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 월요일

다시 한 번 구직!?!

안녕하세요.

2 주간의 휴가에서 복귀한 후, 그 간 밀려있던 메일들 쳐내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고, 2주간 밀려있던 가드닝을 하느라 조금은 정신없는 1주를 보냈습니다.

원래 휴가 복귀 후에 회사에서는 딱히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지지난 주에 완료되었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검증 인력 부족으로 full regression testing이 2 주 지연되는 바람에 지난 주에야 끝이 났습니다.

이미 반년 전에 예고한 휴가였지만 개발 기간 중 가장 time critical하고 바쁜 순간에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이 아직 한국물이 덜빠진 저로서는 조금 신기했는데, 휴가 복귀를 해 보니 팀 매니져 역시 휴가중이네요 ㅎㅎ.

휴가 직전에 연봉 협상도 순조롭게 마무리 했고, 회사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고, 근무 강도가 너무 빡세서 work-life balance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 매출과 수익은 계속 안정적으로 성장 중이라 월급 떼일 걱정도 없고, 이 회사에서 일한지 이제 1년 반 정도밖에 안되서 사실 이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제부터 천천히 이직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휴가 직전 제 성과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협상을 할 때에도 이직에 대한 생각을 30% 정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조건을 이야기 할 때 제 주장을 너무 앞세우지 않았고 적당히 acceptable한 선에서 멈췄지요. 아마 이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어떻게든 3주 휴가를 받아 냈을 겁니다. 그리고 휴가 기간 중에 이런 저런생각들을 많이 정리하게 되었고, 이제는 이직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30%에서 70% 까지는 올라온 것 같네요.

지금 제 조건에서 이직을 해도 이런저런 조건이 크게 나아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연봉 협상을 통해 오른 저의 지금 연봉 이상을 다른 직장에서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수준의 연봉을 그대로 받는 것 역시 부담스럽습니다. 오~~~래 전에 개발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하고있는 영역과는 조금 다른 영역이고, 지금 하고있는 일의 경력은 1년 반 밖에 되지 않기에, resume를 통해 저를 처음 알게되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 눔 뭔 배짱으로 이 돈을 달라고 그러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언변이 뛰어나다던지, job 인터뷰용 구술 이론에 빠삭한 것도 아닌지라 면접을 치루는 동안 제가 그 만큼의 value가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썩 자신있지는 않거든요.

캐나다의 법적 최소 휴가는 연간 2주이고, 지금 회사에서는 2주의 휴가를 주지만, 보통의 IT 기업들에서는 3주의 휴가를 주기에 휴가는 지금 보다 늘어 날 것 같습니다. 제가 3주 미만의 휴가만 가능한 경우 옮기지 않을 생각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 치과/안과/약값 등 benefit 부분에서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 본 결과 딱히 그 benefit을 제가 전부 챙겨서 쓰지도 못하다보니 이런 benefit에서 오는 실질적인 이득 역시 그다지 높지는 않더라고요.

출퇴근 시간 역시 지금보다 오히려 더 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도시와 그 주변에도 몇몇 IT 회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딱히 갈 만한 곳은 없더군요. 아무래도 IT 회사의 분포상 토론토 다운타운으로 갈 확률이 높은데, 그렇게 된다면 자차 출퇴근도 어려워 기차를 타고 다녀야 해서 출퇴근 비용과 시간이 지금보다 2~3배 정도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옮기려고 하냐고요?

조금은 우스운 말 일수도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은 이 역시나 직장 생활의 만족도에 있어서 critical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바로 "무료함" 때문입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scrum을 개발방법론으로 쓰고 있기에 매 스프린트는 2주 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 스프린트의 첫 주 수~목요일 정도면 해당 스프린트의 개발 task를 모두 마치는 편이며, 이후에는 할 일이 없어 말 그대로 손가락을 빨고 살죠.

처음에는 그 다음 스프린트의 타스크들을 미리 땡겨서 구현하여 개인 브랜치에 꿈쳐두기도 해 봤지만, 이는 그 다음 스프린트, 다다음 스프린트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의 대응은 스프린트 회의 때, 다음 스프린트의 스토리 숫자를 늘리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쪽에서는 제가 할 수 있다고 해도, 서버쪽 개발에서 손이 부족해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였죠. 그래서 결국 올해 초 부터는 저도 서버쪽 개발에 발을 담그기 시작 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그 쪽 개발을 할 욕심이 없었지만,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매니져와 협의 후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분야로 발을 넓히긴 했지만, 아직도 매 2 주 마다, 3~4일 정도는 할 일이 없는 배고픈 하이에나 같은 신세로 어슬렁 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서버에서 agent까지 full stack으로 할 테니 스토리를 늘리자고 해도 QA에서 그 속도를 맞추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매니져의 판단이였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은 각 제조사나 구글의 문서를 정독하고, 경쟁사 제품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 제품을 비교한 후에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새로운 피쳐들을 제안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 PM이 상당히 스마트한 편이라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들이였습니다. 단지, 고객 needs 기반 우선순위가 떨어져 구지 개발하지 않는 것일 뿐이였죠.

그렇다보니 매니져와 1:1 미팅을 할 때 마다 좀 심심하다는 것을 계속 어필했고, 그래서 다양한 고객 문제나 시장문제 긴급 대응, 혹은 오랜 기간동안 해결이 안되는 장기 미해결 문제들에 제가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꾸준히 할 수 있는 타스크가 아닌지라 완전히 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달 정도 혼자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나름 안드로이드 에이전트의 구조설계 부분에서 작지 않게 흔드는 큰 내용인데, 이를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였고, 팀의 역할상 제가 속한 팀 보다는 다른 팀에서 해야 할 업무인지라 결국 업무 이관을 했습니다. 막상 업무 이관을 한 후에 그 팀에서 구현한 내용을 보니 제가 생각해 두었던 것 보다 디자인과 구현을 훨씬 잘 했더군요. 아무래도 그 쪽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손은 남들보다 빨라도 두뇌가 빠른 것 같지는 않은가봅니다.

삼성에서도 아주 잠깐... 제가 속해있던 부서가 해체되기 직전에 약 한 달 동안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로 너무 행복했지만, 곧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오히려 더 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오더군요.
지금은 매 2주마다 3~5일씩은 회사에 가면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출근을 하면서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할 일을 찾아낼 것인지 고민하는데, 이 상황이 거의 9달 째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만에하나 이번 연봉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 이직을 하려고 했는데, 대부분의 제 조건을 회사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덕분에 약간은 멍~한 상태로 마무리 짓고 휴가를 떠난 것이죠.

휴가 직전에 사인을 하고 바로 휴가를 떠날 때만 해도, 무언가 이룬것 같고,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2주의 휴가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제 스스로 "이건 진짜 아니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느낀 것이 잠시잠깐 여유가 있을 때면 저는 인터넷이나 책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휴가 복귀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찾기 위해서였죠.

이렇게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로운 지식들도 얻게되고 유익한 면도 있지만, 이 상태를 지속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에는 제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한 일이 없더라도 회사 시스템에는 매일 8시간씩 제가 한 업무의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아주 사소한 일들도 3~4시간씩 한 것 처럼 뻥튀기를 하거나, 이미 완료된 타스크들도 여러 날에 걸쳐서 로깅을 남기고, 스프린트 막판에 실제로 완료된 것 처럼 날짜 분배를 해야만 했습니다. 무료함과 심심함도 문제였지만, 저의 이러한 행위들로 인한 죄책감 역시 문제입니다.

휴가 복귀 이후에 지난 달 이직을 하며 연봉 협상에서 제가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친하게 지낸 전 직장동료의 집에 놀러갔습니다. 새로운 직장은 어떤지, 애들은 잘 크는지, 한국 여행은 어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저의 고민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 친구역시 저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더군요.

지난달에 저에게 이직 이야기를 꺼낼 당시만 해도, 새 직장에서 연봉은 큰 차이 없지만, 개인 휴가 외에 매년 연말 1주간 직장 shutdown을 하기에 실제 휴가 기간은 연 4주로 늘어나고, 또 예외적으로 주 4일 재택근무를 회사에서 제시하여 갓 태어난 둘째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직을 하려 한다고만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 역시도 별 생각없이 다른회사에서 온 컨택에 응한 이유가 결국은 무료함과 죄책감 두 가지였다며 저의 생각에 100% 동의를 했습니다.

정말 배부른 소리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의 무료함과 죄책감으로 인해 이제 저도 서서히 이직 준비를 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 성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삼성에서 월화수목금금금에 추석/설에도 딱 1일만 쉬던 시절에 회계사인 제 형님이 감사팀에서 M&A로 팀을 옮기려고 한다는 이야기 했을 때, 저는 감사팀 업무가 너무 고되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감사시즌만 되면 형이 하는 일은 저 보다도 훨씬 고되고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히려 정 반대였습니다. 감사담당 업무 성격상 회계 감사시즌이 되면 몇 달 동안은 밤잠 못자고, 휴일 없이 일을 하지만, 비시즌 기간 동안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이 비시즌 기간동안 딱히 일이 없는 것이 힘들어 자기가 일만 잘 물어오면 일년 내내 일감이 있는 다른 분야로 옮기려 한다고 했었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이게 말인지 당나귀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형이 그저 부러웠을 뿐이였죠.

하지만 저도 한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이였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삼성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보니 바쁜 것 보다 더 힘든 것이 심심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헤드헌터들의 연락이 오면 지금 직장에 만족하여 옮길 생각이 없다고만 말 해왔는데, 이제는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의 컨택에 응답을 해보려 합니다.

처음 직장이 너무나 운이 좋아 큰 기대없이, 별다른 준비를 못하고 와버려 구직에 대한 노하우나 지식이 없으니, 이제 이력서 쓰는 법 부터 하나씩 공부를 해야겠네요.

작년 연초에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느꼈던 긴장감과 새로움에 대한 적절한 두려움과 신선함... 오늘부터는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가기 보다는 이러한 감정을 다시 찾기위해 나아갈 생각입니다. 기간이 얼마가 걸리건 간에, 뜻이 있다면 어딘가 길이 보이겠죠.


댓글 4개:

  1. 엄청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다른의미의 무료함때문에 다운타운으로 이직을 희망하는 중입니다. 이직 성공하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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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앗 상현씨 잘 지내시죠? 나중에 모임에서 한 번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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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roduct owner로, 각 개발자분들이 끊임없이 업무할 수 있게 먹잇감을 물어다주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한데, 한 팀에 개발자가 10명 이상 있고 App, Front, Server로 나뉘어 있다보니까 어떤 스프린트에는 App 개발자 분들이 특별히 중요한 스토리가 없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Server랑 Front는 항상 일이 많고. (Native App보다는 Web view 위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인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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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ayment domain에서 App수정은 거의 새로운 UI나 feature추가나, scheme 관련된 부분 그리고 간혹가다 PG사/카드사 사이의 이슈인데, 항상 새로운 UI 수정이 있을 수는 없으니 그 부분이 좀 구멍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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