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0일 수요일

교육 3주차, 감정노동 체험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이제 새 회사 출근 3주차이군요.
아직 교육기간 중으로 서포트 팀에서 일하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은 9-5로 고정이지만, 이제 더 이상 강의식 교육은 남지 않았고, 이메일 응답만 하고있어 근무시간 중에는 제 마음대로 시간 조정이 되니 나름 전보다 편해졌습니다. 특히나 이제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보지 않아서 눈이 덜 피곤하여 좋네요.
저는 전화 응답 업무를 하지않는 관계로 같이 이직한 다른 친구들 보다 1주 먼저 제 소속 부서로 옮기게 되어서 이번 주 금요일이면 교육이 끝나고, 다른 친구들은 다음 주 까지 교육이 지속됩니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 실제 고객들의 이메일을 받다보니, "탈퇴를 무기로 고객이 너를 겁 줄 수도 있지만, 두려워 말아라. 네 뒤엔 회사가 지키고 있고, 무슨 결정이든 우리는 너의 결정을 믿는다." 라는 말을 왜 해주는 것인지 이해되는 경우가 몇 번 생겼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서비스이지만, 20여년 전에 유니텔 콜센터에서 방학동안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젊고 기기에 관심이 많은 분들만 PC통신을 하던 시절이라그런지 딱히 기억나는 까다로운 혹은 난감한 콜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딱 1주일 정도 일하고 두 번이나 난감한 일이 생겼네요.
아무래도 취미/여가로 즐기던 PC통신과는 달리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서비스이니 좀 더 민감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더구나 고객들 중 IT와는 거리가 먼 층의 고객 비율이 높고, 회계 지식도 부족한 1인 기업체가 대부분이다보니 기술적인 한계나 제약으로 인한 문제, 회계상 문제들에 대해 이해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일 수도 있겠죠.

이전 직장의 주요 고객들은 보통 수천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대기업이였지만, 이 회사는 개인 개발자, 디자이너, 사진작가, 마케터 등 크리에이터, 변호사 등등 1인 서비스 기업이 대상 고객이라 연매출 50만불 정도 규모만 되어도 상당한 VIP 고객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파레토의 법칙으로 저희회사 수익에서 80% 이상은 이 VIP 고객들에게서 나오는데 이런 고객의 수는 20% 미만이죠.

한 번은 이메일로 문의 온 내용에 답변을 달았습니다. 문의를 한 메일의 정보를 보니 free trial 사용자이기에 그 사용자가 이용 가능한 기능으로 안내를 했죠. 그랬더니 "너희들은 일부러 내 말을 안듣거나 내 글을 안 읽는거냐" 하면서 버럭 화를 냅니다. 내가 너희 FAQ에 나온 글 못읽어서 그러는 줄 아냐면서, 자기는 2011년부터 계속 써온 다른 계정이 있는데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자기가 확인 해 보고자 임시로 무료계정을 하나 개설 한 것인데, 왜 내 무료계정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냐며 화를 냅니다.
화들짝 놀라서 고객이 보낸 메일 원문을 다시 읽고, 고객의 문의 메일로 회사 시스템을 다 찾아 보았지만, 무료계정 외에는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당연하죠.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주민등록 번호같은 슈퍼 키가 있어서 사용자를 통합 조회할 수 없으니 다른 이메일 계정이면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지금 문의를 준 메일에는 무료계정만 연동되어있고, 네가 말 한 다른 계정은 찾을 수 없으며 다른 계정에서 문제라고 따로 언급이 없어서 무료 계정에서 문제로 생각해 안내를 한 것이라고 사과하고, 너의 다른 계정 정보를 알려주거나 그 계정 이메일로 메일을 다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퇴근즈음이 되었는데 이전보다 더 불같이 화를내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가 분명히 어떤 문제인지 말을 했는데 왜 못알아먹냐? 지금까지 거의 10년간 매 달 몇 백 불씩 돈을 내 왔는데, 내 정보는 어디간 것이냐? 너 때문에 지금까지 낸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내 메일 잘 읽고 당장 해결해내!"
역시나 문제가 있다는 그 다른 메일 계정에 대한 정보는 없고 화의 크기만 더 커졌습니다.
회사 서비스 특성 상 하나의 메일 주소에 두 가지 계정을 등록할 수 없으니, 검색 시스템 이상으로 누락된 것은 분명히 아니고 고객이 정보는 알려주지 않고 문제만 해결 해 내라고 덤비는 상황이니 제가 잘못 한 것은 없지만, 만약 진짜로 서비스 이용 요금으로만 매 달 수백불을 지불하는 고객이라면 분명 따로 관리되는 VIP일테고,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는 총액은 서비스 구독료보다 훨씬 더 클텐데,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 해 옵니다.
아마도 테스트를 위해 새로 만든 trial 계정으로 로그인 하여 몇가지 테스트를 한 후, 자신이 현재 trial 계정 로그인 상태라는 것은 모르고 이메일 문의를 보낸 후, 매 달 수백불 씩 내는 고객인데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리버리한 서포트는 딴소리만 한다며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소심한지라 회사에서 겁먹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사전에 해주지 않았다면 제 진짜 직무도 아닌, 교육 기간에 잠시 한 서포트 일 때문에 짤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 끙끙 앓았을 것 같아요.
어찌되었건 다시 용기를 내어서 우리가 너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당혹스럽겠지만, 문의를 준 계정이 free trial 계정이라 우리는 너의 원래 계정 정보를 알 수 없다. 너의 원래 계정으로 문의를 다시 주거나 전화를 해서 우리가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고객으로부터 다른 업데이트는 없습니다. 아마 다른 계정으로 새로 요청을 보냈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궁금증이나 화 둘 중에 하나를 풀었을 수도 있겠죠.

나머지 한 번은 사실 위 사건과 연관이 있긴한데, 제 과실이고 비교적 해피엔딩 이였습니다.

위 사건에서 두 번째 답장을 받기 직전, 저는 다른 고객에게 답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말씀드린 두번째 메일을 받으니, 일단 이 문제부터 추가 답변을 해야할 것 같아 작성중인 메일을 임시저장하였죠.
부라부랴 불같이 화난 고객을 달랜 후, 임시 저장된 티켓으로 돌아왔는데, 제가 작성중이던 답변이 안보입니다. 아래로 내려보니... 아뿔싸!
제가 실수로 발송을 눌렀나봅니다. 이건 뭐 답을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에서 메일이 끊긴 채 발송되어버린 것입니다.

뭐, 요약하자면 이런 식으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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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서비스 이용해줘서 고마워. 네가 지금 그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내가 괜히 송구스럽네. 그런데, 이건 오류가 아니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해결되.

그러니까,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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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책은 있다고 말은 해두고 뭔지 설명은 전혀 안해준 것이지요. ㅠㅠ
그래서 얼른 이전 메일은 작성중 실수로 발송된 것이고 실수로 미완성 된 메일을 보낸 것 미안하고 진짜 답변은 이거야... 라고 제대로 답변을 달아 발송버튼을 누르자마자 그 고객에게서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그 사이 고객이 제 답장을 이미 읽고...
"지금까지 받아왔던 서포트 서비스들과는 너무 다르게 안좋네? 심지어 이건 내 질문에 대한 답도 아니다. 이런 서포트를 받는다면 내가 왜 너희 서비스를 계속 이용해야 할까?"
라는 메일을 보냈더군요. ㅠㅠ

다행히 30분 즈음 지난 후 제 두 번째 메일을 읽고는 Okay, thanks라는 딱 한 줄 짜리 답장을 보내와 그나마 해피앤딩이긴 했지만.... 아, 이 날은 하루에 두 번 씩이나 이런 일들이 터져버렸네요.
이 일들이 모두 퇴근시간 직전인 4시 50분 경 발생하여 덕분에 5시 퇴근을 못하고 6시 넘어 퇴근을 하게 되었고 또, 그 덕분에 express train을 못타고 일반 완행편을 타고 퇴근하게 되어 평소보다 훨씬 늦은 퇴근을 했습니다.

절대 다수의 고객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 2 번의 문제 때문에, 아우... 저는 정말 소심해서 이런 대외적인 직무는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ㅠㅠ
조만간 교육이 종료되면 서포트 팀 업무도 끝이 날테니, 다시금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겠죠.

 그 날 이후로 제가 답변을 한 후 고객에게 답장이 오면 심장이 콩알만큼 쪼그라듭니다. 이 2 번을 제외하면 모두 thank you 레터나 제 답변 관련 추가 문의사항이였는데도 말이죠.

저처럼 교육 차원에서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일반 고객 대상 서포트 업무를 하시거나, 이른바 감정노동 직업군에 계신 분들께서 보시기엔 이 정도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죠. 영어마을 직업체험 학교에서 하는 것 처럼 어린아이 장난마냥 우스운 수준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저에겐 고작 1-2주 정도의 짧은 경험이지만, 이 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금서야 알게 해 주었고 감정노동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메일에 이 정도면, 대면이나 전화는... OTL

감정 노동자들 모두 화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보기에 아주 사소한 우스운 일일 수 있지만, 가슴이 콩알만한 저에겐 큰 일이였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당시가 다시 떠오르니 심박수가 조금 올라가네요. 아무래도 이번주 금요일엔 회사에서 열리는 명상 수업에 참석하여 마음을 조금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부터는 교육이 종료되고 원래 제 채용 부서로 이동할테니, 그 전에 이미 받은 마음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고 가야죠. ㅎㅎ

이제 다음 주 부터는 진짜 제 업무로 돌입할텐데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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