. 예를들어서 A 팀은 매 주 월요일날 오전에 출근을 하여 다 같이 모여 회의와 업무를 보고, B 팀은 매 주 월요일 오후, C 팀은 화요일 오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 생활을 하다가는 심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아침마다 아이들과 러닝을 시작했고, 낮에는 같이 줄넘기, 오후에는 자전거 타기나 산책을 하면서 돌파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저의 몸을 이끌고 유산소를 하기에는 버겁고 힘들어서 잘 맞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 몸 보다 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내리는 것이 저와는 잘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거나 뛰거나 걸으며 동네를 돌다보면 요즘 실내외 공사는 초극 성수기인 것 같습니다. 다들 어디 여행이나 캠핑을 갈 수 없어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집 공사를 정말 많이 벌이고 있더군요. 손재주가 있으신 분들은 나무나 돌로 뒷마당 데크 공사를 직접 하시기도 하고, 저처럼 손재주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업체를 불러 가드닝, 인테리어, 데크, 팬스 공사를 정말 많이 합니다. 공사중인 업체 사람에게 물어보니 요즘 주문이 밀려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올 해에는 예약이 빈 틈 없이 꽉 차있다고 하네요. 저도 기분전환을 위해 무언가 하나 하고싶은 맘이 있지만 아무래도 자금의 압박이 있다보니 작은 것 부터 하나씩 직접 해 보려고 하고 있죠.

근황 내용이 좀 길었는데, 저는 이렇게 슬기롭지 못한 social distancing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제 업무시간이 다 끝나가는 오후 4시 30분경, 매니져가 quick call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늦게 저희 팀이 관리하는 infrastructure 중 하나가 말썽의 소지가 있어서 제가 손을 봤는데, 행여나 그 쪽에 문제가 터진 것이 아닐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화상전화를 시작 했습니다.


"3월달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얘기했던 진급도 회사 차원에서 전부 취소되서 참 미안하다. 그런데! 그런데,"


매니져가 먼저 3월달에 covid19이 터진 것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행여 레이오프 규모가 충분치 못해 2차 레이오프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바짝 긴장을 했죠.


"내가 회사에서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하면 그 때 너를 진급시키겠다고 했자나. But I am liar."


왓!!! 하반기에도 진급 프로세스가 없는 것일까? 아님 정말 최악의 메시지인 레이오프인 것인가?


"아무래도 네 진급을 다음 진급 프로세스 기간까지 미루는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를 에스컬레이션 했고, 위에서도 다 okay해서 넌 오늘부로 진급이야."


"진짜? 나 진급을 위한 문서 작성한거 없는데?"


"지난번에 네가 쓴 draft 기반으로 내가 따로 준비하고 있었어. 어차피 그 동안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기에 리뷰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정식 프로세스가 아니라 될지 안될지 확실하지 않아서 너에게 따로 뭘 요구하지 않은거야. 지난번처럼 또 취소되면 괜히 안좋을 것 같아서 나 혼자 했지. 축하해. 정말 축하해."


"와... 고맙다. 요즘 들은 소식중 제일 기쁜 소식이네."


"HR에서 따로 갱신 계약서 보낼꺼야. 네가 거기에 사인을 거부하지 않는한 넌 오늘부터 진급이다. 그리고 사인을 해서 보낸다면 다음 달 부터 갱신된 연봉을 받을텐데, 진급 시점을 6월 1일부터 진급으로 소급 적용하는거라 다음 월급에 돈이 좀 더 많이 들어올꺼야. 계속 그 금액이라고 착각하면 안되."


"오케이"


"아, 그런데 회사 진급 프로세스가 취소된 상태라 네 진급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을꺼야. 하반기에 진급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되고 진급자들이 나오면 그들하고 다 같이 발표될꺼야. 괜찮지?"


"괜찮지. 그러면 진급 사실을 숨겨야 하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구지 숨길 필요는 없어. 축하하고, 너만 괜찮다면 팀 내에는 내가 알릴께."


"당연히 완전히 당근 괜찮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잘하게 발생하는 즐거운 일들은 목표한 계획을 완수하고 끝냈을 때가 될 것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발생하는 즐거움은 아무래도 임금인상과 진급이 되겠죠.

진급을 하면 할 수록 늘어가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지만, 이미 제가 하고있는 일과 그 스트레스 레벨이 다음 직급 수준이라면 구지 타이틀을 바꾸고 임금을 올리는데 주저 할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직책이나 직급상 리드 타이틀은 분명 아닌데, 제가 이직을 하면서 팀을 셋업했고 팀원들 중 가장 seniority가 높다보니 알게모르게 리드롤을 맡고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최대한 외면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 시스템에서 저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고, 좀 더 넓고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생겼을테니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도 다음 주 휴가기간 까지는 지금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잠시 relax 할 것입니다.



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레이오프 폭풍 탈출 후

안넝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작년 9월, 하반기 고과평가 기간 직전에 제 매니져가 1 on 1 미팅을 하며 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넌 왜 승진 요청을 안하니?"



'승진을 요청한다고??? 승진은 그냥 실력 되고 성과 증명해서 때가되면 하는거 아닌가?'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조금 당황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포지션에 대한 제 생각을 말 했습니다.

"내가 매니져를 하고 싶어한다거나 그런 것 처럼 다른 롤이 하고싶다면 몰라도, 난 포지션 자체는 별로 관심 없어."

"그래? 하지만 자신의 롤에 맞는 정당한 포지션을 받아야지"

"포지션이 뭐가 되었건, 내가 하고있는 롤이 있고, 난 그 롤이 좋아. 타이틀이 롤에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별로 상관 없어"

"하지만 너의 타이틀이 네 공헌도를 충분히 반영해 주어야 하고 걸맞는 타이틀을 줌으로 해서 너의 실력과 성과를 respect 해야 해."

"I don't care my title is respecting my contribution or not,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 whatever it is."

"I'm not sure do you want promotion or not, but I will put you on promotion program next April. I insist it unless you seriously against it."



당시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프로모션을 요청해야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참 눈치도 느린 저는 승진은 때가 되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했었죠.

전 직장에서 매니져와 이것저것 현재 회사 운영/관리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우연치않게 제 직급이 이야기가 나와서 왜 난 아직도 타이틀이 그대로인지 살짝 짜증섞인 항의투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곧바로 다음 평가에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두어달 만에 이직을 했기에 실제 승진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승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것저것 관리/운영을 두고 논쟁을 하다보니 심각하진 않았지만 살짝 서운했던 것이 어쩌다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이죠.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던 이유는 타이틀 변경이 없어도 제 연봉은 꼬박꼬박 원하는 수준 이상 잘 오르고 있었고, 타이틀과 무관하게 제가 하는 롤이 있었고 그 롤에 맞게 사내에서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직 후 새 직장의 새 매니져가 왜 승진요청을 안하는지 저에게 먼저 반문을 하자 캐나다 직장문화에서는 승진도 스스로 찾아먹어야 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네요.

매니져와 1:1이 끝난 후에는 매니져가 반년 뒤에는 그 이야기를 잊길 바라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습니다. 직장인에게는 일종의 훈장같은 것이라 승진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괜한 완장의 무게라고나 할까요? 특히나 커뮤니케이션에 단점이 크기에 타이틀 상으로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가이드 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매니져에게 말 한 것과 같이 'if my salary respects me, I don't care'라고 생각했기에, 평생 지금 타이틀에 머물며 지금처럼 필요에 따라서만 앞에 나서서 돌격대, 선봉장, 행동대장 정도의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뒤에 물러나 조용히 제 일만 하면서 제 기여도에 맞춰 임금이나 보너스, 베네핏 등의 인상을 하면서 타이틀에 따른 의무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자 했었죠.

하지만 작년 10월 평가가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현 직장은 job title이 바뀌지 않으면 임금 변화가 없었습니다. 진급이 되지않으면서 임금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사팀에서 매해 조사하는 시장 평균과 우리 회사 연봉수준과 차이가 있을 경우에 일괄적으로 올리는 예외적인 경우 뿐이였습니다. 아... 고용 계약서에도 있는 내용인데, 이 중요한 것을 그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죠.

타이틀이 뭐건 임금만 쭉쭉 올리면 된다는 생각이였는데, 임금을 올리려면 결국 진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더 벌기위한 진급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올 2월에 매니져가 제 진급 이야기를 다시 꺼냈을 때에는 'thank you'라고 애둘러 승낙 의사를 표시 했습니다.

자리의 무게에 대한 고민은 오래 했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나니 바뀌는 타이틀에 대한 괜한 기대감과 흥분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더 오를 연봉에 즐거웠어요.


그리고 한창 진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모으고 작성하려고 하는데, Covid-19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가격리 기간인 2주, 길어야 한 달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 한 달 후에 다시 출근을 했을 때엔 진급 심사 절차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훈장을 받아 더욱 더 즐겁게 일 할 것이라고 예상 했었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캐나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며 지속적으로 비지니스를 운영할 수 있는 IT 회사이지만 우리의 고객들은 그렇지 못해 대다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리니 우리의 매출과 소득이 줄게되었고, 전세계 시장이 얼어버리니 IT 캐피탈 시장 역시 모두 동결이 되어버려 우리 역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향후 2년 정도는 캐피탈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투자자들의 의견이였죠.

결국 약 2주 전에 향후 시장이 다시 풀리게 될 24개월 후 까지 회사를 유지시키기 위한 당장 비용절감을 해야만 하며 향후 2주간 모든 분야에서 비용절감 계획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IT 회사에서 비용절감이라는 것이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 외에는 머릿수 줄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임금 삭감도 방법일 수 있지만 이는 유능한 인재를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오기에 선택지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했기에 결국 그 발표는 레이오프를 하겠다는 발표일 수 밖에 없었죠.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 대외비를 조건으로 전 직원에게 미리 알린 것 자체는 칭찬받을 일이기는 했지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저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퍼포먼스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메트릭 상으로는 분명 퍼포먼스가 떨어졌음에도 새벽중에도 한밤중에도 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흔적들 역시 보였습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장의 비용절감 필요성 발표 직전에 사나흘이면 끝날 것이라고 계획했던 업무가 거의 2주간 붙잡고 있었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놀고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녘에 일찍 일을 시작해서 저녁식사 후 잠시 휴식을 가지고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했음에도 전혀 진전이 없었죠.

발표 이후 이렇게 저 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적지않은 동요가 일어났고, 이후 개발팀 전체 미팅을 하면서 저희 팀 내에 더 큰 동요가 있었습니다. 개발팀장이 레이오프 기준이 될 만한 몇가지 데이터 중 하나로 seniority를 예로 들어서 말했는데, 저희 팀 팀원들 중 절반은 경력 3년 미만의 신입들이였기 때문입니다. 24개월 후를 기약하며 그간 비지니스 성장은 못하더라도 충분히 내실을 다지고 향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개발자가 더욱 더 중요하고, 시장이 다시 성장 추세로 변했을 때에는 seniority가 높은 개발자들을 구하는 것이 더욱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였는데, 하필 그 많은 기준들 중 이 한가지만 언급을 하여 팀원들 중 절반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실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그들 뿐 아니라 모든 개개인이 그러했습니다. 한 팀원은 캐나다에 온지 갓 2년정도 되었고 아직 신분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도 아닌데다 아내는 아직도 인도에서 건너오지 못해 2년째 홀아비 생활 중인데, 이제 아내의 가족동반 비자문제가 거의 해결되어 올 2월달에 콘도 렌트와 차량 구매를 시작했고, 올 해 5월에 입국 예정인 아내를 맞기 위해 하나씩 가구들을 들여놓으며 준비중이였죠.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아내의 입국은 기약없이 연기 된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레이오프가 된다면, 신분도 문제고 이제 갓 시작한 차량 할부금에 콘도렌트 2년 계약 등 머리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사실 남 걱정 할 것이 아니고 저도 제 나름대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제가 이 회사로 이직한 이유도 제가 할 일이 회사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일이였기 때문인데, 회사의 규모가 오히려 뒷걸음질 칠 마당에 제가 과연 필요할까에 대해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죠. 차라리 당장 제품 기능 개발팀으로 들어가도 자신의 연봉만큼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신입들이 저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 했습니다. 또, 기준 중 하나로 Seniority가 언급된 것에 대해서도 '아... 작년에 그냥 진급 했으면, 좀 더 안전했을텐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죠.

이렇게 하루하루 팀원들 걱정과 제 자신 걱정에 불안해 하다가도, 남은 2주간 나를 더 잘 드러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진전시키지 못하며 패닉에 빠져있어 나와 내 팀원들을 더 사지로 몰고있다는 죄책감까지 겪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떨리는 2주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레이오프 발표가 났습니다. 다행히 저와 제 팀원들은 실직의 비수에서 벗어났지만, 제 팀 상위의 팀 조직 전체로는 20%가 조금 넘는 레이오프가 발생 했습니다. 레이오프 대상자들에게는 그 날 아침 개별 통보 및 면담이 이뤄졌다고 하고, 오후에 남은 직원들을 모아 따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레이오프가 되더라도 팀원들과 인사할 수 있게 메일을 보내거나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이전에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것 같네요.

저희 팀에 살수가 미치지 못 한 이유 중 하나가 현재보다 더 폭넓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오프 공포에 빠지기 직전에 저희 팀의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심각성과 중요성, 긴급성이 높다고 보였으며 우리 팀에서 이에대한 솔루션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하기로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주간 제가 패닉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와중에 저희 팀 신입 중 한 명이 이 일을 멋지게 해내며 저희 팀의 가치와 가능성에 마지막 방점을 찍어 준 것입니다. 덕분에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앞으로 저희 팀에서 몇몇 업무들을 더 가져오며 업무 영역도 더 넓어지며 거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져 올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오히려 그 친구가 해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꼭 큰 사고를 하나씩 터트려 주는 우리 팀원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지금까지 일 한 팀들 중 가장 최고의 팀입니다. (비용절감 예정 발표 직후에도 이 말을 팀원들에게 했었죠.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인사를 못 할 수도 있으니까요)


레이오프 공식 통보 및 발표 이후에 지난 2주간 모든 직원들이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니 잠시 심신을 추스리라며 지난 금요일 1일간 전체 무급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주말 내에 지난 2주간 제가 진척시키지 못한 일들을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심기일전 해보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블랙베리처럼 여러 차례 레이오프를 하며 모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이 바닥을 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한 이번 한번으로 끝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거나 너무 장기화되어 앞으로 2년이 아닌 더욱 더 긴 기간동안 불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 번 레이오프 바람이 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신차려서 잘 이겨나가야하고, 다음에 이런 위기가 다시 닥치게 된다면 이번처럼 혼자 패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아야 하니까요.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IT] SW 개발자 되기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한 달 전 즈음에 녹화했던 아리랑 TV 지식 더하기 정보 나누기 행사의 인터넷 방송본이 나왔네요. 본방은 28일 OMNI2를 통해 한다고 하는데, 어릴 적 불렀던 노래가 다시금 생각납니다.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ㅎㅎㅎ





아주 잠깐 TV에 얼굴을 비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제가 떠든 것은 처음입니다. 제 실수로 휴가일과 녹화일이 겹치는 바람에 휴가까지 하루 미루고 참여를 했는데, 지금 유투브로 다시 보니 적지않은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 해 주셔서 더 힘내서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녹화가 종료된 후에도 많은 분들이 남아 질문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영상에 잠시잠시 슬라이드를 보여줄 때 해상도를 원래 템플릿에 맞지 않게 해서인지 글씨들이 깨져서 보이는 것이 조금 아쉬운데, 본방 전 까지 수정을 해줄지는 모르겠네요.

작년부터 이런 저런 사유로 인해 블로그 활동을 뜨문뜨문 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무료 강연이나 강좌, 혹은 세미나나 멘토링 등을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이번 강연을 하면서 느꼈는데, 비록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으며 제 스스로의 커리어도 힘겹게 버텨나가는 사람이지만, 그러한 저의 의견이나 이야기와 지식이라도 다른분들과 함께 나누면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사실 올 해에도 몇 번 생각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제가 힘들기도 했고 기존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참여하시는 분들의 열정이 저의 그것에 미치지 못해 저는 저대로 의욕이 빠지고, 학생 분들도 따라오기 버거운 상황들이 자주 연출되어 같은 직업인들 사이의 세미나나 스터디 외에는 잘 하지 않았는데, 저와 비슷한 뜻이나 생각을 가지신 분들과 함께하면 조금은 나은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을 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속한 모임에서 간간히 진행하는 세미나나 스터디, 단발적 강의 등을 좀 더 홍보하여 외부에서도 찾아오실 수 있게 할 방법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제 일이 전년에 비해 올 해 더 바빴고, 올 해에 비해 내년이 더 바쁠 예정이지만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듣다보니 돈 받고하는 강연은 '일'이라 강사가 힘들지만, 스님은 일체 대가를 받지 않고 강연을 하시기에 '놀이'가 되어 몇시간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저에게 수익이나 매출이 잡히는 일이 아니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 봉사활동으로 한다면, 저 역시도 제가가진 지식과 기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강연/강의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취미활동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며칠 전 한 지인이 오래간만에 연락을 하셔서 한두시간 가량 수다를 떨었는데, 조만간 무료 부트캠프를 열고자 백방으로 노력중이라고 하시더군요. 무료 강의인데, 강의를 할 장소 섭외가 마땅치않아 고민이 많으시더군요. 그 분이 하시고자 하는 부트캠프의 컨텐츠가 너무 좋아서 정말로 열심히 할 수 있는 학생들만 모은다면 아주 값진 프로그램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그래도 모임에서 추진중인 공개 교육 프로그램과 같이 연동하면 어떤지 이야기를 하고 왔답니다.

유료 교육/강연의 경우 학생들이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최소한 출석이라도 제때하고, 과제도 최소한 손이라도 한 번 대보는데, 무료 프로그램의 경우 제 경험상 동 분야 전문 직업인들끼리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학생들의 낮은 의욕과 참여도가 뜨겁게 불타오르던 강사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것이 무료 교육의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또, 무료로 하다보니 회의실/강의실 등 장소 섭외게 쉽지 않으며 충분하고 적절한 홍보 역시 어려워 운영/관리가 힘든 것이 그 다음이고요.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 모여서 다 같이 고민하다보면 무언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이야기를 던진 지 1주일이 채 안되어 몇몇 큰 그림의 아이디어들만 있고 구체적인 검토가 부족하지만, 혹시나 첫 강의/교육/강연 스케쥴이 잡히면 블로그 글을 통해 홍보 좀 하겠습니다. ㅎㅎㅎ

토론토에 한인 개발자 10만명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아자!

2019년 12월 10일 화요일

컬리지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활동 (Program Advisory Committee)

안녕하세요 둥이아빠입니다.

보통 컬리지에서 오는 이메일들은 동문들에게 기금모금을 하는 연락이거나, 동문파티 등등 별로 관심이 없는 내용들이라 읽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편입니다. 얼마 전에도 센테니얼 컬리지에서 이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Invitation for PAC member'


메일 제목도 뭔지 알 수 없는 단어인 PAC이라는 말이 적혀있어서 바로 삭제를 했었죠.

그 사실을 잊고 며칠이 지난 후 얼마 전 주문한 TV가 아직 배송이 되고있지 않아서 혹시나 스팸함이나 휴지통에 메일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스팸함과 휴지통을 뒤져보는데, 의도치않게 그 메일의 본문이 열렸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열린김에 잠시 읽어보는데 메일의 시작이 제가 아는 교수의 이름으로 시작하더군요.

 'XXX 가 추천을 해주어서 너를 Mobile Applications Development 학과의 PAC 멤버로 초대하고싶다.'

PAC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학교다닐 때 만났던 교수의 이름이 들어있기에 구글에서 PAC이 무엇인지 찾아봤습니다. 찾아보니 Program Advisory Committee의 약자로 학과 프로그램 구성 및 설계, 방향성에 대해 자문을 하는 외부 자문위원 활동이더군요.

발신인도 찾아보니 그 학과의 full-time faculty 중 한 명인데, 교수를 하고있는 사람이 메일을 보내면서 아무도 알지 못 할 PAC이라는 약어를 제목으로 쓰고, 메일 본문에 PAC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쓰지 않아서 이 교수가 이상한 것인지, 저를 초대 할 의욕이 전혀 없는건지, 제가 상식이 부족한 것인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네요

여하튼, 구글링을 통해 PAC이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고, 참석을 여부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쪽을 하긴 했지만 이미 손을 놓은지 거진 3년이 다 되었고, 제가 했던 모바일은 일반적인 시장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모바일 분야를 떠난지 약 3년가까이 되었고, 지금은 DevOps관련 일을 주로 하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되는 것인지 소개를 해 달라고 답장을 보냈죠.

메일을 보내고 잠시 후 곧바로 답장이 왔는데, 한 번 시작하면 3년간 임기이며, 일년에 2회 정기회의 외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하는 별도의 활동은 없는 일종의 봉사활동이라는 답이 왔습니다.

일단 안그래도 바쁜 상황인데 저를 더 힘들게 만들만큼 일이 큰 것은 아니라는 점에 마음이 놓였지만, 반대로 학과 프로그램  설계에 참여하는데 연간 2회 미팅만으로 무엇이 가능할까 싶어 형식상 존재하는 위원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제가 충분한 실력과 자질을 쌓은 후에는 컬리지 강사를 한 번 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기에 일단 한 번 참석을 해 보기로 결정을 하였고, 이번 주 월요일에 첫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석을 했습니다. 졸업 후 4년간 단 한 번도 학교에 갈 일이 없었는데, 지난달 지식 더하기 정보 나누기 행사에 스피커 참석 건으로 가고 다시 한 달 만에 학교에 오니 왠지 학생때로 돌아간 것 같아 이상하더군요. 제 신분이나 일자리 등등 모든 것이 불명확하던 시절이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니였고, 자주오니 많이 바뀐 캠퍼스가 다시 눈에 익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난번 행사는 학교 행사라기보다는 아리랑 TV의 행사에 학교와 같이 주관을 한 것이고, 학교 전체라기 보다는 국제학생 학부에서 주관한 행사라 딱히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컬리지 학부에서 하는 행사인지라 오래간만에 몇몇 반가운 교수들과 학과장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저를 추천해 준 교수 사무실에서 1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눈 후, 회의실로 들어가니 저에게 메일을 보냈던 교수가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더군요.


이번 회의 아젠다, 위원회 활동에 대한 가이드 문서 등을 읽어 볼 때만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 회의록을 읽어보니 그래도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한 행간의 내용은 제가 알 수 없지만, 현재 학과의 커리큘럼을 읽어보면 지난 회의록에서 제안한 몇몇 사항들을과 연관된 키워드들이 보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신입 위원 3인과 기존 위원들간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회의인지 몰라 적당히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위원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의견들을 가감없이 내던지고 있고, 학교에서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포착되어 저도 제 생각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지거나 이야기 전환할 만큼의 영어실력은 안되기에 제 생각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기회를 봐서 하나씩 생각들을 던졌죠.

"1년 2학기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학기마다 배우는 전공 5과목 중에 서로 연관성이 아주 낮은 코스가 3-4개 정도로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전혀 다른 것 3-4개 이상 배우는 것인데, 차라리 1학기에는 mobile관련 다양한 것들을 general하게 배우고, 2학기에는 몇가지 스트림을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선택적으로 특정 스킬셋에 대해 깊이있게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개인적 경험상 컬리지 졸업자들이 대졸자 대비하여 인터뷰 뿐 아니라 실무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크게 취약한 것 3가지가 있는데, 디자인패턴/설계, 테스팅, 안드로이드 activity/fragment/service 라이프사이클 관리 등과 같은 기본지식이다. 4년간 배운 학생들만큼 성취를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어찌보면 현업에서 가장 기본이되고 중요한 지식을 전혀 배우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고, 현재 프로그램에서 백엔드, iOS, Android, Mobile Web 등 너무나 다양한 기술들을 배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학교에서도 동의를 했고, 학생들 설문조사를 거쳐 두번째 학기에는 2개 혹은 3개의 스트림으로 나누는 방향에 대해 학교에서 좀 더 고민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파트타임 교수를 하는 일부 위원회 멤버들이 우려하는 것은 비용/난이도 등의 문제로 학생들이 스트림을 선택할 경우 90%이상 Android로 가서 스트림 운영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과목 개설을 위한 최소 학생 수 확보가 안될 수 있기에) 그래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것이였죠.

또, 학생들에게 너무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에 학교도 동의를 하여 2020년 가을학기 부터는 프로젝트 과목에서 모든 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총망라한 integrated capstone project를 하고, 각 과목에서는 학기말에 별도의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 과목의 교수들이 같이 협동해서 코스 커리큘럼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기에 학교 입장에서는 좀 더 일이 많아졌겠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학생들의 로드가 줄어들 수 있기에 좋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원래는 2학기에만 capstone project를 했는데, 이것을 1학기부터 하는 대신에 1학기 중반정도 까지는 진짜 프로젝트를 하기 보다는 실제 현업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인 테스팅, CI/CD, 디자인 패턴/설계 등등에 대한 내용들을 조금씩이라도 훑어보도록 과목 설계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회의 중 세부적으로 정하지는 않았고, 추후에 shared document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미팅은 거의 반년 뒤에 다시 있을텐데, 이번에 제안된 내용들 만이라도 다 반영이 된다면 확실히 이전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수업을 어떻게 설계하건, 그 누가 와서 강의를 하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추는 학생인데, 과연 학생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를 하고 스스로 노력을 할 것인지가 의문이긴 합니다. 공자/맹자가 와서 가르친다 한들, 학생이 아무런 의지가 없다면 무엇 하나 깨우칠 수 없으니까요.
위원회 회원들 중 컬리지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저 뿐이라, 대학생들을 생각하고 의견들을 제시한 것일텐데, 컬리지를 다녀본 저로서는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허무해지는 것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공부 안하고 그냥 대충 학교만 다니고 졸업장만 받을텐데... 우리가 이렇게 목에 핏대 세워가며 토론하는 열정의 절반이라도 가진 학생은 아주 드물텐데...' 

이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래도, 이 학과는 다른 IT분야 학과와는 달리 관련 전공 기 졸업자들이 mobile 특화된 개발을 배우기 위해 듣는 프로그램이라 하니, 제가 경험했던 컬리지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열정이 있으리라 믿어보고 위원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 할 생각입니다.

최소한 학교측에서 위원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제안을 받아들일만큼 충분히 개방적이고, 커미티 멤버들 역시 이 봉사활동을 한낱 지나가는 일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열심히 활동하다보면 무언가 발전이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2019년 11월 25일 월요일

2019년도 마무리 몸살

안녕하세요, 둥이아빠입니다.

2019년 막달을 코앞에 두고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달리던 중, 몸살이 나버렸네요.

3주 전 금요일에 아리랑 TV 지식 더하기 정보 나누기 공개방송 녹화에서 패널 스피치를 마쳤습니다. 원래 뉴질랜드로 휴가를 떠나는 날이였는데, 항공권 예약시 가격 문제로 수차례 계획 변경을 하다보니 출발일을 토요일로 착각해 출연 요청에 승낙을 해버렸기에, 가족들은 그 날 뉴질랜드로 떠나고, 저만 토론토에 남아 스피치를 했네요. ㅠㅠ

행사 진행 관계상 시간이 없어 미처 질문을 하지 못하신 분들이 행사 종료 후 적지않게 오셨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한분 한분 좀 더 차분하게 질문을 받았어야 하는데,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싶어요.

행사 종료 후 밤 늦게 집에와서는 저도 뉴질랜드로 갈 채비를 바삐 했습니다. 일정이 그리 길지않은 1주일이라 (왕복 항공시간이 이틀을 넘어 사실상 4.5일) 큰 트렁크 하나에 여름 옷가지 대충 우겨넣었죠.

제가 사는 곳은 토론토도 아니고 인근에 중형 도시임에도, 부모님께서 오시면 너무 북적거려 정신없다고 하십니다. 부모님은 뉴질랜드 루럴 지역에 사시다보니 캐나다의 한적한 주택가도 복잡하게 느껴지시나봐요.

 

3년만에 부모님 집에 간 것 같은데, 전보다 마당이 더 단촐해졌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몸이 더 약해질 때를 대비해 최대한 손이 덜 가면서 정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바꾸고 계시다네요. 가끔 부모님께서는 은근히 제가 뉴질랜드로 다시 한 번 이민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기도한데, 뉴질랜드엔 제 일자리가 거의 없으니 마땅히 갈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짧은 1주일간의 부모님댁 방문을 마치고, 뉴질랜드 time zone에도, 토론토 time zone에도 모두 적응하지 못 한 상태에서 다시 출근을 합니다.

 

제가 휴가를 떠나기 며칠 전에 급작스러운 업무로 인해 제가 리드하던 업무를 팀원들에가 맡겨뒀었고 저는 긴급 업무를 이틀정도 본 후에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진척상황을 보니 발목을 잡을만한 문제가 하나 보여 짬짬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제가 휴가를 간 동안 다른 친구들이 해결 해 줄 것이라 믿고 (아니 빌고) 휴가를 갔었죠. 

 

복귀 후 첫 출근은 시차부적응으로 새벽 3시에 합니다. 그간 밀린 메일과 메신져 메시지들을 읽고, 마지막 하던 일의 추진 과정을 보는데... 이런...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 같네요.

 

10시쯤 되어 팀원들이 출근하고 진행상황을 확인 하는데, 제가 우려했던 문제점 부분에 딱 막혀 1주일간 그대로입니다. 일정대비 1주 이상 지연인 상태라 시차고 뭐고 없이 이 문제 해결에 뛰어듭니다.

화요일 저녁, 드디어 이 문제가 해결되고 수요일엔 늦잠 후 11시 즈음에 천천히 출근해서 지난 이틀간 제가 찾아낸 것들과 어떻게 수정을 한 것인지 팀원들에게 전파를 하고, 오후엔 시차 적응을 위해?? 꾸벅꾸벅 졸다가 퇴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오후... 지난 사흘간 안읽은 메일을 보는데, 아뿔싸!!! 금요일이 개발팀 연말 행사일이고, 제가 그 날 발표를 하기로 했던 것을 깜빡 했습니다.

 

미리 만들어 둔 PPT Draft 버젼은 행사 진행 담당자에게 휴가 전에 미리 보내놓긴 했지만, 말 그대로 draft 버젼이라 내용은 나쁘지 않아도, 슬라이드 순서가 스피치에 적절하다기 보다는 그 순간 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성되어 있네요. 

수정 후 빨리 보내고 싶었지만, 행사 담당자들은 벌써 퇴근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수정된 슬라이드 버젼, 수정 안된 draft버젼 두개 모두에 맞춰 스피치를 준비합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스피치를 준비하고나니 다시 또 새벽... 뒤늦게 잠을 청하고 일어나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제 아내가 저를 깨웁니다. 그 말은, 지각이란 뜻이죠.

 

앗!!! 9시다!

 

9시에 토론토에서 행사가 시작인데, 제가 9시에 일어났네요. ㅋ

행사장에 미리 도착해 수정된 슬라이드를 전달하려던 계획도 무산되었습니다.

제 발표 시간에는 늦지 않으려고 씻지도 않고 집을 나섭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보려고 열차 안에서도 유니언 역 출구 가까운 쪽 차량을 향해 계속 움직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아직 제 순서는 아니였습니다. 급히 나오느라 들르지 못한 화장실에 갔는데, 정신없이 나오느라 벨트도 안했고, 양말도 짝짝이더군요.

 

원래 15분 발표인데, 충분히 준비도 못했고 슬라이드 순서에 맞춰서 하다보니 10분도 채우지 못하고 스피치가 끝이 났습니다. 안되는 영어이지만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하려고 중간중간 Dry joke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는데 하나도 못했네요. ㅠㅠ

무사히 발표를 마치고 다른 팀원의 발표를 듣는데, 미리 맞춘 것도 아닌데, 제 발표 연장선 상의 이야기를 해 줍니다. 제 휴가기간 중 제 자료를 보고 일부러 맞춰 준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어느 쪽이건 우리 팀은 역시나 최고의 팀웍이네요.

 

저희 팀원 발표까지 듣고나니 갑자기 등 뒤에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더니 살짝 오한이 느껴집니다. 행사를 진행 한 극장 실내가 너무 더웠는데 이게 뭔가 싶었죠.

발표 행사가 끝나고 저녁 식사 및 게임을 하러 갈 타이밍이 되자 머리까지 어질어질 합니다. 자정까지 공짜 술이 예약되어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뿌리치고 집으로 왔죠.

 

집에서 몇 시간 누워있으니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금요일이란 것을 그 때에서야 깨달았네요. 토요일 오전에는 한글학교가 열리고 저는 한글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해야 하는데, 여행 전후로 공강을 하면서 잠시 잊었더군요.

공짜 수업이지만 담당하기로 한 일을 빵구낼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랩탑을 켭니다.

 

"쿨럭 쿨럭"

마른 기침이 새어나와 마지막 수업이란 것을 핑계삼아 새로운 내용을 준비하지는 않고 지금까지 1 학기동안 배운 내용들을 wrap up하는 것으로 재빨리 강의 준비를 마칩니다.

 

토요일 한글학교에서 코딩수업을 마치고나니 찾아 올 것이 찾아옵니다. 몸살이죠. ㅎㅎ

 

휴가 2주 쯤 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1달간, 연말까지 계획들 완성하느라 휴가 준비하느라 스피치 2개 준비하느라 바뻐서 아침에 운동을 안하고 쭈욱 책상에 앉아있었고, 휴가 자체도 워낙 빡셌는데 복귀 후 충분히 쉬지 못해서 몸살이 나버렸네요.

 

오늘 퇴근하는데 팀원 중 하나가

 

"내일은 널 보지 않길 바래. 내일은 Sick day 쓰거나 work from home 해라"

 

라고 말하길래

 

"내일 출근하면 제일 먼저 너에게 찾아가 악수하고 허그할꺼야"

 

라고 말하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상태를 보니 그 친구 말을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휴가 전부터 도와주기로 약속된 일이 내일 아침에 예정되어 있어서 고민이긴 한데, 오늘 밤 일단 푹 쉬고 내일 아침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회사 팀원들을 보면 육체노동을 요하는 봉사활동들도 참 많이 하는데, 서구인들이나 인도인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체력이 좋은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같이 술을 마셔봐도 주량 뿐 아니라 숙취 지속기간도 확실히 다르고요. 운동을 더 많이 해서 뒤쳐지지 않게 노력하는 길 밖에는 없겠죠?

 

 

P.S. 여담이지만, 코딩수업 이야기가 나와서 프로그래밍 조기교육에 대해 제 생각을 씁니다.

저도 40대 후반 즈음부터는 파트타임으로 컬리지 강사를 하는게 어떨까 싶어 한국/캐나다에서 붐이 일기 시작한 코딩 조기교육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이긴 하지만 저는 쓸데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 나온 교육 프로그램들은 말이죠. 차라리 어릴 때 수학을 더 공부하는 것이 나중에 프로그래밍, SW를 제대로 배울 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코딩 조기 교육 프로그램들을 보면 절차적 언어의 Behaviour를 게임을 통해 간접 학습하거나 자바스크립트로 그림 그리기 등등이 보통인데, 보드게임을 하더라도 충분히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라 구지 비싼 돈 주고 배울 가치는 없는것 같아요.

교육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라 나중에 더 좋은 조기교육 커리큘럼이 분명 나오긴 하겠지만, 지금은 구지 돈들여 가르칠 만한 것은 없더군요.

차라리 8-9학년 이상인 아이라면 어느정도 수학적 기반은 있는 상태이니 진짜 SW를, 아니면 코딩을 차근차근 기초부터 배우는 것이 나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