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7일 목요일

퇴직, 휴식, 그리고 이직

안녕하세요, 둥이네 아빠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저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 중입니다.

Family day long weekend 직전 사직서를 제출하고, 첫 사흘 동안은 이리저리 바쁘게 끌려다녔던 것 같아요. 일단 제 매니져와 하루에 2번 정도는 면담을 했습니다. 왜 옮기려는지, 그 회사에서 오퍼는 어느정도인지, 우리가 어떤 리버스 오퍼를 주면 네가 남을지 등등에 대해 사실상 답이 안나오는 이야기만 계속 했습니다.

원래 연봉인상이 목적이 아니였기에, 연봉이나 benefit 조정 제안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심지어 새 직장에서 저에게 제안 한 연봉과 benefit보다 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올 여름 evaluation 기간에 팀 budget이 더 늘어나면 어디까지 더 올려주겠다고 약속 한 금액은 그 보다 더 높긴 했지만, 이미 '고과평가 기간에 뭐뭐 해줄께'라는 말에 데인 적이 몇 번 있어서 이미 믿음이 가지 않았고요. 직급 조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제 롤이 제가 컨트롤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데다 저에게 모든 일이 몰리는 팀 구조가 된 것이 부담이였기에 오히려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죠.

유일하게 조금은 솔깃한 이야기라면,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며 쌓은 안정적인 나의 지위를 버리고 새 직장에 가서 다시 크레딧과 리스펙을 쌓으려면 어려울텐데, 왠만하면 남으라는 이야기였는데,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도전을 해야겠다고 말했죠.

매니져와 면담 이외에도, 저의 이전부서 매니져들과, 원래 친분이 있었던 다른 동료들이나 매니져들도 찾아와 이직 만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간 제가 해 왔던 업무들을 누구에게 할당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매니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몇몇 업무에 대해 매니져와 제 생각이 달라 밤 늦게까지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그 업무를 정말 하고싶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직한지 반년 정도 된 친구입니다. 채용은 팀 리드라는 타이틀로 왔으나 (사실 이것도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나 일단 넘기고...), 실제 하는 일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의 막내같이 하고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 친구가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의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일에 대한 주인의식은 다른 팀원들 보다 확실하지만, 그 회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들에 대한 경험이 입사 이전까지 전혀 없었고, 지난 반년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속도가 빠르지도 않기에 새 기술을 익히기 보다는 그 친구의 지난 경력과 최대한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했죠. 그래서 주인의식은 다소 미약하지만 두뇌회전이 빠르고 학습 능력과 응용 능력이 좋은 친구를 추천했는데, 매니져는 아무래도 주인의식이 없는 그 친구가 썩 미덥지 않은 것 같더군요. 뭐, 제가 나간 후에 일어날 일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마지막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knowledge transfer 미팅을 수차례 가졌는데, 이미 이해도와 활용능력 면에서 차이기 많이 나기 시작했기에 아마 일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매니져도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길 것 같네요.

그리고 마지막 주차에는 저의 퇴직으로 공석이 된 포지션의 job posting 작성 및 해당 포지션을 위한 budget관련 매니져와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작년부터 이런저런 이직 포지션들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현재 DevOps의 시장 가격을 알려주고 회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저 처럼 지식이 얕고 경험이 미천한 사람 보다는, 이 분야에 훨씬 많은 경험과 나은 실력을 가진 진짜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니, 이 정도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저를 잡을 때 제안한 연봉이 현재 팀 예산의 상한선인지 그 이상으로는 올리지 못하더군요. 아마 앞으로 계속 구인을 하다보면 예산을 올리지 않고는 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회사가 DevOps의 입장에서는 썩 매력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다 시장가 대비 높은 연봉도 아니기에 경험과 실력이 풍부하지만 직업 만족도를 포기하고라도 올 만한 포지션이 아니니까요.

결국 안그래도 업무 인수인계와 제가 해 오던 프로젝트들 마무리 때문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런저런 면담들 덕분에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바쁜 회사 일정을 보냈고, 심지어 마지막 주차 월요일에는 퇴직 전에 제가 셋업했던 일을 마무리짓고 인수인계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로 올리기 위해 밤샘까지 한 번 하고, 마지막 출근일인 목요일 아침까지 코드 커밋을 올리고 퇴직했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쉬엄쉬엄 안식을 취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출근을 하려던 계획은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2월 말일 퇴직 후, 3월 1일 금요일 하루만 쉬고 이번 주 부터 새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새 회사는 바로 업무에 투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직무/직급과 무관하게 첫 한달 간은 회사 서포트팀 (콜센터)에 배치받아 제품 교육 및 회사의 역사/핵심가치/문화/고객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서포트팀 업무를 한 이후에 자기 부서로 가는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업무 시작을 하기 전까지 약 한 달간 출퇴근 기차에서 이것저것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좌들을 폭풍 구매 해 놓고, 미리 다운로드를 받아놨죠.

기차에서 듣는 강좌인지라, 직접 실행을 해 보며 공부를 할 수는 없고, 단순히 동영상 강의만 듣고있어요. 원래는 퇴근 후에는 기차에서 들은 내용들을 직접 실핼 해 볼 생각이였는데, 평소와는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인지, 자차 출근하다 기차를 타서인지, 아니면 하루종일 교육을 받느라 지쳐서인지 집에오면 그대로 쓰러져 뻗어버리네요.

교육받는 기간 시간을 잘 활용해서 업무 시작 전에 최대한 제가 준비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듣는 것이 야속합니다.

아직 새 회사에서 교육만 받고있고 다니기 시작한지 나흘밖에 안되지만, 이 회사에서 확실히 좋게 느끼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이전 직장에서 우려된다고 할까? 아님, 조금 신경이 쓰였던 것이 바로 사라져버린 회사 문화였습니다. 삼성에서 서비스 담당을 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을 봤습니다. 페이스북처럼 처음 만났을 때엔 작은 회사였지만 어느순간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한 회사도 있었고, 성장의 끝이 어디일 지 모를 정도로 잘 나가다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기업도 봤습니다. 제가 밖에서 보기에 무너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창업주의 리더쉽 문제였는데, 창업주가 흔히 말하는 겉멋이 들기 시작했다거나 회사의 규모가 커지며 창업주의 통솔능력 밖으로 벗어나는 경우죠.
이 경우 제 경험상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점점 회사와 제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는데, 제 이전 직장에서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 시작 했습니다.
회사의 사업구조도 그렇고 그에 따른 수익구조 자체가 아주 탄탄한데다 일부 능력과 주인의식이 매우 빼어난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여 쉽사리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회사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회사, 업무,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고민이였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300명 정도 규모에서 지금 800여명 정도로 성장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있는 인력 100여명을 제외하면 모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직원들 사이에 업무에 대한 오너쉽이나 제품과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 등등 수준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사옥 건설이 계속 지연되며 여러개의 사무실로 뿔뿔이 흩어져 창업주와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데다, 사장이 경영 일선 보다는 계속 외부행사 참가 빈도가 높아지다보니 경영진과 직원간 스킨쉽이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나 2-3년 즈음 전에 창업주와 함께 오랜기간 회사를 이끌던 COO가 퇴임한 후 새로 임명된 COO의 리더쉽 스타일이 스킨쉽 보다는 불도져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성과는 잘 나오지만 직원과 임원진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으며, 임원진에 대한 신뢰나 respect는 점점 사라져 최근 1-2년 내에 들어온 직원들은 정말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하나도 없었죠.

반대로 이직 후 느끼는 것이, 이 회사에는 확실한 기업문화가 있고 모두들 회사의 문화를 존중하고 최대한 따르며 제품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경영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 일명 푸른피 세뇌교육이라 하는 삼성 신입사원 연수도 받아봤기에 교육기간 중 이야기 하는 것 들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 중에는 당연히 좋은 이야기만 하니까요.

회사 문화가 직원들끼리 서로 알고 인사하며, 낮선 얼굴을 보면 새로온 직원이라 생각하고 인사하고 말을 거는 문화가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 며칠간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식사를 했는데, 놀란 점은 다들 회사와 제품, 일에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는 것이죠. 아마 지금 재직중인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는데, 다른 환경에 있다가 와서인지 확연히 다른 자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새로 온 직원임을 알기에 구지 나쁜 이야기는 피해서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전 회사에서는 적어도 최근 몇년간 잘 느껴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직원들 뿐 아니라 회사 공동 창업주들도 마찬가지여서 지나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스스럼없이 스몰 토크를 이어갔죠.
인터뷰 프로세스에서도 느꼈는데 5단계 프로세스 중 4단계가 기술이 아닌 회사와 cultural fit을 보는 것이였습니다. 안좋게 보자면 성격 좋으면 일단 채용 해 보고 일 못하면 자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회사 인력들의 절반 이상은 referral로 채용되는 상황이라 실력에 대해서는 추천인의 추천을 믿고, 우리와 함께 잘 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 회사를 더 오래 다녀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들이긴 하겠지만, 회사의 각종 정책들 역시 회사에서 내세우는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점은 회사에 employee handbook이 없고, 출장 숙박비나 식비 등에 제한규정이 없다는 것이에요. 창업자의 마인드가 각 직원을 믿고, 각자 알아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되지, 뭐뭐는 안되고 뭐뭐는 어디까지 된다는 쓸데없는 규정집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워낙 제 역량보다는 더 큰 기대를 받으며 온 자리이기에 부담이 큰 것과 출퇴근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빼면 여러모로 참 만족스럽습니다. 짧은 나흘간 느낀 감정으로는 이 곳에서 잘 버티고 자리잡으면 정말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교육기간 동안 실제 업무에서 할 일들에 대해 따로 잘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계속 성장을 해 나아가면서 지금의 회사 문화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막 DevOps로서 첫 발을 내딛은 신생아인데, 경력이 제 커리어를 크게 좌우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테니 이전보다 좀 더 집중해서 달려야 할 것 같네요. 이 회사 제품의 주요 언어도 저에게는 생소한 Python인데다, CI/CD 측면에서도 제 기존 경험보더 더 진보된 곳인데, 제가 특정 부서에 배치되어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재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안을 만들어서 이후 팀을 꾸려서 일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려서요. (사실 이건 첨엔 몰랐고, 첫 출근을 하고 제 디렉터와 같이 점심식사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에요. 그 전까지는 내 기대보다 롤이 더 크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냥 어느 부서에 들어가 일을 할 줄 알았지 이런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ㅠㅠ)

앞으로 한달여 간 교육을 받고 이후 3개월간 이어질 probation을 잘 마친다면 매 6개월마다 있는 고과평가 기간에 첫 반년간 제가 얼마나 잘 자리잡았는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죠. 부디 이전 회사에서 처럼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댓글 1개:

  1. 늘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곳에서도 잘 해 가실 것을 믿습니다. 건승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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